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6화 (475/535)

콰아아앙!

장막과 백천극섬이 충돌하자 주변 에 커다란 진동이 울렸다.

엄청난 파동이 주변을 휩쓸고, 숲 올 이루던 근처의 나무들이 힘을 견 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크윽!”

이서준은 그 힘의 여파에 뒤로 밀 려났다. 그 후 떨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방금 그건……

그 뒤로 그의 동료들의 공격이 이 어 졌다.

바닥이 얼어붙고, 하늘에서 거대한 화염 구체와 얼음 화살이 쏟아졌다.

양 옆구리에서는 마력으로 강화된 창과 검이 나를 죽이기 위해 찔러 들어왔다.

나는 최대한 사슬과 장막. 그리고 결계를 이용하여 방어에 집중했다.

[대자연의 심장]과 [투쟁심]이 발동 된 직후였기에 전보다 이들의 공격 을 막아내는 것이 수월했다.

하지만.

이 능력들의 남은 시간은 이제 약 2분 30초.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 았다. 서둘러 전투를 끝내야 한다.

나는 곧바로 술식을 전개했다.

평소 구현하던 하나의 술식이 아 닌, 여러 개의 술식.

이렇게까지 많은 술식을 구현하는 건 나도 처음이었지만 충분히 시도 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이내 바닥에서 24개의 사슬이 솟 구쳤다.

[‘다중 술식 전개’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실험적인 술식 구현에 성공했습니 다!]

[‘술식 이해력(S)’의 숙련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마력 제어술(S)’의 숙련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수많은 사슬이 솟아오르자 신영준 은 뒤로 물러서며 경악에 찬 얼굴이 되었다.

“미친. 저게 뭐야?”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돼? 저게 인간이 계산할 수 있는 영역이라 고?”

릴리 역시 신영준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진지하게 쟤 사람 아닐지도 몰라. 저거 가면 쓰고 다니는 것부 터 수상했어.”

신영준의 진지한 중얼거림에 릴리 가 눈을 찌푸렸다.

“유령의 정체가 로봇이라도 된다는 거야?”

“미친 과학자가 만들어낸 전투 기 계. 혹은 술식 기계 그런 거지.”

“……받아주니까 끝도 없네.”

이제 남은 버프 시간은 2분.

사슬은 빠르게 그들을 향해 쏘아졌 다.

먼저 뒤에서 틈을 노리던 릴리의 팔과 다리를 묶었고, 그다음으로는 방어에 취약한 윤하영과 유아라를 묶었다.

“큭!”

“이거풀어……!”

남은 사슬 역시 먹잇감을 쫓는 뱀 처럼 다른 사람들을 향해 쏘아졌다.

하지만 저항이 거셌기에 모두를 사 슬로 속박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세 명을 속박하는 데 성공 한 것만으로도 상대의 전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슬슬 기세가 나에게 넘어오고 있었다.

그 순간.

파앗!

얼음의 창 하나가 빠르게 날아오며

가면을 스치고 지나갔다.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날아온 공 격이었기에 순간 아찔함을 느꼈다.

시선을 돌리자 최서윤이 굳은 얼굴 로 나에게 손을 뻗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그녀를 향해 사슬을 쏘아냈다. 하지만 그녀는 얼음의 방 벽을 구현하며 사슬의 접근을 막아 냈다.

나는 그사이에 드러난 틈을 놓치지 않았다.

곧바로 발끝에 마력을 담아 그녀에 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녀

는 침착하게 얼음의 창을 구현해 휘 둘렀다.

그러나 이서준의 검을 상대했던 나 에게 그녀의 창은 한없이 느리게 느 껴졌다.

가볍게 그 공격을 막아내고는 왼손 바닥을 펼쳐 그녀의 배에 가져다 대 었다.

[사용 효과 ‘흐름 반전’을 사용합니다.]

최서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흐름 반전.

경계의 세계에서 구매했던 [반전의 가히의 사용 효과 중 하나로 접촉 하는 상대에게 일시적으로 마나 역 류를 일으키는 능력이었다.

참고로 마나 역류가 일어나게 되면 짧은 시간 마나를 정상적으로 사용 할 수 없게 된다.

그 말은 즉, 그녀는 마나 사용에 장애가 생겼다는 것이다.

나는 그 틈을 노려 순식간에 그녀 의 뒤로 이동했다.

그리고 팔뚝으로 그녀의 목을 감싸 고는 광검을 가져다 대었다.

잠시 고요가 일었다.

모두가 행동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 았다.

현재 신영준과 이서준을 제외한 모 두가 사슬에 포박된 상태.

목에는 사슬이 돌려 있어 언제든 목을 조를 수 있었고, 심지어 최서 윤은 내게 붙잡혀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이서준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내가 4명의 목숨을 쥐고 있는 것 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으니까.

나는 최대한 여유로움을 연기했다.

비록 상황이 잘 풀렸다고는 하나 나에게 유리한 상황은 아니었기 때 문이다.

이제 내게 남은 시간은 약 1분 20 초.

이 시간은 속박된 이들이 마력 강 기를 이용한다면 충분히 버틸 수 있 는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여유를 가장

한 채 말했다.

“제안을 하지.”

“......제안?”

이서준과 신영준의 두 눈에 의문이 떠올랐다.

팀원을 제외하고는 거의 말을 하지 않던 나였기에 대화를 걸었다는 것 에 꽤 놀란 모양이다.

참고로 목소리는 변조되었기에 나 라는 걸 알아차릴 순 없다.

“무슨 제안이지?”

“투항하라. 그리고 이번 시합에서 더 이상 우리 앞에 나타나지 마라.

약속하면 여기 네 명은 풀어주지.”

“뭐라고?”

이서준과 신영준이 눈을 찌푸렸다. 마치 몹쓸 범죄자라도 발견한 듯한 눈빛.

그 시선이 조금 살벌하긴 하지만 악당 놀이를 해본 게 한두 번이 아 니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전 세계를 위협하는 대마왕 역할도 해봤는데, 이 정도쯤이야.

“나쁜 제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로 이런 의미 없는 싸움에서 시간 과 힘을 빼는 건 무의미할 테니.”

그렇게 말하며 광검을 최서윤의 목

에 조금 더 가까이 가져다 댔다.

어디까지나 위협용으로 쇼를 하는 것이지만 최서윤은 어깨를 약하게 떨 뿐, 의외로 별다른 반응을 보이 지 않았다.

그리고 남은 시간 40초.

나는 마력을 이용해 뒤에 속박된 이들의 몸을 조금 더 강하게 조였 다.

이서준은 그 모습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큭.”

그때 뒤에서 릴리가 크게 외쳤다.

“야! 저 녀석 말 무시해! 어차피 죽으면 되살아나는데 무슨!”

나는 릴리를 돌아보다가 다시 이서 준에게 말했다.

“……제안이라는 표현을 정정하지. 이건 기회를 주는 거다. 2순위라도 노려서 다음 시합의 진출권이라도 얻어야 하지 않겠나.”

내 말에 신영준은 이서준을 돌아보 았다.

“분하지만 저 녀석 말도 틀리진 않 아. 어쩔 거야? 네가 리더잖아.”

이서준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아마 고민이 될 것이다.

의미 없는 싸움을 지속하는 것보다 차라리 다른 팀을 노려 진출권 막차 를 노리는 게 더 나은 상황일 테니 까.

그 와중에도 시간은 흘렀다.

11초.

10초.

9초……

그리고 이서준이 말했다.

“확실히 팀원을 잃고, 우리 둘이서

놈에게 덤빈다 해도 승산은 알 수 없어.”

7초.

6초, 5초.

“그리고 만약 실패한다면 각자 다 른 지역에서 되살아나 뿔뿔이 홑어 지겠지. 그렇게 되면 탈락은 확정이 야.”

3초.

2초.

1 초…….

이서준은 검의 마력을 거두고는 한 숨을 내쉬었다.

“네 제안을 따르지.”

“최일현 얘는 요즘 또 연락이 안 돼.”

마법사 협회 최상층.

의자에 앉은 김진철은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 폰을 책상 위로 내려놓 았다.

“한가해 보여도 워낙 바쁘신 분이 시니까요.”

김덕현은 그렇게 대답하며 김진철

의 책상 위에 올려진 홀로그램을 바 라보았다.

“……그런데, 그런 것도 보십니까? 젊은 층에서나 인기 있는 건데.”

홀로그램에는 마법사들의 치열한 전투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최근 이서준이 참가해서 입소문이 탄 ‘위저드 게임’의 생중계였다.

김진철은 홀로그램에 시선을 고정 한 채 대답했다.

“제자 중에 가장 말을 잘 듣는 놈 의 S등급 심사가 걸려 있다는데 안 볼 수가 있나.”

그 말에 김덕현은 피식 웃었다.

제자 중 가장 말 잘 듣는 놈.

김진철의 다른 제자가 진천우와 최 일현이라는 것을 깨닫자 곧바로 수 긍이 됐다.

그 둘에 비하면 이서준은 천사나 마찬가지니까.

“그나저나 저 친구 대단하네.”

김진철의 말에 김덕현은 시선을 돌 렸다.

화면 너머에 검은 가면을 쓴 남성 이 전투를 마치고 쓰러진 동료의 상 처를 살피고 있었다.

“세간에 유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

는 자입니다. 한성 그룹에서 만든 신생 길드의 리더라더군요.”

“......유령?”

김진철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유령 을 바라보았다.

분위기가 왠지 낯이 익다.

내가 아는 사람인가?

“누구인지는 안 알려졌어?”

“소문에 의하면 ‘술식 설계자’의 숨겨진 제자라는 소문이 들리고 있 기는 합니다. 그분이 생전에 연구했 던 결계를 완성해서 다룬다고 하더 군요.”

“술식 설계자라면 설마 정희 말하 는 거냐?”

“네. 김정희 님입니다.”

“허허.”

김진철이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희의 제자라……

그러더니 획 고개를 돌렸다.

“근데 넌 여긴 왜 온 거냐?”

“……보고드릴 게 있어서 왔다고 아까 말씀드렸습니다만.”

“아 참. 그랬지. 맞아.”

김진철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럼 보고하게.”

“……저번에 부탁하셨던 죽은 자를 소생시키기에 최적화된 지역의 명단 을 뽑아왔습니다.”

김진철은 그에게서 서류를 받았다.

서류를 살피던 그가 말했다.

“14곳이라…… 생각보다 많군.”

“가장 우선되는 조건으로는 풍부한 마나. 그리고 자연의 마력 현상과 신비 현상이 잦은 지역을 기준으로 뽑았습니다.”

협회의 가장 큰 적이라 할 수 있 는 자운.

그들의 다음 목적은 ‘진천우의 ’부 활‘일 가능성이 높다.

그 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미리 준 비해야 할 터.

그렇게 서류를 살피던 김진철이 말했다.

“지역이 많아서 어디부터 신경 써 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군.”

“제 생각에는 남극의 ‘절망의 골짜 기’, 남미의 ‘탄생의 숲’을 먼저 감 시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다 음 순위로는 ‘열마의 화산’이 있고 요.”

김진철도 그 의견에 공감했다.

만약 진천우를 부활시킨다면 그곳 들이 최적의 장소였으니까.

그때 김진철은 서류의 마지막 부분 에 시선이 멈췄다.

“죽음의 섬도 있군.”

“네. 위 기준에 부합하기는 하지만 입장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 후순위 에 배정했습니다. 애초에 정보도 거 의 없고요.”

“죽음의 섬이라.”

김진철은 턱을 매만졌다.

“죽음의 섬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해상열차가 필요하다고 들었다. 맞

나?”

“네, 그래서 티켓을 얻어보려 했지 만 3대 길드에서 협조에 응하지 않 은 상황입니다.”

녀석들이라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마법사 협회와 3대 길드는 오랜 시간 동안 앙숙처럼 지냈으니까.

김진철은 서류에서 시선을 떼고는 다시 홀로그램을 바라보았다.

“저 시험의 결과가 중요해지겠는 데…… 어쩌냐? 우리 제자 지금 탈 락하게 생겼는데.”

후우우웅!

시원한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스친 다.

거대한 비행 소환수가 크게 날갯짓 하고, 그 위에 올라탄 나는 말없이 지상의 풍경을 내려보았다.

오늘 시합 중에 있었던 일들이 계 속 머릿속에 떠올랐다.

주요 등장인물들과의 만남. 그리고 다음 시합의 경쟁을 위해 벌였던 전

다행히 큰 충돌 없이 상황을 마무 리 지을 수 있었지만 이서준 일행은 1순위 암살 대상인 나를 놓친 것만 으로도 큰 피해를 입은 상황이었기 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함께 성장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을 원했지 앞길을 막는 존재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으니까.

그때 내 앞에 앉은 한지원이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죄송합니다.”

뜬금없는 사과에 나는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뭐가?”

“……저 때문에 화나신 거 같아서 말입니다. 아까부터 말도 없으시고.”

보아하니 이서준에게 당했던 일에 죄책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내가 입을 다물고 있어서 괜히 의식했던 모 양이네.

“화난 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한지원은 여전히 침울한 반응을 보 였다.

평소 행동은 가벼워도 이런 모습을

보면 팀의 일원으로서 최소한의 책 임감은 갖고 있다.

“그 애들이 널 노릴 상황을 예측 못 한 내 잘못도 있어.”

빈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설마 루키6의 1순위 암살 대상이 우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으니까.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함이 느껴진다.

내 말에 진심을 느꼈는지 한지원은 끝내 수긍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한지원의 소환수가 소멸되고 지상 을 밟았다. 배지의 화살표 방향을 따라 걷자 작은 동굴에 도착했다.

“왔군.”

안으로 들어서자 렌이 우리를 반겼 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온몸이 포박 된 채 구석에 앉아있는 다비트에게 시선을 돌렸다.

“잘 지키고 있었네.”

“잘 지키고 있었다기보다는 잘 숨 어 있었지. 이 녀석도 얌전히 있었 고. 짜식.”

엘린이 피식 웃으며 다비트의 머리 를 강아지 다루듯 쓰다듬었다.

입이 막힌 다비트는 아무 말도 하 지 못하고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래서, 점수는 많이 모았어?”

“2순위 상대로 5번 처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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