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서 소란이 들려오자 다시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포탈을 완성해서 입장하시면 됩니다.]
_뭐?
여기저기서 당황 어린 목소리가 터 져 나왔다. 빠르게 입장해 원하는 층을 선점해야 하는 상황에서 입구 가 막혀버린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이런 유형의 시험은 나에게 아주 유리하다.
나는 여유롭게 마법진의 설계를 시 작했다. 마음만 먹으면 1둥으로 입
장하는 것도 자신 있지만 그럴 생각 은 없다.
힐끔 시선을 돌리곤 ‘흑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과연 10대 길드답게 그들은 빠른 속도로 마법진을 풀어내고 있었다.
나는 여유롭게 그들의 마법진 풀이 를 지켜봤다.
내 목표는 녀석들의 다음 등수로 입장하는 것이니까.
*
[탑에 입장했습니다.]
[당신은 16층의 주인입니다.]
[‘위저드 게임 참가’ 업적을 달성했 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새하얀 빛과 함께 우리는 탑 안에 도착했다.
주변을 둘러보자 회색 돌로 만들어 진 넓은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중간중간 미로처럼 꼬아진
복도가 보였다.
“인간이 만들어낸 가상 세계인 가…… 제법이구나.”
구미호가 주변을 둘러보며 신기하 다는 듯 중얼거렸다.
엘린은 팔짱을 낀 채 주변을 살피 더니 내게 말했다.
“근데 왜 16충으로 선택한 거야? 맨 아래층이나 맨 위층으로 해도 1 등은 충분히 노릴 수 있는데.”
“이쪽이 흑견을 억제하기 쉬우니 까.”
혹견은 1등으로 입장해 20층을 선 택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번 시험의 유력한 1등 후보 중 하나.
우리의 목표 역시 합격이 아닌 1 등이었기에 그들을 견제할 수 있는 적당히 가까운 위치를 선택했다.
“흐음. 자신감이 넘치네.”
엘린이 중얼거리듯 말하자 나는 고 개를 끄덕였다.
그러고선 주변을 둘러보다가 방 중 앙에 박혀있는 푸른 보석을 발견했다.
“이게 16층의 주인이라는 상징이 야. 너희들도 잘 봐둬.”
보석에는 8()1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만약 다른 팀이 이 보석에 마력을 주입하게 된다면 16층의 주인이 바 뀌게 되니 잘 지켜야 한다.
참고로 이 보석은 위치가 고정되어 있어 옮기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 간단하게 전략을 말해줄게. 어렵지 않으니까 잘 들어.”
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됐다. 나 는 그들의 시선을 마주하며 말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15층부터 시 작해서 아래층을 하나하나씩 정복 해.”
“음? 그럼 16층은? 위층에서 여기 노릴 거 아니야?”
“16층은 나 혼자 지킬게.”
“……혼자 지킨다고?”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엘린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 를 갸웃거리더니 다시 말했다.
“뭐, 다른 팀은 그렇다 치더라도 20층에 있는 흑견이 내려오면 어쩌 게? 아무리 너라도 혼자서 놈들을 상대하기엔 벅찰 텐데.”
그녀의 말대로 만약 나 혼자서 그 들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꽤 힘든 상황이 오기는 할 것이다.
S등급 이상의 실력자가 최소 다섯 은 될 테니까.
“나에게 방법이 있어.”
시험이 시작되고 약 한 시간의 시 간이 흘렀다.
팀원들은 아래층의 정복을 위해 계 단을 타고 내려갔고, 나는 16층에 홀로 남아 치열한 전투를 하고 있었다.
지금 내 앞에는 17층 소속의 팀이 나를 공격하고 있었다.
나는 속박 마법을 구현해 그들의 움직임을 가볍게 묶었고, 숨통을 조 이는 방식으로 하나하나씩 처치해갔 다.
다행히 17층은 그렇게 강한 녀석 들이 아니었기에 나 혼자서도 충분 히 상대할 수 있었다.
“……괴, 괴물!”
그렇게 내 앞에서 한 사람이 그대 로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가상 세 계에서 죽음을 맞이해 현실로 돌아 간 것이다.
순식간에 3명이 사라지자 남은 2 명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갔다.
“……보조계로 이렇게 싸울 수 있 다고?”
“야…… 유령 거품이라며!”
강력한 힘 앞에, 그들은 서로 분란 을 일으키더니 자기들끼리의 싸움을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들을 가만히 바라봤 다.
먼저 나서기보다는 가만히 서서 신 비감을 조성해 그들에게 공포감을 주기 위해서였다.
내 계획대로라면 굳이 17층과 싸 울 필요가 없거든.
“……일단 후퇴하자.”
“여기서 도망치자고?”
“17층이라도 지켜야 될 거 아니 야!”
“……그, 그래.”
이후 그들은 도망치듯 계단을 향해 달려 나갔다.
나는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멍 하니 바라보다가 짧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
17층 놈들도 쫓아냈으니 마저 작 업해야겠지.
“어디까지 했더라……
나는 품 안에서 술식 설계용 마나 분필 하나를 꺼내곤 바닥을 내려보 았다.
외부자의 혜택을 발동하자 미완성 된 거대한 술식의 형태가 드러났다.
이후 나는 쪼그리고 앉아 분필을 이용해 술식을 이어 그렸다.
참고로 이 술식은 경계의 세계에서 김정희를 통해 배운 대결계의 술식 이었다.
이름은 ‘경계의 문.’
전설적인 보조계 마법사 김정희가 10년을 고안해 만들어낸 최강의 결 계이다.
위저드 게임의 주최 단체, ‘균형의 저울’.
3대 길드와 각종 마법사 단체의 간부들로 구성된 그들은 호화로운 실내 안에서 3차 시험, ‘탑 따먹기’ 를 관람하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 풀어나갈지 참 궁금 했는데 기대 이상이네요.”
주최 위원회 중 한 명인 유수철이 경기 화면을 바라보며 작게 감탄했
화면 속에는 새하얀 후드를 뒤집어 쓴 화재의 참가자, ‘유령’이 여러 개 의 속박 마법을 구현하여 17층의 마법사들을 홀로 상대하여 승리했다.
그 전투는 수많은 마법사의 존경을 받는 ‘균형의 저울’의 간부들에게도 큰 영감을 줄 정도였다.
“그러게요. 보조계 마법을 저렇게 공격적으로 사용하는 마법사는 흔하 지 않은데……
보조계 마법은 어디까지나 ‘보조’ 용도로 사용되는 마법이다.
정확하면서 섬세한 계산이 필요해 전투 시 다른 계열 마법의 발동 속 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령은 달랐다.
속도는 발현계 마법 못지않게 빨랐 고, 술식의 구현 또한 정확했다.
거기다 속박 마법을 이용해 공격과 수비를 동시에 하는 섬세한 운용까 지 보여주었다.
보조계 마법에 상당한 이해력을 지 니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렇죠. 저 정도 이해력을 가진 보조계 마법사는 전 세계에 20명도 되지 않으니까요.”
“이해력을 떠나서 보조계 마법을 저렇게 공격적으로 사용하는 마법사 는 본 적이 없습니다. 대체 누굴까 요?”
누군가가 질문을 던지자 잠시 내부 가 고요해졌다.
“글쎄요. 저 정도의 실력자라면 분 명 이름이 알려져 있을 텐데. 신인 은 절대로 아닐 겁니다.”
“혹시 괴짜, 정윤슬이 아닐까요? 제가 아는 보조계 마법사 중에서 그 나마 공격적인 스타일이기는 한데.”
“……확실히 비슷하기는 한데, 아 쉽지만 유령은 남성입니다. 목소리
를 들어봐서 압니다.”
유수철의 말에 바로 반박이 들어왔 다.
“목소리의 변조 가능성도 있잖아 요.”
“대신 체격이 다르잖아요. 마법으 로 숨기는 것도 한계가 있고.”
“아. 확실히 그렇네요. 그럼 귀살인 가? 아니면 백색 감옥?”
이후 보조계로 이름을 날린 마법사 들의 이름이 수없이 거론되었지만, 마땅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대조해봐도 유령과 비슷한 스타일의 보조계 마법사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화면 속 유령이 분필을 이용 해 거대한 술식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법계에 정상에 오른 이들조차 처 음 보는 대결계의 술식이었다.
“저 술식은 뭘까요? 뭔가 심상치 않아 보이는데.”
“잠깐, 저 술식은……?”
그때 한 사람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곱슬곱슬한 긴 흑발을 가진 50 대 여성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셀리나’.
알려진 그녀의 이명은 ‘검은 환각’ 으로 현역 보조계 마법사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자였다.
“셀리나 님, 혹시 아는 술식입니 까?”
“……비슷한 술식을 알고 있습니다.”
셀리나는 그렇게 말하며 혼자 생각 했다.
‘하지만 미완성된 채 사라진 술식 이었는데. 어떻게……
셀리나의 말에 몇몇 간부들이 호기
심에 찬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술식입니까?”
셀리나는 잠시 입을 다물다가 천천 히 입을 열었다.
“술식 설계자가 실종 전에 연구했 었던 대결계 술식입니다.”
“……술식 설계자?”
예상치 못한 이름이 튀어나오자 모 두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술식 설계자.
위대한 마법사 중 하나로 불리는 전설적인 마법사의 이명이었다.
보조계의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했
으며, 정윤슬과 같은 뛰어난 보조계 마법사들을 키워낸 교육자이기도 했다.
“……설마 실종되었던 김정희 마법 사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셀리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 다.
“……그러고 보니 저런 공격적인 보조계 마법사의 시초가 술식 설계 자였죠. 그 제자인 정윤슬도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헜고요.”
예상치 못한 인물이 거론되자 모두 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유령을 바라 보았다.
그리고 모두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 이 떠올랐다.
혹시 저 유령의 정체가 실종된 김 정희가 아닐까. 하는 생각.
“설마 아니겠죠?”
“……숨겨진 제자일 수도.”
그때 누군가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렇게 유령의 정체가 궁금하면 정보 길드를 통해 8()1에 대한 정보 를 캐내면 그만 아니에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잠시 입을 다문 채 이야기를 듣던
유수철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째서죠? 웬만한 대형 길드라 해 도 조사하면 다 나올 텐데.”
“8이의 뒤에는 한성가가 있거든 요.”
3차 본선이 이루어지는 가상의 탑 17충.
흑견의 멤버들은 파괴적인 힘을 이 용하여 빠르게 19층과 18충을 정복 하고 17층에 도착했다.
그렇게 안으로 도착하자 보이는 것 은 3명의 사람.
그런데 그들의 몰골이 심상치 않았 다.
정신적으로 많이 피폐한 모습이라 고 해야 할까?
“보아하니 16층에 도전했다가 박 살 난 모양입니다. 거기서 동료도 둘이나 잃은 것 같고요.”
알랭의 말에 다비트가 고개를 끄덕 였다.
그가 느끼기에도 17층의 현 상황 은 그것이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았 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16층의 주인은 어째 서 17층을 쫓지 않았는가.
“박인환.”
“네.”
다비트의 부름에 박인환은 앞으로 나섰다.
이후 그의 머리 위로 6개의 강력 한 마력이 담긴 화염의 가시가 구현 됐다.
그 모습에 3명의 마법사가 겁에 질린 표정이 되었다.
“핫!”
박인환의 짧은 외침과 함께 화염의 가시가 그들을 향해 빠르게 쇄도했다.
하지만 전투로 지친 그들은 그 공 격을 제대로 방어할 수 없었다. 결 국 그들의 몸은 가시에 꿰뚫리며 그 대로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깔끔한 승리에 다비트는 만족스러 운 미소를 지었다.
“수고했다.”
다비트는 공간의 중앙으로 걸어가 보석에 마력을 주입했다.
이내 빛이 크게 번지며 보석이 보 라색으로 바뀌었다.
17층의 주인이 ‘혹견’으로 바뀌었 다는 증거였다.
“이제 세 층을 정복했군. 시합 종 료까지 몇 시간 남았지?”
“4시간 남았습니다.”
알랭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이제 딱 절반 왔군. 801에 밀릴 수 있으니 4층 정도만 더 정복하 지.”
“네!”
이후 그들은 별다른 휴식 없이 바 로 16층으로 이동했다.
계단을 타고 탑에 설치된 온갖 함
정을 피해 목적지인 ‘16층’에 도착 했다.
통로를 지나 내부를 바라보자 넓은 공간 가운데에 가면을 쓴 자가 홀로 선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령?”
박인환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리 고 그 옆에 선 알랭은 도끼눈이 되 었다.
“16층의 주인이 누구인가 했더 니…… 801 이었나?”
알랭은 창을 쥐고는 분노에 찬 발 걸음으로 유령을 향해 다가갔다.
얼마 전, 유령에 의해 코피를 흘린
굴욕을 마음속에 깊이 담아두고 있 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파지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