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2화 (471/535)

“그리고 만약 실패해서 죽어도 30 분 뒤에 부활하는데 뭐가 걱정이 야‘?”

“……그렇기는 하지.”

유아라는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 다. 이어서 신영준도 설득된 듯 피 식 웃으며 창을 쥐었다.

“그러네. 어차피 죽으면 부활하는 데 이렇게 쫄 필요는 없긴 해.”

그렇게 말한 신영준이 이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가 리더니까 정해. 1순위를 노 릴지. 아니면 포기하고 안전하게 2 순위를 노릴지.”

모두의 시선이 이서준을 향했다.

이서준은 그런 동료의 시선을 마주 하다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굳이 피할 이유가 없기는 하지. 그래. 유령 사냥 어디 한번 해보자.”

4차 시합, ‘히트맨 게임’이 시작된 지 약 20분.

흑견의 동료들과 함께 길을 걷던 박인환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 다.

수많은 나무가 우거진 고요한 숲.

중간중간 세워진 고층 건물들이 시 야를 가리고 있어 정보를 얻기가 쉽 지 않았다.

거기다 숲에서 흐르는 강한 자연의

마력으로 인해 마력 감지 역시 어려 운 상황이었다.

박인환은 극한의 상황에서 얕은 긴 장감을 느꼈다.

히트맨 게임은 정해진 대상을 암살 하는 시합.

자신들이 노리는 상대가 있는 만큼 이곳 어딘가에서 자신을 노리는 자 들도 있을지도 모른다.

“신입. 뭐 이리 긴장했어?”

그리고 그런 박인환의 긴장감을 느 꼈는지 알랭이 말을 걸었다.

박인환은 알랭의 얼굴을 흘겨보곤 머리를 긁적였다.

“……시야가 답답해서 말입니다. 우리를 노리는 놈들이 이미 근처에 잠복해 있을 가능성도 있고요.”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 그놈들 걱 정이나 해라. 만약 암살 1순위로 우리가 지정되었다면 그 녀석들이 더 불쌍한 거니까.”

알랭의 농담 섞인 진담에 박인환은 피식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흑견은 위저드 게임의 강력한 우승 후보.

같은 10대 길드인 투왕과 멸화의 검과 붙게 되더라도 지지 않을 자신

이 있었다.

“제가 너무 걱정이 많았던 거 같긴 하네요. 그나저나 8()1은 어느 팀을 1순위로 선택했을까요? 설마 우리 를 지목하진 않았겠죠?”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801이라는 신생 길드에게 몇 번의 일을 겪은 이후, 이들은 8이라는 슷 자만 봐도 분노를 느끼게 되었기 때 문이다.

“아무리 놈들이라도 그런 무리수를 던지지는 않을 거다.”

“역시 그렇겠죠?”

“만약 녀석들이 정말로 우리를 암

살 대상으로 지정했다면……

알랭이 말끝을 흐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위아래가 무엇인지 놈들에게 똑똑 히 각인시켜주는 수밖에.”

그렇게 길을 걷던 흑견은 어느덧 한 장소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들의 앞에는 낡은 고층 건물 하 나가 세워져 있었다.

“이 앞이다.”

다비트는 손에 쥐어진 스마트 배지 를 확인하며 말했다.

흑견의 1순위 암살 상대.

스마트 배지에 의하면 놈들은 이 건물 안에서 은신하고 있는 게 분명 했다.

혹견의 일행들은 자신감에 찬 미소 를 지으며 문을 열었다.

덜컹!

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칠흑같이 깜깜한 어둠이었다.

마법을 이용해 주변을 밝히자 유적 지와 흡사한 실내 풍경이 눈에 들어 왔다.

“……유령이라도 튀어나올 거 같 네.”

“유령이요?”

“아니, 그 유령 말고. 귀신.”

“아.”

예상치 못한 실내의 풍경에 신기함 을 느끼며 흑견은 천천히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어디선가 스산하면서도 서늘한 기 운이 이들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다비트는 느껴지는 기운을 따라 빠 르게 뒤를 돌았다.

하지만 그의 뒤에는 아무것도 보이 지 않았다.

“……기분 탓인가?”

“다비트 님? 무슨 일 있습니까?”

알랭이 걱정을 담아 물었다.

다비트는 뒤편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뒤에 누군가 있는 것 같았다.”

“……뒤에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알랭은 다비트의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봤다. 다시 봐도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 다.

그리고 이내 알랭의 얼굴이 잠시 심각해졌다.

다비트는 혹견 내에서도 예민한 감 각을 지닌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느낀 것이 단순한 착각이 아 닐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었다.

“혹시 모르니 조심해라. 놈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넵.”

다비트는 다시 배지의 화살표 방향 으로 이동했다.

건물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기에 이 동하는 데 꽤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때였다. 멀리 어디선가 미약한 마력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에, 악! 하는 짧은 비 명이 공간을 울렸다.

“......뭐야?”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이들은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이 건물 어딘가에서 전투가 벌어졌 다는 것을.

그들은 비명이 들려온 방향으로 빠 르게 달려갔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어둠 속에서 한

인물이 홀로 서서 자신들을 바라보 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6명의 사람이 쓰러 져 있었는데, 다비트는 단번에 그들 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흑견의 1순위 암살 대상이었다.

“……이게 무슨.”

다비트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 하며 눈앞의 상대를 바라보았다.

후드를 뒤집어쓴 검은 가면.

저 남성의 정체는…….

“……유령?”

나는 가만히 내 맞은편에 서 있는 다비트를 바라보았다.

내 둥장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그들의 시선 속에는 당혹감과 놀라 움으로 가득했다.

많이 놀라긴 했을 것이다.

[은밀한 발걸음]을 통해 기척을 완 전히 지워 내가 뒤따라오고 있다는 것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테니.

“……유령이 왜 여기에?”

박인환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설마 암살 상대가 겹친 건가?”

“무슨 소리야. 1등 혜택으로 암살 대상을 바꾸면 기존 팀이랑 서로 뒤 바뀌는데.”

잠시 소란이 일자 다비트가 말했다.

“놈의 암살 상대는 저기 쓰러진 놈 들이 아니라 우리다.”

그 말에 모두가 깜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우리를 암살 상대로 지정했다고 요?”

알랭이 황당한 표정을 짓더니 나를

노려보았다.

“건방진…… 지난 시합에서 운 좋 게 1등 했다고 끝없이 기어오르는구 나.”

알랭이 손에 쥔 창에서 살벌한 마 력이 일렁였다.

그리고 그 힘에 의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창끝을 중심으로 공간 이 일그러졌다.

과연 흑견에서도 최전방을 담당하 는 강화계 마법사답게 패도적인 힘 이 느껴진다.

“흐아압!”

이후 녀석은 총을 쏘아내듯, 빠른

속도로 나에게 돌진했다.

그 순간 바닥에서 마법진이 구현되 더니 반투명한 빛의 결계가 그의 앞 을 가로막았다.

콰아앙!

갑작스레 등장한 결계에 자신의 공 격이 막히자 알랭은 당황한 얼굴로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방금 마력이 느껴졌던 방향 으로 고개를 돌렸다.

뚜벅뚜벅.

어둠 속에서 작은 마법진 하나가 빛을 뿜어내며 움직이고 있었다.

알랭은 그 모습을 보며 멍하니 중 얼거렸다.

“……혼자가 아니었군.”

모습을 드러낸 건 다름 아닌 엘린 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손등에 그려진 마법 진 문신을 이용해 순식간에 보호 결 계를 발동한 것이었다.

이후 그녀는 오른쪽 팔뚝의 소매를 걷었다.

그러자 팔뚝에 그려진 또 다른 마

법진 문신이 빛을 발했다.

“……뭐야 저건.”

동시에 바닥에서 마법진 하나가 구 현되 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빛의 사슬이 시 끄러운 소리를 울리며 알랭을 향해 쏘아지기 시작했다.

알랭은 창을 휘두르는 것으로 가볍 게 그 공격을 막아내었다.

제아무리 강한 마력이 담긴 마법이 라고 한들, 강화계 마법사가 휘두르 는 창만큼 강력할 순 없었기 때문이 다.

하지만 문신으로 만들어진 마법진

은 복잡한 계산을 하지 않아도 손쉽 게 술식을 완성시킬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계속해서 구현되는 사슬 세례에 알랭의 팔과 다리가 묶 이게 되었다.

그 순간, 혹견의 길드원 3명이 틈 을 노리고 엘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다시 한번 새 로운 마력이 느껴지더니 그들을 순 식간에 막아 세웠다.

그들의 정체는 렌과 선화. 그리고 한지 원이었다.

한순간에 4:4 대치 상황이 되자

다비트와 박인환은 크게 당황한 반 응을 보였다.

“……이게 대체.”

그리고 내 뒤에 있던 구미호가 말했다.

“하하. 이제 내가 나설 차례인 것 이냐? 아주 혼쭐을 내주겠다.”

“넌 됐어. 쉬어.”

내 말에 구미호가 불만스러운 듯 팔짱을 끼었다.

“꼭 내가 도움이 안 된다는 듯 말 하는구나. 저번에도 말리더니.”

구미호가 삐진 듯 중얼거렸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를 돌아봤 다.

“오히려 그 반대야.”

족쇄에 의해 약화되었다고는 하나, 녀석의 본질은 결국 재앙급 마수.

기본 체급 자체가 괴물인 만큼 별 것 아닌 상황에 힘을 사용하는 건 그다지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거기다 봉인으로 약화되었던 힘도 서서히 돌아오고 있어 혹시 모를 사 고가 터질 우려가 있었다.

“넌 비밀 병기 같은 거라 숨기는 거야.”

달래주기 위해 조금 과장해서 말해 줬더니 구미호는 만족한 듯 히죽 웃 었다.

“흠흠. 네 말도 맞긴 하지. 이 몸 은 고귀한 달의一.”

조용히 하라는 의미에서 손가락을 올리자 구미호가 입을 다물었다.

“내 입이 방정이군.”

나는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른 인원들의 발을 모두 묶었으니 남은 건 다비트와 박인환이다.

그리고 히트맨 게임이 암살 포인트 는 팀의 리더인 ‘다비트’를 처치하 면 획득할 수 있다.

“제가 막겠습니다.”

박인환은 앞으로 나서며 화염의 가 시를 구현했다.

이서준만큼은 아니지만 뛰어난 재 능을 지닌 악역답게 2년 사이에 상 당한 성장을 이뤄낸 것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이후 녀석은 나를 향해 가시를 방 출했다.

화르르륵!

이 정도 위력을 지닌 마법을 굳이

마력까지 써가며 방어할 필요는 없 다.

나는 가볍게 발걸음을 옮기는 것으 로 녀석의 공격을 피해냈다.

자신의 공격이 허무하게 실패하자 박인환은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큭!”

박인환은 이를 악물고는 다시 화염 의 가시를 구현했다.

괜히 시간을 끌어 좋을 게 없기에 나는 곧바로 술식을 구현했다.

이내 바닥에서 마법진이 구현되며 빛의 사슬 하나가 박인환의 발을 묶 었다.

“어어y 어y 악..

콰당!

사슬의 강한 힘에 의해 박인환은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나는 천천히 박인환을 향해 걸어갔 다.

박인환은 바닥에 엎어진 상태로 당 황하다가 화염의 가시를 다시 나에 게 방출했다.

파앙! 파앙!

나는 이번에는 장막을 펼쳐 녀석의

공격을 방어했다.

“..J”

다시 한번 공격이 무로 돌아가자 녀석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아마 놈도 지금쯤 눈치챘겠지.

자신과 나 사이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큰 격차가 있다는 것을.

이내 녀석은 이를 악물고는 혼잣말 하듯 중얼거렸다.

“……크윽. 그걸 사용해야 하나.”

……그거?

나는 잠시 의문을 느꼈다.

박인환에게 숨겨진 비장의 기술이 라도 있던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딱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그때 박인환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 다.

순간 공기의 흐름과 함께 녀석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먹잇감을 노려보는 짐승을 보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숨겨진 기술이 대체 뭐길래?

그때 였다.

박인환은 마법을 이용해 자신의 발

을 속박하던 마법진을 파괴했다.

그리고 화염의 가시를 다시 구현하 더니 나를 향해 방출하고는 나에게 달려들었다.

파앙!

강화계를 부특기로 다루던 녀석답 게 움직임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빨랐다.

보아하니 보조계 마법사의 약점 중 하나인 근접전을 유도하려는 것 같 았다.

화염의 가시를 피하자 녀석은 어느 덧 내 코앞에 있었다.

방출과 동시에 벌어진 상황이었기 에 대처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리고.

화르륵.

녀석의 손바닥 앞에 화염의 가시가 구현되었다.

“흐아아압!”

그 모습을 보고는 나는 깜짝 놀랐 다.

어딘가 익숙한 그 스타일.

저거 설마?

나는 녀석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 눈치채고는 곧바로 신체를 마력으로 강화했다.

그 후 마법을 구현한 녀석의 팔을 움켜쥐어 마법의 방출 방향을 비틀 었다.

화염의 가시는 이내 내 옆구리를 지나 허공에 쏘아졌다.

공격이 빗나간 것을 예상치 못한 듯 녀석의 얼굴에는 깊은 당황이 깃 들었다.

이후 나는 남은 손으로 주먹을 말 아쥐고는 녀석의 복부에 그대로 강

타했다.

“커헉!”

박인환은 침을 질질 홀리며 바닥에 몸을 웅크렸다.

깊게 고통을 호소하며 떨리는 눈으 로 나를 올려보았다.

“……크으윽.”

박인환은 비장의 한 수가 손쉽게 파훼 되자 깊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녀석을 보며 방금 녀석 이 보였던 움직임을 떠올렸다.

신체 강화를 이용한 빠른 움직임. 그리고 근접에서 발현계를 섞는 동

시다발적인 공격.

그건 과거 내가 자주 사용하던, ‘김선우식 전투 스타일’이었다.

뭔가 싶었는데 지난 2년간 내 전 투 스타일을 연구해서 필살기처럼 사용하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자신을 그렇게 괴롭혔던 스타일을 모방할 생각을 하다니.

기특한데……?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 녀석이 떨 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어, 어떻게. 이렇게 쉽게?”

그야 내가 원조니까.

박인환이 손쉽게 제압되자 이번에는 흑견의 리더, 다비트가 앞으로 나섰다.

부하가 당하는 상황에도 뒤에서 구 경만 하던 녀석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한 가지 묻고 싶군. 혹시 우리에 게 사적인 원한 같은 게 있나?”

다비트가 의문을 담아 물었다.

하위권 팀을 놔두고 굳이 혹견 같

은 강팀을 암살 1순위로 지정했으니 녀석 입장에서는 충분히 의심할 법 한 것이었다.

하지만 녀석의 질문에 굳이 대답하 진 않았다.

미래에 벌어질 사건을 들먹이며 설 명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니까.

나는 마력을 끌어올리고는 내 발밑 에서 기습의 틈을 노리던 박인환에 게 마력의 사슬을 발동했다.

츠으으으!

“……컥!”

사슬은 빠르게 녀석의 전신과 목을 뱀처럼 옥죄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박인환은 당황 하며 발버둥을 치다가 이내 눈을 뒤 집히며 정신을 잃었다.

털썩.

박인환의 육신은 서서히 먼지가 되 어 사라졌다.

시합에 탈락한 것은 아니다.

히트맨 게임의 규칙대로, 녀석은 30분 뒤 어딘가에서 되살아나겠지.

다비트는 사라지는 박인환을 바라 보다가 내게 말했다.

“다시 봐도 감탄 나오는 제어 능력

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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