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3화
가면극이 발동된 내 육체는 순식간 에 거대 정령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정령은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내게 주먹을 내질렀고, 나는 그 타이밍에 맞춰 능력을 발동했다.
[사용 효과, ‘광속화’를 발동합니다.]
우우우웅!
빛의 마력이 내 몸을 휘감으며 엄 청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광속화.
이서준의 비전 마법 중 하나로 빛 속성 마력을 이용해 신체 능력을 증 폭시키는 기술이었다.
동시에 [순간 가속]을 사용한 것처 럼 괴인의 움직임이 느리게 보였고 나는 이서준의 다음 능력을 발동했다.
[특성 ‘백천검법’이 발동됩니다.]
번쩍!
검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나를 향하 던 정령의 주먹이 그대로 절단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짧은 순간, 내 손에 쥐어진 은검이 녀석의 팔을 잘 라낸 것이다.
[연기하는 대상의 고난도 능력을 성공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
[당신의 자아가 미미하게 흔들립니다.]
[적응형 특성, ‘기초 검술(E)’을 획
득합니다.]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무시하고 는 다음 능력을 발동했다.
[사용 효과 ‘백천극섬’을 발동합니다.]
동시에 내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졌다.
신체의 중심이 검을 쥔 두 손으로 이동했고, 강한 빛의 마력이 검에서 뿜어지기 시작했다.
“……흡!”
사각!
휘둘러진 검의 잔상이 가로로 길게 번쩍였다.
내 몸을 중심으로 거대한 파동이 크게 번지고 괴인의 몸 중앙에 새하 얀 빛과 함께 피가 터지둣 정령의 마력이 하늘 위로 피어올랐다.
크어…….
정령은 서서히 소멸되었다.
승리를 확신한 나는 가만히 서서 녀석을 올려보았다.
[‘정령 처치’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검을 이용한 승리’ 업적을 달성했 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우, 우와!”
내 뒤에서 놀라움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자 검은 머리의
여성이 눈을 빛내며 내게 다가왔다.
“발현계 마법사인 줄 알았는데 강 화계 마법사셨네요? 대박!”
요리조리 내 몸을 훑어보던 그녀가 다시 말했다.
“혹시 아는 사람인가?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그 질문에 나는 자연스레 대답했다.
“이서준입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대답해놓고 는 순간 이상함을 느꼈다.
……내 이름이 이서준이었나?
여러 의문이 내 머릿속을 스치며 잠시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두통이 찾아왔다.
“읏.…
[진화된 잠재 개성, ‘가면극’을 종 료합니다.]
[‘이서준’의 이해도가 매우 높아 완 벽하게 연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서준’의 동화율이 8% 상승합니다.]
[동화율이 상승할수록 대상의 능력
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대신 자아를 잃을 위험이 커집니다.]
“뭐야.”
순간 나도 모르게 자신을 ‘이서준’ 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내 이름을 묻지 않았 더라면 그 이변을 눈치채지 못했을 지 모를 만큼.
이거 생각보다 위험한 능력인 거 같은데.
“……이서준?”
그때 검은 머리의 여성이 멍한 눈 으로 중얼거렸다.
“어? 저 알아요! 이서준!”
으..2”
뜬금없는 여성의 말에 나는 그녀를 돌아봤다.
마치 연예인올 발견한 듯 팔짝팔짝 뛰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살아 있을 때 소문으로 들었어요! 실력도 뛰어난데 얼굴까지 엄청나게 잘생겼다고! 근데……
여성이 턱을 매만지며 내 얼굴을 관찰하듯 빤히 바라본다.
“……잘생겼다는 소문은 조금 과장 된 듯? 아니면 나이 먹으면서 살짝 역변한 건가?”
“역변?”
내가 이서준에게 어느 정도(?) 밀 리는 건 인정하지만 그 정도의 차이 는 아닌 거 같은데.
내가 눈을 가늘게 뜨자 그녀가 말 실수했다는 듯 하하.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아, 아뇨. 지금도 나름 훈훈하고 괜찮긴 한데 소문처럼 천상의 미? 그 정도는 아니라는 거죠……
내가 대답하지 않자 그녀는 끝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소문대로 엄청 잘생기셨어요. 제가 평소에 눈이 나 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요. 죄송 해요.”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한숨 을 푹 내쉬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는 몰라도 우선 오해부터 부는 게 우선일 것 같네.
“저 이서준 아닙니다.”
“……삐졌어요?”
삐지긴 뭘 삐져.
“진짜 아닙니다. 이서준.”
“에이~ 빛 속성 검법 쓰는 거 다 봤는데. 이서준의 얼굴은 몰라도 빛 속성 강화계인 건 알아요.”
아무래도 그녀는 내가 이서준이라 고 완전히 믿어버린 모양이다.
혼하지 않은 빛 속성 검술을 보였 으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확실한 해명을 위해서는 내가 김선우라는 사람이라고 밝혀야 할 텐데.
하지만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내 이름을 밝히기는 꺼림직해 그만 두기로 했다.
“그쪽은 누군데요.”
“아. 저는 정민하예요.”
그녀는 당당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정민하?”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원작에 둥장한 인물은 아닌 거 같 은데.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인물 간파] 를 사용했다.
이름 : 정민하
나이 : 20
종족 : 인간 상태 : 평온 마력 등급 : A-관심도 : 0
정보를 보아하니 거짓을 말한 건 아니었다.
나이는 20살…… 어려 보이는데 동갑이고.
그나저나 마력 등급이 A-면 나이
대비 꽤 높은데.
마법사관학교로 치면 거의 10등 안에 드는 실력자니까.
그때 정민하가 물었다.
“근데 경계에는 언제 오신 거예요? 처음 보는 얼굴인데.”
“방금 왔습니다.”
“어? 진짜요?”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묻는다.
나는 그런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변을 둘러보았 다.
“됐고. 근처에 마을 있죠? 안내 좀
부탁드릴게요.”
“……뭐야. 방금 왔다면서 마을이
있는 건 또 어떻게 아셨대?”
그녀의 안내를 따라 나는 경계의 길을 걸었다. 밤이 어두워지고 어디 선가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정민하의 은검을 손에 꽉 쥔 채 혹시 모를 몬스터의 습격에 대비 했다.
그렇게 긴장감을 느끼며 길을 걷는 데 그녀가 생각난 듯 말했다.
“근데 이서준이면 올해 20살 아닌 가?”
뜬금없는 그녀의 말에 나는 그녀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이내 획 뒤를 돌더니 실실 웃으며 내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맞네~ 나랑 동갑! 반갑다 친구 야!”
이후 그녀는 오랜만의 친구라면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몇몇 정보를 얻을 수 있
었는데, 그녀가 경계의 세계에서 3 년가량 살아왔다는 것.
남쪽의 [얼어붙은 골짜기]를 중심 으로 정령 몬스터가 급증하고 있다 는 것.
그 이유로 발현계 마법사들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것까지.
“실력 있는 강화계 마법사가 와서 다행이라니까~ 진짜 다들 엄청 환 영할 거야. 좋으신 분들이거든.”
어느덧 우리는 남서쪽에 있는 [마 을]에 도착했다.
북부에 위치해 있던 [생자의 도시] 와는 다르게 작은 시골 같았다.
마치 사계의 탑에서 보았던 고블린 마을을 연상시킨다고 해야 할까.
“촌장님!”
그때 정민하가 백발의 노인에게 손 을 흔들었다.
노인의 시선이 우리를 향하고 나는 그에게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 다. 엄청난 강자의 냄새가 풍긴다고 해야 할까?
김진철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 는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의문을 느끼며 [인물 간파]를 사용했다.
이름 : 김정희
나이 : 81
종족 : 인간 상태 : 평온 마력 등급 : S+ 관심도 : 0
놀랍게도 노인의 마력 등급은 S+ 였다.
전 세계에 S+의 등급을 가진 자는 손에 꼽을 만큼 희귀한데.
그나저나 김정희?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어디서 들었더라.
“시간이 늦었다. 밤새 뭐 하다 이 제 온 거냐?”
김정희는 나와 정민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정민하는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죄송해요. 갑자기 정령한테 쫓기 는 바람에…… 아! 이쪽은 오늘 새 로 온 친구예요! 이름은 이서준!”
“……이서준?”
김정희의 두 눈에 잠시 의문이 깃 들었다. 그러더니 나를 바라보며 말 했다.
“자네 정말로 이서준인가?”
“아뇨. 저—”
그때 그가 내 말을 자르며 말했다.
“……자네. 살아있군.”
경계의 사람은 대다수가 죽어 영혼 이 된 자들이다.
극소수로 살아있는 자가 경계를 방 문하기도 하는데, 과거 경계의 세계 를 모티브로 가상 세계를 만든 ‘곽
무진’이 있고. 또 원작에서 [근원의 씨앗]을 얻기 위해 자운이 살아있는 채로 방문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말하는 ‘살아있다’라는 말이 다른 의미로 들렸다.
“……살아있는 자?”
그리고 김정희의 말에 정민하가 놀 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 살아있는 인간이었어?!”
“어. 아마도.”
불멸의 효과로 부활한 것이니 살아 있는 게 맞긴 할 거다.
그 소식에 근처에 있던 마을 주민 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숫자는 대 략 20명쯤 되었다.
“와아. 생자야? 오랜만이네.”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거야?”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에 김정희가 앞으로 나섰다.
사람들은 그의 눈치를 살피더니 뒤 로 물러섰다.
“생자라…… 어떤 이유로 죽은 자 들의 세계에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안타깝게 되었군. 상황이 어긋났거 든.”
상황이 어긋났다고?
의문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가 말을 이었다.
“이서준. 자네는 지상으로 돌아가 는 게 목표인가?”
“네. 생자니까 당연히……
“경계에서 생자가 지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기가 정해져 있네. 경계 의 벽이 허물어지는 붉은 달이 떠오 르는 날이지.”
뭐야.
경계의 세계는 원작에서도 정보가 한정되어 있어 나도 처음 알았다.
설마 그런 설정이 있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그리고 붉은 달이 마지막으로 떠 오른 게 바로 이틀 전이었네.”
“이틀 전이요?”
……이틀 전이라면 타이밍이 어긋 나기는 했다. 다음 시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거니까.
이렇게 된 거 여유롭게 근원의 대 정령 토벌까지 마치고 가야 될 거 같은데.
나는 착잡함을 느끼며 그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혹시 붉은 달이 언제 다시 떠오르는지 아시나요?”
내 물음에 김정희가 대답했다.
“2년 뒤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방금 내가 잘 못 들었나?
……삼일의 시간이 다시 흐르고.
대한민국 서울 국립묘지.
위대한 업적과 국가를 위해 희생된
국가유공자만이 묻힐 수 있는 국립 묘지에 김선우의 비석이 고고하게 세워졌다.
그 앞에는 상주인 이서준. 그리고 신영준, 윤하영, 이현주, 유아라, 최 서윤이 어두운 얼굴로 서 있었고 그 뒤에는 김진철, 최일현, 김덕현, 유 아연 같은 거물의 마법사들이 침통 한 얼굴로 서 있었다.
[2015. 4. 21. ~ 2034. 1. 28]
[김선우의 묘]
끄윽.”
한참 김선우의 비석을 내려보던 윤 하영은 결국 눈물을 터트렸다.
유아라는 조용히 그녀를 안아주었 고, 자신 또한 터지려는 감정을 참 아내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선우가…… 선우가 너무 불쌍 해…… 흐아아앙……
윤하영은 유아라의 품에 안겨 김선 우가 불쌍하다는 말을 연신 외쳐댔 다.
그 서글픈 말에 신영준은 잔뜩 벌 게진 얼굴로 고개를 돌리며 눈물을 홈쳤고, 최서윤은 말없이 비석을 내 려보며 눈물을 떨어트렸다.
“어떡해…… 선우…… 선우우…… 흐으윽……
이서준은 비석에 시선을 고정한 채 주먹을 불끈 쥐고는 중얼거리둣 작 게 말했다.
“편히 쉬어라…… 내가 반드시…… 반드시……
이서준은 끝내 말을 잇지 않았다.
그의 다짐은 가슴 속 깊은 곳에 꼭꼭 숨겨두었다.
시간이 지나 발인이 끝나고 모든 일정이 종료되었다.
몰려온 기자들이 사라지고 김선우
의 친구들은 국립묘지 공원 벤치에 모였다.
이서준은 그들올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고생 많았어.”
“……아니야. 네가 가장 고생했지.”
유아라의 말에 이서준은 씁쓸한 미 소를 지었다.
“이제 어쩔 거야?”
“뭐, 이제 우리도 우리 삶을 살아 야겠지. 김선우도 그걸 원할 거고.”
신영준의 대답에 이서준은 생각에 잠겼다.
김선우도 그것을 원할 거다라…….
어찌 보면 맞는 말이었다. 안 그런 척하면서 언제나 우리를 신경 쓰던 녀석이었으니까.
“그렇네.”
“그리고 협회에서도 일주일 쉬라고 하잖아. 쉴 땐 쉬어야지.”
최서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특무 팀에 속해있다.
앞으로도 쭉 만날 이들이었기에 큰 걱정이 없었지만 최서윤은 아니었다. 그녀는 당분간 혼자 지내게 될 것이다.
괜한 걱정이 든 이서준은 공허한 눈빛의 최서윤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윤아. 너는?”
이서준의 부름에 최서윤이 시선을 돌렸다.
“……저는 본가로 돌아가려고요.”
“그래?”
“다음 학년도 준비도 해야 하 고……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 요.”
최서윤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녀의 슬픈 눈빛은 여전했고, 이서준은 그런 그녀를 보며 깊 은 불안감을 느꼈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