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2화 (451/535)

그때 내 옆에서 놀란 목소리가 들 려왔다.

—……뭐야. 저 사람 갑자기 생겨 나지 않았어?

—뭔 소리야. 너 어디 아파?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한 여성이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내 옆의 사람에게 속닥이듯 말했

—……와. 순간 김선우인 줄 알았 네.

—닮긴 했네. 큭큭. 야야. 빨리 가 자. 민폐야.

두 여성은 웃으며 사라졌다.

나는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멍 하니 바라보다가 손에 들린 모자를 눌러썼다.

[수사를 위해 남극으로 떠났던 특

무팀 요원 12명이 1년 만에 귀국했 습니다. 이들은 故 김선우 씨의 2주 기를 위해 방문한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고충 빌딩에 달린 거대한 전광판에 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뉴스 속에는 굳은 얼굴로 발걸음을 옮기는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이서준, 최서윤, 윤하영, 신영준, 유아라…….

2년 만에 보는 그리운 얼굴들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원래의 세계로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다들 조금씩 변했네.”

2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긴 시간 은 아니었지만 미묘한 변화가 느껴 진다.

성숙한 분위기가 흐른다고 해야 하 나.

물론 앳돼 보이는 외모가 여전하긴 하지만 분위기가 조금씩은 바뀌었다.

“2주기라.”

나는 멍하니 그 모습올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서울 국립묘지.

김선우의 2주기를 위해 소수의 사 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서준과 신영준, 유아라는 굳은 얼굴로 묘를 내려보았고, 윤하영은 슬픈 표정으로 입술을 꾹 다물고 있 었다.

맨 앞에 선 최서윤은 비석 앞에 꽃 하나를 조용히 내려놓고는 묘를 바라보며 작게 말했다.

“선배님, 저희 왔어요.”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깊은 슬픔이 담겨 있었다.

그 짧은 말에 윤하영은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해요. 자주 찾아뵙고 싶었는 데 일이 너무 바빠서 그러지 못했어 요.”

최서윤은 마른 침을 삼키곤 다시 말을 이었다.

“저희 진짜 열심히 하고 있어요. 선배님이 풀지 못한 한. 저희가 대 신 풀어드리고 싶어서一.”

최서윤은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가슴 깊은 곳에 꾹꾹 눌러 놓았던 감정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벌써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자신을 부르던 그의 목소리 와 얼굴이 생생했다.

유아라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 라보더니 슬픈 눈으로 그녀의 어깨 에 손을 얹어주었다.

이서준은 작게 숨을 내쉬고는 주변 을 둘러보았다.

협회 사람들과 마법사관학교의 몇

몇 동기들.

약 20명 정도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50명 가까이 모였던 1주기 때 비 하면 사람의 수가 많이 줄었다.

이서준은 씁쓸함을 느꼈지만 시간 에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는 현상 이라 생각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고, 죽은 사람 을 언제까지 그리워할 수 없는 일이 니까.

아마 3주기가 되는 내년엔 이보다 더 줄어들겠지.

“……그나저나 그분은 오늘 안 오

셨네.”

신영준의 중얼거림에 이서준이 그 를 바라봤다.

“누구?”

“그, 있잖아. 한성 그룹에一.”

“아.”

신영준의 말에 이서준은 주변을 둘 러보았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한세연의 모습 이 보이지 않았다.

지난 1주기 때 그 누구보다 슬퍼 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고, 주기적 으로 묘를 방문한다는 소문도 들려

와 반드시 참석하리라 생각했는데.

이서준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말했다.

“요즘 회사 일이 바쁘신가 보네.”

붉은빛의 노을이 지는 저녁.

나는 뉴스에서 떠들었던 ‘김선우 2 주기’ 현장인 서울 국립묘지에 도착 했다.

사실 그보다 먼저 하고 싶었던 일 이 있었는데 내 묘지가 생겼다고 하

니 괜히 궁금하기도 하고, 또 혹시 주요 등장인물들의 얼굴을 볼 수 있 지 않을까 싶어 궁금해서 찾아갔다.

늦은 저녁이라 그런지 국립묘지 안 에는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 았다.

나는 안도감을 느끼며 천천히 발걸 음을 옮겼다.

수많은 묘와 비석에 새겨진 이름들 이 보인다.

책에서 본 마법사들도 있었고, 수 많은 업적을 기록한 협회 마법사들 의 묘도 있었다.

내가 그런 마법사들과 같은 장소에

안장되었다는 게 조금 어이가 없어 서 웃음이 나왔다.

“……분명 이쯤이었는데.”

나는 국립묘지의 지도를 살폈다.

이 근처 어딘가에 내 묘가 있을 터.

그때.

“찾았다.”

[김선우의 묘]

묘가 있는 곳에는 수많은 꽃이 놓

여 있었다.

오늘이 내 2주기라던데, 그것을 기 념해서 꽤 많은 사람이 다녀온 모양 이다.

“뭔가 기분이 이상하네.”

나는 쭈그려 앉아 비석에 적힌 내 이름을 바라보았다.

크루아스와 전투하기 전만 해도 인 류의 적이니 뭐니 하면서 난리도 아 니었는데, 이렇게 국립묘지에 안장 된 걸 보면 나도 꽤 성공했다.

“흐음.”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시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찾아가 인사하는 건 아니더라도 오 랜만에 주요 등장인물들의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

늦은 시간인 만큼 어쩔 수 없는 거 겠지.

뉴스에 의하면 내 2주기를 마치고 수사를 위해 남극으로 돌아간다고 하니 오늘 보지 못하면 당분간 얼굴 볼 일이 사라질 것이다.

“……뭐, 언젠간 다시 만나게 되겠지.”

그날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

만…… 메인 스토리를 쫓다 보면 언 젠간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설 때였다.

툭.

어디선가 가방 같은 가벼운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느껴지는 익숙한 인기 척.

나는 의문을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내 두 눈이 잠시 떨렸다.

내 시야의 끝에 검은 머리의 한 여성이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잘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내게 말했다.

“……진우 씨‘?”

예상치 못한 순간에 등장한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가슴의 떨림을 느꼈 다.

2년 만의 재회.

오랜 시간 마주치지 못했음에도 그 녀는 처음 만났던 그 날의 모습 그 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다.

“……한세연 씨.”

내 짧은 부름과 함께 한세연의 두 눈에서 물기가 가득 차올랐다.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잠 시 다리에 힘이 풀리는가 싶더니, 이내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한 걸 음씩 내게 다가왔다.

다가오는 그녀를 바라보며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아직 재회의 준비를 하지 못했는 데.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하지. 사과부 터 해야 할까? 아니면 인사?

“……진우 씨 맞아요?”

어느새 내 앞까지 다가온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가까이에서 내 얼굴을 확인하자 그 녀는 끝내 눈물을 터트렸다.

언제나 강인한 모습만 보여주었던 그녀가, 내 앞에서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2년간 마음고생 하며 쌓여 있던 감정이, 한순간에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깊은 미안함과 죄책감의 감정을 느꼈다.

“죄송해요. 돌아오는 데 조금 늦었 어요.”

그 말과 동시에 한세연이 내 목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녀의 어깨가 작게 떨리고, 떨어 지는 눈물이 내 옷을 적셨다.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어떻 게 2년을…… 살아 있었으면 살아 있다고 말해줘야죠……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나는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몸을 안아 주었다.

나를 향한 그녀의 감정이, 이렇게 나 컸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기에 미 안한 마음이 더욱 커졌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은 채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 까.

종일 내 품에 안겨 있던 한세연이 눈물을 멈추었다.

어깨의 떨림도 사라졌고, 이제는 완전히 진정된 듯 이전의 평온함을 되찾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가 진 정된 것은 5분 정도 전이었다.

M 99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내 품에 안 겨 가만히 있었다.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고 그

자세 그대로.

지쳐서 잠들었다거나 그런 건 아니 었다.

물 밀듯 밀려오던 감정의 파도가 사라지고 이성을 되찾게 되자, 자신 의 행동을 되돌아보며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거기다 내게 떨어질 타이밍까지 놓 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겠지.

그런 귀여운 모습에 나는 작게 옷 으며 말했다.

“이제 진정 좀 됐어요?”

한세연은 말없이 내 품에서 떨어졌

푹 숙인 고개를 들어 올리자 퀭해 진 눈이 보였다.

이내 그녀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민망한 얼굴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 다.

“......네.”

한세연과 재회 이후, 나는 그녀와 함께 그녀의 집으로 이동했다.

삑삑삑

현관문이 열리고 나는 조심스레 안 으로 들어섰다.

오랜만에 방문하는 그녀의 집…….

거실 안으로 발을 내디디며 나는 가슴 깊이 커다란 동요를 느꼈다.

한세연 역시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지 힐끔 내게 시선을 보냈다.

내가 이런 긴장감을 느끼는 이유.

그건 바로.

“......응애?”

작은 나무가 크게 떨리는 눈으로 나를 올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울컥함을 느꼈다.

“그레텔……

“응애애애.”

그레텔은 짧은 다리를 휘저으며 내 게 뛰어왔다.

한세연의 말에 의하면 그레텔이 기 억을 잃은 것 같다고 했는데, 다행 히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모양 이다.

나는 그레텔을 품에 안고는 예전에 느꼈던 딱딱한 나무의 촉감을 느꼈 다.

내 품에 안긴 그레텔은 엉엉 울음 을 터트렸고, 그 감동적인(?) 재회 를 지켜보던 한세연은 흐뭇한 미소 를 지었다.

“그레텔 잘 지냈어?”

“응애애……

이후 나는 그레텔을 안은 채 거실 안으로 들어섰다.

깔끔하게 정리 정돈된 거실 안을 둘러보다가 조심스레 소파에 앉았 다.

한세연은 그레텔을 안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식사는 하셨어요?”

“아뇨.”

경계의 세계에서 넘어오고 난 뒤, 이런저런 상황을 겪다 보니 밥 먹을 시간이 없었다.

넘어온 시점이 아침인 걸 생각해 보면 꽤 오랜 시간 식사를 하지 않 은 셈이다.

“아. 그럼 식사 준비할게요. 괜찮 죠?”

“네, 괜찮습니다.”

한세연은 이후 부지런하게 냉장고 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분명 묻고 싶은 것이 많을 텐데도, 아직까지 그녀는 나에 대한 어떠한 질문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 그녀가 테이블 위로 술병을 탁 내려놓았다.

……차근차근 물어볼 생각이구나.

“응애.”

그레텔이 짧게 울었다.

나는 품에 안은 그레텔을 내 앞에 내려놓고는 턱을 매만졌다.

현재 나와 그레텔이 맺었던 소환의

계약은 끊겨 있는 상태이다.

내가 죽음을 경험함으로써 계약이 파기된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끊긴 건 또 아닌 것인지 미약하게 그레텔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레텔, 재계약하자.”

“응애!”

나는 피식 미소를 짓고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지난 2년간 보조계 마 법을 익히며 계약에 필요한 술식 정 도는 손쉽게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라면 계약서가 필요하지만 계

약이 완전히 끊긴 건 또 아니라 간 단하게 조작할 수 있다.

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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