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 귀환해서 다행입니다. 그런 데 혹시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 까?”
한 신비 학자의 물음에 김덕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정신적으로 다들 지친 상태라.”
신비 학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4개월.
아니 5개월에 가까운 시간 동안 유적지 안에 갇혀 있었으니 체력적
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계에 몰려있 는 건 아주 당연한 현상이었다.
잠시 안쓰러움이 느껴졌지만 그보 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유적지의 보상은요?”
그 물음에 김덕현은 최서윤에 시선 을 돌렸다.
최서윤은 곧바로 스마트 패드를 들 고 왔다.
톡톡 버튼을 누르자 복잡한 형태의 술식이 떠올랐다.
“이게 유적지의 보상이에요.”
신비 학자는 술식을 가만히 살펴보
다가 크게 감탄했다.
겉으로는 복잡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규칙이 숨어있는 궁극의 아름다움이 담긴 술식이었다.
“마력의 파동 확장에 대한 술식이 네요? 마법뿐만이 아니라 마공학적 인 측면에서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 을 거 같아요. 이런 술식이 존재하 다니…… 역시 초대형 유적지의 보 상인가?”
신비 학자들은 발견된 술식을 연구 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몰려들었다.
이후 탐사대원들은 유적지에서 얻 은 또 다른 정보를 그들에게 공유했
세계의 법칙에 대한 건 말할 순 없었으나, 김창현의 목적이 외차원 의 존재를 소환하는 게 분명할 것이 라 전했다.
……그렇게 모든 정보를 공유한 뒤.
탐사대는 피로회복을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이서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신비와의 만남 이후 정신적으로 큰 피로를 느끼는 상태였기에 푹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가려는 그때.
“이서준!”
그를 부르는 여성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뒤를 돌자 금발의 여인, 릴리 로즈 가 실실 웃으며 팔꿈치로 그의 옆구 리를 툭 건드렸다.
“이서준. 오랜만이다? 수고했어.”
“……어. 그래. 오랜만이네.”
이서준의 힘없는 대답에 릴리는 잠 시 그에게서 떨어졌다.
“짜식. 안에서 엄청 고생했나 보네. 살도 좀 빠진 거 같고.”
이서준은 대답 대신 쓴웃음을 지었
릴리는 그런 그를 빤히 올려보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할 말이 있었는데 나중에 해 야겠네. 푹 쉬어. 얘가 쓰러지려 하 네.”
“아니야. 무슨 일인데?”
이서준이 묻자 릴리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대답했다.
“그게, 협회에서 지령이 내려왔어.”
“지령?”
갑작스러운 말에 이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지령이길래.
“남극 생활 이제 그만하고 한국으 로 돌아오래.”
……약 2주의 시간이 흐르고.
남극으로 떠난 진천우 수사팀은 한 국으로 귀환했다.
협회에서는 그들의 복귀를 반겼으 며, 초대형 유적지 공략과 타지에서 의 활약을 높이 사 한 단계씩 진급 시켰다.
비록 남극에서의 연구 생활은 이렇 게 끝났지만 수확이 없던 것은 아니 었다.
혼돈의 의미.
그리고 김창현의 목적이 외차원의 존재를 소환하는 것을 알게 되었으 니까.
물론 김창현이 찾는 그 ‘외차원의 존재’가 무엇인지는 이제부터 차근 차근 알아가야겠지만.
그렇게 일주일 정도의 휴가를 가진 뒤.
이서준은 ‘진천우 수사팀’의 새로 운 보금자리에 도착했다.
위치는 협회 건물 25층의 작은 사 무실.
그리고 사무실의 풍경을 본 그의 첫 한마디는 이것이었다.
“……뭐야. 네가 왜 여기 있어?”
“하이.”
소파에는 릴리 로즈가 앉아 있었다.
남극 생활을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 갔을 텐데. 얘가 왜 여기에 있는 거 지?
의문에 찬 얼굴로 릴리를 바라보다 가 그 옆에 선 일행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윤하영이 힐끔 릴리를 곁눈질하고 는 말했다.
“당분간 같이 활동하게 될 거래.”
“..같이?”
이서준이 고개를 돌리자 릴리가 손 을 들어 올렸다.
“어어. 그렇게 됐다. 이번에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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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준은 눈을 찌푸렸다.
그녀의 실력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으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 때
문에 피곤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 었으니까.
거기다 시도 때도 없이 대련을 요 청해 귀찮기도 했고.
그렇게 이서준이 짧게 한숨을 내쉬 자 릴리가 눈을 가늘게 떴다.
“……뭐야? 반응이 왜 그래?”
“……아냐. 같은 팀 됐다는데 어쩔 수 없지. 잘 지내보자.”
“아니, 아니. 그 반응이 뭐냐고!”
릴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때.
r 오늘 오전 10시. 한성 그룹 한세 연 회장의 취임식 및 축하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한세연 한성 그룹 회장은 ‘지금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 더 도약하겠다’고 포부를 밝 혔습니다.J
티비 뉴스에서 앵커의 목소리가 흘 러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레 티 비를 향했다.
밝은 얼굴로 어딘가를 걷는 한세 연. 그리고 그녀의 주변에 많은 경 호 마법사들이 보였다.
“와. 한성 그룹 회장직. 3년 정도 공석 아니었냐?”
신영준이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중 얼거렸다.
그러자 릴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 답했다.
“뭐. 거의 그렇지. 근데 진짜 대단 하다. 우리랑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는데 회장이라니. 심지어 능력도 좋다며?”
한성 그룹은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영국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 도다.
그때 였다.
“어……? 잠깐. 저기 뒤에서 경호 하는 사람.”
뉴스에서 잠시 스쳐 지나간 한 인 물을 보며 윤하영이 말했다.
“순신 렌 아니야?”
“어, 순신 맞아.”
릴리의 대답에 모두의 시선이 다시 티비로 몰려들었다.
순신 렌.
공식적인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아 티비에서 보기 힘든 마법사 중 하나 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그가 한세연의 경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에 모두가 놀랄 수밖 에 없었다.
“……순신이 왜 저기에 있냐?”
“아. 너네는 모르겠구나.”
릴리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4달 전인가? 아무튼 남극 초대형 유적지가 발견될 때쯤에 한성 그룹 에서 비공식적으로 길드를 하나 만 들었어.”
“길드?”
한성 그룹은 이미 산하에 수많은 마법사 길드를 거느리고 있었다.
굳이 새롭게 길드를 늘릴 필요가 없을 텐데.
“길드 명은 801. 인원은 8명밖에 안 되는데 한 명 한 명이 괴물 같 은 실력자들인가 봐.”
릴리는 티비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길드가 온갖 길드 임무를 싹 휩쓸고, 마스 터 등급까지 올라서 엄청 화제가 됐 었거든.”
“……801 이라.”
이서준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단순한 숫자로 이루어진 길드 명이 었기에 숨겨진 뜻 같은 건 유추할 수 없었다.
길드원이 8명이라 했으니 그것과 관련 있는 건가?
“엄청 대단한 거 아니야? 마스터 등급이면 4개월 만에 상위 2% 길 드가 된 거잖아.”
윤하영이 묻자 릴리가 고개를 끄덕 였다.
“엄청난 거지. 윗등급이라 해봤자 그랜드 마스터 하나인데, 4개월 만 에 최고 바로 아래 등급까지 올린 거잖아. 그리고 역대 최단 마스터
래.”
길드의 등급이 높아질수록 활동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
마스터 등급 정도면 거의 모든 임 무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쥐어진 다.
참고로 그랜드 마스터 둥급의 길드 는 전 세계에 12곳 밖에 없다.
잠시 생각에 잠기던 윤하영이 물었다.
“길드 마스터는 누구래?”
“몰라. 밝혀지지 않았어.”
“……엥? 그게 가능해?”
윤하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릴리는 티비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가면을 쓰고 다니거든. 소문에 의 하면 키가 꽤 커서 남자라고 하긴 하던데.”
“……가면이라.”
“그래서 몇몇 사람들은 유령이라고 부른다더라. 그 있잖아. 오페라의 유 령. 그런 느낌인가 보던데. 거기다 유령처럼 인기척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대.”
말끝을 흐리던 릴리가 순간 생각났 다는 듯 다시 말했다.
“아. 그리고 보조계 마법사야. 부특
기는 강화계 검술이고.”
“야. 그건 진짜로 좀 특이한데? 보 조계 메인이면 보통 부특기로 발현 계 아니면 소환계인데.”
신영준이 놀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때 티비 너머에서 검은 가면과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누군가가 모 습을 드러냈다.
검은 가면은 곧 렌을 따라 한세연 의 뒤에 섰고, 순간 무수한 카메라 셔터가 터져 나왔다.
“어? 저 사람이다!”
이서준은 가만히 뉴스의 화면을 바 라보았다.
“……저 사람.”
그때 이서준의 옆에서 최서윤의 목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 자 최서윤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잠시 후 뉴스의 화면이 바뀌었다.
1■다음 소식입니다. 위저드 게임의 참가 신청 기간이 1달 남짓 남으며 우승 상품이 공개一.」
삑.
순간 티비가 꺼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릴리는 도끼눈이 되어 고개 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 끝에 신영준이 리모콘 을 테이블 위에 던져놓고는 하품하 고 있었다.
“아씨! 야! 티비 왜 꺼?!”
신영준 귀를 후벼파고는 대답했다.
“너. 저거 같이 나가자고 또 난리 칠 거잖아.”
서울 어딘가에 위치한 고층 빌딩.
JWK에서 이제는 한성 그룹 계열 사가 된 ‘신철공방’ 신사옥의 대표 실에서, 나는 여유롭게 차를 홀짝이 고 있었다.
“대표님 덕에 이번 프로젝트도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희 귀 자원도 쉽게 확보했고요. 하하.”
맞은편에 앉은 양태민이 웃으며 내 게 말했다.
나는 차를 내려놓고는 고개를 끄덕 였다.
“도움이 됐다면 다행입니다. 그나 저나 언제까지 그렇게 부를 겁니까? 이제 대표도 아니니 편하게 부르시 라니까.”
생자의 세계로 돌아온 지 벌써 5 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몇몇 사람들과 재회하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 로 신철공방의 양태민이었다.
그리고 그는 예전과 같이 나의 강 력한 조력자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선우 씨라고 부르기 뭔가 어색해
서 말입니다. 그리고 저한테는 은인 과 같으신 분인데 역시 저는 이게 편합니다.”
……뭐, 저렇게까지 말하니 할 말 이 없다.
호칭이 뭐가 중요하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본론으로 넘어갔다.
“그보다 전에 부탁한 건 어떻게 되 고 있습니까?”
내 물음에 양태민이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이 되었다.
내가 맡긴 일이 한두 개가 아니다 보니 어떤 일인지 생각하는 얼굴이
었다.
“신비 폭탄 말입니다.”
“아~ 대 마수용 신비 폭탄이요?”
내가 마인의 왕이 되기 전.
양태민에게 ‘크루아스 토벌’을 위 해 대 마수용 신비 폭탄의 제조를 부탁한 적이 있었다.
당시 제작에 시간이 필요하다 하여 크루아스 토벌에는 사용하지 못했는 데, 조만간 다시 쓰일 일이 생길 것 같아 물었다.
“샘플은 완성된 상태입니다만 일회 용 신비이다 보니 물량을 늘리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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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럼 물량을 늘리는 데 힘을 써주 셨으면 합니다. 조만간 쓰일 일이 생길 거 같거든요.”
크루아스는 토벌되었지만 세계에는 아직 재앙급 마수들이 남아 있다. 그리고 원작의 전개상 ‘자운’과 엮 여 있어 반드시 처치해야 하는 녀석 이 존재한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양태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자자. 그럼 슬슬 ‘그걸’ 보여주시 죠.”
내 말에 양태민이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과 설렘으로 가득한 얼굴이었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내게 말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그는 뒤에서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들고 오더니 내 앞에 내려놓았다.
찬란하게 빛나는 새하얀 검의 손잡 이와 검집…….
4개월 전 한세연을 통해 양태민과 재회한 내가 그에게 가장 먼저 부탁 했던 물건이었다.
나는 곧바로 외부자의 혜택으로 검 의 효과를 살폈다.
동시에 내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 왔다.
“……와.”
“대표님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 에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단언컨대, 이 검은 제 인생의 역작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 정도의 검이라면 세계
최고의 제작자인 양태민이라도 ‘기 적’이 없는 한다시 만들어내는 건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이 검의 이름을 지어줘야 하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는 미소를 지으며 원작에서 불리 던 이 검의 이름을 불렀다.
“백천으로 하죠.”
양태민과의 만남 이후, 나는 곧바 로 8()1의 사무실로 이동했다.
[무형의]를 이용해 검은 로브의 옷 으로 바꿔입고 아공간에서 검은 가 면을 꺼냈다.
[칠흑의 가면 (A)]
분류 : 가면
설명 : 신비한 힘이 담긴 가면
[지속 효과]
►절대 보안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쉽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내구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정화통
호흡 시 각종 오염 물질을 걸러냅 니다.
양태민에게 부탁해 특별 제작한 가 면이었다.
‘김선우’의 얼굴이 세상에 알려진 만큼 확실히 가리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렇게 가면을 착용하고는 건물 안 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한성가 소속의 보 안 요원들이 내게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사이를 걸으며 사무실의 문 앞에 도착했다.
끼이이 익.
사무실의 문이 열리자 내부 사람들 의 시선이 내게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