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9화 (478/535)

그때 통신 마도구가 자연스레 폭발 했다.

마도구로서 기능을 완전히 잃은 것이다. 나는 망가진 통신 마도구를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다시 윤지혁에 게 시선을 돌렸다.

“……그럼 이놈을 어떻게 할까.”

몇 가지 선택지가 있다.

이 자리에서 처치하거나, 심문해 정보를 캐내거나.

하지만 자운의 요원인 만큼 정보를 캐내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자운과 관련된 인물들에게는 [발설 금지]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떻게 괴롭히다 보면 자결 을 위해 정보 하나쯤을 홀리고 가지 않을까?

……조금 비인간적인 잔인한 방법 이기는 하지만.

그때 [외부자의 혜택]이 발동되며 녀석의 가슴에 숨겨져 있던 술식이 눈에 들어왔다.

“......웅?”

발설 금지의 힘이 담긴 [저주 술 식] 이었다.

자운의 핵심 멤버들이 ‘피의 맹세’ 를 통해 발설 금지를 하는 걸 생각 하면 이건 조금 의외다.

물론 저주 술식이라고 해서 상황이 바뀌는 건 없다.

‘질병의 마수’의 저주.

그리고 ‘은설아’의 신비 열병 사건 이 그렇듯, 이런 종류의 마법은 시 전자가 직접 풀어내기 전까지는 풀 수 없으니까.

그나저나 은설아는 요즘 뭐 하고 지내려나?

졸업하고 은월가에서 후계자 수업 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얼핏 듣긴 했 었는데.

그때 였다.

“읏..?”

외부자의 혜택이 다시 발동되며 저

주 술식의 설계 구조가 머릿속에 들 어오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는 멍하니 저 주 술식을 바라보았다.

“……이거 잘하면 풀 수 있을 거 같은데?”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불가능할 건 없다.

“허허.”

나는 헛웃음을 홀렸다.

[외부자의 혜택]의 술식 해석 능력 이 저주와 주술까지 풀어버릴 만큼 강해진 건가?

나는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내고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선우 씨〜 무슨 일이에요?

한세연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 다.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피로가 가득할 텐데 목소리만큼은 활기와 즐거움이 넘쳐흐른다.

“혹시 세인트 파크 근처에 집 하나 구해주실 수 있을까요?”

—음? 집이요? 지금 호텔 생활하 고 계신 거 아니에요?

한세연이 의아함을 담아 내게 물었다.

“아, 다름 아니라.”

나는 기절한 윤지혁에게 시선을 돌 렸다.

“제가 급하게 사람 한 명을 납치하 려는데 감금할 장소가 필요해서요.”

_……네?

*

이서준과 엮인 ‘자운의 감시’ 사건 으로 협회의 요원들이 세인트 파크 에 출동했다.

그 여파로 판타지 랜드를 포함한 위저드 게임의 행사가 잠정 중단되 었고, 수많은 기자가 진상 파악을 위해 몰려왔다.

—자운이 왜 온 거래? 설마 위저 드 게임에 개입하려 했나?

—일단 기사 작성해. 제목은 위저

드 게임의 자운 개입설.

얼마 안 가 인터넷에 수많은 추측 성 기사가 올라왔다.

‘자운과 위저드 게임의 관계’, ‘이 번에도 사건을 해결한 건 특무 요원 이서준’…….

그렇게 시간이 흘러 소란이 진정되 고.

이서준과 최서윤은 세인트 파크의 골목길에서 김덕현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고생했다. 다친 곳은 없나?”

“네, 저희는 괜찮습니다.”

이서준의 대답에 김덕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실려 나가는 프레드의 시신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운이 감시를 붙였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협회 내부에서도 이미 이 야기가 나왔었다. 인력 부족으로 수 사 준비가 늦춰졌었는데 결국 이런 일이 터지는군.”

김덕현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 을 이었다.

“이번 일은 최대한 조사해보마. 그 리고 너희가 아까 말했던 통신 마도 구의 끊긴 신호도 조사할 테니 너희

는 신경 쓰지 말고 위저드 게임을 잘 마무리해라. 아무래도 해상열차 의 탑승권이 필요할 것 같아서 말이 지.”

“해상열차요?”

최서윤이 나서서 물었다.

김덕현은 그런 그녀를 가만히 바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됐다.”

“해상열차는 왜요……?”

최서윤이 강한 의구심을 담아 물었다.

김덕현은 주변을 살피곤 작게 말했

“협회 내부에서 자운이 해상열차에 탑승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자운이 탑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요?”

이서준은 순간 놀라서 큰소리로 외 칠 뻔했다.

“놈들의 최종 목표는 진천우의 부 활. 그리고 그 의식을 행하기 위한 적합한 장소 중 하나로 ‘죽음의 섬’ 이 거론되고 있지. 물론 죽음의 섬 말고도 다른 지역도 거론되고 있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준비해서 나쁠

건 없다는 게 협회의 의견이다.”

그 말에 최서윤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바로 유령이었다.

지난번 축제에서 유령과 마주쳤을 때 그녀가 느꼈던 건, 유령은 해상 열차의 탑승권을 얻기 위해 위저드 게임에 참가한 것 같았다.

그렇다는 건 설마 자운을 쫓기 위 해서?

유령을 향한 최서윤의 의심이 더욱 짙어졌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 있었나?”

혼자 생각에 잠겨 있던 최서윤이 정신을 차렸다.

“네‘?”

“오랜만에 얼굴에 생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말이다. 2년 내내 침울해 보이더니.”

“……제가요?”

최서윤은 의아함을 느꼈다. 평소랑 다를 바 없는데.

“뭐,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크게 신경 쓰지 마라.”

최서윤은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

그날 밤.

세인트 파크 외곽에 위치한 어느 작은 집.

“……너도 참 대단하다. 이제는 납 치 감금이냐?”

엘린은 황당함이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지금 내 앞에는 윤지혁이 전신에 포박된 채 의자에 앉아 있었고, 나 는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녀석을 살펴보고 있었다.

“새삼스럽게 왜 그래. 런던에서도

스카 상대로 비슷한 짓을 했었는 데.”

“그땐 상황이 어쩔 수 없었잖아. 승리를 위한 전략이었다고.”

그러면서 엘린이 중얼거렸다.

“잠깐, 생각해보니 얘 나한테 신분 사기도 쳤었네…… 안 해본 범죄가 없는 거 같은데?”

“그 정돈 아니야.”

……라고 말했지만 막상 생각해보 니 안 해본 범죄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폭행에 절도, 도둑질. 심지어 마인 의 왕 시절에 벌인 테러까지…… 물

론 대부분은 수많은 사람을 죽인 악 인을 상대로 했으니 죄책감을 느끼 진 않는다.

그때 잠시 한세연의 집에서 생활하 고 있을 그레텔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동(?) 노동 착취…… 는 아니지.

노동의 보수로 정당하게 숙식을 제 공했으니까.

암 그렇고말고.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는 윤지혁과 시선을 마주했다.

녀석은 공포에 질린 표정이 되더니 이내 소리쳤다.

“이거 안 풀어?! 이거 중범죄인 거 몰라?!”

“그럼 이서준의 스토킹이랑 네 조 직의 테러 활동은 합법이고?”

“……그, 그건! 신성한 의식이다!”

신성한 의식.

흔한 테러리스트들의 자기 합리화 였다.

순간 깊이 역한 기분이 들었지만 겨우 참아냈다.

“잘 들어. 얌전히 말 잘 들으면 살 려줄게.”

“……저, 정말이냐?”

윤지혁의 두 눈이 잠시 떨려왔다.

꼴에 자기 목숨의 소중함은 알고 있는 모양이다.

“어 진짜로 살려줄게.”

물론 곱게 살려주진 않을 거다. 정 상 생활이 힘들어질 만큼 수많은 제 약을 걸 거니까.

“대신. 그 과정이 조금 고통스러울 순 있어.”

“……설마 고문을?”

“아니, 자유를 주는 거지.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고.”

그렇게 말하자 뒤에서 엘린이 다시

내게 말했다.

“어쩌려고? 발설 금지 저주가 걸려 있잖아.”

“걱정 마. 풀어낼 수 있어.”

엘린이 눈을 찌푸렸다.

“풀어낼 수 있다고? 그게 가능해?”

“하루면 돼.”

나는 손바닥을 펼치고는 마력을 끌 어올렸다.

외부자의 혜택을 발동하자 저주의 술식 구조가 한눈에 들어왔다.

나는 녀석의 가슴을 향해 손을 뻗 었다.

윤지혁의 두 눈에는 다시 공포가 드리웠다.

“으, 으아아아악!”

번쩍!

[‘S등급 저주 술식 해체’ 업적을 달 성했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새로운 시도로 작은 깨달음을 얻 었습니다.]

『술식 제어술(S)’의 숙련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후우.”

윤지혁의 가슴에 그려져 있던 자운 의 저주 술식을 해체했다.

22시간.

내가 저주를 풀어내는 데 사용한 시간이었다.

잠도 못 자고 종일 이것만 붙잡고 있어 슬슬 어지러웠는데, 속이 후련 하네.

“……뭐야. 진짜로 풀어냈네?”

그때 뒤에서 엘린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 역시 보조계를 주특기로 삼고 있었기에 얼마나 어려운 일을 해냈 는지 아는 것이었다.

나는 대답 대신 피식 웃고는 눈앞 의 윤지혁에게 시선을 돌렸다.

녀석은 계속된 술식 해체의 고통으 로 잠시 기절해있었다.

나는 가볍게 녀석의 뺨을 두들겼 다.

챱챱.

“자자. 일어나.”

“……아으, 으응?”

고통에 뇌가 녹아버리기라도 한 것 인지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정신 차려.”

“......유령?”

어느새 정신이든 윤지혁이 나를 바 라보며 중얼거렸다.

“잘 아네.”

윤지혁은 나를 바라보다가 자신의 가슴을 내려보았다. 저주 술식이 사 라진 것을 눈치챈 듯 그의 눈이 떨 리고 있었다.

“어, 어떻게?”

“내가 풀었어.”

“……저주 술식을 풀었다고?”

“어. 그럼 지금부터 질문할 테니까 똑바로 대답해. 거짓말은 안 통하니 까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고. 진 짜 끔찍한 일을 겪고 싶지 않다면.”

단순히 겁을 주기 위해 한 말은 아니었다.

고도의 감정 제어 훈련을 받은 자 가 아닌 이상 피부의 떨림 등으로 어느 정도 분별은 가능하니까.

“자운의 현 행방을 알고 있나?”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엘린 역시 뒤에서 팔짱을 낀 채 조용히 윤지혁을 바라봤다.

놈은 나와 엘린을 번갈아 바라보더 니 입을 열었다.

“……그건 나도 잘 모르는데.”

진짜 모르는 듯한 눈치였다.

애초에 자운의 하부 조직의 일원인 만큼 큰 기대는 안 했지만 괜히 아 쉬움이 느껴졌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기 위해 손을 올렸다. 그러자 녀석이 화들짝 놀라 며 몸을 웅크렸다.

“히 이익!”

나는 뒤를 돌아 엘린에게 말했다.

“오해하지 마. 처음 마주쳤을 때 말고는 때린 적 없어.”

“……아무 말도 안 했거든?”

나는 다시 윤지혁에게 시선을 돌렸 다.

“그럼 네가 아는 걸 최대한 말해 봐.”

“자, 자운의 간부 중 한 분이 우리 조직을 직접 관리해. 그분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어.”

“자운의 간부? 설마 백은성?”

“어? 그걸 네가 어떻게?”

자운의 하위 조직 관리는 대부분 백은성이 담당한다.

과거 ‘생명의 잔’ 사건도 놈이 관 리하던 범죄 조직, 골드윈 사건 때 생겨난 것이었고.

“계속 말해.”

“그분께서 급하게 중요한 임무가 생겨서 당분간 연락이 안 될 거라 했어.”

중요한 임무라.

자운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는 진천 우의 부활에 필요한 신비를 모으는 걸 텐데.

“무슨 임무인데?”

“나도 자세히는 몰라. 사막으로 떠 났다는 것밖에는……

“……사막?”

순간 내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혹시 일지라던가 그런 말은 못 들 어 봤어?”

윤지혁의 두 눈이 크게 휘둥그레졌 다.

“어? 맞아. 일지! 일지를 찾는다는 말을 어렴풋이 들었어. 근데 네가 어떻게 그런 걸 아는 거야?”

나는 녀석의 말을 무시하고는 생각 에 잠겼다.

자운이 사라진 이유.

다름 아닌 진천우의 네 번째 일지 를 찾기 위해서였다.

하던 일을 모두 내팽개칠 정도라면 확실한 행방을 찾았다는 증거겠지.

하지만 일지가 대체 뭐길래 진천우 의 부활까지 미루는 거지?

대체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길래?

탁!

테이블 위로 맥주캔이 내려앉았다. 표면에 맺힌 차가운 물방울이 미끄 러지며 바닥을 적셨다.

“크으. 훈련 후 맥주 한 캔만큼 좋 은 게 없다니까.”

세인트 파크의 호텔.

맥주 한 모금을 마신 신영준이 깔 깔 웃었다.

“그래서, 5년 전부터 자운이 널 감 시했다는 거야? 그놈들도 참 정성이 다. 진짜 소름 돋네.”

그의 맞은편에 앉은 이서준은 대답

대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윤하영 역시 맥주를 한 모금 들이 마시고는 조용히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보다 해상열차에 자운이 탑숭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놀랍네.”

“아. 맞아. 근데 가능성은 낮다며?”

“혹시 모르니까 미리 준비하자는 게 협회 생각인 거지.”

이서준이 대신 대답했다.

“혹시 위저드 게임 내에 자운이 숨 어 있는 거 아니야?”

그때 릴리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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