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6화
가고일의 뜬금없는 말에 이서준은 의문을 표했다.
“두 혼돈의 씨앗?”
생소했지만 어디서 들어본 듯한 낯 익은 말이었다.
동시에 과거, 김선우의 심연에서 보았던 크루아스의 말이 떠올랐다.
—먼 훗날 세계의 법칙을 어지를 씨앗인 너를 죽이기 위해서지. 그것
이 바로 운명이 정해준 나의 사 명…….
전부터 궁금했었다.
세계의 법칙이 무엇이길래 크루아스는 운명까지 들먹이며 나를 죽인 다고 한 걸까?
혹시 방금 녀석이 말해준 혼돈과 연관되어있는 걸까?
그럼 두 씨앗은, 나와 김선우를 뜻 하는 건가?
“혼돈의 씨앗이 뭐지?”
그 물음에 가고일이 낮게 웃었다.
[혼돈의 씨앗이란…… 변화의 잠재 력을 가진 존재를 말한다…… 물론 ‘그놈’은 씨앗이 아닌 혼돈 그 자체 지만 말이야.]
변화의 잠재력을 가진 존재?
“그게 무슨 말이야? 알아듣게 설명 해.”
[어차피 너는 오늘 죽을 목숨이다. 깊게 알려하지 마라.]
가고일이 날개를 크게 펼치더니 하 늘 위로 떠 올랐다.
이내 녀석의 몸에서 검은 마력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더 이상의 대화는 불필요하다는 듯 전투를 준비하려는 모양이었다.
이서준은 그것에 대응하기 위해 양 손으로 소백천을 꽉 쥐었다.
하지만 왼손에 생긴 깊은 상처로 인해 끔찍한 고통이 이어지며 제대 로 된 마력이 구현되지 않았다.
“저 녀석은 내가 맡을게. 너는 뒤
에서 회복하고 있어.”
이서준의 불안한 마력을 확인한 유 아라가 앞으로 나섰다.
“그래. 여긴 우리가 해결할 테니까 회복부터 해. 검사의 손에 생긴 상 처는 치명적이잖냐?”
이어서 신영준과 윤하영, 이현주도 앞장서서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서준은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멍 하니 바라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둣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해. 상대는 S등급 이상이야.”
“알아.”
가고일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 더니 검은 마력을 자신의 머리 위로 응축했다.
[대단한 우정이군.]
이내 녀석은 끌어올린 검은 마력을 유아라를 향해 방출했다.
유아라는 타이밍에 맞춰 화염의 구 체로 받아쳤다.
콰아아아앙!
허공에서 두 마력이 격돌하며 거대 한 폭발이 터져 나왔다.
자신의 공격이 무로 돌아가자 가고 일은 당황한 반웅을 보였다.
[……그 나이에 어떻게 이런 마법 을?]
……그렇게 가고일이 전투 준비로 정신 팔려있던 사이.
“선배님! 손 보여줘요!”
다급하게 다가온 최서윤이 이서준 의 왼손을 확인했다.
“……읏.”
눈으로 보기 어려울 만큼 끔찍한 상처.
내색하지 않아 몰랐는데 상처가 훨 씬 심각했다.
“먼저 지혈을…… 저한테 약이 있 어요.”
최서윤은 품 안에서 회복 포션 하 나를 꺼내더니 그대로 그의 손바닥 에 뿌렸다.
치이이익…….
‘‘큭.”
작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이서준의
두 눈이 고통에 일그러졌다.
다행히 포션의 효과가 있었는지 상 처가 조금씩 아물고 있었다. 이후 최서윤은 자신의 마력으로 그의 상 처 부위를 감쌌다.
“……일단 응급처치는 끝났어요.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리니 당분간 무리하시면 안 돼요.”
“고마워.”
이서준은 회복되는 자신의 왼손을 내려보다가 가고일과 전투하는 친구 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다행히 전투의 흐름은 유리해 보였다.
꾸준한 훈련으로 마법 능력이 크게 성장하기도 했고, 숫자에서도 우위 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자신이 굳이 나서지 않 아도 숭리할 수 있겠지.
이서준은 이들의 전투를 바라보다 가 바닥에 떨어진 ‘인연의 나침반’ 을 주웠다.
“완전히 망가졌네. 작동되지도 않 고.”
“……네.”
최서윤이 불안감이 담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등록된 사람의 생사와 연결된 물건 이 망가진 것에 작은 불길함을 느꼈 기 때문일 것이다.
“신경 쓰지 마. 외부 충격으로 망 가진 거니까.”
최서윤은 작게 미소를 지었다.
“네. 저도 알아요.”
푸우욱!
[크어어억……
때마침 들려오는 소리에 이서준과 최서윤은 시선을 돌렸다.
가고일이 신영준의 창에 찔려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흐으읍!”
신영준은 녀석의 가슴에 박힌 창을 뽑아내었다.
동시에 녀석의 가슴에서 검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크흐흐…… 방심해버렸군. 이렇게 쉽게 패배할 줄은 생각도 못 했는 데. 하지만 기뻐하지 마라. 심판의
때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곧 그분이 이곳에 강림할 것이니 그렇게 되면, 너희는…….]
가고일은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생각보다 허무한 결말에 이서준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끼에에에엑一!
그때 어디선가 용의 괴음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희귀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숙적이라 불리는 인간과 마인이 힘 을 합쳐 재앙급 마수를 상대하고 있 던 것이다.
이서준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상처 입은 왼손을 살짝 쥐었다.
지금의 자신은 저들에게 도움이 되 지 않는다.
그리고 가고일의 마지막 말에 의하 면 놈들을 토벌하는 데 성공하더라 도 더 큰 위험이 다가올 터.
그렇다면, 지금은 이 상처를 회복 하는 게 우선이다.
우우우우우웅一!
하늘 위에서 건물만 한 빛의 검 하나가 구현되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듯 강 력한 빛 속성 마력이 담긴 검…….
그 마법의 정체는 미하엘의 비전 마법인 ‘심판의 검’이었다.
그리고 이에 심상치 않음을 느낀
둣 화들짝 놀란 무지개 두꺼비가 도 망치기 위해 자신의 다리에 마력을 집중시켰다.
그 순간. 지상에서 수많은 검은 빛 줄기가 뻗어지더니 두꺼비의 발을 묶었다.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마인의 속박 마법, ‘어둠의 손’이었다.
“어? 잡았다!”
무지개 두꺼비가 옴짝달싹 못 하는 상황이 되자 지상의 마법사 중 누군 가가 크게 외쳤다.
지금이 기회다.
모든 마력을 이용하여 심판의 검을
구현하던 미하엘은 그대로 두꺼비를 향해 손을 뻗었고, 동시에 심판의 검이 두꺼비의 몸통을 꿰뚫었다.
우우웅!
콰아아아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두꺼비의 몸에서 검은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그리고 두 눈이 뒤집힌 두꺼비의 신체가 옆으로 쓰러졌다.
쿠우우웅!
“드디어 하나 처치했다!”
약 4시간 만에 이뤄낸 값진 승리.
재앙급 마수 중 하나를 처치하는
데 성공했다.
두꺼비의 목숨을 끊은 미하엘은 모 든 마력을 소진한 듯 숨을 헐떡이며 무릎을 꿇었다.
“남은 건 이제 둘인가……
방금의 공격으로 모든 마력을 사용 했다.
자신의 역할은 끝났으니 이제 남은 재앙은 다른 이들에게 맡기는 수밖 에 없다.
미하엘은 흑룡에게 시선을 돌렸다.
녀석은 염제와 협회, 길드 마법사 들의 마법에 당하며 고통의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상황이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마인의 합류 이후 기세가 점점 넘어오 고 있었다.
미하엘은 다른 남은 하나의 재앙, 백사 바실리스크에 시선을 돌렸다.
바실리스크는 예외로 단 하나의 인 간만을 상대하고 있었다.
역사상 최강의 마법사라 불리는 김 진철 이었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콰아아앙!
김진철은 여유로운 모습으로 바실 리스크의 모든 공격을 원반격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바실리스 크의 주변에서 수많은 마법진이 떠 오르며 녀석의 가죽을 타격했고, 그 때마다 놈은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 압도적인 전투력을 보며 미하엘 은 침을 꿀꺽 삼켰다.
“……언제봐도 대단하네.”
인간의 육신으로 재앙급 마수를 흘 로 압도하다니.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걸까. 의문이 든다. 인간이 맞긴 한 건지 의심도 들고.
“한계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건 가……?”
그때 가만히 서서 바실리스크를 농 락하듯 다루던 김진철의 육신에서 강한 빛이 뿜어졌다.
이내 사라진 그가 녀석의 코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흐읍!
김진철의 짧은 기합.
그리고 그의 손바닥에서 원형의 마 법진 하나가 구현되었다.
보조계와 발현계의 시너지 기술이 지만, 강화계처럼 근접에서 사용되 는 또 하나의 필살기, ‘파수십일장’ 이었다.
생성된 마법진이 천천히 움직이고, 이내 바실리스크의 몸에 닿는 순간.
그 짧은 시간 동안 열한 번의 거 대한 폭발이 터져 나왔다.
콰아아앙!
바실리스크의 몸은 이내 거대한 충 격을 받으며 멀리 날아갔다.
거대한 몸체를 지녔음에도 충격이 워낙 강해 꽤 먼 거리를 날아갈 정 도였다.
쿠우우웅!
바실리스크는 고통을 호소하며 거 대한 비명을 내질렀다.
제아무리 재앙급 마수여도, 오랜 시간의 전투로 지친 상태.
인류 최강의 마법사인 김진철의 필 살 마법은 녀석에게도 치명적이었다.
결국 바실리스크는 한참 고통을 호 소하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 졌다.
“이것으로 둘……
이제 남은 건 하나인가.
끼에에에엑!
때마침 하늘 위에서 마지막 재앙인 흑룡의 비명이 다시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끊임없이 이어진 마법사들의 협공에 버티지 못한 흑룡 이 지상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쿠우우웅!
이내 혹룡은 그대로 지상에 추락하 여 거대한 괴음을 일으켰다.
잠시 고요함이 일었다.
모든 마력을 소모한 현장의 마법사 들은 숨을 헐떡이며 상황을 지켜보 았다.
“……이, 이긴 건가?”
쓰러진 재앙급 마수 셋은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제외하곤 어떤 움직임 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 이겼다.”
“우와아아아!”
“재앙급 마수를 셋이나 토벌했어!”
끝내 지상의 모든 이들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기뻐했다.
비록 서울은 궤멸에 가깝고, 많은 피해자가 생겼지만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하면 엄청난 업적이었다.
살아있는 자연재해처럼 여겨졌던
그들을, 셋이나 토벌한 것이니까.
자정이 넘어가는 전투 끝에 이뤄낸 쾌거였다.
“회장님.”
미하엘이 김진철에게 다가갔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으니 네 몸이나 신경 써라.”
미하엘은 쓴웃음을 지었다.
“여기는 제가 수습하겠습니다. 회 장님께서는……
“아직 승리한 게 아니다.”
“..2”
김진철의 말에 미하엘은 의문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선 눈을 찌푸렸다.
“설마.”
그때.
스으으으...
어디선가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끔찍한 불길한 마력이 느껴 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승리의 기쁨을 나누던 모두 의 표정이 한순간에 굳었다.
“……이, 이건?”
“바, 방금 뭐였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힘이 느 껴졌다.
그리고.
쩌적. 쩌저저적…….
하늘 위에서 새로운 균열이 일어나 기 시작했다.
모두가 두려움에 찬 눈으로 하늘을 올려 보았다.
그리고 시공간이 뒤틀리듯 균열 안 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기운.
김진철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했던 진정한 적수를 오늘 만나게 될 것이라는 걸.
우우우웅!
이내 일그러지는 균열 안에서 거대 한 흑룡의 머리 하나가 나왔다.
방금 해치웠던 용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크기였다.
“……미쳤어.”
“어, 어떻게 저런 생명체가……?”
마법사들은 충격과 절망감에 찬 눈
으로 하늘을 올려보았다.
“……크루아스.”
한 마법사가 중얼거리듯 말하자 모 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크루아스라고?”
재앙급 마수의 왕.
최근 김선우가 경고했던 그 존재였다.
“기, 김선우의 말이 사실이었단 말 이야?”
우우웅!
이내 균열 안에서 나온 혹룡 크루아스가, 자신의 신체를 고요히 드러
냈다.
그리고 지그시 지상을 내려보며 말 했다.
[……예상외의 상황이군. 설마인 간에게 모두 목숨을 잃을 줄이 야…… 인류의 발전…… 이것이 혼 돈이 만들어낸 결과물인가……?]
김진철은 크루아스를 올려보더니 중얼거리듯 말했다.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한층 더 강해졌군.”
과거 협회에서 크루아스의 마력이 감지되었을 땐 이 정도의 힘을 지니 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녀석에게서 뿜어지는 기운은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강했다.
그리고 김진철의 시선을 느낀 듯 크루아스의 눈동자가 움직인다.
[……놀랍군. 인간의 육신으로 저 런 힘을.]
김진철은 그 말에 곧바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녀석은 위험하다. 최강의 생명체라 는 이명이 어울릴 만큼 지금까지 만 나본 그 무엇보다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만약 여기서 녀석을 막지 못한다 면…… 인류에게는 커다란 위험이 생길 것이다.
그때 크루아스가 김진철에게 시선 을 떼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치 무언가를 찾는 둣.
“……어이가 없군. 도마뱀한테 무 시당한 건가?”
김진철은 멍하니 중얼거리더니 피
식 미소를 지었다.
이내 그의 몸 전체에서 가공할 만 한 마력이 뿜어졌다.
그 누구도. 심지어 그와 잠시나마 호각을 벌였던 2대 마인의 왕조차 보지 못했던 그의 ‘전력’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미하엘은 큰 충격에 빠졌다.
조금 전 재앙급 마수와의 전투에서 모든 힘을 사용한 게 아니었다고?
[……?]
그 심상치 않은 마력을 느낀 크루아스는 뒤를 돌아 김진철을 바라보 았다.
[……대단하구나. 한낱 인간이 그 정도의 힘을 내보일 수 있다니. 네 강함에는 많은 호기심이 들지만, 지 금 내게는 중요한 사명이 있다.]
후우우웅!
크루아스가 크게 날갯짓하더니 하 늘 위로 크게 날아올랐다.
그 여파로 건물이 무너지고 나무가
꺾였다. 마법사들은 버티지 못하고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크루아스는 무언가를 찾는 둣, 주 변을 둘러보더니 불길한 마력을 서 울 전체에 뿌렸다.
[……어디 숨은 거지? 이곳 어딘가 에 있을 터.]
그때 녀석이 행동을 멈주곤 시선을 돌렸다.
[……음? 녀석도 이곳에 있었나?]
크루아스의 시선 끝에는 이서준과 그의 친구들이 있었다.
[……운이 좋군. 심판의 자격이 생 긴 지금, 이 기회에 녀석부터 처치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크루아스의 몸에 마력이 모이기 시 작했다.
온몸이 저릿한 마력에, 이서준은 크루아스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당황한 반응을 보였
그렇게 크루아스가 이서준에게 마력을 방출하려던 그때.
후우우웅!
어디선가 쏘아지는 황금빛의 마법 하나가 크루아스의 목을 꿰뚫고 지 나갔다.
그 어떤 마나도 느껴지지 않았기에 크루아스는 그 공격에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끼에에에엑!
크루아스의 거대한 몸이 크게 휘청 였다.
마법의 위력만 보면 특출난 무언가 는 없었지만, 그 안에 담긴 특수한 힘이 그의 육신에 강한 피해를 입혔 다.
[크으으으윽…… 이 힘은 용살자 의힘……?]
이어서 마법이 다시 한번 크루아스 를 향해 쏘아졌다.
이번에도 마나는 일절 느껴지지 않
았다.
콰아아아앙!
크루아스는 고통에 신음을 흘리다 가 새롭게 마법이 쏘아진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서준 일행의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김선우.
자신이 그토록 찾던 혼돈이었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