그때, 가까운 어딘가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익숙한 무리가 등장했다. 한지원은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루키 6?”
“......801?”
그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이서준이 속한 루키6이었다.
보아하니 우리와 같이 사슴의 마력 을 쫓아온 모양인데.
“우리가 먼저 왔으니 다른 길 가시 죠?”
그때 한지원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러자 릴리가 코웃음 치며 앞으로 나섰다.
“웃기고 있네. 무슨 RPG 게임하세 요? ‘님아 자리요.’ 이러게?”
“아니, 저희가 먼저 찾았잖아요.”
“그니까 여기가 님 사유지도 아닌 데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요. 그리고
너네도 방금 왔구만.”
“아씨. 상도덕이 없네!”
유치한 성격의 두 명이 붙었다.
눈앞의 마수 등급이 엄청나게 높은 만큼 서로 양보할 생각도 없었다.
갑작스레 마수 하나를 두고 경쟁하 는 구도가 된 것이다.
우우우웅!
그때 거대 사슴의 전신에서 검은 마력이 피어올랐다.
수호자라는 신성한 느낌의 이름과 달리 소름 돋을 만큼 사악한 마력이 느껴졌다.
마치 악마족 몬스터의 마력을 보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그 순간 사슴의 머리 위로 검은 마력이 응축되더니 12개의 검은 구 체가 되었다.
구체는 곧 모두에게 빠르게 쏘아졌 다.
파아아앙!
“어어 ?”
“피해!”
육신을 마력으로 강화해 놈의 공격 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피한 자리가 폭발하고 바닥에 거대 한 웅덩이가 생겨났다.
나는 그것을 보며 식은땀을 홀렸 다.
마수의 힘이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저 정도면 거의 준 재앙급 마수 수준인데.
“와…… 진짜 살벌하네. 맞으면 바
로 죽겠는데?”
맞은편에서 신영준이 창을 움켜쥐 며 중얼거렸다.
“가상 세계가 아니라서 진짜 죽을 수도 있어. 조심해.”
이서준은 그렇게 말하더니 우리에 게 말했다.
“이렇게 된 거 잠깐 동맹하죠. 어 차피 기여도에 따라 점수가 나눠지 는데.”
“협업은 무슨. 기여도 경쟁이지!”
릴리가 외치며 앞으로 달려 나갔 다.
“흐아아압!”
릴리는 순식간에 사슴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그녀가 검을 휘두르자 사슴에게서 검은 마력이 가시가 구현되더니 그 녀를 향해 쏘아졌다.
릴리는 검을 세워 간신히 그 공격 을 막아내었다.
“우리도 합세하죠! 이러다 기여도 다 뺏기게 생겼어요!”
한지원은 곧바로 마력으로 소환 마 법진을 그려냈다.
강한 빛이 번쩍이고, 3개의 소환식
에서 거대 뱀과 고양이. 그리고 새 가 소환됐다.
우우웅!
한지원은 새를 타고는 하늘을 날았 다. 뱀과 고양이는 사슴을 향해 달 려들었다.
사슴은 검은 마력의 가시를 방출하 며 소환수들의 접근을 막아냈다.
“큭!”
“흐아아압!”
그 뒤로 이서준과 신영준. 그리고
렌이 앞으로 나섰다.
강한 파괴력을 가진 강화계 마법사 들답게 그들은 빠른 움직임으로 사 슴에게 접근했다.
사슴은 검은 마력의 가시를 방출하 여 그들의 움직임을 막아내려 했지 만 움직임이 워낙 빨랐기에 적중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하아아앗!”
세 사람의 공격이 동시다발적으로 들어갔다.
사각!
그러나 그들의 일격은 사슴의 단단 한 가죽을 뚫어내지 못했다.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침착하게 무기의 마력을 증폭시켜 다시 휘둘렀다.
—……으어.
사슴의 입에서 소리가 울렸다. 고 통에 담긴 비명이 아니었다.
이건, 귀찮음이 담긴 울음이었다.
“……이게 무슨.”
공격이 통하지 않자 렌은 당황했다.
그 순간 검은 구체가 구현되더니 그대로 그들을 향해 쏘아졌다.
콰아아앙!
“크으으윽!”
거대한 폭발과 함께 이서준과 신영 준. 렌은 뒤로 물러섰다.
신영준은 떨리는 목소리로 사슴을 바라보며 말했다.
“야…… 공격이 안 통하는데?”
“……그러게.”
이후 다른 이들의 공격이 이어졌 다.
선화, 유아라, 엘린, 윤하영, 최서 윤....
수많은 마법이 퍼부어지고, 녀석은 검은 마력의 돌풍을 방출하여 공격 을 막았다.
그러나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공격을 모두 방어할 수 없었다.
쏟아지던 마법은 결국 사슴에게 닿 으며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앙!
하지만 놈은 멀쩡했다. 가죽을 뚫 어내지 못한 것이다.
“……뭐 이리 단단해?”
전투는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잠시 뒤로 물러섰던 근접 마법사들 이 공격을 이어갔고, 뒤에서 발현계 마법사들이 그들을 보조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슴의 움직임은 격해졌다.
구체 공격의 움직임은 난해해졌고 그 공격을 피하는 과정에서 우리들 의 위치도 섞이게 되었다.
어느새 내 주변에는 이서준과 릴 리, 최서윤이 함께 있었다.
그때 검은 구체가 시간차 공격으로 우리를 향해 쏘아졌다.
최서윤은 빠르게 얼음 방벽을 구현 하여 막아냈지만, 빗나간 검은 구체 하나가 분열되더니 옆구리로 그녀를 공격했다.
“......읏?”
예상치 못한 상황. 나는 본능적으 로 사슬을 구현해 그녀를 끌고 왔 다.
그녀의 몸은 순식간에 붕 떠오르더 니 내게 잠시 안겼다.
이후 내게 쏟아지는 공격을 장막을 구현해 방어했다.
콰아아앙!
“……와씨. 이건 또 무슨 패턴이 야? 큰일 날 뻔했네.”
릴리가 우리를 바라보며 식은땀을 홀렸다. 확실히 나도 놀라긴 했다.
무슨 공격이 분열까지 해?
그때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그녀가 내게 떨어지더니 고개를 숙였다.
“가, 감사합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터 느끼는 거지만 유독 최서윤 과 이런 상황이 자주 생기는 기분이 다.
최서윤은 잠시 생각에 잠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다시 사슴에게 시 선을 돌렸다.
그 순간 다시 한번 사슴의 머리 위로 검은 마력이 피어올랐다.
아까도 엄청났지만 이번에 느껴지 는 힘은 이전과 달랐다.
훨씬 흉포한 힘이 느껴졌다.
그걸 본 릴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야. 야야. 유령. 뭐라도 해봐! 너 엄청 강하잖아!”
……누가 보면 같은 팀인 줄 알겠 네.
나는 가만히 사슴을 바라보았다.
나도 마음 같아서는 뭐라도 하고 싶지만 이런 대마수 상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없다.
보조계 마법사의 큰 단점이라고 해 야 할까?
그렇다고 발현계 마법을 사용할 수 도 없는 일이고.
우우우웅!
사슴의 머리 위에 떠 오른 검은 마력은 곧 구체의 형태가 되었다.
그것을 본 구미호가 빠르게 내게 다가오더니 말했다.
“내가 나서면 되겠느냐?”
“아니, 기다려.”
그렇게 말하고는 뒤를 돌아 최서윤 에게 말했다.
“내가 신호 주면 놈의 발을 얼려버 려.”
“......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구체는 나를 향해 쏘아졌고 나는 녀석의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마력 광검을 꺼냈다.
스으으응!
검에서 빛의 검기가 구현되자 뒤에 서 릴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서준도 안 통했는데 무슨 검으 로 공격하겠다고……
강화계가 주특기인 이서준과 렌의 공격이 실패한 상황이었기에 내 공
격이 무모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신경 쓰지 않고 순식간에 사 슴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사슴은 전과 같 은 패턴인 검은 가시를 방출했다.
[사용 효과 ‘순간 가속’을 발동합니다.]
타이밍에 맞춰 바닥을 박차며 공중 을 돌았다.
그리고 외쳤다.
“지금이야!”
그 순간 강한 마력과 함께 사슴이 서 있던 다리가 빠르게 얼어붙기 시 작했다.
상대의 힘이 워낙 강하기에 완전히 묶어두는 건 불가능하지만, 잠깐의 시간만 벌 수 있으면 충분하다.
이후 검에 빛의 마력을 집중했다.
[사용 효과 ‘백천 극섬’을 발동합니다.]
우우웅!
검에서 강한 빛이 응축되기 시작했다.
뒤에서 이서준의 놀란 목소리가 들 려왔다.
“……저건 백천 극섬?”
나는 순식간에 녀석의 다리 아래로 파고들고는 검을 크게 휘둘렀다.
파아아악!
—……으어어어!
백천 극섬의 반월 파동이 녀석의 배를 길게 그었다.
사슴의 커다란 비명이 터지고, 가 죽이 길게 그어지며 검은 피가 터져 나왔다.
“어, 어떻게?”
“저 정도의 검기로 가죽을 뚫어냈 다고?”
나는 이어서 검에 마력을 집중했다. 잠시 얼어붙었던 녀석이 크게 움직이며 얼음을 깨트렸다.
그 타이밍에 맞춰 다시 한번 검을 크게 휘둘렀다.
사아아아악!
—으어어어!
“……뭐야? 왜 쟤 공격만 통하는 거야?”
고작 부특기에 지나지 않은 내 강 화계 공격이 통하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외부자의 혜택]을 통해 녀석의 약 점이 눈에 보이니까.
그때 뒤에서 누군지 모를 멍한 목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약점을 간파한 건가?”
시간이 흘러 대마수 토벌 시합이 종료되었다.
상위 4팀이 결승전에 올랐으며 801, 루키6, 투왕, 멸화의 검. 이렇 게 넷팀이 오르게 되었다.
예상했던 그대로의 결과가 나왔다.
10대 길드에서 두 팀. 그리고 801 과 루키 6.
참고로 원작에서는 801 대신 흑견 이 결승에 진출했었다.
……그리고 결승 참가팀과 주최측 의 면담을 위한 대기실.
“하하하. 보았느냐? 나의 위엄에 마수들이 도망치는걸?”
구미호는 아까부터 신난 목소리로 내게 떠들고 있었다.
주변에 다른 팀들이 지켜보고 있어 조용히 시켰지만 녀석은 자랑을 멈 추지 않았다.
그때 구미호가 말을 멈추더니 주변 을 둘러보았다.
“그나저나 우리를 향한 시선이 곱 지 않구나.”
그녀의 말대로 대기실 안의 모든 길드의 멤버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따가운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투왕 길드의 중앙에 앉은 은 발의 여인.
‘빙혼검제’의 시선은 유독 강렬했다.
우여곡절 일이 많았지만 마수 토벌 시합에서 우리가 압도적 1등을 차지 했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이서준, 최서윤은 원래 그
렇다 쳐도 윤하영과 유아라, 신영준 의 시선도 달라졌다.
마치 수상한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 이라고 해야 할까?
이전처럼 ‘경쟁심’이 담긴 시선은 아니었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마주하다가 시 선을 피하곤 외부자의 혜택을 발동 했다.
[수많은 대마수를 학살하여 깨달음 을 얻습니다.]
[당신의 육체가 마수와의 전투에 적응합니다!]
[‘마수 학살자(A)’를 획득합니다.]
이번 시합으로 오랜만에 [적응과 진화]를 통해 특성을 획득했다.
무려 A등급의 특성이었다.
[마수 학살자(A)]
설명 : 효율적으로 마수와 전투할 수 있게 됩니다.
[지속 효과]
►마수 학살자
마수를 향한 공격이 적중했을 시 발동됩니다.
마수에게 30% 추가 피해를 입힙 니다.
마수의 재생 능력이 30% 감소합 니다.
마수 학살자.
이름 그대로 마수를 상대할 때 상 당히 유용한 특성이다.
30%의 추가 피해와 재생 능력을
억제시킬 수 있다.
곧 해상열차에서 ‘크라켄’을 상대 할 일이 있었기에 보상 자체는 상당 히 만족스럽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주최측, 유수 철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안으로 들어오시죠.”
안으로 들어서자 화려한 내부와 거 대한 일자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중세 귀족들의 회의실을 연상시키 는 장소.
유수철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원하는 자리에 앉으시면 됩니다.”
우리는 빈자리를 찾아 자리에 앉았 다.
맞은편에는 루키6이.
옆자리에는 투왕이. 그리고 그 맞 은편에는 멸화의 검이 앉았다.
자리에 앉자 맞은편에서 이서준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의 주변에 함께 앉은 동료들 역 시 마찬가지.
이들이 나를 의식하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시합이 끝난 직후라 그런지 전보다 더 노골적이 다.
“우선 결승에 진출하신 모든 분께 축하의 말씀올 드립니다.”
들려오는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유수철을 향했다.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 모은 건 다 름 아닌 ‘해상열차 탑승권’과 관련 하여 간단한 설명을 드리기 위함입 니다.”
해상열차라는 이야기가 들려오자 모두의 눈에 깊은 관심이 드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