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끝에서 구현된 마력이 이내 술식의 형태로 변화했다.
그레텔은 본능적으로 술식에 담긴 힘을 읽었는지 그 안에 자신의 마력 을 주입했다.
우우우웅!
번쩍!
작은 빛이 번쩍이고, 내 눈앞에 메 시지가 떠올랐다.
[‘다시 이어지는 유대의 끈’ 업적을 달성합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됐다.”
나는 곧바로 외부자의 혜택을 발동 해 그레텔의 정보를 확인했다.
[정보 ]
이름 : 불멸의 지옥 마계수 그레텔
종족 : 마계수
[능력치]
체력 : 32
근력 : 20
마력 : 81
속도 : 47
순발력 : 69
손재주 : 12
“오……
그레텔의 능력치가 제대로 표기되 고 있었다.
재계약이 성공적으로 이뤘다는 증 거다.
나는 천천히 그레텔의 능력치를 살 펴보았다.
대충 훑어보았는데 전반적으로 능 력치가 상승했다.
2년의 세월 간 그레텔도 나처럼 성장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성장했다는 건 그만 큼 한세연이 잘 돌봐줬다는 의미고.
그 뒤로 나는 그레텔과 관련된 능 력들을 살폈다.
유대와 소환술은 물론이고, 계약이 끊겨 사용할 수 없었던 [마계수의 가히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말은 즉 그레텔의 SSS 등급 특 성인 ‘불멸’ 역시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응애!”
그때 재계약이 성공했다는 것을 눈 치챈 그레텔이 환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그레텔을 다시 안았다.
한세연이 급하게 준비한 저녁 식사 는 생각보다 화려했다.
잘 익은 고급 스테이크와 달콤한 소스를 곁들인 샐러드.
그리고 고급스러운 잔을 가득 채운
레드 와인까지.
부족한 부분이 하나도 없다.
굽기도 적당하고, 샐러드는 달콤해 한세연이 요리를 잘한다는 것을 새 삼 깨닫게 되었다.
“입맛에는 맞아요?”
“네. 엄청 맛있는데요? 매일 먹고 싶을 정도로요.”
“……매일요?”
한세연이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이상한 오해를 하는 것 같아 서 다시 말했다.
“그만큼 맛있다는 거죠.”
한세연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입맛에 맞다고 하니 안심하는 반응 이다.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피식 미소를 짓다가 와인으로 목을 적셨 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평화로움 아니, 일상의 즐거움이었다.
맛있는 요리와 술. 그리고 대화를 나눌 상대.
나는 이러한 일상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u..진우 씨?해
그때 그녀가 조심스럽게 내 이름을 불렀다.
필요 이상으로 조심스러워서, 나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지금부터 그녀가 나에게 많은 것을 물어볼 것이라는 걸.
각오한 일이었지만 괜히 불안감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물어보세요. 최대한 대답해드릴게 요.”
한세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김선우와 김진우. 뭐가 진짜 당신이에요?”
예상했던 질문이 던져졌다.
그리고 처음부터 이런 질문을 하게 된 그녀에게 깊은 미안한 감정을 느 꼈다.
‘김진우’라는 가면을 쓰고 그녀에 게 저질렀던 행동들. 그녀에게는 기 만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나는 짧게 심호흡하고는 말했다.
“김선우가 진짜 제 이름입니다.”
순간 그녀의 눈에 작은 슬픔의 감 정이 담겼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게 괴로웠지만 앞으로 그녀를 속여도 되지 않는다 는 사실에 마음 한편으로는 후련하 기도 했다.
“……그럼 나이는요? 나이도 설마 22살이에요?”
“네. 맞습니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김선우’라는 사실보다 22살이라는
것에 더 큰 충격을 받은 느낌이 들었다.
이내 그녀는 목이 타는지 와인을 들이마셨더니 잔을 탁 내려놓았다.
왠지 화난 것 같은데 착각은 아니 겠지?
“그럼 저와 처음 만났던 때가 18 살 때라는……?”
“그렇죠……? 근데 평범한 18살은 아니고 20대 같은 18살이라고 해야 할까……
갑작스레 취조하는 듯한 상황이 되 어버려서 나도 이상한 핑계가 튀어 나왔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내 정신 연령은 20대가 분명하니까.
그리고 떨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 던 한세연이 혼잣말하듯 말했다.
“미성년자였다고……?”
그녀의 목소리에는 깊은 황당함이 담겨 있었다.
하긴 내가 그녀의 입장이었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긴 하다.
18살의 꼬맹이한테 농락(?)당했는 데 열받을 만도 하지.
그때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나는 미성년자와 술을……
……이후 그녀와 나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를 속일 수 있었던 방법.
진천우를 쫓고 있는 이유.
그리고 죽음으로부터 어떻게 부활 할 수 있었고, 지난 2년간 무슨 일 이 겪었는지.
중간중간 날카로운 질문이 있었지만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제외하
면 성실하게 대답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그녀에게 해줄 수 있 는 이야기를 모두 마쳤다.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들은 한세연은 괴로운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요. 진우 씨, 아니. 선우 씨가 한 말 모두 믿어줄게요.”
호칭은 어느덧 김진우에서 김선우 로 바뀌었다.
원래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에 분 명 편함을 느껴야 하는데, 어쩐지 더 불편함만 느껴진다.
그나저나 그녀에게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텐데도 의외로 내 이야기
를 쉽게 믿어주었다.
“정말로 믿어주시는 겁니까?”
“……네. 믿을 수 있어요. 그러면 이제 제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한세연의 이야기를?
뜬금없는 그녀의 말에 나는 의문을 느꼈다.
그녀는 짧게 심호흡을 하는가 싶더 니 내게 말했다.
“저는 선우 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어요.”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나는 의문에 찬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
“진우, 아니 선우 씨가 가지고 있 는 ‘혼돈’의 진정한 의미. 그리고 이 세계에 숨겨진 법칙까지도요.”
……뭐?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방금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거 지?
“……어떻게 그걸?”
“아버지가 남기신 유품이 있었어 요. 유품이 알려주는 장소를 따라가 다 보니 자연스레 신비와 마주치게 되었죠.”
덤덤하게 말하는 그녀의 이야기에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생각조차 못 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신비에게서 많은 이야기 를 들었어요. 세계의 숨겨진 법칙. 모든 것이 결정된 세계……
한세연이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가진 혼돈이, 인류에게 자 유를 선사할 열쇠라는 것……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당신이 한 번
의 회귀를 겪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는 사실까지도요.”
늦은 밤
남극 신비 연구 기지, 중앙 도서 관.
수많은 고서가 쌓여있는 책상 앞에 서, 최서윤은 한참 술식 공부에 몰 두하고 있었다.
“..흐으음.”
이 세계는 어떻게 되어 있는 걸까.
예언의 출처는 무엇이고, 예언자들 은 왜 발언을 조심하는 걸까.
몇 달을 혼자서 고민했지만 아직도 그녀는 이 의문의 답을 찾아내지 못 하고 있었다.
……그렇게 답을 찾아내기 위한 독 서를 이어가던 중.
책에 적힌 한 문장이 그녀의 눈에 띄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술식으로 이루 어져 있다. 자연의 작은 흐름 하나 마저 술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 하며, 만약 술식에 완전한 깨달음을 얻게 된 자가 탄생한다면 그는 자연 의 법칙을 자신의 의지대로 바꿀 수
있는 절대적인 권능을 얻게 된다. 술식이란 신의 언어라고 해도 무방 하다.]
“……신의 언어.”
최서윤은 생각에 잠겼다.
만약 세상에 알려진 대로 술식이 ‘신의 언어’라면, 정말로 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걸까?
만약 정말로 신이 존재한다면 신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혼자 그런 생각을 이어가던 중.
“……와. 너도 참 대단하다. 한국에
서 돌아오자마자 공부하는 거야?”
익숙한 목소리에 최서윤은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맞은편에 금발의 여인이 질 렸다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 었다.
“……관종 스토커?”
“아씨. 야! 그렇게 부르지 말라 했 지?! 릴리로 부르라고!”
릴리가 도끼눈이 되어 소리쳤다.
관종 스토커.
과거 성무제에서 시도 때도 없이 김선우를 스토킹해서 잠시 붙여진
별명이었는데 최서윤은 아직도 그녀 를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알았어요. 릴리 로즈. 됐죠?”
“……하아.”
릴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 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내 안쓰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 보며 말했다.
“근데 넌 어째 쉬지를 않냐? 너 그러다 진짜로 병나.”
현재 시각 새벽 1시.
다른 동료들은 이미 잠든 시각이었다. 하지만 최서윤은 잠들지 않고
무리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다.
릴리 로즈는 그런 그녀가 진심으로 걱정되었다.
“아직 체력이 남아서 괜찮아요. 걱 정해줘서 감사합니다.”
“……거, 걱정한 거 아니거든? 네 가 뭐가 이쁘다고.”
그렇게 툴툴거리던 릴리가 주머니 에서 미니 초콜릿 3개를 꺼내 그녀 에게 내밀었다.
“됐고. 이거라도 먹어.”
최서윤이 초콜릿을 빤히 바라보자
릴리가 다시 말했다.
“아니, 아니. 시간 늦었으니까 자고 일어나서 먹어.”
“……감사합니다.”
최서윤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초콜 릿을 받았다.
“근데 그쪽은 안 주무세요?”
“흐아암. 나도 슬슬 자야지. 아까 이서준이랑 짧게 대련했는데 분해서 잠이 안 오더라고.”
“또 깨지셨나 보네요.”
“……깨진 건 아니고 조금 밀린 거
야.”
“아, 네.”
그때 릴리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