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6화 (455/535)

동굴 너머에서 새로운 인기척이 느 껴 졌다.

이내 강한 마기가 느껴지더니 작게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심상치 않은 기운. 나는 가만히 동 굴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검은 마기를 구현한 아 름다운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누구냐? 어떻게 인간이 이곳一.”

내 얼굴을 발견한 여인이 말을 멈 추었다.

그녀의 두 눈이 크게 떨리고, 구현

되어 있던 마기가 형태를 잃으며 흩 어 졌다.

“……다, 당신은?”

나는 마인을 속박하던 마법을 풀어 냈다.

힘이 풀려나자 마인은 털썩 주저앉 으며 컥컥 가쁘게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조이지도 않았는데 엄 살은.

나는 다시 여인에게 시선을 돌렸 다.

떨리는 동공.

한세연도 그렇고 엘린도 그렇고 어

째 반응이 똑같다.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랜만이다. 선화.”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래서 왕의 계승이……

은신처 내부.

둘만의 공간에서 내 이야기를 모두 들은 선화는 놀란 반응을 보였다.

“이렇게 돌아오신 모습을 보니 진 심으로 기쁩니다. 왕이시여.”

종사님에 이어서 오랜만에 ‘왕’이 라는 호칭으로 불리니 괜히 민망한 기분이 든다.

“아 참. 은신처를 옮겼다며?”

“왕의 계승식을 진행했던 달의 섬 근처의 섬으로 옮겼습니다. 이주는 1년 전에 진행되었고 현재 거의 이 주가 완료된 상황입니다. 참고로 저 는 마무리 작업을 위해 남아 있었습니다.”

“어쩌다 이주하게 된 거야?”

내 물음에 선화는 잠시 입을 다물

었다.

“작년, 은신처에 외부의 침입이 있 었습니다.”

“……외부의 침입?”

예상치 못한 말에 나는 조금 놀랐 다.

외부 침입이 있었다니.

마인의 은신처는 마인의 고대 은폐 결계가 펼쳐져 찾아내기가 쉽지 않 을 텐데.

“……그래서 결계가 바뀌어 있었던 건가? 누가 침입한 건데?”

내 물음에 선화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김창현입니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김창현이라고?”

김창현이 왜?

내가 당황한 표정을 짓자 선화가 괴로운 한숨을 내쉬더니 회상하듯 말했다.

“작년 3월 자정을 갓 넘어서는 시 간이었습니다. 은신처의 결계가 순 식간에 무너지고 김창현이 내부에 침입하였습니다.”

김창현은 지금까지 음지에서 조용

히 활동했었다.

그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고 조용 히.

선화는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이었다.

“당시 그는 혼자였습니다. 저와 하 령. 그리고 일족의 장로님들이 계셨 기에 녀석을 쉽게 막을 수 있을 거 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죠.”

선화의 말대로 하령과 선화. 그리 고 마인회의 장로들은 S등급의 마인 으로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물론 S둥급 사이에서도 서열이 갈 리기는 하지만, 그들의 무력은 분명

강한 측에 속해 있었다.

김창현이 힘을 숨기고 있다 한들, 그들 전부를 상대하기는 역부족인 것이 정상적인 흐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저희는 패배했습니다. 모 두가 힘을 합쳤지만 그를 상대하기 에는 역부족이었죠. 솔직히 말하자 면 처참하게 패배했습니다.”

“김창현이 그 정도로 강했다고?”

생각해보면, 김창현과 마주칠 때마 다 그 격차가 꽤 크다고 느껴지기는 했었다.

그러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 역시 자신감을 느낄 만큼 강해져 있었다고 생각했 는데.

……김창현은 아직 밑천조차 드러 내지 않고 있던 건가.

“그 후로는 어떻게 됐지?”

“그 후로는……

선화는 과거를 떠올리듯 흐릿한 눈 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유물, ‘영혼의 신호탄’을 훔치고 사라졌습니다.”

영혼의 신호탄.

마인의 보물 창고를 다녀와 본 나

였기에 어떤 효과를 지닌 유물인지 알고 있었다.

지정된 영혼, 혹은 살아있는 누군 가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신비였다.

물론 사용하기 위해서는 대가가 필 요하다.

거리에 따라 필요한 대가는 더욱 커지며 어쩌면 자신의 수명 일부를 담보로 내놓아야 할 수도 있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만 가능하다 보니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던 유물 이다.

“……그걸어디에 쓰려고 하는 거

지?”

영혼이 된 진천우에게 메시지를 전 달하려는 걸까?

아니면 김창현이 말하던 ‘그분’에 게 전할 메시지가 있는 걸까?

“사망자는 없었고?”

“네. 장로님과 하령이 크게 다치긴 했지만 초재생능력으로 금방 회복했 습니다.”

“그건 다행이네.”

나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내가 ‘왕의 권능’을 지니고 있는 이상 마인은 나의 편이 되어줄 것이

비록 여러 사건을 겪으며 크게 쇠 퇴하기는 했지만, 이들이 가진 힘은 무시할 수 없다.

하령의 목숨에 큰 지장이 없다는 건 나에게도 다행인 일이었다.

“또 녀석한테 다른 특이사항은 없 었어?”

내 물음에 선화가 잠시 생각에 잠 기곤 말했다.

“김창현의 능력 중 특이한 점이 있 었습니다.”

“특이한 점?”

“소수 일족의 능력을 사용했습니다.”

“소수 일족?”

김창현은 소수 일족인 ‘유성 일족’ 의 생존자다.

그렇기에 녀석이 소수 일족의 능력 을 사용한다 해서 이상한 건 없다.

하지만 유성 일족만의 능력이 따로 있던가?

내가 듣기로는 유성 일족은 ‘신비’ 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능력이 전 부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슨 능력을 사용했는데?”

“……룬의 속박. 그 외에도 황금 방벽과 같은 다른 소수 일족의 능력 들을 사용했습니다.”

“뭐‘?”

예상치 못한 말에 나는 크게 당황 했다.

김창현이 다른 소수 일족의 능력을 사용했다고?

이후 나는 그녀에게서 많은 이야기 를 들었다.

지난 시간 마인이 겪었던 일들.

그리고 나를 대신해 김창현을 쫓으 며 그들이 알게 된 여러 사실들.

“러시아에서 발견되었던 재앙급 마 수의 사체도 김창현이 토벌한 거였 다니.”

“신비를 통해 관측한 바로는 그렇 습니다.”

한세연이 내게 주었던 자료에 있던 재앙급 마수 사체의 의문이 해소되 었다.

그나저나 혼자서 재앙급 마수를 토 벌했다니.

그 정도로 강했단 말이야?

선화는 내 눈치를 살피곤 홀로그램 재생기를 내게 넘겼다.

“이건 김창현의 흔적을 추적하던 부하가 신비를 통해 우연히 촬영한 영상입니다.”

영상을 틀자 김창현의 모습이 떠올 랐다.

넓은 평야에서 거대한 백색의 도마 뱀과 홀로 맞서 싸우는 김창현.

선화의 말대로 김창현은 소수 일족 의 마법을 사용하며 재앙급 마수와 힘을 겨루고 있었다.

룬의 속박. 그리고 황금 방벽.

그 외에도 녀석은 처음 보는 다양 한 마법들을 연이어 사용했다.

그러나 상대는 재앙급 마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김창현도 서서 히 밀리는 형태가 되고 있었다.

이 불리한 상황에서, 김창현이 어 떤 수를 사용해 재앙급 마수 토벌에 성공할 수 있었는지 궁금증이 들었다.

운이 좋다면 녀석의 ‘필살 능력’을 미리 확인할 기회가 될 수도 있었으

니까.

그렇게 재앙급 마수의 발악에 김창 현의 육신이 크게 밀려나려던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요..2”

김창현을 중심으로 바람의 움직임 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몸에서 시작된 푸른빛의 마나 가 파동을 일으키며 크게 퍼져나가 고, 백색의 도마뱀은 당황한 듯한 반응을 보였다.

갑작스러운 변화.

그 어떤 전조도 없이 생겨난 일이

었기에 나는 강한 의문을 가질 수밖 에 없었다.

그리고.

그 뒤부터는 김창현의 일방적인 공 세가 이어졌다.

전과는 비교도 안 될 강한 마력과 함께,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마법 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속박 마법과 각종 봉인술. 그리고 강한 마력이 담긴 발현계 마법까 지…….

시간이 지나 마수의 몸에는 수많은 구멍이 생겨났다.

승기는 넘어갔고 어느덧 힘을 다한

마수는 김창현에게 무언가 말을 전 하고는 그대로 쓰러졌다.

김창현은 작게 숨을 내쉬고는 마수 에게 다가가 심장을 뽑아냈다.

그렇게 영상은 끝이 났다.

“……하.”

나는 작게 헛웃음을 흘렸다.

갑작스레 강해진 김창현.

다른 사람은 그 강함의 원인을 알 아차릴 수 없겠지만, 나는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진짜 어이가 없네.”

나는 홀로그램 영상의 상단에 보이

는 환하게 빛나는 보름달을 바라보 았다.

김창현이 급속도로 강해진 이유.

녀석은 ‘달의 일족’의 능력인 [달의 가히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거 내 필살기인데.

선화와 지난 2년간 있었던 이야기 를 모두 마치고 나는 그녀와 연락처 를 주고받은 뒤 헤어졌다.

그녀는 마인회의 임시 리더가 된 하령에게 내 소식을 전하기 위해 떠 났으며, 조만간 다시 나를 찾아오겠 다는 약속을 했다.

그 후 나는 내 명령에 일본으로 떠난 엘린을 만나기 위해 한성그룹 이 소유한다국적 게이트 기지로 이 동했다.

해외 출국의 경우, 국제 출입국 게 이트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만, 특별한 자격을 얻으면 출입국 게이트를 거치지 않고 이동하는 것 이 가능하다.

전용기와 비슷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직원에게 ‘한성가의 징표’인 금 테두리의 카드를 보여주었다.

“확인했습니다. 어느 게이트로 이 동하시겠습니까?”

“일본 기후현으로 가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번쩍!

그렇게 나는 게이트를 타고 일본에 도착했다. 한순간에 달라진 풍경.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봄의 기운을 머금고 생명이 피어오 르는 산.

이전에 왔던 기억이 있어 풍경이 낯이 익었다.

바로 그때.

“김선우.”

나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목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등산로를 타고 내게 다가오는 엘린 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순신, 렌이 경계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킨 일은 잘했어?”

내 물음에 엘린은 나를 흘겨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 네가 말했던 물건도 얻었고. 또..

엘린이 힐끔 자신의 뒤에 선 렌에 게 시선을 돌렸다.

“렌도 데려왔어.”

내가 엘린에게 부탁한 일은 총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번 주 일본 신비 경매에 올라온 어떤 ‘물건’을 낙찰해 오는 것.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그녀의 지 인인 렌을 데려오는 것이었다.

렌은 나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엘린에게 네 이야기는 모두 들었다. 2년간 놀라운 일을 경험했 더군.”

렌은 전처럼 나를 ‘사숙’이라 부르 지 않았다.

뭐, 엘린에게 내 이야기를 들었으 니 당연한 상황이기는 하겠지만

그 일 때문인 건지 나를 향한 눈 빛이 영 곱지 않다.

“뭐. 그렇지.”

“그래서, 왜 나를 찾은 거지?”

“별건 아니고. 과거 일을 사과하고 싶어서.”

“……사과? 인제 와서 말인가?”

렌이 눈을 찌푸리며 생각보다 격한 반응을 드러냈다.

엘린에 비하면 사기 친 기간이 짧

아서(?) 나에 대한 악감정이 깊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내 예상보다 그 일을 마음속에 두고 있던 모양이 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너를 속일 생각은 없었어.”

“……나는 나보다 한참 어린 너를 사숙이라 불렀다.”

그건 네가 멋대로 부른 거잖아.

..라는 말은 속으로 참아냈다.

어찌 됐든 렌은 원작에서도 나름대 로 비중이 있는 ‘선역’.

과거 특무팀에 소속된 적이 있으며 투철한 정의감을 지니고 있는 뛰어 난 실력의 스타 마법사 중 한 명이 었다.

그 말은 즉, 나는 아직 녀석에게 빼먹을 게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아. 이건 조금 비열해 보이려나.

조금 순화해서 말하자면 엘린에 이 어 녀석을 내 팀에 넣고 싶은 마음 이 있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 네가 갑자 기 사숙이라 불러서 나도 꽤 당황했 다고.”

“……흥.”

생각보다 가드가 단단한데.

보니까 이놈. 삐져도 단단히 삐졌 다.

그리고 저렇게 자존심이 강한 스타 일은 어지간한 말로는 풀어줄 수 없 다.

……이렇게 된 이상 이번에도 ‘그 걸’ 쓰는 수밖에.

나는 짧게 숨을 내쉬고는 능력을 발동했다.

[잠재 개성, ‘과몰입’을 발동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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