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5화 (444/535)

445화

2주 전.

김정희가 S+의 마력 등급을 가지 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나는 ‘설산의 대정령’ 토벌을 위해 그에 게 조언을 구했었다.

당시 내 이야기를 들은 그는 크게 놀란 반웅을 보였다.

경계의 세계에 떨어진 지 하루도 되지 않은 인간이 그런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게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

으니까.

하지만 평정심을 찾은 그는 이내 설산의 대정령을 토벌하는 건 불가 능에 가깝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이유는 단순했다.

정령은 실체 하지 않은 영적 존재.

정령에게는 마법이 통하지 않기 때 문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정령 실체화 술 식]이라는 방법이 있었고, 조언을 얻기 위해 술식의 형태를 보여주었 었다.

……그리고 2주가 지난 지금.

김정희는 내 앞에서 [정령 실체화 술식]을 완벽하게 다루고 있었다.

아직 나조차도 제대로 습득하지 못 한 그 술식을.

아니, 저건 술식을 습득한 수준이 아니라 단점까지 보완해 완성도를 더 끌어 올린 상태였다.

“……어떻게 2주 만에.”

“범용성을 높이다 보니 술식에 쓸 데없는 정보가 많더군. 설산 대정령 의 토벌이라는 목적에 맞게 필요 없는 정보를 덜어내어 발동 시간을 단 축시 켰네.”

“……그걸 2주 만에 이뤄냈다는 겁

니까?”

“뭐, 운이 좋았지.”

마치 별거 아니라는 듯한 말투였지 만 나는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다른 술식도 아니고 고대 술식을 자신의 입맛대로 수정한다는 건 말 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놀라운 술식 발동 현장을 보며 작 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당신의 술식 이해력(B)의 숙련도 가 크게 상숭합니다!]

나는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멍하 니 바라보다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대체 누굽니까?”

이 정도의 술식 이해력을 가진 자 라면 생전에도 이름을 날렸을 것이 분명하다.

스으으..

그때 김정희의 앞에 구현되었던 정 령 실체화 술식이 소멸되었다.

그는 멍하니 술식이 사라진 땅바닥 을 내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전에 말하지 않았나? 김정희라 고.”

“생전의 이명을 묻는 겁니다.”

“이명이라……

김정희가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는 옛 생각에 젖은 듯 하늘 을 올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생전에 많은 이명으로 불렸었지. 그중 가장 많이 불렸던 이명은 ‘술 식 설계자’였네.”

“술식 설계자?”

이명을 듣자마자 나는 화들짝 놀랐다.

잘 알고 있던 이명이었다.

술식 설계에 독보적인 능력을 가져

붙여진 특별한 이명.

김진철과 동시대에 활동했으며, 마법사관학교 교과서에 실릴 만큼 보 조계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마법사였다.

거기다 ‘교육자’라는 특성이 있어 정윤슬과 같은 뛰어난 보조계 마법사들을 배출하기도 했고.

참고로 그의 이명은 원작에서도 진 천우가 연구했던 인물 중 하나로 짧 게 언급되어있었다.

“나를 알고 있는 모양이군.”

“설계자를 모르는 사람이 더 드물 겁니다. 위대한 마법사 중 하나로

불리니까요.”

“위대한 마법사라.”

김정희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과거의 일이지. 지금은 죽어서 이 곳에 있지 않은가.”

눈앞의 사람이 생각했던 것 이상의 거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수많은 의문이 떠올랐다.

이 정도 능력이 있는 사람이 어쩌 다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

술식 설계자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 로 행방이 묘연해졌다 들었는데.

“……저, 설계자님?”

“그냥 촌장이라 부르게.”

“……촌장님. 경계의 세계는 어쩌 다 오게 되신 겁니까?”

김정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 을 열었다.

“술식에 대해 깊이 연구하다 보면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의문 에 봉착하는 순간이 오네.”

김정희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속에 어떤 감정이 숨겨져 있었다.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나는 술식 연구자이자 탐구자로서

눈앞에 생겨난 거대한 의문을 풀어 내려 했네. 매일 술식을 들여다보고 연구하고. 심지어 신비와 거래도 했 지. 그러던 어느 날 문제가 생겼네.”

문제?

김정희가 잠시 뜸을 들이고는 입을 열었다.

“세계의 이면에 숨겨진 심연을 발 견하게 된 것이지.”

세계의 이면.

나는 그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눈치 챘다.

“세계의 법칙이군요.”

순간 김정희의 두 눈에 작은 놀라 움이 담겼다.

“자네. 어떻게 그걸?”

“……저 역시 비슷한 것을 쫓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뭐라 설명해야 할지 애매해 대충 지어내서 말했다.

그는 신기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도 자격을 지니고 있는 것 같 으니 이야기가 빠르겠군. 자네 말대 로 나는 세계에 숨겨진 법칙을 발견 했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결정되어 있고, 인간은 기계 속에 굴러가는

톱니바퀴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그의 목소리가 작게 떨려왔다.

“그것을 알게 된 나는 좌절을 겪으 면서도 고민에 빠졌네. 인간에게 자 유의지가 없다면, 인간의 존재 가치 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오랜 시간 끝에 답을 찾았 지. 인간에게 존재 가치가 없다면, 그것을 찾기 위해 투쟁하기로.”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이야기는 진천우와 흡사한 면이 있었다.

진천우 역시 신비를 연구하는 과정

에서 세계의 이면을 보게 되었고, 그 목적이 어떻든 자유를 얻기 위해 나를 소환한 것 같았으니까.

그때 김정희가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세계를 바꾸겠다는 것은 인간의 오만함이 만든 생각이었네. 한낱 인간의 몸으로는 애초에 불가 능한 일이었지. 그 결과 나는 세계 를 거역한 죄로 벌을 받았고 죽음을 맞이하여 경계의 세계에 떨어지게 됐네.”

설마 그런 이유였을 줄이야.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자 역시 진천우와 비슷한 성향 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리고 뒤늦게 깨달았다.

원작 속 진천우가 왜 이 자를 연 구했던 것인지. 김정희는 진천우와 같은 목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 었다.

“그나저나 자네에 대해 궁금증이 느껴지는군.”

갑작스러운 김정희의 말에 나는 그 를 바라보았다.

그는 호기심에 찬 눈으로 나를 바 라보고 있었다.

“자네는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말 이지. 설산의 대정령을 토벌하겠다 는 것도 그렇고. 평범한 청년이 할 생각은 아니니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김정희는 한 분야의 정점에 이른 마법사.

어떻게 보면 기회라고 할 수 있었다.

위대한 마법사 중 하나를 나의 편 에 끌어들일 절호의 기회.

나는 답을 내렸다.

[잠재 개성 ‘과몰입’을 발동합니다.]

“저 역시 당신과 같은 목표를 쫓고 있습니다.”

갑작스레 달라진 분위기에 김정희 가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과몰입’으로 만들어진 진심 을 담아 또박또박 말했다.

“인간의 가치를 찾는 것.”

사실은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게 목표지만.

“도움이 필요합니다.”

어쨌든 그의 도움이 필요했다.

내 진심(?)을 확인한 김정희는 자 신의 못다 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나를 돕기로 결정했다.

나에게 보완된 [정령 실체화 술식] 을 전수했으며, ‘교육자’ 특성을 지 닌 자답게 그의 술식 전수 능력은 엄청났다.

복잡한 고대 술식임에도 어떤 원리

를 이용해야 술식을 빠르게 발동할 수 있는지를 순식간에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수준 높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술식 이해력(B)’의 숙련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고대에 존재했던 위대한 술식의 일부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술식 이해력(B)’의 등급이 A로 상승합니다!]

[모든 술식의 구현 시간과 정확도

가 20% 탤라집니다.]

[인과율이 0.3 상승합니다.]

[‘급진적 술식의 깨달음’ 업적을 달 성했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오.”

……그렇게 다시 2주의 시간이 흐 르고.

매일 수준 높은 가르침을 받은 덕 일까. [술식 이해력]이 어느덧 A등

급에 오르게 되었다.

처음 술식 이해력을 습득한 것이 1년 전인 것을 생각하면 외부자의 혜택 덕을 본 것을 감안해도 상당히 빠른 속도였다.

웬만한 천재라 불리는 보조계 마법사들도 A둥급을 달성하는데 보통 4 년에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니까.

“……자네. 보조계에 상당한 재능 이 있군.”

그리고 [정령 실체화 술식]을 전수 하던 김정희도 그것을 느꼈는지 당 혹감에 찬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아니, 상당한 수준이 아니지. 자네

만큼 술식 습득 능력이 뛰어난 자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어.”

나를 바라보는 김정희의 두 눈에는 깊은 혼란이 있었다. 나는 그 반응 을 보며 장난스레 웃었다.

“너무 띄어주지 않아 주셔도 됩니다.”

“진심이네. 나를 거쳐 간 제자가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자네는 천부 적 재능을 지니고 있어.”

천부적 재능이 있다고?

그 말에 문득 마법사관학교 초창기 의 일이 떠올랐다.

보조계에 재능이 있다면서 여기저

기서 주특기를 바꾸라는 권유를 엄 청나게 받았었는데.

나는 그것이, 외부자의 혜택이 가 진 사기적인 술식 해석 능력을 착각 해서 생긴 일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었고.

그런데 이번에는 외부자의 혜택 덕 을 거의 보지도 못했는데…….

“흐음.”

생각해보면 ‘술식 이해력’은 투자 한 것에 비해 성장하는 속도가 빠른 감이 없잖아 있기는 했다.

‘순간 가속’ 덕을 보기는 했지만 김진철이 평생을 고안해 만든 [원반

격]도 순식간에 익히기도 했으니까.

……나 진짜 보조계에 재능이 있 나?

“……오랜만에 욕심이 생기는군.”

그때 들려오는 말에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나를 향한 김정희의 두 눈에 투지 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자네 혹시 진지하게 보조계 마법 을 배워볼 생각 없나?”

……시간은 다시 빠르게 홀러. 약 한 달의 시간이 지나갔다.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김선우의 죽음’도 서서히 잊혀가고 이를 증명하듯 새로 피어난 꽃과 함 께 따뜻한 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 많은 일이 있었다.

우선 이서준을 포함한 그의 동료들 은 김창현과 진천우. 그리고 ‘흔돈’ 의 혼적을 쫓는 특별 수사팀에 들어 가게 되었다.

입사 한두 달이 겨우 지난 신입에 게는 버거운 임무였지만 이들이 김 선우와 가까운 사이였던 점도 있고,

또 회장의 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 이었다.

“모두 모였나?”

마법사 협회 47층의 작은 사무실.

[진천우 특별 수사팀]이라는 명패 가 달린 공간에 약 20명의 요원이 모였다.

이들 대부분이 협회의 최고 전력이 라 할 수 있는 특무팀과 정보팀의 실력자들이었으며 신입 이서준의 친 구들도 함께 있었다.

“그럼 첫 회의를 시작하겠다. 먼저 이 팀의 존재 의의는 다들 알고 있 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는 ‘진천우

특별 수사팀’이라는 이름답게 진천 우와 관련된 모든 것을 추적할 것이다. 아. 그리고 이 수사는 전 세계의 마법사 협회와 협동으로 진행하 는 임무니 알아두도록.”

김덕현의 말에 실내의 모두가 진지 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김덕현은 요원들의 얼굴을 살피다 가 정현수에게 슬쩍 시선을 돌렸다.

정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요원 들에게 서류를 하나씩 나눠주었다.

이서준은 멍하니 서류를 살폈다.

[김창현 이동 경로]

“정보팀에서 조사한 김창현이 1년 동안 움직인 경로다. 너희도 알다시 피 김창현은 진천우와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찾아내야 할 녀 석이다.”

“……와. 이 많은 걸 어떻게 조사 했대?”

서류를 살피던 신영준이 놀란 목소 리로 중얼거렸다.

이서준 역시 서류의 내용을 살피며 조금 놀란 기분이 들었다.

전 세계의 CCTV를 통해 찍혀있는 김창현의 수많은 사진.

이 정도 추적 능력이라면 김창현을 금방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협회 최고의 술식 전문가 중 하나로 알려진 금발의 요원, ‘임현 아’가 말했다.

“김창현의 이동 루트 대부분이 유 적지네요?”

“그렇다. 녀석이 이동했던 루트를 그대로 따라가 녀석의 목적이 무엇 인지를 먼저 파악할 예정이다.”

“목적 파악이라......

그리고 구석의 안경을 쓴 정보팀 요원이 말했다.

“유적지 위주로 이동한 건 녀석이 신비를 노리고 있다는 건데. 그럼 녀석의 목적은 진천우의 부활이 아 닐까요?”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진천우의 부활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건 자운 일 가능성이 높다.”

김덕현의 말에 요원들 사이에서 놀 란 반응이 터져 나왔다.

“자운과 김창현의 목적이 다르다는 겁니까?”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게 위 쪽의 의견이다.”

이서준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서류 의 첫 장을 살펴보았다.

마법사관학교 졸업 후 김창현이 처 음 모습을 드러낸 장소는 이집트의 사하라 사막이었다.

“서류에 나와 있듯 김창현의 첫 이 동 장소는 이집트였다. 그런 이유로 우리의 첫 이동 목적지 역시 이집트 가 될 것이다.”

“아으, 해외 출장이네.”

바로 그때.

우우웅!

모든 요원의 스마트폰에서 알람이

터져 나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요원들은 당황 한 반응을 보였다.

“무슨 일이지?”

“……사건이라도 터진 건가?”

이 알람은 외부에 위험한 사건이 터졌을 때 나오는 경고음이었다.

이서준은 작은 불안감을 느끼며 스 마트폰을 확인했다.

[현 시각 프랑스 파리 VIP 경매장 에서 테러 사건 발생]

[방천화극으로 추정되는 창 발견]

[자운의 범행으로 추정 중]

“......자운.”

이서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한동안 잠잠했던 그들이 다시 움직 이기 시작했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