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맞다. 너 나랑 같이 대회 나 가 볼래?”
“……대회요?”
뜬금없는 제안에 최서윤은 눈을 깜 빡였다.
“그 있잖아 6년마다 열리는 거.”
“위저드 게임이요?”
“어어. 그거. 올해 열린다고 해서 같은 팀으로 이서준 꼬셔보고 있는 데.”
위저드 게임.
특수한 상품을 걸고 치러지는 마법 대회로 6년에 한 번 개최되는 마법 스포츠 축제였다.
개최 기간은 약 한 달.
특징이 있다면 베테랑 마법사들보 다는 40대 이하의 젊은 마법사들이 많이 참가한다는 특징이 있다.
“아뇨. 저는 별로 생각이 없어서.”
“아, 왜애. 실전 경험도 쌓을 겸 나가자. 그리고 얼핏 들었는데 이번 상품. 역대 최고라는 소문이 있어.”
릴리는 최서윤의 손까지 잡으며 필
사적으로 부탁했다.
비록 21살의 신인이었지만 뛰어난 천재성 덕에 기성 마법사들에게 밀 리지 않은 실력을 갖고 있기도 하 고, 또 그녀만큼이나 섬세하게 얼음 을 구현할 수 있는 빙속성 마법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죄송해요. 제가 일이 바빠서 안 될——
그때 였다.
삐이이이익!
최서윤과 릴리 로즈의 주머니에 있 던 호출 알람이 크게 울렸다.
동시에 둘의 시선이 교차했다.
“호출? 이 시간에?”
그리고 복도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재 앙급 마수라도 나타났어?
—남극의 재앙급 마수라면 거대 예 티인가?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하나둘씩
복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최서윤과 릴 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복도 끝에서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야! 지하에 초대형 유적지가 발 견됐다는데?
“……초대형 유적지?”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동시에 머리가 찡하게 울리고, 강 한 두통이 느껴져 눈을 찌푸렸다.
어제 밤새워 마시던 술의 숙취가 남아 있었다.
술에 제법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오 랜만의 음주에 신나 끝까지 달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과음해버렸다.
주변을 둘러보자 낯선 방이 보였 다.
여기가 어디였더라.
그 순간, 끊어진 필름들이 머릿속 에서 재생되며 이전의 기억들이 떠 올랐다.
……맞아. 나 한세연의 집에서 잠 들었었지.
지낼 장소가 없어 그녀의 집을 하 루 빌렸었다.
그나저나 남의 집에서 잠든 거 진 짜 오랜만인 거 같은데.
나는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내 몸에는 이불이 덮여있고, 그 옆 에서는…… 작은 인기척과 함께 숨 소리가 들려온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지一
그레텔이 새근새근 천사 같은 얼굴 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레텔.”
작게 이름을 부르자 그레텔이 몸을 살짝 뒤척였다.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지 헤실헤실 웃고 있다.
오랜만에 보는 천사 같은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지켜보다가 조심스레 일어섰다.
이후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하고는 문밖으로 나왔다.
“일어났어요?”
문밖으로 나오자 달콤한 음식 냄새 가 솔솔 풍겨왔다.
주방에선 머리를 뒤로 묶은 한세연 이 국자를 들고 서 있었는데, 보아 하니 해장용 국을 끓이는 듯했다.
왠지 모를 어색하면서도 민망한 풍 경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인 사했다.
“네. 일찍 일어나셨네요?”
“회사 일로 습관이 되어서요. 아. 밥 거의 다 됐으니 조금만 기다리세 요.”
“……이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되는 데.”
“아뇨. 어차피 저 먹을 김에 하나 더 하는 건데요. 뭐.”
한세연이 작게 웃으며 다시 요리에 집중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어제 그녀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 렸다.
—저는 선우 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어요.
—당신이 한 번의 회귀를 겪은 존
재일지도 모른다는 사실까지도요.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그 녀는 원작의 흐름과 완전히 달라진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신비에 깊은 연구를 한 자들만이 얻을 수 있는 ‘자격’을 얻었으며, 그 것을 넘어서 내가 다른 시간대의 차 원에서 온 자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시간에서 넘 어온 회귀자라기 보다는 완전히 다 른 차원에서 넘어온 외부자가 맞는 표현이지만.
“그렇게 서 있지 마시고 소파에라
도 앉아 계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파에 앉 았다.
어제도 그렇고 그녀에게 너무 많은 도움을 받은 것 같아서 또 미안해진 다.
그때 나는 소파 앞 테이블에 놓인 수많은 서류를 발견했다.
뭔가 싶어서 바라보자 주방에서 다 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우 씨가 없는 2년 동안 제가 따로 조사해서 모은 자료에요. 확인 해보세요.”
2년간 모은 자료라고?
나는 의문을 느끼며 그녀가 수집한 자료를 확인했다.
[2034년 3월 파리 VIP 경매장 자 운. 신목혈 도난……]
[신목혈, ‘육체 구현’의 재료로 알 려져 진천우의 부활 가능성]
[2034년 8월 12일, 남미에서 김창 현의 혼적 포착]
[발견된 술식]
[유적지 술식]
[2035년 3월 5일, 러시아에서 의문 의 재앙급 마수 사체 발견]
대충 훑어보는데 내가 없던 2년간 있었던 사건들이 시간의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었다.
[2035년 6월 21일, 자운. 미국 신 비 박물관 테러……]
[유물, ‘피닉스의 날개’ 도난]
“……신목혈에 이어 피닉스의 날개 라.”
그것을 보자마자 자운의 목적을 눈 치챌 수 있었다.
진천우의 가장 안정된 부활 방법이 었던 ‘성배’의 제작을 포기하고 새 로운 방법으로 틀어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성배는 성배가 가진 ‘기 적’의 힘을 이용해 진천우를 완전한
과거의 형태로 살려내는 깔끔한 방 법이라고 한다면.
자운이 새로 계획한 부활 방법은, 신비를 이용해 인위적으로 진천우의 새로운 육체를 복제하여 그 안에 진 천우의 영혼을 담는 것이다.
‘……생각보다 빠른데.’
내 추측이 맞다면 내가 자리를 비 운 2년의 세월, 자운은 진천우의 부 활을 위한 재료를 80% 이상을 모 았을 것이다.
이쯤 되면 놈들의 계획을 미리 알 고 막아내도 진천우의 부활을 막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녀석들이 앞으로 노릴만한 것이 있다면…….
“한세연 씨.”
내 부름에 한세연이 내게 시선을 돌렸다.
“네?”
“몇 가지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3일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
다.
그동안 지낼 곳이 없던 나는 한세 연의 집에서 거주했으며, 한성가의 정보력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얻어 내가 없던 2년의 사건 들을 상세하게 파악하는 데에 시간 대부분을 사용했다.
그 결과 나는 세상 밖에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건을 알게 되었다.
남극으로 떠난 특별 수사팀, 이서 준 일행이 무엇을 조사하러 떠났는 지.
마인들은 어떤 삶을 보내고 있는 지. 최일현, 유아연, 양태민 등 나와
가까운 사이였던 조력자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나는 이를 통해 얻은 정보와 원작 의 정보로 앞으로의 계획을 구상했다.
그리고 오늘.
“부탁하신 물건이에요. 정말 힘들 게 구했어요.”
한세연이 내게 작은 카드를 내밀었다.
나는 카드를 살펴보았다.
[A등급 마법사 자격증]
[김도윤]
원활한 활동을 위해 마법사 자격증 을 구해 달라고 부탁했었는데 제대 로 구해준 모양이다.
역시 한세연.
일 처리는 하나는 확실하다.
“감사합니다. 근데 이거 안전한 건 가요?”
마법사 자격증 안에는 특수한 술식 이 담겨 있어 위조하는 것이 불가능 하다.
재발급을 할 시 기존 자격증은 효
력을 잃게 되고, 거기다 3년 주기로 ‘본인’이 직접 협회에 찾아와 갱신 해야 한다.
즉, 이 자격증의 원래 주인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작년 마수 토벌 중 사망한 한성가 산하 비밀 요원의 신분증이에요. 효 력일은 2년 1개월이고요. 그리고 주 특기도 선우 씨가 찾는 성향이랑 완 전히 같아요.”
“2년 1개월이라……
나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사실 신분증을 얻고자 한다면 ‘새
프로필 추가’를 사용해버리면 된다.
하지만 과거 이력이 하나도 남지 않은 ‘김선우’와 ‘김진우’의 신분증 에 자운이 의문을 느끼고 있었고 만 약 이번에도 새 프로필 추가로 새 신분을 얻으면, 녀석들은 내 정체를 순식간에 눈치챌 수도 있다.
“선우 씨도 아시겠지만, 신분증 도 용은 중범죄에 속해요. 걸리면 아무 리 저라도 감당할 수 없어요.”
“세연 씨에게는 절대 피해 안 가게 할게요.”
한세연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근데 이거로 김창현의 감시를 피 할 수 있을까요? 얼굴을 가린다 해 도……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김창현은 아마 못 속일 겁 니다. 놈이라면 저라는 걸 바로 알 거예요. 그 녀석은, 나와 같은 회귀 자니까요.”
미래에 없던 존재가 튀어나오면 그 누구보다 빠르게 눈치챌 것이다.
내가 어떠한 편법을 사용한다 해도 녀석을 속이는 건 불가능하겠지.
“......그럼?”
“하지만 자운이라면 속을 겁니다. 분명 방심할 거예요.”
그때.
띵동.
초인종 소리가 크게 울렸다.
내 옆에서 쿨쿨 잠을 자던 그레텔 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왔나 보네요.”
한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녀에게 부탁한 것은 신분증 하나가 아니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서 몇몇 사람 들을 초대했다.
그리고, 지금 초인종에 보이는 얼 굴은 룬의 일족의 생존자, 엘린이었다.
한세연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내 게 물었다.
“그럼 이거는 무슨 생각이에요?”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작게 웃으 며 말했다.
“저만의 팀을 만들 겁니다.”
현관문이 열리더니 문 너머에서 엘 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웬일이야? 한세연 네가 집에 다 부르고.”
엘린은 신발을 벗으며 실내로 걸어 들어왔다.
평온한 얼굴.
여유롭게 하품까지 하는 그녀의 모 습은 2년 전 그대로였다.
다만 한세연과 제법 가까운 사이가
되었는지 마치 친구 집을 드나드는 듯한 행동은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그때 거실 안으로 들어선 엘린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의 몸이 돌처럼 굳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작게 옷으 며 말했다.
“오랜만이네. 엘린.”
유..
엘린의 눈이 불안하게 떨렸다.
이내 눈을 찌푸리며 한 발짝 뒷걸 음질하더니 한세연에게 해명을 요구
하듯 시선을 돌렸다.
한세연은 그런 엘린을 향해 말없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게, 대체. 아니, 이게 무슨 ……?”
그렇게 한참 패닉이 온 듯 당황한 반응을 보이던 엘린이 조심스럽게 내게 말했다.
“……종사님?”
그 불음에 나는 피식 웃었다.
종사님이 라.
이게 얼마 만에 들어보는 호칭이 지?
예전에도 그랬지만 다시 들어도 적 응되지 않는 호칭이다.
그때 그녀가 미간을 좁히더니 고개 를 저었다.
“……아니. 넌 일족의 종사가 아니 지. 김선우.”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녀 역시 나 의 정체를 깨달은 모양이다.
뭐, 어느 정도 예상했던 상황이었다.
나의 죽음 이후.
전 세계의 언론사에서 나의 정체에 대한 주제로 수많은 의혹을 제기했
었다.
인간인데 어떻게 마인의 힘을 사용 할 수 있었는지.
또 어떻게 다른 소수 일족의 힘을 사용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엘린 역시 그 내용을 봤을 것이다.
내가 말없이 지켜보고 있자 그녀가 괴로운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했다.
“……너 정체가 뭐야?”
그녀의 말투는 그 어느 때보다 진 지 했다.
“정체가 뭐길래 외부인인 네가 우
리 일족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거냐고.”
나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한세 연에게 슬쩍 시선을 돌렸다.
나와 눈올 마주친 한세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레텔을 안고선 자리를 비켜주었다.
단둘이 남게 되자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네게 도움받은 것도 있 고 하니 솔직하게 대답해줄게. 네 말대로 나는 룬의 일족의 종사가 아 니야.”
어쩌면 악수가 될지도 모르는 말이
었다.
s등급의 마법사를 아군은커녕 적으 로 만들어 버릴지도 모르는 발언이 었으니까.
하지만 한세연 때도 그랬듯 이제 새롭게 함께할 ‘팀’에서는 숨기는 것 없이 최대한 나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강한 팀에 필요한 조건은 실력도, 팀워크도 아닌 신뢰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뭐, 애초에 대부분의 정황이 드러 난 상황이라 더 속이는 게 불가능하 기도 하다.
“그럼 렌의 사숙인 것도 거짓말이 고, 더클러스 종사님을 안다는 것도 거짓말이야?”
“……어. 그렇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순간 양심이 찔렸다.
한세연에게 해명할 때도 느꼈지만 과거의 나는 생각보다 많은 거짓말 을 했다.
그리고 엘린은 내 대답에 깊은 황 당함을 느끼는 듯 미간을 좁혔다.
“하…… 그럼 네 정체는 뭐야? 마 인? ……아니야. 마인은 분명 아닌 데……
룬의 일족은 예민한 마력 감지 능 력을 지니고 있어 인외의 존재를 구 분할 수 있다.
즉 인간과 마인을 구분할 수 있다 는 이야기다.
“나는 인간이야. 그리고……
나는 말끝을 흐렸다.
가만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 순간만큼은 능력의 힘을 빌려야 할 것 같아서 짧게 심호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