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1화 (470/535)

당황스러움을 느끼며 가만히 그녀 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녀가 물었다.

“……그쪽도 저거에 관심 있어요?”

최서윤의 두 눈동자가 나를 향한다.

가면의 검은 막 뒤에 숨겨진 내 눈을 꿰뚫어 보겠다는 듯, 그녀는 선명한 시선으로 내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시야 가득히 들어온 그녀 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질문의 의도는 무엇일까?

어째서 내게 필요 이상의 관심을 표하는 걸까?

단순한 유명인이라서? 우연히 옆자 리에 앉아서? 인파 속에서 도움을 받아서?

……아니면, 내 정체를 눈치채서?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이내 생각을 빠르게 정리했다.

이서준 일행과 8()1의 멤버들, 주변 을 둘러싼 기자 무리와 자운이 심어 둔 이들까지.

주변 곳곳에서 나와 최서윤을 향한

수많은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결국 내 선택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최서윤은 단상 위 홀로그램 으로 나타난 ‘죽음의 섬’에 시선을 돌렸다.

“……그럼 죽음의 섬에는 왜 관심 있는 건데요?”

최서윤이 다시 내게 물었다.

집요함이 느껴지는 그 질문에 나는 침묵했다.

단상 위에서는 사회자 R의 설명이 아득히 들려왔다.

[……위저드 게임에서 일정 이상의 성적을 기록한 팀에게는 특급 해상 열차의 SS 클래스 티켓이 주어집니다. 이 티켓에는 특실 외에도 죽음 의 섬을 우선적으로 탐사할 수 있는 권한 등, 각종 혜택이 담겨 있습니다.]

“서윤아?”

그때 이서준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런 부분에선 눈치 빠른 녀석답게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던 모 양이다.

이서준은 잠시 내 얼굴을 흘겨보다 가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무슨 일 있어?”

“ 아뇨.

최서윤은 말끝을 흐렸다.

“개인적인 호기심이 생겨서 질문 좀 해봤어요. 별일 아니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최서윤이 이서준을 돌아보곤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럼 4차 본선 시합의 규칙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4차 시험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오자 모두의 시선이 다시 단상을 향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만은 여전히 나 를 향하고 있었다.

[4차 시합의 이름은 ‘히트맨 게임’ 입니다.]

4차 시합의 룰 설명과 모든 참가 자를 대상으로 한 작은 이벤트를 끝 으로 파티가 모두 끝이 났다.

기자와 관광객은 모두 돌아갔으며 게임의 참가자들 역시 휴식을 위해 호텔로 돌아갔다.

“히트맨 게임 기대되네.”

긴 침묵이 유지되던 호텔의 복도에 서 릴리가 첫마디를 내뱉었다.

그러자 그 옆에 함께 걷던 신영준 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살짝 운 요소가 있는 거 같기는 하지만.”

히트맨 게임. 한국식 표현을 빌리 자면 ‘암살자 게임’.

게임의 규칙은 간단하다.

주최 측에서 각 팀에게 암살해야 할 대상 1순위부터 3순위까지를 지 정해준다.

그리고 대상의 암살에 성공 시, 순 위에 맞는 포인트가 주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3차 시합 때 1 등을 했어야 했어. 1등 혜택이 너무 사기잖아.”

예고했던 대로 3차 시합에서 1위 를 차지한 팀에게는 큰 혜택이 주어 졌다.

바로 히트맨 게임에서, 암살 1순위 를 직접 지정할 수 있는 혜택이다.

어떤 팀을 선택할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게임을 유리하게 풀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맞다. 근데 너 아까 왜 그런 거 야?”

릴리가 발걸음을 멈추고는 최서윤 을 향해 휙 고개를 돌렸다.

아까부터 멍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던 최서윤은 정신을 차리며 고개 를 들어 올렸다.

어느새 모두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었다.

“네?”

“아까 유령한테 말이야. 계속 친한 척 말 걸었잖아.”

표정을 보아하니 다른 이들도 내심 그 이유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과거 몇 번의 사건을 겪은 이후, 최서윤은 예전처럼 사교성이 높지 않았으니까.

“오는 길에 친해지기라도 한 거 야?”

“……아뇨. 그런 건 아닌데 개인적 으로 궁금해서 말 걸어본 거예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최서윤은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뭐. 그렇게 말하면 할 말 없 고.”

릴리는 입을 삐죽 내밀곤 다시 걸 었다.

신영준도 신경 쓰지 않는 듯 크게 하품하며 앞장서서 걸었다. 유아라 는 입을 다물곤 그 뒤를 따라갔다.

다만 이서준과 윤하영은 걱정 가득 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최서윤은 두 사람이 무엇을 우려하 는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유령에게서 ‘그 사람’의 그림자를

쫓는 게 아닐까 걱정하는 거겠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선배님 이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에요.”

안심시키려는 듯 작게 웃으며 말하 자 이서준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후 이서준도 유아라를 따라 길을 걸었다.

윤하영은 최서윤의 팔을 끌어안으 며 작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도 따라가자.”

“네.”

이후 최서윤은 다시 호텔의 긴 복

도를 걸었다.

시끄럽게 떠드는 동료들의 소리가 점차 잦아들고, 그녀는 다시 오늘 있었던 기억에 빠져들었다.

파티장의 수많은 인파. 그 속에서 우연히 마주친 유령.

그리고.

그의 품에 안기게 되었을 때 미세 하게 느껴졌던 익숙한 향기.

……그건 나의 착각이었을까?

그건 분명…….

최서윤은 혼란스러움에 빠지며 계

속해서 길을 걸었다.

빠바바밤一!

경쾌한 소리와 함께 커다란 환호성 이 울렸다.

화려한 폭죽이 터져 나오고 하늘 위에 떠 오른 스피커에서 커다란 함 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

위저드 게임의 4차 시합, ‘히트맨 게임’이 시작되었다.

주변은 푸른 숲과 고층 빌딩이 가 득했고, 하늘에는 수많은 드론이 둥 둥 날아다니며 지상 내부를 촬영하 고 있었다.

신비가 만들어낸 가상 세계답게 풍 경 자체는 현실에서 보기 힘든 이질 적인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위저드 게임의 진 행 요원 요입니다!]

하늘 위 전광판이 번쩍이며 선글라 스를 쓴 R의 모습이 떠올랐다.

[히트맨 게임의 룰은 지난 파티에 서 설명해 드렸듯, 각 팀에게 지정 된 1순위부터 3순위 대상을 암살하 는 게임입니다. 이번 시험을 통해 9 개의 팀이 합격하며, 반대로 9개의 팀은 탈락하게 됩니다.]

시합의 룰은 간단하다.

각 팀마다 1순위부터 3순위까지

정해진 팀의 리더를 암살하여 포인 트를 따내는 게임이다.

[1 순위는 400포인트. 2순위는 200 포인트. 3순위는 100포인트가 주어 집니다. 참고로 사망한 인원은 30분 간 특수 지역에 격리되어 있다가 무 작위 장소에서 부활합니다. 부활한 암살 대상을 다시 처치할 시, 다시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단, 부활한 적을 처치 시 절반의 포인트 를 획득합니다.]

이번 시합의 핵심 룰이다.

모든 암살 대상은 처치해도 30분 뒤 다시 되살아난다.

포인트 획득을 위해서 그들을 다시 추적해야 하는 것이다.

사냥당하는 입장에서는 ‘지옥 끝까 지 쫓긴다’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악독한 룰이라 할 수 있었다.

[10시간 동안 모은 포인트의 상위 9개의 팀이 준결승전, 5차 시합에 참여할 자격을 얻게 됩니다.]

엘린은 화면을 올려보다가 내게 말했다.

“네가 왜 지난 시합 때 1등 해야 한다고 했는지 알겠네. 1등 혜택이 1순위를 지정할 수 있다며.”

“맞아.”

나는 지난 3차 시합에서 1등을 차 지했기에 그 혜택으로 원하는 대상 을 암살 1순위로 지정할 수 있게 되었다.

[자. 그럼 지금부터 각 팀에게 지 급된 스마트 배지를 통해 암살 대상 을 전달하겠습니다!]

나는 주최측으로부터 미리 받은 스 마트 배지를 들어 올렸다.

잠시 뒤 띠링- 소리와 함께 화면 에서 빛이 들어왔다.

1순위 : 투왕

2순위 : 광야의 사냥꾼

3순위 : 신의 파수꾼

8()1의 1순위 암살 대상은 위저드 게임의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인 ‘투왕’이었다.

운이 꽤 나쁜 편이라고 할 수 있 었다. 그렇다고 자신 없는 건 또 아 니지만.

어찌 됐든 나에게는 3차 시합의 1 등의 혜택이 있다.

1순위 따위 바꿔버리면 그만이다.

“와…… 투왕이 걸렸네? 저번 시합 에서 1등 못했으면 귀찮아질 뻔.”

나와 같이 화면을 바라보던 엘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1순위를 어디로 바꿀 거 야?”

나는 대답 대신 화면을 터치했다. 이내 화면이 바뀌며 문장 하나가 떠 올랐다.

[암살 1순위를 변경합니다.]

[목록을 불러옵니다.]

이후 18개의 팀 목록이 떠올랐다.

우선 멸화의 검 같은 강팀은 피하 고…….

“어디로 할 건데? 야야. 저기 ‘협

객’ 쟤네로 하자. 저번에 보니까 두 명 빼고 수준 미달이던데.”

“기다려봐.”

나는 쭉 둘러보다가 한곳에 시선이 멈추었다.

‘혹견’.

고민 없이 그것을 선택했다.

[1 순위를 흑견으로 변경합니다.]

[기존 혹견이 1순위였던 팀은 투왕 으로 교체됩니다.]

“……야! 너 뭐 하는 거야?”

엘린이 화들짝 놀라서 내게 소리쳤 다.

놀랄 만도 하다.

혹견은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한 팀.

스스로 족쇄를 걸어버린 것이나 다 름없었으니까.

하지만 미래의 전개를 아는 나에게 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원작 전개에 따르면 흑견은 위저드 게임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해 상열차의 탑승권을 얻게 된다.

그리고.

해상열차에 탑승해 죽음의 섬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큰 욕심을 부리며 몇 가지 사고를 터트린다.

이 사고는 꽤 비중 있게 다뤄진다.

다름이 아니라, 이 사고로 해상열 차에 몰래 탑승한 ‘자운’에게 몇 가 지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후에 벌어질 시합들을 생각하면 흑견을 조기 탈락시킬 유일한 기회 라 볼 수 있었다.

“자신 없어?”

“……웅? 아니, 그런 건 또 아니지

만. 편한 길 놔두고 굳이 어려운 길 을 선택하니까 그러지.”

엘린이 궁시렁궁시렁 중얼거렸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종사님 믿고 따라와.”

“……아씨. 네가 왜 내 종사야!”

그때 다시 음성이 들려왔다.

[그럼 지금부터 ‘히트맨 게임’을 시 작하겠습니다!]

나는 곧바로 스마트 배지를 터치했

다. 동시에 화면이 바뀌며 화살표가 떠올랐다.

암살 대상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 는 나침반이었다.

저 방향에 흑견의 리더, 다비트가 있다.

“자. 모두 준비해.”

같은 시각. 고층의 빌딩 옥상에서 이서준은 드넓은 지상을 내려보고 있었다.

우거진 숲. 그리고 중간중간 솟아 오른 건물들…….

마음만 먹는다면 몸을 은신하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모두 준비됐어?”

이서준은 뒤를 돌아 동료들을 바라 보았다.

그들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 다.

이서준은 스마트 배지에 떠오른 화 살표를 바라보았다.

화살표가 알려주는 그들의 ‘1순위’ 는 시작부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

“움직임이 상당히 빨라. 어설프게 쫓다가는 놓칠 거고, 바짝 쫓으면 들킬 거야.”

“귀찮게 됐네. 하필 걸려도 쟤네가 걸리냐.”

신영준은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일행들도 모두 그 말에 공감 했다.

이들의 1순위는 이번 위저드 게임 의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였으니 까.

“으음. 그럼 2순위를 노리는 게 어

때?”

윤하영의 제안에 이서준이 말했다.

“그래도 최초 암살 보상은 얻어야 해. 이걸 포기하는 건 너무 큰 패널 티야.”

1순위를 최초로 처치하게 되면 400포인트가 주어진다.

만약 이것을 놓치게 된다면 게임 자체가 너무나도 불리해진다.

“야. 왜 시작도 전부터 쫄았어? 자 신 없어?”

그때 릴리가 당당하게 앞으로 나서 며 말했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자신감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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