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9화
갑작스러운 거대 나무의 공격에 지 상에 처박힌 크루아스는 당혹감을 느끼며 다시 허공에 떠올랐다.
전투가 길어지자 몸이 이전 같지 않았다.
몸속 깊이 잠식한 혼돈…… 그리고 인류가 만들어낸 수많은 상처와 그 것을 만회하기 위한 재생력의 사용.
그 과정에서 너무나도 많은 마력을 소모했다.
심판을 위해 세계로부터 얻었던 힘 도 이제는 서서히 바닥을 보이고 있 다.
만약 수하들을 동행하지 않았더라 면 이미 인류에 의해 패배하고 봉인 되었겠지.
그리고 직감했다.
어쩌면 이곳이 자신의 무덤이 될지 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패배할지언정 실패는 하지 않겠다.
세계가 내려준 나의 사명.
내 한 몸 닳아 없어진다 해도 혼
돈의 심판만큼은 반드시 이루리라.
크루아스는 서서히 마력을 끌어올 리고는 눈앞의 거대한 나무를 내려 보았다.
자신과 맞먹는 거대한 크기.
느껴지는 기운으로 봤을 때 혼돈이 소환했었던 작은 나무 소환수가 분 명했다.
아마 계약자인 김선우의 폭주된 마력을 흡수하며 성장한 것이겠지.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상했다.
한낱 소환수가 짧은 시간 내에 저 렇게 커지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그때 크루아스는 나무에게서 특이 한 기운을 감지했다.
이 기운은…….
[……불멸의 힘을 가진 마계수였 나?]
나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크루아스에게 달려가 주먹을 내지를 뿐이었다.
후우우웅!
하지만 크루아스는 같은 공격에 당 해줄 생각이 없었다.
곧바로 날개를 크게 휘젓더니 그 공격을 가볍게 피해냈다.
그러자 나무가 바닥에 손올 짚었 고, 동시에 거대한 나무줄기들이 소 환되더니 크루아스의 몸을 붙잡았 다.
[……큭.]
거대한 나무줄기는 크루아스의 몸 을 점차 강하게 조여왔다.
어떻게서든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쳤으나 힘이 온전하지 않아 쉽지 않 았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그리고 그 전투를 지켜보던 사람들 은 큰 충격에 빠졌다.
마왕과 용의 전투에 이어 나무와 용의 전투라니.
심지어 저런 거대한 나무 형태의
마수는, 수많은 마수를 토벌해왔던 마법사들에게도 생소한 것이었다.
“……200년 전의 그 나무 괴물인가.”
그때 들려오는 염제의 중얼거림에 이서준이 고개를 돌렸다.
“……200년 전이요?”
“1830년대 저것과 비슷한 대 마수 가 런던에 출몰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나저나 설마 저런 괴물을 소환수 로 다루고 있었을 줄이야. 정말 알 수가 없는 녀석이군.”
200년 전.
자신이 태어나기도 한참 전의 이야
기였다.
이서준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착잡 한 감정을 느끼며 나무 마수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염제의 예상대로 아마 저 나무는 김선우의 소환수일 것이다.
직접 소환하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고, 또 김선우의 다른 신분으로 예상되는 ‘김진우’가 나무 소환수를 다룬다는 소문이 들려오기도 했었으 니까.
“……김선우.”
이서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서 한 발자
국 다가서면 다시 새로운 것을 보여 주며 멀어진다.
정말로 모르겠다.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정체가 무 엇인지. 또 목적이 무엇인지.
“너는 정말……
우우우웅!
그때 크루아스의 몸에서 검은빛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그 빛은 점차 그의 육신을 속박하 던 나무줄기를 밀어내었다.
쿠우우웅!
크루아스의 입에서 검은 에너지가 응축되더니 그대로 나무를 향해 방 출했다.
콰아아앙!
에너지는 곧 나무의 몸통 중앙에 적중했다. 이내 크루아스는 에너지 를 가로로 길게 그어 나무의 상체와 하체를 잘라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분리된 상체 와 하체에서 나무줄기가 뻗어지더니 몸이 다시 이어졌다.
크루아스는 그 모습을 보며 공격을 멈추고는 하늘 위로 다시 크게 올랐다.
[……이것이 불멸의 힘인가. 재생 능력과는 다르군.]
그때.
콰아아아앙!
일직선의 마기가 쏘아지더니 크루아스의 목을 꿰뚫었다.
끼에에에엑!
크루아스의 비명이 크게 울리고, 공간 안의 모두가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균열에 의해 팔 한쪽이 봉인되었던 김선우가 어느덧 자유의 몸이 되어 검은 마기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크으윽. 스스로 팔을 자른 건 가.]
균열에는 김선우의 잘려진 팔이 남 아있었다.
그 말은 즉, 김선우가 스스로 팔을 잘라 균열의 봉인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이다.
초재생능력을 가진 김선우였기에 가능한 무모한 방법이었다.
[……귀찮게 됐군.]
그 뒤로 크루아스와 김선우. 그리 고 거대한 나무의 전투가 다시 시작 되었다.
불사와 불멸. 그리고 극한의 초재 생능력을 가진 셋의 전투는 눈 뜨고 보기 힘들 만큼 잔혹했다.
자신의 생명력을 믿고 방어 따위는 하지 않는, 오직 공격만이 이어지는 정상적이지 않은 전투였기 때문이 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기세는 크루아스 쪽으로 넘어갔다.
수에서 밀린다고 하나 상대는 수많 은 인류와 전투를 치르고도 숭기를 잡았던 ‘재앙급 마수’.
고작 하나의 대마수가 참전했다 하 더라도 형세를 뒤집기는 힘들기 때
문이다.
……그렇게 전투가 이어지고 얼마 나 시간이 흘렀을까.
스 O O O.
크루아스를 향해 공격을 이어나가 던 거대 나무가 갑작스레 움직임을 멈추었다.
마치 한순간에 탈진한 듯 몸을 떨 고 있었다.
크루아스는 깨달았다.
마계수를 급속 성장시켰던 능력에
한계가 찾아왔다는 것을.
[…….]
크루아스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 다.
곧바로 마력을 끌어올리고는 나무 에게 화염을 내뿜었다.
화아아아악!
나무의 몸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운 듯 기괴한 소리가 서울 내부를 크게 울렸다.
이전과는 다르게 나무는 타오르는 자신의 몸을 회복시키지 못했다.
—……왜 회복하지 않는 거지?
—마력을 모두 사용한 건가?
그렇게 불타오르며 서서히 죽어가 는 나무. 아니, 그레텔의 모습을 바 라보던 김선우의 손끝이 감정의 동 요를 일으킨 듯 떨려왔다.
잠시 뒤. 김선우의 손을 중심으로
엄청난 양의 검은 마기가 웅축되기 시작했다.
크루아스는 본능적인 위험을 감지 했다.
[……이 힘은 위험하다.]
그렇게 그 공격에 대처하기 위해 보호막을 펼치려는 그때.
파아아아앙——
검은 마기가 일직선으로 쏘아지며 크루아스의 가슴을 꿰뚫었다.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크루아스는 대처하지 못했다.
크아아아앙!
“......커헉!”
공격을 마친 김선우의 입가에서 검 은 피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검게 물들었던 김선우의 두 눈이 점차 원래의 형태로 되돌아갔 다.
한계에 도달하며 발동된 폭주화가 다시 한번 한계를 넘어서게 되며 풀
려버린 것이다.
이성을 되찾은 김선우는 터져 나오 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 몸의 균형을 잃었다.
하지만 이내, 젖 먹던 힘을 쥐어 짜내어 두 발에 힘을 주어 일어섰 다.
김선우는 이를 악물고는 하늘 위에서 비명을 내지르는 크루아스를 올 려보았다.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지금이야말로 녀석의 목숨을 끊을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우우웅!
김선우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폭주화의 부작용인 ‘마력 탈진’ 현 상이 찾아오기 전, 마지막 최후의 일격을 날리기 위해서.
이내 그의 오른손에서서히 구체 마법이 구현되기 시작했다.
구체의 형태는 검은 마기가 아니었다.
찬란한 황금 마력을 뽐내는 구체.
인간, 김선우가 사용하는 마법이었다.
“……마지막이다. 크루아스.”
동시에 황금빛의 구체가 하늘을 향
해 쏘아졌다.
황금의 구체는 곧 크루아스의 가 슴. 아니, 녀석의 심장을 그대로 꿰 뚫으며 눈부신 황금의 빛을 번쩍였다.
콰아아아앙——
천지가 뒤혼들리고, 파동이 지상에 크게 퍼져갔다.
모두의 눈을 부시게 만들었던 그 황금의 빛은 약 10초간 지속되다가 서서히 사라졌다.
-……해치운 건가?
지상의 누군가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하늘 위에서 크루아스의 몸을 중심 으로 수많은 균열이 피어오르고, 몸 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서 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이것이 나의 최후인가.]
크루아스는 그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영원할 것 같았던 재생력조차 발동 되지 않았고, 마력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깨달았 다.
크루아스가 모든 힘을 잃고 소멸하 고 있다는 것을.
“김선우!”
이서준이 그에게 다가갔다. 김선우 는 고통에 잠긴 얼굴로 그저 신음만 을 흘릴 뿐이었다.
“……크으윽!”
“김선우 너 괜찮……
김선우의 몸을 살피던 이서준은 순 간 할 말을 잃었다.
그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온몸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고, 마력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생명이, 서서히 사라 지고 있었다.
“선배님!”
이번에는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담 은 최서윤이 다급하게 다가왔다.
그 뒤로 윤하영과 유아라가. 그다 음으로는 신영준이.
그리고 뒤를 이어 염제가 다가왔고 그다음으로는 마인, 하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왕이시여.”
“모두 비켜봐요!”
최서윤이 눈물을 닦고는 김선우의 앞에서서 마력을 끌어올렸다.
[인연의 결속]을 사용해 자신의 생 명력을 나눠주려는 것이었다.
그 순간.
우우우우웅!
하늘 위에서 다시 한번 거대한 마력의 기운이 느껴졌다.
동시에 모두가 절망감에 찬 눈으로 하늘을 올려보았다.
소멸하고 있는 크루아스의 머리 위 에서 거대한 검은 구체가 구현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구체의 크기가, 지금까 지 보았던 그 어떤 때보다 거대했다.
[인류여. 너희는 이미 깊은 혼돈에 물들었다…… 비록 이 자리에서 생 을 마감하겠지만 혼돈과 그 씨앗들
을 심판해 정화한다는 그 사명만큼 은 반드시 이루고 갈 것이다…….]
들려오는 크루아스의 의지에 김선 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겨우 녀석을 상대로 숭리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힘을 잃고 소멸하는 과정에서, 자 신의 남은 생명을 대가로 바쳐 최후 의 마법을 구현한 것이었다.
저 마법을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저 구체 속에는 서울 전체가 소멸 될 만큼의 강한 힘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런 마법이 존재하다 니.”
“우리 모두 죽는 건가?”
“……죽을 거면 곱게 죽으면 안 되 는 거냐고!”
주변에서 절망에 담긴 목소리가 들 려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김선우는 빠르 게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저 마법은 이제 곧 서울 전체를 날려버릴 것이다. 지금 도망쳐도 아 무런 의미가 없다.
“..큭 ”
원반격을 사용해야 하나? 불가능하다. 저 구체는 원반격으로
대처할 수 있는 크기가 아니다.
그럼, 녀석이 마법을 방출하기 전
에 죽여야 하나?
그것도 불가능하다.
나를 포함한 인류는 더 이상 마법
을 사용할 힘이 남아있지 않다.
유일한 희망인 김진철 역시 여전히
균열에서 탈출하지 못 하고 있고.
그럼 어떻게 해야…….
그 순간.
김선우의 머릿속에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이 상황을 역전할 수 있는 비장의 ‘ 변수’를.
물론 도박이긴 하다.
단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능력 이었으니까.
[인과율 20을 소모합니다.]
[권능, ‘가능성 조작’을 사용합니다.]
권능을 사용하자 김선우에게서 신
비한 기운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힘을 느낀 모두가 당황
한 눈으로 김선우를 바라보았다.
[거대한 운명의 굴레에 당신의 의 지가 깃듭니다.]
[이 공간에 존재하는 가능성 하나 를 조작할 수 있습니다.]
[의지를 발현하여 발동할 수 있습니다.]
의지의 발현…….
김선우는 혼자 생각했다. 이 상황
을 역전할 수 있는 가능성.
……크루아스의 돌연사.
그때 머리에 강한 두통이 이어졌다.
[존재하지 않는 가능성입니다.]
[이 공간에 존재하는 가능성만을 조작할 수 있습니다.]
“......크윽.”
크루아스가 돌연사할 가능성은 0% 라는 건가.
한차례 능력이 실패로 이어지자 김 선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 능력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을 조 작하는 것, 현실을 조작하는 능력이 아니었기에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면…….
크루아스가 마력 탈진 현상에 빠지 는 것.
다시 두통이 이어졌다.
[존재하지 않는 가능성입니다.]
이것도 안 된다고?
저런 거대한 마력을 다루는 과정에서, 어떤 존재든 실수가 생겨 마력 탈진 현상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존재하지 않는 가능성이라는 건 녀석이 마력을 실 수 없이 완벽하게 다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그때 김선우의 머릿속에 새로운 방 법이 떠올랐다.
……이것이라면, 모두를 구할 수 있다.
“……김선우?”
그 힘든 상황 속에서도 몸을 일으 키는 김선우의 모습에 모두의 머릿 속에 의문이 자리 잡았다.
“……김선우. 너 뭐 하려는 건데?”
모두의 답변을 무시한 채, 김선우 는 앞으로 한 발짝 걸었다.
크루아스는 그 모습을 바라보곤 말 했다.
[무슨 속셈이지? 나를 막을 방법 따위는…….]
그때 였다.
저적一
저저적——
크루아스를 중심으로 허공에 수많 은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크루아스는 당혹에 찬 반응을 보였다.
[……균열? 어떻게 균열을?]
허공에 생겨난 균열은 점차 빠르게
중식했다.
그리고 서서히 크루아스의 주변을 잠식하더니, 이내 그를 균열 속에 완전히 가두어버렸다.
겉으로는 같은 공간에 있는 것으로 보이나, 크루아스의 공간과 서울이 완벽히 분리된 것이었다.
크루아스는 이 현상의 원인을 눈치 챘다.
자연의 마력 재해 현상으로 일어난 균열을 이용하여, 균열이 우연하게 자신을 가둘 가능성을 조작한 것이 었다.
[설마 균열로 공간을 분리할 줄이 야…… 이런 방법은 생각지도 못했 는데.]
人 O O.
이내 크루아스가 힘을 발현했다. 저적. 저저저적!
동시에 크루아스를 가두었던 균열
이 다시 사라지기 시작했다.
[시도는 좋았다. 혼돈이여…… 그 러나. 균열을 다룰 수 있는 건 그대 뿐이 아니다. 나를 가두는 것은 불
가-]
순간, 크루아스가 말을 멈췄다.
사라지려던 균열이 다시금 생겨나 크루아스를 가두었기 때문이다.
있을 수 없는 상황. 마수의 왕이던 그조차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그때 크루아스는 자신의 발밑을 내 려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자신과 같은 공간 속에 김선우가 서 있었다.
[……균열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막 기 위해, 스스로 따라 들어온 것이 냐?]
김선우는 대답 대신 뒤를 돌았다.
균열의 틈 사이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하나같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김선우?”
“야. 너, 지금 뭐 하는……?”
그리고 이내, 일행들은 뒤늦게 김 선우의 의도를 눈치챘다.
서울 전체를 날려버릴 크루아스의 마법을, 공간을 분리하여 혼자 감내 하려는 것이었다.
“너 설마……
“아니지? 야! 김선우!”
“……안돼! 선배님! 제발!”
“야! 김선우! 뭐 하는 짓이야!”
모두가 처절하게 외쳤다.
그리고 떠올렸다. 탑에서 들었던 김선우의 죽음과 관련된 예언을.
이들은 균열을 부수기 위해 다급하 게 마력을 사용하고, 힘으로 두들겼 다. 하지만 마력 재해 현상인 균열 은 그 어떠한 방법에도 꿈적도 하지 않았다.
김선우는 그런 그들을 향해 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 방법밖에 생각이 안 나더라.”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