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0화 (439/535)

440화

균열의 틈 너머에서 모두가 격한 감정을 드러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서든 균열을 없애기 위해 주 먹으로 두들기고, 마력을 사용해보 지만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권능으로 조작된 균열은 크루아스 의 권능으로도 무너지지 않는 강한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김선우…… 너 진심이야?”

“……선우야. 이번에도 믿는 구석 이 있어서 그러는 거지? 응?”

울먹이며 말하는 윤하영의 말에 나 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믿는 구석이라…….

나는 뒤를 돌아 크루아스의 머리 위에 떠 오른 거대한 검은 구체를 올려 보았다.

만약 내게 남은 수단이 있다면 받 는 피해를 90% 감소시켜주는 [마계 수의 가히가 있다.

아마 이 능력이 발동된다면 웬만한 마법을 정통으로 맞아도 살아남을 수 있겠지.

하지만 저 구체는 다르다.

서울 전체를 소멸시켜버릴 만큼의 강한 마력이 담겨있어 아무리 피해 를 줄인다고 해도 내 몸이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만약 나에게 남은 수단이 하나 더 있다면…….

“……선우야?”

대답이 없자 그녀가 다시 내 이름 을 불렀다.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억지로 미 소를 지었다.

“미안.”

윤하영의 두 눈이 크게 혼들렸다.

이내 붉어진 눈에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헛된 희망을 주고 싶지 않았다.

전에도 생각했지만 내가 사라지게 된다면, 이들이 나를 찾아다니며 의 미 없는 시간을 보내지 않았으면 했다.

“……미안하다니? 선우야. 그게 무 슨 의미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제발제발......

그리고 이어서 처절한 목소리가 다

시 들려왔다.

시선을 돌리자 최서윤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 시간 그녀와 함께했지만, 지 금처럼 절망과 두려움에 빠진 얼굴 은 처음이었다.

“선배님……

그런 그녀를 보자 겨우 참아냈던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입술을 꽉 깨물고 참아냈다.

만약 이게 정말로 나의 마지막이라 면, 그들에게 끝까지 좋은 모습으로 남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 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너한테는 언제나 고마운 마음뿐이 야. 그리고……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잘 정 리가 되지 않는다.

분명 그녀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 이 있었는데.

“제발…… 선배님……

“김선우.”

이번에는 이서준이 나를 불렀다. 슬픔이 잠긴 두 눈.

시간이 지나 조금은 진정됐는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그의 반응은 차분했다.

“……이게 네 선택이야?”

“어. 후회 안 해. 그러니까 마지막 은 좋게 끝낼 수 있게 해줘라.”

이서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간 신히 이 상황을 받아들인 듯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 뒤를 돌아 크루아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크루아스가 구현한 검은 구

체가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이제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다.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들의 얼 굴을 살폈다. 신영준, 유아라, 하 령…….

그리고 멀리서 지켜보는 염제와 검 귀, 유아연. 그 외 협회의 마법사 들...

인사를 나누고 싶었지만 내게 주어 진 시간은 없다.

[수많은 사람이 당신에게 마음의 빚을 집니다.]

[보상으로 10,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우우우우웅!

크루아스의 마법이 완성된 둣 하늘 위에서 거대한 소리가 울렸다.

이내 검은 구체가 지상을 향해 떨 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결국, 예언대로 죽게되는 건가.

[‘희생’ 업적을 달성합니다.]

[보상으로 10,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안돼. 안돼. 안돼……

검은 구체는 어느덧 내 코앞까지 내려왔다.

시야가 서서히 깜깜해지고, 강렬한 마력의 기운이 내 몸을 감쌌다.

그 기운을 느끼며 나는 천천히 눈 을 감았다.

[미래의 커다란 변화가 감지되었습

니다.]

[인과율이 8 상승합니다.]

스으으...

이어지는 끔찍한 고통…… 검은 마력이 나를 집어삼키며 몸이 불타오 르기 시작했다.

육체의 감각이 서서히 사라지고, 균열 너머에서 희미하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돼...... 안돼......

“아아아아아!”

이거면 됐다.

결국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꼴이 되었지만…….

나는 이 결정을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다.

우우우웅……!

그리고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특수 효과 ‘마계수의 가호’가 발동 됩니다.]

번쩍!

끔찍한 고통 속에서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새하얀 공 간.

신비의 세계와 같은, 낯선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의문을 느끼며 몸을 움직이려 했지 만 육신의 고통 외에는 그 어떤 감 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도 살아있다니. 정말이지

질긴 목숨이구나. 혼돈이여.]

어디선가 의지가 들려왔다. 귀에 익은 목소리.

크루아스의 의지였다.

고개를 들어 올리자 혼돈에 잠식되 어 새하얀 백룡이 되어버린 크루아스가 바닥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의 육체는 서서히 먼지 가 되어 소멸되고 있었다.

……뭐지? 나는 아직 살아 있는 건가?

내 의지에 대답하듯 크루아스가 말 했다.

[……그래, 분명 너는 살아있다. 하 지만 살아있는 게 아니다. 마계수의 가호로 잠시 생을 연명하고 있을 뿐. 곧 머지않아 죽게 될 것이다.]

……마계수의 가호로 즉사는 면했 다는 건가.

확실히.

이 몸 상태로는 얼마 안 가 죽게 되겠네.

결국 기적은 없던 건가. 그러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내가 살아있다면 여긴 이승일 텐 데, 대체 어디지?

[‘허공’이다.]

허공?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無)의 세계. 균열이 거대한 마력을 삼킬 때 일시적으로 생겨나는 현상이다.]

허공이라. 내가 모르는 개념이었다. 뭐, 이제는 의미 없나.

[서로 죽어가는 입장끼리 마지막

대화나 나누지.]

무슨 대화를 하려고?

[어째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알고 싶다. 비록 상황이 너의 희생을 강 요했지만, 그전부터 죽을 각오를 하 고 있지 않았나?]

눈치가 빠르다.

녀석의 말대로 나는 동귀어진할 각 오로 전투에 임했었다.

폭주화 상태에서 몸까지 내던지며 싸운 것도 그러한 각오가 있기에 가 능한 것이었으니까.

애초에 그렇지 않았더라면 전투 자 체가 성립되지 않기도 했고.

[이렇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것 이었으면 처음부터 자결하는 게 서 로에게 좋지 않았나?]

그 말에 나는 속으로 코웃음 쳤다.

만약 그랬으면 나만 개죽음당하는 거잖아. 그 꼴은 죽어도 못 보지.

[……뭐?]

어이없어하는 크루아스의 반응이 들려왔다. 이내 녀석이 낮게 웃었다.

[혼자 죽지는 않겠다라…… 흐흐.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사악한 악의 구나.]

사실 그런 이유 말고도 주변 사람 들을 지키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결국 언젠가는 크루아스가 이서준 의 목숨을 노릴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내 생각을 읽은 듯 크루아스가 말했다.

[너는 네가 정의로운 일을 하고 있 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아니다.]

갑작스러운 크루아스의 말에 나는

의문을 느꼈다.

[네가 지키려 한 그 인간은 먼 훗 날 이 세계에 큰 해악을 끼칠 잠재 력을 지니고 있다.]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크루아스는 어째서 이서준의 목숨 을 노렸던 걸까?

[이유는 단순하다. 그자는 이미 한 번의 죽음을 경험한 인간이기 때문 이다.]

그건 이미 알고 있었다.

이서준은 진천우에 의해 한차례 죽 음을 경험했다.

그 이유는 진천우의 ‘불사’ 계획을 완성하기 위함이었다.

[……죽음을 경험한 인간의 육체는 ‘불사’가 되기 위한 재료가 되고, ‘불사’는 그 너머 ‘신’。] 되기 위한 재료가 된다.]

신이 되기 위한 재료…….

크루아스가 말을 이었다.

[‘불사’는 내가 가진 ‘불사의 운명’ 과 다르다. 네 소환수가 가진 ‘불멸’ 역시 마찬가지, ‘불사’는 그 어떤 힘 에도 무너지지 않는 절대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크루아스는 어려운 말을 이었다.

[진정한 ‘불사’는 네가 가진 ‘혼돈’ 으로도 죽일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불사의 존재가 이 세계에 생 겨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으 냐?]

생각해보지 못했다.

결국 원작에서의 진천우는 ‘불사’ 가 되지 못했으니까.

[큰 혼란이 생겨날 것이다…… 불 사의 존재는 단번에 세계의 정점에 군림하게 될 것이며…… 사도와 신

비를 포함한 그 어떤 존재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이어서 녀석이 말했다. 내 기분 탓 인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이 슬슬 생 명의 한계를 느끼는 것 같았다.

[정해진 운명…… 세계의 법칙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불사’의 탄 생을 막기 위해서다…… 결국 운명 이 막아서면 ‘불사’는 탄생하지 않 을 테니까……]

[하지만…… 네 존재로 세계의 법

칙이 무너지고 있다…… 지금 이 세계에서 ‘불사’의 존재가 탄생하게 된다면, 돌이킬 수 없…….]

크루아스는 끝내 완전히 먼지가 되 어 사라졌다.

불사의 운명을 타고난 재앙급 마수 의 왕이 모든 힘을 잃고 끝내 소멸 된 것이었다.

나는 멍하니 새하얀 허공을 바라보 며 생각에 잠겼다.

불사의 존재.

크루아스가 왜 이서준을 노렸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세계의 혼란이 될 씨앗을 미리 제 거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뒤에 숨 은 ‘진천우’의 계획을 막기 위해서 였다.

동시에 김창현이 내게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서서히 감이 오기 시작했다.

……그런 이유였나.

스으으...

의식이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모든 기운이 몸 안에서 흩어지고,

마치 하늘 위에 붕 떠 오르는 둣한 기분이 들었다.

잠이 쏟아지듯 눈꺼풀이 서서히 내 려앉았다.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추억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이제 죽는 거구나.

아까처럼 무섭지는 않았다. 어느 순간 나도 이 상황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다음은 어떻게 되는 걸까. 나라 는 존재는 이제 사라지게 되는 걸 까.

나는 이제…….

흐려지는 의식 속……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서울 중심에 생겨난 거대한 균열 이, 눈 부신 빛에 잠기며 뒤틀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균열을 중심으로 강렬한 마력 에너지가 웅축되더니 하늘 위 로 솟구쳤다.

빛은 남겨진 사람들을 위로하듯 아 름답게 넓게 퍼져나갔다.

균열이 마나를 잡아먹으며 ‘허공’ 이 되었다. 이 현상이 뜻하는 건 균 열 속에 갇힌 사람이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미였다.

“……끝난 건가.”

재앙급 마수의 왕과 마왕이 사라졌다.

오랜 시간 인류에게 공포를 선사했 던 두 존재가 함께 사라진 것이었다.

인류에게는 분명 기뻐할 일이었지만 그 누구도 기뻐하지 않았다.

김선우가 마지막에 모두에게 보였 던 그 모습은, 분명 인간을 위한 것

이었으니까.

그리고.

“.…”아. 아아.”

김선우와 가까웠던 이들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윤하영은 바닥에 주저앉아 하염없 이 눈물을 흘렸고, 최서윤은 초점을 잃은 눈으로 멍하니 하늘의 빛을 응 시하고 있었다.

유아라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바 닥만을 내려보았다.

이서준은 입술을 깨물며 꽉 지금까 지 느껴보지 못한 강한 분노를 느꼈 다.

“……김선우.”

김선우가 균열과 함께 소멸되었다.

이곳의 모두가 받아야 했던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진 것이다.

아직도 그는 이 상황이 실감 나지 않았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거지?

“너는 진짜……

그리고 그 옆에 선 하령도 슬픔에 잠긴 얼굴로 빛을 올려보고 있었다.

반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그가 왕에게 바쳤던 충성은 진짜였 기에 이 상황은 그에게도 당황스러

운 일이었다.

“하령.”

그때 하령의 뒤에서 여성의 목소리 가 들려왔다.

마왕, 김선우의 측근 중 하나인 선 화였다.

하령은 시선을 돌리자 그녀가 말했다.

“왕의 권능. 혹시 너한테 계승됐 어?”

“……왕의 권능?”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 둘을 향했다.

하령은 그 시선들을 마주하다가 고 개를 저었다.

“나한테 계승되지 않았다.”

“……그래? 나한테도 계승되지 않 았어. 어떻게 된 거지?”

왕의 일로 분명 슬픈 상황이었지만 지금의 이상 현상은 반드시 파악되 어야 했다.

왕의 권능이 계승되지 않았다는 건, 어쩌면 왕이 생존해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으니까.

“……그럼 혹시 장로님인가?”

“아마 아닐 거다. 계승의 마력이

관측되지 않았으니까.”

하령은 이 기괴한 현상에 의문을 느꼈다.

왕이 죽는 그 순간, 분명 계승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계숭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건..\

“……설마 왕께서 생존하신 건가?”

“어쩌면 그럴지도.”

그리고 그 말에 초점 없이 하늘만 바라보던 최서윤의 두 눈에 빛이 돌 아왔다.

“……나침반.”

최서윤이 다급하게 이서준에게 말 했다.

“나침반을 확인하면 되잖아요.”

“……나침반?”

“왕의 계승이라는 게 이어지지 않 았다는 건 선배님이 살아있다는 거 잖아요. 그럼 나침반을 이용하면 찾 을 수 있잖아요.”

윤하영과 유아라, 신영준의 시선이 잠시 떨렸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만약 김선우가 살아있다면 [인연의 나침반]을 통해 찾아내는 것이 가능

했다.

—……인연의 나침반이라고?

—내가 생각하는 그 유물이 맞나?

인연의 나침반 이야기가 들려오자 주변에서 숙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효과는 이미 세상에 알려져 있 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서준은 최서윤과 윤하영, 유아라, 신영준에게 시선을 돌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이들은 어디론가 달려갔다. 오랜 전투로 몸이 말이 아니었지만, 모든 고통을 참으며 달렸다.

어느덧 이들은 목적지인 마법사관 학교의 뒷산에 도착했다.

그들의 뒤에는 마인. 그리고 몇몇 협회의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

이서준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바닥의 흙을 파냈다.

“……찾았다.”

인연의 나침반이 보관되어있는 ‘은 폐 보관 상자’.

이서준은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

시키며 상자를 흙 속에서 꺼냈다. 이내 작게 심호흡을 하고는 천천히 상자를 열었다.

……제발.

끼이익.

그렇게 상자가 열리고, 그 안에 숨 겨져 있던 인연의 나침반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나침반을 확인한 순간.

“......아.”

짧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상자 속 나침반의 유리가, 하나도 빠짐없이 금이 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그것을 바 라보며 깊은 불안감을 느꼈다.

하지만 희망을 놓지 않았다.

유리가 금이 갔어도, 마력을 주입 하면 정상적으로 작동할지도 모른다 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서준은 이내 나침반을 잡고는 마력을 주입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 한 최서윤이 초점을 잃은 눈으로 그 대로 주저앉았다.

“......안 돼.”

나침반은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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