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4화
김선우의 발인을 마치고 이서준 일 행은 각자 홀어졌다.
최서윤과 윤하영, 신영준은 본가로 이동했으며 유아라는 유아연과 함께 차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현주는 이서준과 함께 공원 벤치 에 남아 그의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그녀는 슬픔에 잠긴 이서준올 위로 해주었고,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그 녀도 본가로 돌아갔다.
이서준은 김선우의 묘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는 국립묘지 밖으로 나왔다.
“왔느냐.”
이서준이 정문으로 돌아오자 그의 유일한 가족인 김진철이 그를 반겼 다.
그와 함께 돌아가기 위해 오랜 시 간 기다린 것이었다.
이서준은 그런 김진철을 바라보며 미안함과 동시에 고마움을 느꼈다.
“죄송해요. 오래 기다리셨어요?”
“괜찮다. 소중한 사람과의 마지막
인사인데 마무리는 확실하게 지어야 지.”
그렇게 중얼거리던 김진철은 이서준의 얼굴을 살폈다.
언제나 활력이 넘치던 제자였지만 오늘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수척했다.
“서준아. 네가 마법사의 길을 선택 한 이상 이런 일을 다시 겪게 될지 도 모른다.”
이서준은 입술을 다물었다.
이런 일올 다시 겪게 될지도 모른 다니.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마법사란 세계의 안전을 위해 헌 신하는 자들.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고, 김선우처럼 희생을 강요받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김진철은 이서준의 어깨에 손을 얹 었다.
“마법사가 강해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너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네 주변 사람을 지 키기 위해서.”
맞는 말이다.
만약 우리가. 아니, 내가 더 강했 더라면 김선우가 이렇게 희생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서준이 네가 정말 마법사의 길을 걷고자 하면 이번 일을 절대 잊어서 는 안 된다. 평생 가슴 속에 품고 더 강해져야 한다.”
뼈와 살이 되는 충고. 이서준은 작 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할아버지.”
“......그래.”
김진철은 쓴웃음을 짓다가 장난스 레 이서준의 머리를 마구잡이로 헝 클였다.
“그리고 슬픈 일이 있으면 시원하 게 펑펑 울어! 꾸역꾸역 참으면 네 속만 썩는다!”
아, 할아버지!”
김진철의 장난기 섞인 행동에 이서준은 발버둥 쳐서 겨우 빠져나왔다.
바보처럼 헝클어진 머리.
이서준은 자신의 머리를 정리하다 가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잠시 뒤 그의 어깨가 작게 떨려왔다.
“……쯧. 이리 와라.”
김진철은 이서준을 끌어안았다. 이서준은 그 품에 안겨 지금까지 참아 왔던 눈물을 터트렸다.
그로부터 다시 일주일 뒤.
'뉴스입니다. 세계 마법사 협회에서 마법사관학교 출신으로 알려진 김창현에 대한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협회에서는 서울에 일어난 재앙 급 마수 습격 사건의 용의자로 김창 현을 지목했으며, 김선우를 통해 알 려진 ‘혼돈’에 대한 의혹과도 밀접
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
다.」
'또한 김창현이 과거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든 테러리스트, ‘진 천우’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는 사 실이 다시 재조명되며 시민들의 불 안이 한충 커지고 있습니다.J
서울 외곽의 작은 사무실.
백은성은 뉴스를 보며 고개를 갸웃 거리고 있었다.
“근데 김창현 쟤는 진짜 정체가 뭐 냐?”
“모르지. 알려진 바로는 그분의 실 험체인 거 같은데. 영 혼적을 남기 지 않으니……
진이 턱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김창현에 대한 여러 폭로가 이어지 면서 자운 역시 사실 여부를 파악하 기 위해 그의 흔적을 쫓았지만 조그 마한 단서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이상한 놈이기는 한데. 김선우랑 자꾸 엮이는 거 보면 뭔가 있는 녀 석은 분명하긴 해.”
“그분이 생전에 재앙급 마수를 계 속 신경 쓰셨잖아. 그거랑 관련 있 는 거 아닌가?”
나타샤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 였다.
크게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분’, 진천우는 오래전부터 재앙급 마수를 경계했었다.
그리고 그들을 효과적으로 토벌하 기 위한 방법도 연구했었고.
만약 협회의 예상대로 재앙급 마수 배후에 김창현이 있다면, ‘크루아스 토벌’이라는 상황이 ‘그분’의 계획일 수도 있었다.
“근데 그 녀석, 우리 편인 건 맞긴 한가?”
자운은 그것을 확신할 수 없었다.
만약 녀석이 ‘그분’의 의지에 따라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라면 같 은 팀이 분명할 터…….
하지만 김창현은 자운에게 접촉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피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때 백은성이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렸다.
“흠흠. 소신 발언하자면, 난 김창현 그 녀석 마음에 안 들어.”
“왜? 걔가 협회의 관심을 끌어줘서 눈치 안 보고 자유로워져서 좋던 데.”
그렇게 중얼거리던 진이 이내 눈을
가늘게 떴다.
“너 설마 김선우 죽은 것 때문에 그러냐?”
“……어, 음. 그런 면도 있기도 하 고. 뭔가 아쉽게 됐다고 할까.”
“쯧쯧. 김선우한테 당한 거 다 잊 었네.”
“아니, 아니.”
백은성이 다급하게 손을 저었다.
“그 녀석, 내 손으로 직접 죽이고 싶었단 말이야. 이 왼팔로 말이야.”
의수로 만들어진 백은성의 왼팔이 작게 떨려왔다.
김선우에 의해 신체 일부를 잃었던 그였기에 나름 합리적(?)인 이유였다.
“복수 기회가 사라진 건 아쉽긴 하 지.”
진은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더 니 베르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이 기회에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일지의 단서는 나 오지도 않고 있고.”
“그러게.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쉬 고 있냐?”
그러자 베르트가 말했다.
“불만 품을 필요 없어. 이제 곧 다 시 활동하게 될 거니까.”
“오. 그래?”
“두 달 뒤 파리에서 경매가 열릴 거야.”
베르트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파리 은행 협회장이 주최하는 VIP 경매지. 덕분에 꽤 많은 사람이 모일 거야.”
경매라는 말에 자운 일행들의 표정 이 한충 진지해졌다.
은행 협회장이 주최하는 VIP 경매.
보안을 위해 엄청난 수의 마법사가
몰려들 것이다.
“목표는?”
베르트는 자신의 앞에 놓여진 홀로 그램 생성기에 손을 휘둘렀다.
잠시 후 홀로그램에서 붉은빛이 감 도는 나무 장작이 하나 떠올랐다.
“이 물건의 이름은 신목혈. 신목의 피라고 알려진 유물이야.”
“신목혈? 처음 들어보는데. 어디에 쓰는 물건이야?”
“생명의 잔을 대신해 ‘그릇’ 역할 을 해줄 거야. 그분께서 임시로 사 용할 ‘육체’이지.”
그분의 육체 역할을 한다라…….
그분의 영혼을 습득했지만, 육체 역할을 해줄 유물이 없어 문제가 많 았는데 간신히 찾아낼 수 있었다.
이것으로 우리의 소망이 한 발짝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좋네. 두달 뒤 후딱 해치우자고.”
“오케이.”
일행들의 한마음이 모으고. 그때 그들의 앞에 놓인 티비에서 다시 목 소리가 들려왔다.
「……김창현의 수사팀에는 김선우
의 절친한 친우로 알려진 이서준이 합류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 경계에서 이 주일 의 시간이 흘렀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 만 그사이 많은 일을 겪었다.
먼저 마을을 습격하는 정령과 경계 의 포식자를 처치하기 위해 쉴 틈 없이 전투를 치러야 했다.
경계의 포식자는 마법으로 쉽게 처
치할 수 있었지만, 정령의 경우에는 은으로 된 무기가 아니면 통하지 않 았기에 어쩔 수 없이 ‘가면극’을 사 용해서 처치해야 했다.
[‘이서준’의 동화율은 13%입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가면극’에 대한 몇 가지 비밀을 알아냈다.
우선 가면극은 내가 연기하려는 대 상의 이해도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 이었다.
정령을 더 효율적으로 처치하기 위 해 내가 아는 가장 강한 강화계 마
법사인 ‘검귀’를 연기해 보았지만, 그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제대로 힘 을 쓰지도 못했다.
[대상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습니다.]
[‘장수기’의 동화율이 0.2% 상승합니다.]
결국 검귀를 연기하여 정령을 상대 하는 것을 포기하게 되었다.
검귀가 아무리 강한 마법사라고 한 들, 그의 힘을 제대로 빌리지 못하 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른 등장인물의 이해도도 확인했다.
유아라, 최서윤, 신영준, 윤하영 둥
가까이 지낸 시간이 긴 만큼 이들 의 이해도는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 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이서준’과 비교 하자면 많이 낮은 편이라 할 수 있었다.
그 말은 즉, 나는 ‘이서준’에 대한 이해력이 압도적이라는 것이었다.
아마 ‘현대 마법사’를 읽으면서 ‘이
서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게 아닐까 싶다.
물론 다른 인물의 묘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주인공보다 비중이 높을 순 없으니까.
어찌 됐든 어쩔 수 없이 나는 경 계에서 이서준의 인격을 빌려 많은 전투를 치렀다.
그 결과.
[검을 이용하여 커다란 승리를 하 였습니다.]
[적응형 특성 ‘기초 검술(E)’의 등 급이 상승합니다!]
[당신의 육신이 검술에 적응합니다.]
[적응형 특성 ‘백천 검법(E)’을 획 득합니다.]
내 뜻과 다르게 검과 관련된 특성 이 나날이 성장하는 중이다.
기초 검술은 E에서 D를 넘어 仁등 급이 되었으며, 이서준이 익히고 있 는 수많은 비전 검법 중 하나인 ‘백 천 검법’도 얻을 수 있었다.
[백천 검법(E)][숙련도 : 62%]
분류 : 특성
설명 : 빛 속성 강화계 마법사를 위해 마법사, ‘백천’이 고안한 검법.
[지속 효과]
►검법
백천 검법의 기초를 사용할 수 있 게 됩니다.
►빛의 감웅
빛 속성 제어술이 15% 상승합니다.
빛 속성 사용 시 모든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체력과 근력이 5 상승합니다.
“……흐음. 근데 이걸 실전에서 쓸 수 있으려나.”
경계의 세계 남서쪽의 마을.
나는 새롭게 얻은 특성들을 실펴보 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쩌다 보니 특성을 얻기는 했는데 등급이 낮아 이걸 써먹을지 말지 고 민이 되었다.
“……버리기에는 아깝고.”
백천 검법은 이서준이 익히고 있는 수많은 검법 중 상급의 검법에 속한다.
특히 빛 속성과 관련한 검법 중에서는 거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었다.
비록 내가 발현계 마법사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검법 하나쯤은 익혀도 좋을 거 같기는 한데.
그렇게 방 안에서 특성을 살펴보는 데 문이 벌컥 열렸다.
“야! 김선우! 촌장님이 불러!”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정민하였다.
경계에서 처음으로 친구가 생겼다 며 자주 나를 귀찮게 하는데, 이 주 일의 생활을 거치며 내가 ‘이서준’ 이 아닌 ‘김선우’라는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내가 직접 알려줬다.
2년이라는 세월을 이곳에서 지낼지 도 모르기에 언제까지 속일 수도 없는 거고, 또 마을의 촌장이 ‘이서준’ 에 대한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의심 이 들어서였다.
물론 그는 내게 아무런 정보를 주 지 않았다.
차근차근 조사할 생각이기는 한데 가진 능력도 그렇고, 여러 가지 미 스테리한 사람이다.
“촌장님이 날 왜 불러?”
“모르지. 중요한 일이라고 이것저 것 일을 벌이신 거 같긴 하던데.”
“……일을 벌였다고?”
그녀의 말에 나는 곧바로 문을 열 고 촌장실로 향했다.
마을 주민들이 반갑게 내게 인사를 건네고 나는 고개를 숙이며 길을 걸 었다.
“왔나?”
촌장, 김정희가 나를 반겼다.
그가 서 있는 바닥 밑에는 복잡한 술식이 크게 그려져 있었으며, 외부 자의 혜택을 통해 곧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정령 실체화 술식?”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네가 알려준 것을 조금 변형해본걸세.”
김정희는 마력을 사용하여 술식을 발동했다.
서서히 빛이 뿜어지고, 술식이 움 직이기 시작했다.
이내 술식의 움직임이 빠르게 굴러
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보며 당황했다.
정령 실체화 술식은 고대 술식 중 하나로 매우 고난도의 술식으로 알 려져 있다.
그런데 그걸 변형했다고?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