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8화 (447/535)

448화

김정희가 떠난 뒤 나는 유적지에 홀로 남아 벽화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여러 개의 별과 그 안에 복잡하게 그려진 술식…….

유적지가 마치 내게 무언가의 메시 지를 전하는 것 같지만 난해한 정보 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진천우가 외차원의 존재를 두려워 했다라……

진천우는 무엇을 걱정했던 것일까.

육체와 정신을 떼앗기는 것이 두렵 다니.

진천우는 빼앗기는 위치가 아니라 오히려 이서준의 육신을 노리는 ‘빼 앗는’ 위치가 아니었나?

아니, 애초에 진천우가 무언가를 두려워한다는 것 자체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원작에서 묘사된 진천우는 언제나 자신감 넘쳤으니까.

“……김창현.”

생각해보면 진천우가 두려워하는

것이 하나 더 있기는 했다.

그의 사도라고 할 수 있는 김창현 이었다.

“김창현…… 외차원의 존재……

이 두 가지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 는 걸까.

그때 문득 김창현이 전 세계를 돌 아다니며 찾던 술식들이 떠올랐다.

분명 차원과 관련된 술식들이었지.

그것을 보며 김창현이 다른 차원의 무언가를 불러오려는 게 아닐까 하 는 추측을 하기도 했었고.

“진천우가 두려워하는 것을 김창현

이 불러온다는 건가?”

그렇게 말하면 모든 게 설명되기는 하다.

진천우가 김창현이라는 이름을 들 었을 때 두려움을 느낀 이유.

김창현의 목적이 다른 차원의 존재 를 소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흐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아직 사라 지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진천우의 사도인 김창현은 어째서 진천우를 따르지 않는 것인가.

그리고 녀석이 추종하는 ‘그분’은

대체 누구인가.

진천우가 맞기는 하는 걸까?

……아니면.

진천우가 두려워하는 외차원의 존 재인 걸까.

바로 그때.

[미래에 미세한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

[인과율이 0.2 상승합니다.]

“뭐야?”

갑작스레 인과율이 상승했다.

인과율이 이유 없이 오르진 않았을 거고. 그 말은 즉.

“내 추리가 어느 정도 맞았다는 건 가?”

시간이 홀러 9월.

새해에 일어났던 ‘크루아스 강림’

사건 이후 서울은 찬란했던 예전의

모습을 완전히 되찾았다.

다른 지역으로 피난을 떠났던 시민

들도 다시 돌아와 정착했으며, 각종 기업과 길드 역시 본래의 자리를 되 찾으며 예전 수도의 모습으로 돌아 왔다.

마법사 협회는 서울의 안전을 위해 많은 인력과 돈을 투자했다.

그 결과 서울의 범죄율은 작년 대 비 눈에 띄게 하락했고 과거의 평화 를 완전히 되찾았다.

“큰 파도가 한번 지나가서 그런지 요즘은 평화롭네요.”

마법사 협회 최상층, 회장실.

최일현은 창밖의 서울 풍경을 내려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김진철은 의자에 앉은 채 제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작년과 비교하면 평화로워지기는 했지. 당장 매주 꾸준하게 일어났던 마인의 홉혈 사건도 올해를 기점으 로 거의 사라졌으니.”

서울에 생겨난 가장 큰 변화라면 바로 이것일 것이다.

마인 홉혈 사건의 감소.

아니, 감소한 수준이 아니라 이 정 도면 거의 사라진 수준이었다.

김선우가 죽은 지 얼마 안 된 1월 과 2월을 제외하면 3월부터 9월까 지 단 한 건의 흡혈 사건도 일어나

지 않았으니까.

“흐음. 그러고 보니 최근 마인과 관련된 뉴스를 못 보긴 했네요.”

최일현이 까칠까칠한 턱수염을 매 만지다가 뒤를 돌았다.

“근데 올해 마인 사건이 왜 사라진 겁니까? 놈들의 흡혈 충동이 갑자기 치료됐을 리는 없을 테고.”

“놈들의 말에 따르면 마력 전도석 과 블러드 크리스탈을 이용해 피의 공급에 성공했다고 하더군. 확실히 잠잠해진 걸 보면 성공하긴 한 모양 이야.”

“블러드 크리스탈과 마력 전도석의

활용이라…… 생각지도 못한 방법인 데.”

신비의 이해도가 높은 최일현 본인 도 생각지 못한 방법에 작게 감탄했다.

“어떤 마인인지는 몰라도 아이디어 가 좋네요.”

“김선우의 아이디어라더군.”

김선우라는 이름이 들리자 최일현 의 얼굴이 잠시 굳었다.

“……그보다. 영감은 그런 걸 어떻게 아는 겁니까?”

“뭐가 말이냐?”

“마인의 정보 말입니다. 저도 처음 듣는 이야기인 걸 보면 협회에서도 알려지지 않은 것 같은데.”

“하령이라는 마인의 새 리더가 나 를 찾아와 알려줬다. 전대 왕의 의 지를 따라 앞으로 인간을 공격할 일 은 거의 없을 거라 하더군.”

김진철은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헛웃음을 홀렸다.

다시 생각해도 황당한 일이었다.

모든 마인이 두려워하는 자신을 스 스로 찾아오다니.

“그럼 하령이라는 마인이 4대 왕이 된 겁니까?”

최일현의 물음에 김진철은 고개를 저었다.

“왕의 권능이 계승되지 않았으니 왕의 자리는 공석으로 비워둘 것이 라 했다. 왕은 아닌 셈이지.”

“.…”흐음.”

최일현은 갑작스러운 의문이 생겼 다.

김선우는 분명 죽었을 텐데 왕의 권능은 어째서 계승되지 않을 걸까.

김선우의 육체가 허공에 빨려 들어 갔다고는 하나 ‘특성’은 실체 하지 않은 신비로운 힘.

결국 공간에 불과한 허공이, 계승 을 막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 영감.”

“나도 알고 있다. 계승이 이루어지 지 않은 게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 는 건.”

김진철의 말은 단호했다.

그 역시 오래전부터 이 것에 많은 의구심을 느끼고 있었다는 중거였다.

최일현은 깊은 생각에 잠기다 무겁 게 입을 열었다.

“영감은 김선우가 살아있을 가능성

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살아있을 가능성이라.”

멍하니 중얼거린 김진철이 말을 이 었다.

“녀석이라면 가능할지도.”

[오! 사! 삼! 이! 일!]

[2035년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근 10년간 역대 최저 범죄율을 기 록했던 평화의 해, 2034년이 순식간 에 지나고 2035년의 새해가 밝았다.

뉴스에서는 인간과 마인의 공존 가 능성에 대해 떠들었으며, 잠시 후 올해 새롭게 데뷔할 신인 마법사들 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2035년의 최고 기대주라고 한다 면 역시 특무팀에 합격한 최서윤이 죠.]

[네, 지난 1년간 엄청난 성장력을 보여줬습니다. 러시아 최대 유망주 이자 라이벌이었던 다리아를 상대로

압도적인 격차로 승리하는 모습은 정말 충격적이었죠.]

[독기가 생기더니 눈에 띄게 무서 워졌다…… 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 인데 저도 이 의견에 어느 정도 공 감이一]

삑.

한참 시끄럽게 떠들던 티비가 꺼지 고 최서윤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창밖을 내려보자 어두워진 밤하늘 사이에서 흰 눈이 내리고 있었다.

최서윤은 그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 다가 졸업 기념으로 얻은 스마트 폰

을 켰다.

동시에 수많은 메시지가 주르륵 떠 올랐다.

[서윤아! 새해 복 많이 받아!]

[신의 길드장 임성희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혹시 시간 되시면 연락 한번 주세요스 ~1

최서윤은 떠오른 메시지들을 치우 고는 즐겨찾기로 설정해 놓은 단톡

방을 확인했다.

예상대로 이곳에도 많은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윤하영 : 새해 복 많이 받아! 그 리고 서윤아 늦었지만 졸업 축하해. 졸업식 꼭 가고 싶었는데 정말 미안 해.]

[신영준 : 이야. 너도 이제 성인이 네? 특무팀 합격했다며? 곧 같이 활동하겠네]

[이서준 : 서윤아 졸업식 못 가서 미안하다.]

최서윤은 메시지를 찬찬히 읽어보 며 씁쓸한 미소를 짓다가 답장을 입 력했다.

[저는 괜찮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선배님들은 남극 생활 어때 요? 힘들지 않아요?]

이내 답장이 왔다.

[신영준 : 죽을 거 같음거게

[윤하영 : 반년 동안 유적지만 열

군데 이상 다닌 거 같아tttt]

[이서준 : 우리 날짜 맞춰서 곧 한 국 올 거야. 아마 늦지는 않을 거 야.]

메시지를 확인한 최서윤은 침대 옆 의 탁자로 시선을 돌렸다.

2년 전 선배들과 함께 찍은 사진 액자 옆에 2035년 1월 달력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날짜에 작은 메모가 하나 적혀 있었다.

[선배님 1주기]

최서윤은 말없이 달력을 바라보다 가 메시지를 입력했다.

[넵. 그럼 기다릴게요.]

소규모로 진행되었던 김선우 1주기 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4월의 따뜻

한 봄이 찾아왔다.

김선우 1주기를 위해 귀국했던 이서준과 그의 동기들은 진천우 수사 를 위해 다시 남극으로 돌아갔고, 신입 요원으로 입사한 최서윤은 협 회에 남아 여러 임무를 맡기 시작했다.

“수고했다. 신입.”

“잘하네. 괜히 유망주 소리 듣는 게 아니라니까.”

최서윤은 신인답지 않은 활약을 보 이며 협회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져 갔다.

아직 수습 신분에 불과했지만, 그

실적은 정식 요원들에게 밀리지 않 을 정도였고 이 때문에 기존 요원들 에게도 긍정적인 긴장감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약 3개월간 이어졌던 그녀의 수습 기간의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3개월간 수습으로 구르느라 수고 많았다. 최근 본 신인 중에 네가 최 고였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진 심이야.”

“감사합니다.”

특무 5팀의 신임 팀장, 김문태의 칭찬에 최서윤이 고개를 숙였다.

수습 기간이 끝나고 자신이 몸담았 던 팀에서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 에 그녀는 작은 아쉬움을 느꼈다.

김문태는 그런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내가 왜 불렀는지는 알고 있지?”

“……넵.”

“그래. 네 첫 근무지. 발령 났다.”

그 말에 최서윤의 두 눈에 작은 긴장감이 서렸다.

김문태는 그런 그녀의 눈을 빤히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네가 열심히 한 만큼 위쪽에서도

네 의견을 많이 들어주셨다. 나로서 는 같이 일하게 되지 못해서 아쉽지 만. 뭐, 아무튼 축하한다.”

“……그 말은?”

최서윤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김 문태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출국해야 하니 당장 짐 싸. 날씨 추우니까 패딩 많이 챙기고.”

“가,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최서윤은 오랜만에 기쁜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위쪽에서 자신의 의견을 들어주었 다는 것.

김선우의 죽음과 관련된 것을 수사 하는 팀. 그리고 그녀가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진천우 특별 수사팀’에 합류하게 됐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열심히 하겠다며 인사하는 그녀를 보며 김문태는 어 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다른 팀으로 가는 게 그렇게 기쁘 냐? 그리고 열심히 하겠다는 말은 그쪽 가서 해라.”

경계에 정착하고, 어느덧 1년 반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생자의 세계에서는 2035년 여름이 지나 가을이 왔을 시간…….

현실 귀환까지 약 3개월 정도의 시간이 남게 되었다.

처음 경계에서 2년의 세월을 보내 야 한다고 들었을 땐 마치 입대라도 한 것처럼 시간이 흐르지 않았었는 데.

그래도 시간은 흐르긴 하는 구나.

“……후우.”

어찌 됐든 나는 1년 반이 넘는 시

간 동안 김정희에게 꾸준한 가르침 을 받으며 각종 마법 능력에서 큰 성장을 이뤄냈다.

보조계의 성장 속도는 폭발적이었 고, [가면극]을 이용해 이서준의 비 전 검법인 백천 검법과 내 주특기인 발현계 마법을 꾸준히 연습했다.

그 결과.

[술식 이해력의 숙련도가 크게 상 승합니다.]

[원반격, 마력의 폭우, 룬의 속박을 더욱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됩 니다.]

[술식 이해력(A)][숙련도 : 83%]

[검의 이해가 상승합니다.]

[백천 검법(B)][숙련도 : 47%]

[다양한 경험으로 마력 제어술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마력 제어술(S)][숙련도 : 32%]

다양한 기본 능력에서 큰 성장을 이뤘다.

술식 이해력의 숙련도는 83%까지

오르며 S 등급까지 17%밖에 남지 않게 되었고, 그것 외에도 다양한 마법을 익히며 큰 성장을 이뤘다.

“……확실히 훈련에만 집중하니까 성장이 더 잘되는 느낌이긴 하네.”

만약 원작의 스토리에 계속 개입했 더라면 이 정도의 성장을 이뤄내지 못했겠지.

그리고 오늘 역시 내 훈련을 봐주 던 김정희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 곤 말했다.

“결국 그걸 완성시켰군. 그럼 슬슬 준비할 생각인가?”

“그렇죠.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고.”

그렇게 대답하며 방금 완성하며 눈 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확인했다.

[‘정령 실체화 술식’을 완벽히 습득 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오늘, 나는 정령 실체화 술식을 완 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성배의 재료인 근원의 씨앗을 얻기 위해, 경계의 대정령을 토벌할 것이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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