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9화
설산의 대정령 토벌 하루 전 새벽.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넓은 평
야 아래서 나는 지난 1년 8개월간
이루어낸 성장을 확인하고 있었다.
[능력치]
체력 : 97.2
근력 : 94.62
마력 : 96.1
속도 : 61
순발력 : 109.6
손재주 : 35
“……전체적으로 5 정도 오른 건 가?”
겉으로 보기에는 거의 성장하지 못 한 것 같았지만 능력치가 이미 고점 에 오른 상태였기에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성장을 이룬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왠지 모를 아쉬움
을 느껴졌다.
아마 회귀 초창기에 누렸던 미친 듯한 능력치 뻥튀기 효과를 이번에 는 겪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예를 들면 지속적인 영약 섭취라던 가.
“새삼 그레텔의 빈자리가 느껴지 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레텔은 내게 많 은 도움이 되는 존재였다.
말도 잘 듣지. 영약도 만들어주지. 말동무도 되어주지.
거기다 나무를 활용한 노동 능력까 지 뛰어나서 일손까지 줄여준다.
세상에 이런 소환수가 어딨어?
“잘 지내고 있을지 모르겠네.”
다른 주요 등장인물들은 어떻게 지 내고 있을지 어느 정도 예상이 되지 만 그레텔만큼은 전혀 예상되지 않 는다.
피코의 말에 의하면 한세연이 거둬 갔다고는 하는데 그레텔과 한세연의 상성이 좋지 않다 보니 괜스레 걱정 된다.
매일 공포에 떨며 우는 건 아닌가 몰라.
“……그래도.”
생사의 세계로 귀환까지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앞으로 4개월.
4개월만 버티게 된다면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혼자 하다가 순간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어이가 없네. 원래 세계라니.”
정작 진짜 나의 ‘원래 세계’는 따 로 있는데. 나도 모르게 그 세계가 고향처럼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익숙해져 버린 거겠 지.”
쯧. 작게 혀를 차고는 크게 기지개 를 켰다.
“으으음! 그럼 슬슬 준비해볼까.”
내일은 회귀 초창기부터 정했던 목 표 중 하나인 ‘설산의 대정령’ 토벌 을 시도하는 날이다.
그리고 녀석은 ‘대정령’이라는 칭 호를 가진 존재답게 재앙급 마수에 버금가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지난 1년 8개월간 김정희에게 가 르침올 받으며 크게 성장했다고는 하나 녀석과의 정면 승부는 무모한 짓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그에 따른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터.
나는 우선 보유 포인트를 확인했다.
[보유 포인트 : 312,500]
메인 스토리에 개입하지 않고, 빌 런과의 전투 역시 없었음에도 꽤 많 은 포인트가 쌓였다.
이 정도면 S등급 특성은 물론 하 급 SS 등급 특성도 구매할 수 있는 정도.
당연하겠지만 이 포인트들은 ‘대정
령’의 토벌을 위해 투자될 예정이 다.
[포인트 상점에 입장합니다.]
[빠뺌一!]
[1 년 만에 방문해 주셨네요!]
[다시 찾아와주신 외부자를 위해 특별한 선물이 지급됩니다!]
“……특별한 선물?”
나는 의문을 느끼며 내용을 확인했
[전 품목 10% 할인 쿠폰으??)]
설명 : 포인트 상점에 판매되는 모 든 품목 중 하나를 10% 할인가에 구매할 수 있습니다.
*사용 기간 : 3일
“쿠폰이라. 무난하네.”
혹시 이전처럼 특수한 상점에 입장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지 않을까 싶 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쉽거나 하지는 않았다.
할인율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거기다 가격이 비쌀수록 할인받을 수 있는 금액도 커질 테고.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검색창 을 켜고는 바로 검색어를 입력했다.
현재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
특정 종족들을 상대하는데 효율적 인 ‘드래곤 슬레이어’나 ‘멸마’와 같 은 종족 상성 능력이다.
[‘정령’을 검색합니다.]
띠링!
►[특성] 화염의 대정령과 계약 (SS)
►[아이템] 타오르는 정령의 유산
(A)
►[아이템] 녹색 정령의 눈(S)
►[아이템] 대정령과의 계약을 꿈
꾸는 초보 소환사를 위한 비전서
1—4권 세트(S)
눈앞에 정리되지 않은 검색 목록이 쫘르륵 나열되었다.
대충 훑어보는데 대다수가 계약과 관련된 것이고 상성과 관련된 것은 보이지 않았다.
“……흐음. 검색어가 잘못됐나?”
분명 상성 능력을 가진 특성이 하
나쯤은 있을 텐데.
하지만 아무리 찾아보아도 원하는 특성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예상치 못한 상황에 깊은 고민에 빠지려는 그 순간.
번뜩 내 머릿속에 원작의 한 장면 이 스쳐 갔다.
“맞아. 그게 있었네.”
원작에서 신박한 방법으로 이현주 의 소환수를 무력화했던 인물이 있었다.
과거 영국 특무팀의 리더였으나 이 제는 은퇴한 ‘수수께끼’라는 이명을 가진 정상급 마법사 중 하나였다.
그자의 특성 이름이 분명……. 나는 다시 검색어를 입력했다.
[‘반전의 가호’을 검색합니다.]
[반전의 가호(S)]
분류 : 특성
설명 : 상황을 뒤집는 가호.
[지속 효과]
►생명력 반전
생명력이 20% 이하로 떨어지면 생명력이 60%까지 즉시 회복됩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 3일
►마력 반전
체내에 남은 마력이 20% 이하로 떨어지면 마력의 60%가 즉시 회복 됩니다.
*재人용 대기 시간 : 3일
[사용 효과]
►속성 반전
반전의 마법을 적중시켜 10분간 상대방의 가장 높은 속성 저항력의 수치만큼 모든 속성 저항력이 감소 합니다.
►흐름 반전
마력 흐름을 반전시켜 일시적으로 마나 역류를 일으킵니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상대방의 신 체에 접촉해야 합니다
*재人용 대기 시간 : 5분
►특성 반전
하나의 특성 혹은 스킬의 재사용 대기 시간을 최대 30일 단축시킵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 15일
가격 : 170,000포인트
“찾았다.”
S등급답게 다양한 능력을 가진 특 성이다.
이름 그대로 ‘반전’시키는 효과를 지니고 있는데 그중 사용 효과인 ‘속성 반전’은 속성에 민감한 몬스 터를 상대로는 극적인 효과를 자랑 하는 특성이었다.
예를 들면 화염의 정령은 대체로 높은 화염 저항력을 지니고 있는데 그 높은 수치만큼 모든 속성 저항력 을 감소시킬 수 있어 반대 속성의 공격이 더욱 강하게 들어간다.
“근데 이건 뭐지?”
반전의 가호를 살피는데 마지막에 ‘특성 반전’이라는 처음 보는 효과 가 하나 더 있었다.
“……재사용 대기 시간을 30일이 나 단축시킬 수 있다고?”
30일이면 상당히 긴 시간이다.
만약 이걸 전투 중에 사용한다면 ‘룬의 속박’이나 ‘투쟁심’ 같은 능력 을 연속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건 물 론이고, 365일이라는 긴 재사용 대 기 시간을 가진 ‘마계수의 가호’ 또 한 재사용 대기 시간을 유의미하게 줄일 수 있었다.
“와. 대박. 이런 게 있었네.”
보물이라도 발견한 기분이다.
S둥급치고는 비싼 가격이 조금은 아쉽긴 하지만 효과 자체는 두고두
고 써먹을 수 있을 테니.
“이건 못 참지.”
나는 고민 없이 바로 구매를 눌렀다.
[전 품목 10% 할인 쿠폰으???)을 사용하여 ‘반전의 가호’를 구매했습니다.]
이내 새하얀 빛이 내 앞에서 뿜어 지더니 몸 안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그리고 눈앞에 메시지가 다시 떠올
랐다.
[특성, ‘반전의 가호’를 획득했습니
다.]
결전의 날이 밝았다.
검게 물들었던 경계의 하늘은 붉은 해가 떠오르며 점차 밝아지기 시작 했고, 밤새 울던 몬스터들도 잠이 들었는지 고요해졌다.
모든 준비를 마친 나는 마을의 입
구로 이동했다.
장소에 도착하자 김정희와 정민하 를 포함한 마을 주민 약 20명이 중 무장을 한 채 서 있었다.
“준비는 모두 끝났나?”
김정희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고 는 그의 주변에 모인 20명의 사람 을 바라보았다.
“네. 근데 이 사람들은……
“대정령의 토벌을 돕고 싶다고 하 여 모인 자들이네. 이래 봬도 내게 직접 가르침을 받아 웬만한 술식 술 사들보다 실력이 좋을 거네.”
나를 돕기 위해 모였다고?
의문에 찬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정민하가 피식 웃었다.
“설산의 대정령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건 우리야. 그런 녀석 을 토벌한다는데 당연히 우리도 도 와야지.”
예상치 못한 지원군이 생겼다.
혼자서 대정령을 상대한다는 것에 조금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잠깐, 그러면 김정희도 나를 돕는 다는 건가?
괜한 기대감으로 김정희에게 시선 을 돌리자 그가 내 마음을 읽은 듯 고개를 저었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함께하고 싶 지만 내가 마을을 비우면 마을의 결 계가 무너져 도울 수 없네.”
이건 조금 아쉽게 됐다.
S+의 마력 둥급을 가진 그가 함께 한다면 큰 힘이 되어줄 텐데.
“괜찮습니다. 도움은 이미 충분히 받았으니까요.”
빈말이 아니었다.
1년 8개월 동안 김정희에게 가르 침을 받으며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지금의 나는 크루아스를 상대하던 그때보다 훨씬 성장했다는 것이다.
만약 이 상태에서 원래 세계로 돌 아가게 된다면 분명 전보다 큰 영향 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 말에 김정희는 작게 미 소를 지었다.
“그래. 그럼 조심해서 다녀오게.”
“자자. 그럼 가자고.”
정민하가 내 어깨를 툭툭 두들겼 다.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는 우리는 남쪽의 설산을 향해 이동했다.
설산은 가상 세계를 통해 한번 방 문한 적이 있었기에 별도의 지도 없
이 길을 찾아갈 수 있었다.
“……저번에도 느꼈는데 너 여기 한번 와본 적 있어?”
길을 안내하는 내 모습에 정민하가 의문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
확실히 경계에 처음 방문한 사람이 앞장서서 길을 안내한다는 게 정상 적인 상황은 아니긴 하지.
“직접 와본 건 아니고 비슷한 경험 은 해봤어.”
“……비슷한 경험?”
정민하가 의문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런 게 있어.”
“아. 뭔데.”
어느덧 우리는 목적지인 경계의 남 쪽, [얼어붙은 골짜기]에 도착했다.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오고 새하얀 눈보라가 눈앞의 시야를 가렸다.
휘이이잉!
“..으”
엄청난 강추위에 모두가 표정을 굳 히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곳 얼어붙은 골짜기는 [냉기 저 항]마저 뚫어버리는 극한의 추위를 갖고 있기에 바로 미리 준비한 보온
옷을 껴입었다.
“으. 토벌하러 가기 전에 얼어 죽 겠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어디더라……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고는 손 가락으로 거대한 산봉우리 하나를 가리켰다.
“저쪽으로 가야 해.”
“……확실히 길 아는 거야?”
“어.”
나는 다시 앞장서서 길을 걸었다.
나를 돕기 위해 따라온 주민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산봉우리를 보고
는 낭패에 찬 표정이 되었다.
그렇게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몬 스터와 정령을 마주치는 상황이 잦 아졌다.
몬스터야 마법으로 쉽게 처치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정령이었다.
작은 정령을 상대로 ‘정령 실체화 술식’은 과분하기에 은검을 이용해 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간 강화계 능력을 키워왔 기에 놈들을 상대하는 게 그렇게 어 렵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여기야.”
우리는 끝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주변을 둘러보자 가상 세계에서 보 았던 설산의 대정령이 봉인된 그 장 소와 완전히 같았다.
“여기라고?”
나는 허리를 숙이고는 바닥에 쌓인 눈을 바람 마법을 이용해 쓸어 담았 다.
그 모습을 본 정민하가 놀란 목소 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뭐야. 빛 속성 마법사인 줄 알았는데.”
어느덧 바닥에 쌓인 눈을 전부 밀
어냈다.
동시에 외부자의 혜택이 발동되며 바닥에 숨겨져 있던 술식이 눈에 들 어왔다.
나와 함께 있던 주민들도 그 숨겨 진 술식을 발견한 듯 놀란 표정이 되었다.
“……저건 소환식인가?”
“봉인식 이에요.”
그렇게 대답하며 술식에 손올 대 마력을 주입했다.
우우웅!
술식에서 강한 빛이 뿜어지기 시작 했다.
동시에 소름 끼치는 마력이 크게 번지더니 이곳 공간 전체를 짓눌렀다.
그리고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봉인된 ‘설산의 대정령’이 풀려났 습니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