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1화 (440/535)

441 화

대한민국의 마력 기류를 불안정하 게 만들었던 마력 재해 현상이 끝나 고 상쾌한 아침이 시작되었다.

오전 7시.

잠들었던 사람들이 서서히 깨어나 아침을 준비할 시간.

한세연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불안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사해야 할 텐데.”

서울을 침공한 크루아스의 습격.

자신의 예상보다 토벌이 길어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 뉴스와 라디오의 중계도 끊겨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 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방 안에 함께 있던 엘린이 기척을 느낀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시 후 문 너머에서 발걸음이 들 려오더니 문이 열렸다.

“……수기 아저씨.”

방 안에 들어온 것은 한성가의 검,

검귀 장수기였다.

치열한 전투가 있었는지 온몸에는 상처와 먼지로 가득했으며, 옷도 찢 어지거나 피로 물들어 흉한 상태였다.

“몸은 괜찮아요?”

“재앙급 마수의 토벌에 성공했습니다. 서울은 이제 안전합니다.”

장수기의 말에 한세연은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김진우…… 아니, 김선우가 악역까 지 맡으며 경고했었던 재앙급 마수 강림 사건이 해결됐다.

비록 큰 피해를 입었지만 이것으로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사람은요? 그 사람도 그곳에 있었어요?”

그 물음에 엘린도 의문에 찬 눈으 로 검귀에게 시선을 돌렸다.

검귀는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김선우도 토벌에 합류했습니다. 그리고 실패할 뻔했던 마수 토벌을 그 덕에 겨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역시.”

그 사람이라면 모습을 드러낼 줄 알았다.

그나저나 그런 위험한 자리에서도 활약했다는 건가.

한세연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안 도감을 느끼며 다시 물었다.

“그 뒤로 어떻게 됐어요? 혹시 마인이라고 협회에 쫓기거나 한 건 아 니죠?”

검귀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언가 망설이는 듯 입을 꾹 닫고 혼자 갈 둥하고 있었다.

그답지 않은 모습에 한세연은 작은 불안감을 느꼈다.

“……수기 아저씨?”

그때 검귀가 품 안에서 무언가를 조심스레 꺼냈다.

손을 펼치자 한세연의 두 눈이 커 졌다.

손바닥 반 뼘만 한 작은 새싹…… 새싹은 팔과 다리가 있었고, 마치 갓 태어난 아기처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바라보며 멍하니 중 얼거렸다.

“……그레텔?”

「3대 마인의 왕으로 알려진 김선 우가 오늘 새벽 사망한 것으로 알려 졌습니다. 김선우는 오늘 밤 12시쯤 서울 도심에 나타난 악룡, 크루아스 를 토벌하던 중 크루아스와 함께 균 열에 갇혀 소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j

앵커가 다소 굳은 얼굴로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고 있었다.

이서준은 벤치에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r……크루아스가 서울을 침공할 것이라는 김선우의 주장은 결국 사 실로 밝혀졌습니다. 이로 인해 김선 우가 일으켰던 테러 역시 크루아스 에게 대비하기 위한 계획적인 행동 이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당시 토벌 현장에 있던 마법사들 은 김선우가 인류의 적이 아닌, 인 류를 위한 영웅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협회 또한 공식적인 입장 을 밝히진 않았으나, 김선우가 인류

를 위해 희생한 것은 사실이며 순수 한 마인이 아닌, 마인의 힘을 얻게 된 인간일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 습니다.」

「협회는 이번 사건을 통해 크루아스와 김선우가 남긴 핵심 메시지인 ‘혼돈’에 대해 자세히 조사할 것이 라 밝혔습니다.」

몇 분간의 기사 전달이 끝나자 화면이 바뀌었다.

비장한 음악이 깔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미소를 짓는 청년의 사진이

나왔다.

그를 ‘마왕’ 혹은 ‘테러리스트’라 비난했던 사람들은 깊은 흔란과 함 께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서준은 손가락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그 얼굴을 보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김선우.”

아직도 균열에서 있었던 일들이 방 금 겪은 일처럼 생생했다.

마지막은 좋게 끝낼 수 있게 해달 라는 김선우의 마지막 말.

이서준은 뒤늦은 후회와 죄책감을 느꼈다.

그 부탁을 거절했어야 했는데.

찾아보면 다른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가 슴이 너무나도 괴로웠다.

이서준은 깊은 한숨을 내쉬다가 자 리에서 일어섰다. 이내 답답함을 느 끼며 상복의 넥타이를 살짝 풀었다.

복도를 지나자 통제된 공간 속에서 수많은 카메라 셔터가 그를 비추었다.

—야야. 이서준 다시 왔다.

—이서준이 상주를 맡았다며?

—……가족이 없으니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이서준이 상주를 맡는 거 지. 그나저나 김선우 여론이 이렇게 뒤집힐 줄은 꿈에도 몰랐네.

잠시 그들을 응시하던 이서준이 다 시 발걸음을 옮겼다.

「故 김선우 빈소」

빈소의 접객실 안에는 생각보다 많

은 조문객이 있었다.

마법사관학교 출신의 학생들도 있 었고, 짧은 인연이었던 특무팀의 동 료들도 있었다.

유명 가문의 가주와 같은 거물도 있었고 의외의 사람도 있었다.

신철공방의 주인이자 자신의 검을 제작했던 양태민.

최씨 가문의 가주 최재형, 은월 가 문의 은혜수.

그 외 처음 보는 얼굴의 사람들도 모여 있었다.

구석에서 육개장을 먹던 흑발의 청 년은 이서준을 발견하자 반가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옆의 여성이 그의 팔을 꼬집었다.

“악! 야! 나타……

“쓰읍.”

왠지 모를 수상한 조문객들을 멍하 니 바라보던 그때 분향실 안에서 한 여성이 깊은 슬픔에 잠긴 얼굴로 뛰 쳐나가둣 빈소 밖으로 나갔다.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한성그룹의 한세 연.

“어디 갔다 왔어?”

이서준과 같은 상복을 입은 신영준 이 그에게 물었다.

“잠깐 머리 좀 식히고 왔어. 아직 몸 회복도 안 되기도 했고.”

“……그러냐.”

이서준은 그를 향해 잠시 미소를 지어주고는 분향실 안으로 들어섰 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부드럽게 미 소를 지은 김선우의 사진이 보였다.

그 옆에는 밤새 눈물을 흘린 윤하 영이 퀭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 고, 최서윤은 아무런 반응 없이 땅 바닥만 내려보고 있었다.

이서준은 그런 그 둘을 바라보며 안쓰러운 감정을 느꼈다.

지난 시간 이 둘이 김선우와 나눈 감정의 깊이는, 나보다 더 깊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들이 느낄 슬픔을 함부 로 추측할 수 없었다.

“여긴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까 나 가서 밥이라도 먹어.”

윤하영은 슬쩍 옆자리의 최서윤에 게 시선을 돌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그래.”

이서준은 이내 윤하영의 손에 쥐어 진 사진을 발견했다.

김선우를 포함해 모두와 함께 찍었 던 사진.

인연의 나침반이 보관된 상자 밑에 있던 사진이었다.

그것을 보자 다시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뒤에서 소란이 일었다.

—김진철 회장이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소란 속에서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김진철 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표정과 발걸음은 진중했다. 상징적이었던 수염도 짧게 정리해 인상도 훨씬 깔끔해졌다.

그리고 그의 등장에 윤하영과 최서 윤이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쯧.”

김진철은 김선우의 영정사진을 멍 하니 바라보다가 짧게 한숨을 내쉬 곤 이서준에게 말했다.

“몸은 괜찮나? 회복하는데 시간이 좀 필요할 거라 들었는데.”

“괜찮아요. 간단한 치료는 받아서 요.”

“괜찮기는……

이내 김진철이 작게 중얼거렸다.

“마음이 아플 땐, 몸의 고통을 잊 게 되는 법이지.”

오랜 시간 살아온 김진철 역시 이 와 비슷한 경험을 수도 없이 했기에 알고 있었다.

김진철은 씁쓸함에 잠기다가 영정 사진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멍하니 사진을 바라보던 그는 작게 묵념했다.

그 사이, 다시 소란이 들려왔다.

의문을 느낀 김진철이 뒤를 돌자

익숙한 얼굴의 한 남성이 그를 바라 보고 있었다.

영감?”

“……일현이.”

남성은 김선우의 스승이자, 김진철 의 제자인 최일현이었다.

장례식장 근처의 작은 공원. 화르륵.

허공에서 불이 피어오르며 최일현

의 입에 문 담배에 불이 붙었다.

이내 그의 입에서 연기가 한숨처럼 뿜어졌다. 그 모습올 지켜보던 김진 철이 눈을 가늘게 떴다.

“사람 많은 자리를 기피하는 놈이 용케도 여기까지 찾아왔구나.”

“녀석과의 인연이 생각보다 깊거든 요.”

최일현은 다시 담배를 홉입했다.

“그나저나 균열 속에 봉인 당했다 들었는데 금방 빠져나오셨나 보네.”

마력 재해로 생기는 균열이 자연 소멸하는 데에는 보통 3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김진철은 하루도 되지 않아 탈출했다.

“술식으로 자연의 마력 기류를 비 틀어서 빠져나왔다. 물론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별거 아닌 것처럼 말했지만 인간의 능력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술식을 이용하여 자연의 마력 기류 를 의도적으로 바꾼다니.

최일현은 그 말을 들으며 질린 기 분을 느꼈다.

“뭘 그런 표정을 짓나. 김선우 그 놈은 균열을 직접 만들기까지 했는

데.”

“근데 그거 사실입니까?”

“뭐가?”

“김선우가 균열을 자신의 의지로 만들었다는 거요.”

인간이 균열을 만드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하늘에 벼락을 떨어트리게 하는 것 처럼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기 때문 이다.

“사실이다.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 으니까.”

최일현은 생각에 잠겼다. 김선우가 균열을 다뤘다라…….

최근 김창현이 수많은 소수 일족의 눙력을 사용하는 장면을 목격했기 에, 어쩌면 균열을 사용하는 것도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번 일은 조사할 게 많 다. 내 생각이지만 이번 사건은 그 놈…… 진천우가 연관되어 있을 가 능성이 있어.”

“분명 연관 있을 겁니다.”

최일현의 단호한 말에 김진철이 의 문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뭔가 알아냈나 보군.”

“김창현을 만났습니다.”

김선우의 죽음 이후 3일의 시간이 흘렀다.

왕을 잃은 마인의 은신처는 깊은 혼란에 빠진 상황이었다.

“마인회의 장로님들까지 전부 확인 했어. 왕의 권능은 누구에게도 계승 되지 않았어.”

선화의 말에 하령은 심각성을 느꼈

마인회의 장로들조차, 왕의 권능이 계승되지 않은 지금 상황에 의문을 느끼고 있었다.

“……확실히 이상하긴 하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왕과 연결되어 있던 인연의 나침반 이 고장 났다.

인연의 나침반이 고장 났다는 건 나침반과 이어진 사람 중 누군가의 심장이 완전히 멈추었다는 의미였다.

“혹시 균열의 공간이 사라져서 힘 이 아직 전달되지 않은 거 아니야?”

“그것이 가장 가능성이 높지.”

균열과 함께 왕이 사라졌다.

어쩌면 왕의 권능이 균열에 잠겨 계승되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선화는 황당함을 느꼈다.

마인의 역사에서 왕의 자리가 공석 이었던 적은 없었는데…….

“왕의 계승이 이어지지 않더라도 일족을 이끌 리더는 반드시 필요하 다. 왕의 권능이 없더라도 우리 중 누군가가 새로운 왕의 역할을 수행 해야 해.”

왕이 없다는 것은 마인 사회의 분

열을 뚯한다.

인간의 피를 갈망하는 그들이 폭주 를 일으키면 사회에 혼란을 줄 것이 고, 그것을 통제하지 못하면 마인의 파멸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끼리 왕을 정해도 왕의 권능이 없으면 인정받지 못할 거야. 의미 없어.”

선화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마인 은 강한 자에게 충성한다.

그리고 ‘왕의 권능’은 강한 힘을 상징한다.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방법? 무슨 방법인데?”

하령은 과거 왕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마력 전도석이라는 게 있어.

—이름 그대로 마력을 전해주는 힘 을 가진 돌이지. 참고로 유물이야.

—마력 전도석을 이용하면 블러드 크리스탈로 얻은 피에 마력을 공급 할 수 있거든.

“그들의 욕망을 해결해주면 된다.”

[특수 효과 ‘마계수의 가호’가 발동 됩니다.]

[사용자의 상황에 맞춰 ‘불멸의 마 계수 그레텔’의 능력을 공유합니다.]

[고유 효과 ‘불멸’이 발동됩니다.]

깊은 어둠 속. 허공에서 마력이 소 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신비로운 힘이 내 몸을 감싸고, 사 라졌던 육체에 힘이 깃들며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마치 새로 태어나는 듯한 기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 한 평온함을 느끼며, 나는 눈을 떴 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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