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5화 (454/535)

[잠재 개성 ‘과몰입’을 발동합니다.]

“……진천우의 실험을 통해 내 몸 에는 여러 일족의 피가 흐르고 있 지.”

내가 룬의 일족의 능력. 그리고 마 인의 힘을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해명할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녀에게 모든 것을 털어내고 싶었지만, ‘제약’이 걸려 있어 방법이 이것밖에 떠오르지 않 았다.

뭐, 그렇다고 해서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다.

내가 진천우의 실험체라는 거.

딱히 틀린 말이 아니거든.

“……그래서 우리 일족의 힘을 사 용할 수 있었던 건가? 자운에 악감 정을 갖고 있던 건 그 때문이었고?”

다행히 엘린은 내 거짓말을 납득한 듯했다.

과몰입의 효과로 진정성(?)을 느꼈 는지 의심하는 반응은 없었다.

이후 그녀는 팔짱을 끼며 생각에 잠기더니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졌 다.

룬의 속박의 술식은 어디서 익혔는

지, 지난 2년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등등.....

그렇게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은 엘린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너도 사연이 있기는 한가 보 네…… 좋아. 널 믿어줄게. 날 속인 건 아직도 용서할 수 없지만.”

그러고는 내게 말했다.

“그래서, 날 부른 이유가 뭐야? 이 런 이야기를 하려고 부른 거야? 과 거의 속죄 이런 건가?”

“네게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서 불 렀어.”

“제안......?”

엘린이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바 라봤다.

“과거 나와 너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든 우리는 ‘자운의 멸망’이라는 공통된 목적을 갖고 있잖아?”

룬의 일족은 진천우와 자운에 의해 멸족되었다.

지금까지는 힘이 부족해 여러 단체 를 떠돌아다녔지만, 엘린의 최종 목 표는 자운의 멸망이다.

“자운은 현재 진천우의 부활을 노 리고 있어. 그리고 놈들은 진천우의 부활에 필요한 수많은 신비를 이미 확보한 상태지.”

진천우의 부활이라는 말에 엘린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나는 녀석들을 막을 생각인데, 어 때. 함께 할 의향 있어?”

이른 아침, 남극 신비 연구 기지.

기지 중앙 본부에 모든 요원과 신 비 학자들이 모였다.

다름 아닌, 새벽에 발견되었던 초 대형 지하 유적지의 탐사를 위해서 였다.

“아까도 설명했듯 이번에 발견된 지하 유적지의 크기는 ‘초대형’입니다. 그리고 초대형 유적지의 완전한 공략에 필요한 시간은 최소 2개월이 죠.”

연구반장, 바일의 말에 모두의 표 정이 잠시 굳었다.

2개월.

말이 2개월이지 어디까지나 ‘최소’ 를 기준으로 말한 것이었다.

협회에 기록된 평균치로 계산하면 ‘초대형 유적지’의 공략에 필요한 시간은 5개월 정도였으니까.

거기다 중간에 포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리스크 도 상당히 컸다.

“전 세계의 역사상 ‘초대형 유적 지’가 발견된 것은 이번까지 총 13 번입니다. 그리고 초대형 유적지의 공략에 성공할 때마다 우리 인류는 위대한 발견을 하게 되었죠.”

위대한 발견.

초대형 유적지의 보상은 일반적인 던전과 유적지. 혹은 탑의 보상과는 다르다.

인류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되는 혁 신적인 ‘지식’을 전수한다.

대표적으로는 두 계통의 마법을 섞

어 쓰는 능력인 ‘시너지’의 핵심이 되었던 [술식의 연립 이중 전개], [마력의 속성 변환]. 그 외 다양한 마공학 기술이 있다.

“막중한 일인 만큼 탐험대에 참가 하실 분을 자발적으로 받겠습니다. 원하시는 분들만 손을 들어주시면 됩니다.”

바일의 말에 잠시 침묵이 일었다. 이내 하나둘씩 요원들이 손을 들기 시작했다.

이서준올 포함한 신입 요원들도 마 찬가지 였다.

특히 한국에서 온 신입 요원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손을 들었다.

릴리는 모두의 눈치를 살피다가 옆 자리의 이서준에게 물었다.

“너 참가하게?”

“웅. 그래야지. 당연히.”

그 대답에 릴리는 이서준의 옆에 앉은 최서윤에게 물었다.

“……최서윤 너도?”

“네. 초대형 유적지면 인간이 발견 하지 못한 술식을 찾아낼 수도 있잖 아요. 운이 좋으면 신비와 대화할 기회를 얻을지도 모르고. 참가해야 죠.”

릴리는 삐죽 입술을 내밀었다.

“……너넨 진심이구나.”

릴리는 눈치를 보다가 뒷자리의 루 크에게 시선을 돌렸다.

다수의 신인이 자발적으로 참가한다 해서 괜히 눈치가 보였는데 다행 히(?) 루크는 손을 들지 않았다.

“요. 루크. 믿고 있었다구.”

릴리가 하이 파이브를 위해 손바닥 을 내밀자 루크는 무시했다.

“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런 거 야.”

“뭐래. 나도 할 일 있거든?”

소수의 요원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참가 의사를 밝히자 바일은 만족스 러운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탐험대 를 꾸리겠습니다.”

……그렇게 3일의 시간이 홀러. 서울 외곽에 위치한 작은 사무실. 사무실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만

큼 의자와 테이블 하나밖에 없는 텅 빈 공간이지만, 나는 흡족함을 느끼

며 의자에 앉았다.

이 공간은 한세연이 나를 위해 제 공한 장소로 앞으로 나의 ‘팀’을 위 한 아지트로 활용될 것이다.

뭐,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없지만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채워나가야 겠지.

“부탁하신 대로 길드 등록은 마쳤 어요. 실소유주는 저이고 제가 선우 씨를 길드 장으로 선임한 형태가 될 거예요.”

한세연이 내게 서류를 내밀었다. 나는 그녀에게 서류를 받아 내용을 살폈다.

[길드 등록증]

등록 번호 : 516-25

단체명 : 801

대표자 : 한세연

『길드 장’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미래에 작은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

[인과율이 0.5 상승합니다.]

“감사합니다. 바쁘셔서 시간 내기 도 힘드셨을 텐데.”

“아니에요. 요즘은 그렇게 또 바쁜 건 아니라.”

한세연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따라 미소를 지었다.

이것으로 길드가 설립됐다.

팀 활동을 하는데 길드가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지만 앞으로 있을 전 개에 ‘길드 소속 신분’이 필요한 순 간이 있기도 하고 또 이렇게 서류상 으로 같은 단체에 속하게 되어 있으 면 끈끈해지는 게 있으니까.

“근데 길드명에 801은 무슨 의미 야?”

뒤에서 지켜보던 엘린이 내게 물었다.

처음에는 나와 팀으로 활동하는 제 안에 거절했지만 다음 날 찾아오더 니 함께하기로 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입을

열었다.

“큰 의미는 없어. 어감이 좋아서 지었다고 해야 하나.”

“……흐음. 그래?”

굳이 의미를 찾자면 원래 세계에 내가 살던 아파트의 호수이다.

8()1 호.

나의 고향이라는 함축적 의미가 담 긴 셈이다.

그리고 내 말에 엘린은 별생각 없 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괜찮네. 쓸데없는 의미가 담긴 이름보단 낫다고 생각해서.”

“마음에 들면 다행이고.”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엘린에게 다 른 종이를 내밀었다.

엘린은 내게 뭐냐는 눈빛을 보냈 다.

“계약서.”

“……하아. 계약서까지 써야 해?”

엘린이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형식상이야. 별다른 내용은 없어. 그쵸?”

내 물음에 옆에 서 있던 한세연이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고개를 끄덕 였다.

“네. 저도 확인해봤는데 조항이 많 이 널널하긴 하더라고요.”

정말로 별 내용 없다.

그나마 족쇄가 될만한 문장은 ‘팀 에게 해를 끼칠 목적으로 뒤에서 행 동하지 않는다.’ 정도일까.

애초에 계약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두고 싶지 않기도 하고.

한세연의 말에 엘린은 결국 계약서 를 살폈다. 그렇게 꼼꼼히 보던 그 녀가 말했다.

“……진짜로 별 내용 없네.”

“말했잖아. 형식상이라고.”

엘린은 고개를 끄덕이곤 빠르게 서 명했다. 이내 계약서에 그녀의 마력 이 스며들더니 푸른 빛이 번쩍였다.

[‘첫 길드원 영입’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S등급 마법사 영입에 성공했습니다.]

『기분 좋은 길드의 첫 시작’ 업적

을 달성합니다.]

[보상으로 5,000포인트를 획득합니

다.]

오.

S등급 마법사지만, 고작 한 명을 영입했을 뿐인데 8천 포인트를 벌었다.

“자. 이제 길드도 만들었겠다. 앞으 로 어떻게 할 거야? 너한테 계획이 있을 거 아니야?”

엘린의 물음에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는 지난 시간 내가 구상한 계 획을 말했다.

“우선 첫 번째로 해야 할 것은 자 운이나 다른 단체에 밀리지 않은 강 한 팀원을 모으는 거지.”

앞으로 모을 인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구상이 완료되었다.

자운과 진천우에게 깊은 악감정을 지닌 사람은 전 세계에 아주 많거 든.

“그리고.”

나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새로운 서류를 보여주었다.

협회에서 공지한 토벌 의뢰서였다.

“원활한 활동을 위해 4달 안으로

길드 등급을 최고 등급의 바로 한 단계 아래인 A에 올려놓을 거야.”

생자의 세계로 돌아온 이후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 고 있었다.

사람을 만나고, 팀을 만들고.

그리고 함께 할 동료를 찾고.

정말로 쉴 틈 없이 돌아다녔다.

이러다 일반 사람들에게 내가 살아 있다는 걸 걸리고 뉴스에 뜨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물론 바쁜 건 나 뿐만이 아니기는

하다.

한세연은 한성 그룹의 ‘회장 승계 식’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뒤에서 나를 확실하게 서포트 해주었고, 엘 린 역시 내 부탁에 사람을 끌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열심히 노력한 끝에 몇몇 능력자들을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

“.흐으음.”

그리고 약 일주일이 지난 오늘.

오후의 한가한 틈을 타 나는 강원 도 동해에 도착했다.

넓게 펼쳐지는 푸른 해안가를 바라 보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여긴 크게 달라지지 않았네.”

한때 마인의 왕으로서 협회에 쫓겼 을 때 거주했었던 ‘마인의 은신처’ 가 있는 장소였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기에 앞으 로 ‘왕의 의무’는 지키지 못하겠지 만 하령에게 인사 겸 몇 가지 도움 을 얻기 위해 이곳을 찾아왔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파 지직, 마력의 불꽃이 튀었다.

결계가 외부의 침입자를 막아낸 것이다.

“결계가 바뀌었구나.”

나는 곧바로 결계를 조작했다.

술식 이해력이 S등급에 달했기에 조작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동시에 결계의 일부분이 사라지며 빈 공간이 생겨났다.

나는 은신처의 입구인 동굴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누구냐?!”

그때 동굴 너머에서 날카로운 음성 이 들려왔다.

어둠 너머를 응시하자 마인 하나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상태 였기에 나를 알아보지는 못했다.

“......인간?”

마인은 곧바로 마기를 끌어 올리고 는 내게 돌진했다.

상대의 능력이 생각보다 뛰어났기 에 나는 마력 광검을 녀석에게 휘두 르며 대처했다.

부웅!

“큭!”

위협을 느낀 녀석은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나는 그것과 동시에 마력을 구현하 여 속박 마법을 전개했다.

이후 바닥에서 수많은 마법진이 구 현되더니 마력의 사슬이 마인의 육 신을 묶어냈다.

경계의 세계에서 새롭게 익힌 속박 마법이 었다.

실전에서 사용하는 건 이번이 처음 이지만 꽤 깔끔하게 성공했다.

[‘속박 연계’ 업적을 달성했습니

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술식 이해력’의 숙련도가 소폭 상 승합니다.]

나는 뒤를 이어서 음성 차단의 결 계를 발동해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 게 막았다.

“ 쉿.”

한순간에 벌어진 일에 마인은 놀란 표정이 되었다.

이내 분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크으윽. 강화계가 아니라 보 조계 마법사였나?”

“그렇게 경계할 필요는 없어. 해칠 생각은 없으니까.”

내 말에 마인이 의문이 담긴 목소 리로 물었다.

“……넌 누구지? 목적이 무엇이 냐?”

“내가 누군지는 알 필요 없고. 하 령은 안에 있나?”

“……하령? 그분을 찾는 이유가 뭐

지?”

솔직하게 내 신분을 밝히고 싶지만 전 세계에 흩어진 마인의 숫자는 매 우 많다.

괜히 정체를 밝히다가 내 존재가 외부에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

“긴밀하게 나눌 대화가 있거든.”

“……흥. 하령님은 이곳에 안 계신 다.”

“이곳에 없다고?”

나는 잠시 의문을 느끼며 동굴 너 머를 바라보았다.

이전의 기억과 다르다는 느낌이 있 었는데, 확실히 내부에 인기척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 어디로 갔지?”

사슬이 점점 조여오자 녀석이 말했다.

“……큭. 2년 전, 전대 왕이 죽고 우리 일족은 은신처를 옮겼다. 하령 님은 그곳에 계시지.”

순간 낭패감을 느꼈다.

설마 은신처를 옮겼을 줄이야.

그래서 인기척이 희미했던 건가?

“옮긴 은신처의 위치는 어디지?”

“.…”그건.”

그때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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