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화
[……다음으로 총장님의 인사가 있 겠습니다.]
성대한 졸업식이 진행 중인 마법사 관학교의 대강당.
단상 아래로 내려가는 최서윤의 모 습을 확인한 나는 입구 앞에서 북적 이는 사람들을 비집고 강당 밖으로 나왔다.
“ 후우......
밖으로 나오자마자 짧은 한숨이 나왔다.
수많은 사람이 주목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가던 이서준과 최서윤…….
그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말 로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에 휩 싸였다.
……이 감정의 정체는 아마 그리움 이겠지.
그리고 새삼 깨닫게 된다.
2년에 가까운 시간, 나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이들 모두가 정신적 성 장을 이뤄냈다는 것을.
나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비록 졸업식에 참가할 수 없게 되 었지만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에 찾 아왔는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었다.
아마 협회의 감시가 두려워 오지 않았더라면 분명 후회했겠지.
“……슬슬 돌아가 볼까.”
‘계획’을 위해서 앞으로 준비해야 할 일이 많다.
크루아스의 강림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살아남기 위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를 총동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푸른 하늘을 멍하니 올려보다 가 수많은 사람으로 북적이는 정문 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인파 사이를 파고들며 걸어가던 그때. 우연히 누군가와 어 깨를 부딪혔다.
단련된 어깨…….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어깨의 주인이 마법사라는 것 을.
지금 내 상황에 마법사와 엮여서 좋을 건 하나도 없기에 나는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이런, 실례했습니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가 만히 서서 그저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마법사인 걸 눈 치챈 모양인데.
괜히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아 다시 말했다.
“……그럼 바빠서 이만.”
그렇게 뒤를 돌려는 그 순간.
“잠깐만요.”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드럽지만 터프함이 느껴지는 여 성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목소리가 왠지 모르게 익숙 했다.
잠깐, 이 목소리는…….
팟!
그 순간 상대가 내 손목을 낚아챘 다.
엇박자에 마력이라도 사용한 듯한 빠른 속도에 나는 반응하지 못했다.
나는 잠시 당혹감올 느끼며 내 손 을 붙잡은 사람의 얼굴을 확인했다.
깊게 눌러 쓴 모자와 그 뒤로 보 이는 긴 생머리와 마스크…….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검은 눈 동자가 나를 똑바로 웅시하고 있었다.
“……역시. 너일 거라고 생각했어.”
얼굴이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나 는 단번에 상대의 정체를 눈치챌 수 있었다.
전 세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천재성 을 가진 S등급의 마법사…….
불의 마녀, 유아연이었다.
초저녁.
유아연과 나는 서울 외곽의 작은 룸 형식의 한식당에 도착했다.
나는 물 한잔을 홀짝 마시며 맞은 편에 앉은 유아연을 바라봤다.
혹시 마인의 왕이 된 나에게 적의 를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예상 외로 그녀의 태도는 이전과 크게 변 함이 없었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인간과 가까이 마주하고 있으니 괜히 긴장되네.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먼저 말을 꺼내야 할까? 그 럼 뭐부터 설명해야 하지? 폭주화에 대한 해명?
그런 고민을 하는데,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랑 커플 복이네.”
“.…”네?”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다.
당황스러움에 잠시 헛기침을 하고
는 그녀의 복장을 살폈다.
깊게 눌러쓴 검은 모자와 긴 코트. 그리고 안에 입은 목폴라까지.
……똑같이 입기는 했네.
“사람들 사이에 무난히 섞이기 좋 은 스타일이니까요.”
……라고 말했지만 사실 김선우 시 절(?)의 옷을 입고 다닐 수 없어서 하령의 옷을 무형의로 복사한 것이 었다.
유아연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 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뭐, 어쨌든 네 소식 듣고 많이 놀 랐어. 마인의 왕이라니…… 대체 어
떻게 된 거야?”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저도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갑작 스레 벌어진 일이라. 사정상 대답할 수도 없고요.”
“……그래? 아쉽지만 어쩔 수 없 네.”
유아연은 의외로 쿨하게 넘어갔다.
‘세계의 법칙’이 가진 발설의 제약 은 그녀 역시 어느정도 알고 있기에 넘어간 거겠지.
“그럼 이건 대답해줘. 지금 넌 인 간이야?”
유아연이 조심스러운 말투로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인간이에요.”
“……그렇구나. 다행이네.”
유아연이 피식 웃었다.
많은 의구심이 해소된 둣, 한층 후 련해진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 나도 잠시 자연스 러운 웃음이 나왔다.
마인의 왕이 된 이후 이런 평범한 대화를, 나는 그리워했던 것 같다.
유아연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테 이블의 물잔을 내려보다가 입을 열
었다.
“네가 폭주화한 모습을 보고 어떻게 된 상황일까 혼자 생각을 많이 했어. 분명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뭔가를 놓친 걸까. 폭주화는 어떻게 된 걸까……
아마 이런 고민은 유아연뿐만이 아 니라 나와 가까이 지낸 모두가 했을 것이다.
게다가 언론에서 ‘김진우’와 ‘김선 우’가 동일인물이라는 소문까지 돌 고 있으니 그 혼란은 더 강해졌을 테고.
“그러다 문득, 진천우의 실험이 생
각나더라고.”
그 말에 나는 잠시 의문을 느꼈다.
진천우의 실험?
“네가 쫓던 김창현 말이야. 실험실 괴인의 말에 의하면 25명의 소수 일족을 이용해 만들어진 실험체라고 했잖아.”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싶어 가만 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너도 녀석처럼 진천우의 실험체라서 그렇게 된 게 아닐까 하 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다면 네가 진천우를 쫓던 이유. 그리고 김창현 을 쫓던 이유 모두가 설명될 테니
까. ……그리고 인간의 육체로 폭주 화를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유까지 말 이야. 내 말 맞아?”
얼핏 황당한 주장처럼 들려오긴 했 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확한 과정은 모르나 내가 이 세계에 소환된 것은 진천우의 실험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가 녀석의 실험체라는 표현이 꼭 틀린 건 아니었다.
“자세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틀린 말은 아니에요.”
“……역시.”
유아연은 생각에 잠긴 목소리로 중
얼거렸다. 그러고선 연민에 찬 눈으 로 나를 바라본다.
미묘하게 어긋나기는 했지만 내 편 의 인간이 생겼다는 것에 가슴 한구 석이 따뜻해졌다.
그 뒤로 나는 그녀와 최근 나누지 못했던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마인의 왕이 된 이후의 생활. 혹시 피도 먹는지, 폭주화를 사용할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등둥.
그렇게 긴 이야기가 끝나고 유아연 이 미소를 지었다.
“너도 참 고생이 많네.”
“이제는 적응했어요. 최근 할 일도
많아져서 심심하지도 않고.”
내 말에 생각난 듯 유아연이 말했다.
“아 참. 크루아스가 강림할 거라는 경고. 그건 뭐야?”
“말 그대로 곧 크루아스가 강림할 거예요. 녀석이 제게 직접 찾아와 경고했으니 확실해요.”
그 말에 유아연의 표정이 자칫 심 각해졌다.
“……크루아스의 강림이라.”
작년, 유아연은 이미 ‘질병의 마수’ 라는 재앙급 마수를 상대한 경험이 있었다.
현장에 있던 그녀였기에 크루아스 가 일으킬 재앙이 얼마나 무서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큰일이네.”
유아연은 말을 이었다.
“근데 지금 아무도 네 말을 믿지 않는데 어떻게 할 거야? 김진철 회 장이 서울 대피령을 지시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기는 한데, 반발 이 심하다 하고 있고.”
“계획한 게 있어요.”
“계획?”
유아연이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
봤다.
나는 그녀를 향해 피식 웃으며 말 했다.
“네, 지금은 말씀드릴 순 없지만 알게 되면 깜짝 놀랄 거예요.”
“……대체 뭐길래.”
엄청 무모한 계획이다.
위험하기도 하고. 하지만 모두의 안전과 나의 성장을 생각하면 이보 다 효율적인 계획이 없다.
그 뒤로 나와 유아연은 식사를 시 작했다.
오랜만에 하는 인간과의 평범한 식 사에 나는 꽤 즐거움을 느꼈다.
아무래도 마인들은 인간식을 잘하 지도 않다 보니 외롭게 혼밥하는 일 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즐거웠던 식사 를 모두 마쳤다.
젓가락을 내려놓은 유아연은 물 한 모금을 마시곤 내게 말했다.
“앞으로 연락은 어떻게 할까? 가능 한 선에서 최대한 돕고 싶은데. 너 이제 스마트 계정 못 쓸 거 아니
야?”
이 세계는 테러 보안법으로 오직 하나의 스마트 계정을 사용할 수 있 다.
김선우나 김진우의 계정을 사용하 다가는 협회에 정보가 흘러갈 가능 성이 높아 사용할 수 없다.
“제가 따로 연락드릴게요. 번호는 아니까.”
유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아 그리고 너랑 만난 거 혹시 아라나 다른 애들한테 이야기 해도 돼? 다들 네 걱정 많이 하는 거 같던데.”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아뇨. 조금만 더 나증에요.”
지금 수많은 위험이 코앞에 닥친 상황이다.
이 위험은, 아직 완전하게 성장하 지 못한 이들이 감당할 수 없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벌일 일들을 실행하는 것에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다.
“마음을 강하게 먹고 싶어서요.”
“……그럼 어쩔 수 없네. 알았어.”
유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도 꽤 지났는데 슬슬 일어날 까?”
“그러죠.”
그렇게 유아연과의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그때.
띠링!
외부자의 혜택의 [스마트 연동] 기 능을 통해 알람이 울렸다.
언론사의 키워드를 설정해 기사가 떠오르면 자동으로 알람이 울리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곧바로 뉴스를 확인했다.
[마법사관학교 졸업식을 마친 이서준, 최서윤, 유아라. 김선우의 경고 지지 선언…… ‘크루아스, 반드시 강림할 것.’]
[오! 사! 삼! 이! 일!]
[2034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여러
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수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던 2033 년이 지나고, 2034년의 새해가 밝았 다.
하늘에서는 특별한 날을 기념하듯 새하얀 눈이 펑펑 내렸고, 지상은 점차 새하얗게 물들어가며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냈다.
“이쁘네……
나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감상 에 젖었다.
밖으로 나온 수많은 사람들.
새해의 첫눈을 바라보며 기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자 나까지 그 행복한 기운이 옮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내 뒤에서 어둠이 피어오르더 니 하령과 선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왕이시여.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 습니다.”
들려오는 하령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계획’의 첫 시작을 할 때
가 되었다.
나는 창밖에서 시선을 떼고는 뒤를 돌아 하령과 선화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 둘은 내게 고개 를 숙였다.
대답을 기다리는 두 사람을 가만히 보다가 말했다.
“새해 복 많이 받아.”
“..
하령과 선화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왕의 입에서 저런 말이 튀어나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는 표정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표정이 왜 그래? 새해 인사 처음 받아봐?”
내 물음에 선화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다만 왕의 입에서 듣는 건 처음이라 조금 놀랐습니다.”
그러더니 다시 내게 고개를 숙였다.
“왕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뒤를 이어 하령도 어색한 몸짓으로 고개를 숙였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 둘의 인사를 받자 입가에 작은 미소가 피어난다.
저들이 말했듯, 나 역시 이들에게 새해 인사를 받게 될 날이 올 줄은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고마워. 너희 말대로 나에게도 새 해 복이 있었으면 좋겠네.”
……그러기 위해서는 크루아스로부 터 살아남아야 하겠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다시 다짐했다.
……나는 살아남을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 그럼 세계를 상대로 관심을 끌어 보자고.”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