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6화 (465/535)

나는 시간을 보았다.

현재 시각 오후 4시 22분.

선별 경기가 시작하고 시간이 조금

지났다.

“보러 가시게요?”

“어. 어차피 요 근처에서 관람할

수 있으니까.”

“아! 그럼 오실 때 아이스크림 하

나一.”

“룸서비스로 시켜. 필요한 거 있으

면 다 줄 거야.”

그렇게 말하며 나는 현관문을 향해

이동했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나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 룸서비스 할 때 여우 저거 안 들키게 조심하고. 가면도 꼭 써.”

“네네.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한지원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 모습이 왠지 못 미더워서 선화 에게 시선을 돌렸다.

눈이 마주친 선화는 이해했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문밖으로 나오자 순식간에 고요함 이 내려앉았다.

시끄럽던 방 안에서 나오자 마음 한구석이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후우. 조용하네.”

나는 호텔의 긴 복도를 걸었다.

인기척이 느껴지고 중간중간 나와 같이 주최측의 초대를 받은 몇몇 ‘특별 참가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모두 얼굴이 잘 알려진, 유명 길드 소속의 마법사들이다.

그리고 그들 역시 나를 아는 듯 내게 경계의 시선을 보냈다.

나는 그 시선을 무시하고는 계속해 서 끝없는 복도를 걸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26번, 흑살검 팀 승리!

어디선가 작게 울리는 목소리가 들 려왔다.

나는 복도 끝에 보이는 넓은 창가 로 천천히 다가갔다.

소리가 들리는 창문 너머를 바라보 자 지상에 위치한 넓은 경기장이 한 눈에 들어왔다.

경기장 내부에는 수많은 참가자가 팀을 이루어 그룹별로 전투를 치르

고 있었다.

참가자들의 선별 시험이 진행되는 것이었다.

짧은 시간이 흐르고.

—다음 차례, 루키6입니다.

들려오는 사회자의 목소리에 내 시 선이 자연스레 돌아갔다.

잘 아는 얼굴들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모두의 관심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여러 복 잡한 감정을 느꼈다.

그리움, 반가움. 그리고 미안함

“2 년만인가.”

2년, 아니…… 거의 3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것 같다.

뉴스나 인터넷을 통해 몇 번 얼굴 을 보긴 했지만 이렇게 직접 두 눈 으로 보게 되니 느낌이 또 다르다.

세월의 변화가 확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나는 한 명 한 명 얼굴을 살폈다.

우선 이서준은 더 ‘주인공’스러워 졌다. 모두의 시선을 끄는 특유의 아우라가 더 강해졌고, 이제는 소년 이 아닌 청년이 되었다는 게 느껴진 다.

유아라는 특유의 도도한 느낌이 강 해졌다. 우아한 느낌이 강한 그녀의 언니와는 조금 달랐다.

신영준은 전체적으로 가벼운 이미 지가 조금, 아주 조금 사라졌다.

윤하영은 귀여운 이미지는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젖살이 빠지며 성숙

한 아름다움이 묻어났다.

릴리 로즈는…… 안 친하니 패스.

그리고 최서윤은 분위기가 차분해 졌다.

아니, 차분해졌다기보다는 이전의 밝은 분위기가 사라졌다고 해야 할 까.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꼈다.

그때 단상 위에 오른 이서준 일행 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들의 반대쪽에도 동일한 수의 인

원이 보인다.

선별 시험은 간단하다.

상대 팀과 겨루어 승리하는 것.

물론 한 번 승리한다고 해서 합격 은 아니고 일정 횟수 이상을 승리해 야 선별 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 자 격이 주어진다.

—시작!

그때 이서준이 허리춤의 검을 뽑으 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내 이어지는 화려한 움직임.

‘천재’ 특성을 지닌 그답게 22살이 라는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은 뛰어 난 실력을 보였다.

지금 당장 S등급에 올라도 이상하 지 않을 정도.

아니, 그의 경지는 이미 S등급에 올라 있었다.

그때, 나는 이서준의 전투를 보며 작은 이상함을 느꼈다.

그의 손에 쥐어진 검이 백천이 아 닌 소백천이었기 때문이다.

순간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기껏 귀한 무기를 보내줬더니 쓰

지도 않고 있네.”

혀를 찼지만 그것도 잠시, 내 얼굴 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이서준 답네.”

아마 자신의 힘에 부족함을 느낀다 고 검에 의지하려는 약함을 보이고 싶지 않겠다는 마음이겠지.

‘내가 검을 사용한다.’가 아닌, ‘검 이 나를 사용한다.’라는 건 검사로 서는 인정하기 싫을 테니까.

그 순간 강한 빛과 함께 앞의 누 군가가 쓰러졌다.

맨 앞에 선 이서준이 순식간에 모 든 상대를 쓰러트린 것이다.

이어서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 다.

—루키6 승리!

참가자 선별 경기는 밤 11시가 되 어서 끝이 났다.

이서준이 속한 루키6은 11승 0패 의 압도적인 기록을 세우며 1차 시 험에 합격했다.

오랜만에 주요 등장인물들의 전투

를 보니 나도 감회가 새로웠다.

그들에게 밀리지 않게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다고 해야 할까.

어찌 됐든 그들은 존재만으로 내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그렇게 주요 둥장인물의 성장을 보 고 만족감을 느끼며 호텔 밖 상점으 로 향하는 고층 다리를 건너던 때였 다.

—커어억!

어디선가 고통에 찬 짧은 비명이 들려왔다.

뭔가 싶어서 지상을 내려보자 술집 앞에서 술에 꼴은 짧은 머리의 한 남성이 누군가에게 일방적인 폭행을 가하고 있었다.

—하.. 진짜 별것도 아닌 게. 죽

으려고.

—쿨럭……!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눈을 찌푸렸다.

“..박인환?”

일방적으로 패는 남성은 다름 아닌 마법사관학교 동기였던 박인환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원작에서의 에피소 드 중 하나가 떠올랐다

“……맞아. 쟤도 참가했었지.”

학창 시절 이서준에게 항상 당하는 포지션이었던 악역 박인환은 그 성 격을 버리지 못하고 빌런이 되어 돌 아온다.

그것도 10대 길드 중 하나인 ‘흑 견’의 소속으로.

—신청해서! 참가한 주제에! 나는! 흑견! 소속으로! 초대받은! 특별 참 가자라고!

퍽! 퍽! 퍽! 퍽!

“……저놈은 바뀐 게 전혀 없네.”

저렇게 될 줄 알고 마법사관학교에 서 이서준 대신 많이 괴롭히긴 했었 는데.

당시엔 기죽어서 조용히 지내더니 쓰레기 같은 성격은 여전하다.

—후우. 이번 위저드 게임의 개최 목적도 모르는 것들。]. 까불고 있어.

나는 잠시 고민했다.

원작의 흐름대로라면 우연히 이 상 황을 발견한 이서준이 그를 막아내 고 한바탕 신경전을 치를 터.

하지만 나의 개입으로 미래가 바뀐 탓인지 이서준 일행의 모습은 코빼 기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나서야 하나.”

저러다가 진짜로 맞아 죽게 생겼

만약 상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녀석이 죗값을 치르는 일 도 없을 것이다.

녀석의 소속은 ‘혹견’.

박인환 같은 쓰레기를 품은 집단답 게 이런 범죄쯤은 쉽게 덮어주는 단 체라는 거다.

그때 박인환에게 당하던 사람의 시 선이 나를 향했다.

—도, 도와

나는 그 모습을 보고는 바닥으로 점프했다.

그리고 [은밀한 발걸음]으로 그에 게 다가가 주먹질하던 박인환의 손 목을 낚아챘다.

“뭐, 뭐야?”

갑작스러운 개입에 박인환은 놀란 표정이 되어 나를 돌아보았다.

“……기척이 안 느껴졌는데?”

이내 녀석은 나에게서 벗어나기 위 해 팔을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악력은 내가 압도적으로 좋 기에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다.

그리고 술에 취해 흐리멍텅한 그의 시선이 내 얼굴을 향했다.

“……유, 유령?”

바로 그때.

뒤에서 작은 발소리와 함께 익숙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동시에 내 몸 안에서 미세한 활력 이 도는 게 느껴졌다.

나는 이 활력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인연의 가히의 특성 효과였다.

……그리고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 가 들려왔다.

박인환?”

선별시험에서 만족스러운 성적을 거둔 이서준은 동료들과 간단한 뒤 풀이 후 돌아가는 길에서 작은 소란 을 느꼈다.

의문을 느낀 이들은 곧바로 소리가 들린 장소로 달려갔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낯익은 얼굴의 남성과 그의 팔을 잡은 후드를 뒤집 어쓴 누군가의 뒷모습. 그리고 피멍 이든 얼굴로 쓰러진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이서준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 다가 낯익은 남성의 이름을 불렀다.

“……박인환?”

동시에 남성의 시선이 이서준을 향 했다.

날카로운 눈매와 비열함이 느껴지 는 얼굴.

세월이 흘러 스타일이 조금 변하기 는 했지만 마법사관학교의 동기였던 박인환이 분명했다.

“……이서준?”

이서준을 발견한 박인환은 당황한 듯 눈을 찌푸렸다.

이내 입술을 깨물곤 자신의 팔을 잡은 후드의 괴인을 향해 마력을 담 아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후드의 괴인은 고개를 꺾는 것으로 그의 주먹을 가볍게 피했다.

그 모습을 보고 이서준은 다시 놀 랐다.

코앞의 거리에서 마력을 담은 공격 을 피한다는 건 상당한 강자라는 증 거였기 때문이다.

이후 후드의 괴인은 박인환의 팔을 놓아주었다.

박인환의 저항에 풀어줬다기보다 구경꾼이 늘자 자비를 베풀어 풀어

준다는 느낌이었다.

속박에서 벗어난 박인환은 경계하 듯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그제서야 이서준은 어떻게 된 상황 인지 눈치챘다.

바닥에 쓰러진 사람.

그리고 피로 물든 박인환의 주먹과 그의 팔을 잡고 있던 후드의 사내.

상대를 폭행하던 박인환을 그가 막 아섰던 모양이다.

그때 옆에서 최서윤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당신은.”

그 부름에 후드가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후드 안에 보이는 것은 얼 굴이 아닌 검은 가면이었다.

이서준은 그 모습을 보고 놀랐다.

“유령?”

후드의 괴인은 다름 아닌 8()1의 수장, 유령이었다.

유령은 가만히 이서준 일행을 바라 보는가 싶더니 이내 박인환에게 다 시 시선을 돌렸다.

이서준은 그 행동에서 알 수 없는 낯익은 기분을 느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분명 어디서 본 것 같았는데. 어디 지?

그때 바닥에 쓰러진 누군가가 피를 토했다.

“쿨럭쿨럭! 끄윽!”

이서준은 그 끔찍한 광경에 눈을 찌푸리다가 박인환을 노려보았다.

“박인환. 너 설마 아직도 사람 때 리고 다니는 거야?”

“너야말로 아직도 다른 사람 일에 오지랖 부리는 건가? 내가 뭘 하던 일에 신경 끄시지?”

“너 진짜……

이서준이 한 발짝 그에게 다가갔 다. 박인환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 듯 잠시 움찔하더니 이내 마력을 끌 어올렸다.

“내가 마법사관학교 때처럼 당해줄 줄 아나 본데…… 좋아. 이참에 제 대로 승부 보자고.”

어느새 상황은 유령을 가운데에 둔 채 두 사람이 충돌할 것 같은 분위 기로 바뀌었다.

먼저 움직이는 건 박인환이었다.

마력을 끌어올리며 화염의 가시를 구현했다.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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