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3화
마인의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렸 던 왕의 계승식이 모두 끝났다.
달의 섬을 방문한 마인들은 하나둘 씩 육지로 돌아갔고, 섬에 남은 왕 의 측근들은 계승식의 뒷정리를 시 작했다.
“……다행히 계승식은 잘 마무리됐 네.”
유적지 위에 있던 선화가 떠나는 마인들을 내려보며 작게 중얼거렸
다시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들이 있었다.
왕의 앞에 나타난 여섯 장로.
그리고 수많은 마인이 바라보는 앞 에서 반기를 드러내는 모습까지
자칫하다가는 왕의 위엄이 한순간 에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왕은 믿기 힘들 만큼의 존 재감을 보이더니 한순간에 모두를 제압했다.
지금까지 왕에게 있었던 모든 논란 을 한순간에 잠재우게 할만큼의 강
한 임펙트였다.
그리고 옆에서 선화의 중얼거림을 들은 하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라 할 수 있지. 나조차도 왕께서 이 정도의 힘을 숨기고 계셨 을 줄은 생각도 못 했으니까.”
하령은 정말 순수하게 놀라움을 느 끼고 있었다.
강한 힘을 숨기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힘이 자신의 상 상을 한참 넘어서 있었으니까.
“근데 왕은 어디 계셔?”
선화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계승식의 뒷정리도 끝나가고 슬슬 육지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하지만 왕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보이지 않았다.
“잠깐 혼자 생각할 일이 있으시다 면서 절벽의 해안가로 가셨다.”
“……그래? 무슨 일이지? 계승식 끝날 때 표정이 안 좋아 보이시기는 했는데.”
신비와의 만남 이후.
왕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새로운 권능을 얻었을 텐데 기뻐하 는 것 같지도 않았고.
갑자기 무슨 일일까?
정식으로 ‘왕’이 되었다는 생각에 부담감이라도 생기신 걸까?
“슬슬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하니 나 는 왕께 가볼게.”
하령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선화는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하령 이 말한 장소로 이동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보름달 아래 절 벽에서, 멍하니 해안가의 수평선 너 머를 바라보는 김선우를 발견했다.
어떤 걱정이 있는지, 이전에는 본
적 없던 수심 가득한 얼굴이었다.
“왕이시여. 슬슬 돌아갈 준비를 하 셔야 합니다.”
선화의 부름에 김선우는 시선을 고 정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십니 까?”
선화가 조심스럽게 묻자 김선우가 대답했다.
“별거 아니야.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데, 내가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까 걱정이 들어서.”
선화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왕은 ‘왕’이 되었다는 것 에 부담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확한 사유를 모르기에 그 녀는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말했다.
“왕이시여. 혼자서 모든 걸 짊어지 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 말에 김선우가 잠시 입을 다물 고는 선화에게 시선을 돌렸다.
선화는 그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 보며 말을 이었다.
“저희는 왕을 위해 존재합니다. 언
제든 명만 내려주신다면 저희는 왕 을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김선우는 잠시 그녀를 빤히 바라보 다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고맙네. 잠깐이지만 위로가 됐어.”
김선우는 다시 수평선 너머로 시선 을 돌렸다.
여전히 수심에 찬 눈빛. 그리고 그 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갑자기 궁금해서 그러는데.”
“..
“만약. 아주 만약에. 내가 한 달
내로 죽게 된다면, 어떻게 될 거 같 아‘?”
“......네?”
예상치 못한 질문에 선화는 당황했다.
방금 공식적인 왕이 된 그가 한 달 내로 죽는다니?
그러자 김선우가 수습하듯 말을 이 었다.
“만약을 말하는 거야. 만약을. 내가 죽으면 마인 사회는 어떻게 되는 걸 까 싶어서.”
“……어, 음. 어떤 죽음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마 새로운 왕을 중심
으로 다시 뭉치게 될 겁니다.”
“새로운 왕에게 뭉친다라……
김선우가 피식 웃었다.
“뭐, 당연한 건가?”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문 제가 생길 겁니다.”
선화의 말에 김선우가 다시 선화에 게 시선을 돌렸다.
“왕께서도 오늘 계숭식에서 겪은 일로 알고 계시듯, 우리 일족에게는 절대적 힘을 지닌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끝없는 욕심과 오만함을 가진 마인
의 특성.
왕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얕보이는 순간 다른 마인들의 표적이 된다.
“왕께서 사라지신다면, 모든 마인 이 왕위를 노리는 대혼란의 시기가 찾아올 겁니다. 그리고 마인 사회는 서서히 붕괴되겠죠.”
장로가 그랬고, 다른 힘을 가진 마인들도 그러했다.
그들은 ‘왕’이라고 해서 억지로 충 성하지 않는다.
힘을 합쳐 빼앗을 수만 있다면 어떻게서든 행동하려 할 것이다.
“……마인 사회의 붕괴라. 이런 건 전혀 생각 못 했는데.”
김선우는 다시 진지한 고민에 빠져 들었다.
선화는 그 모습을 보며 의문을 느 꼈다.
‘만약’이라고 했지만 지금 그의 모 습을 보면 정말로 한 달 뒤에 찾아 올 죽음을 걱정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왕이시여. 혹시 한 달 뒤에 무슨 일이라도 생깁니까?”
그 말에 김선우가 수평선 너머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아무 일도 없어.”
그러더니 말을 이었다.
“아니, 아무 일도 없게 할 거야.”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검은 마수 사건이 잠잠해지고 시민 들의 관심은 떠나갔지만, 마법사 협 회는 여전히 검은 마수의 소환자, ‘용’을 찾는 데에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아직도 추적되지 않나요?”
“……네, 한국으로 향하는 것으로 추측되기는 합니다만 단서가 너무 부족해 그것 역시 확실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골치 아프네요.”
정보팀의 양태민은 이마를 매만졌다.
재앙급 마수 대다수가 자신의 기척 을 숨길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만약 다른 종의 몬스터였다면 모르 겠지만, 하필 용인지라 더욱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서울로 향하고 있으면 큰일인데.”
“일단 대피 명령 내릴까요?”
“......쓰읍.”
용의 동선이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대피 명령을 섣불리 내릴 순 없었다.
“일단 전국에 경고 안내를 쫙 돌리 죠. 혹시 모를 최악의 상황은 피해 야 하니까요.”
근래 협회가 겪은 수많은 실패로 인해, 시민들의 신뢰가 많이 떨어진 상황이다.
이번만큼은. 이번만큼은 절대로 실 패하면 안 된다.
바로 그때.
우우웅!
어디선가 경고음이 들려오기 시작 했다.
그리고 동시에 한 요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팀장님! 용의 마력이 다시 감 지되었습니다!”
“어디죠? 설마 서울인가요?”
“어, 그게…… 강원도 동해입니다.”
계승식 이후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짧으면서도 긴 시간, 내게 작은 변 화가 몇 가지가 생겼다.
가장 먼저 생긴 변화는 바로 피의 잔을 통해 신비로부터 새로운 [권 능]을 얻어낸 것이다.
이 권능은 마인의 왕만이 가질 수 있는 힘으로 내 생각보다 꽤 특별한 힘이 담겨 있었다.
[제왕의 영혼(SS)]
분류 : 특성
[지속 효과]
►격
모든 상태 이상 마법의 저항력이 70% 상승합니다.
[사용 효과]
►제왕의 영역
결계를 20분간 구현합니다.
결계 안, 원하는 상대의 능력치가
30%에서 최대 50%까지 감소합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 10일
내용은 단순했지만, 자세히 살펴보 면 그냥 말이 안 되는 사기 능력이 다.
상대방의 능력치를 아무런 조건 없 이 30%나 감소시켜주는 디버프 효 과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재사용 대기 시간이 조금. 아니,
많이 길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상대방의 힘을 30%나 감소시킬 수 있다는 건 이 모든 단점을 상쇄시키 기에 충분했다.
아마 이 능력이 있다면 앞으로 있 을 수많은 위기를 헤쳐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겠지.
……이후에 있을 크루아스와의 전 투에서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이것 외에 내게 생긴 다른 변화는 나를 충성하는 마인들의 수 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는 것이다.
은신처 내부에는 평소보다 몇 배나
많은 마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했으 며, 계승식에서 말썽을 일으켰던 몇 몇 장로들도 임시로 복귀해 중심을 잡아주었다.
그 결과.
[‘왕위 계승식’ 업적을 달성합니
다.]
[보상으로 10,000포인트를 획득합
니다.]
[‘안정된 마인 사회’ 업적을 달성합니다.]
[보상으로 5,000포인트를 획득합니
다.]
이것저것 포인트가 쌓여 어느덧 20만의 포인트를 다시 모으게 되었다.
이 포인트들은 한 달 뒤에 있을 ‘크루아스’와의 전투를 대비해 곧 재투자할 계획이다.
“……뭐, 이걸 투자한다고 해서 크
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지만.”
나는 은신처에 새롭게 생겨난 ‘왕 좌’에 앉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새로운 특성과 많은 포인트가 있음 에도, 크루아스를 상대할 마땅한 방 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정면 대결은 승산이 없다.
[차원 관측]을 통해 보았던 크루아스의 강함…….
녀석의 강함은 2대 왕을 우습게 넘어서 있었으니까.
아마 [달의 가히와 [폭주화]를 동 시에 사용한다고 해서 녀석을 상대
로 호각을 벌인다거나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거기다 녀석에게는 나를 죽여야 하 는 운명이 부여되며 평소보다 훨씬 강해져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요약하자면 최악의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냥 때에 맞춰 숨어버려?”
수많은 고민 끝에 나온 가장 단순 한 방법이지만 어쩌면 가장 정답에 가까울지도 모르는 방법이다.
승산이 없으니 피해버리는 것…….
어찌 됐든 지금 당장 내 목적은 크루아스와의 전투에서 ‘승리’가 아
니라 ‘생존’이니까.
“근데 상식적으로 크루아스가 이것 에 대비하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
크루아스는 단순한 마수가 아니다.
고지능을 가진 마수인 ‘용’이다.
그것도 용의 정점…… 아니, 모든 생물체의 정점에 군림한 마수의 왕 이다.
그런 녀석이 내가 숨을 것을 대비 하지 않았을 리 없지.
“아으......
갑작스레 크루아스와의 전투가 앞 당겨지다 보니, 대마수용 폭탄의 미
완성이나 성장의 부족함이 아쉽게 느껴진다.
내게 딱 3년 정도의 시간이 주어 진다면 무언가 방법이라도 생길 텐 데.
“……남은 방법은.”
최강의 생명체에 맞서 싸워줄 또 다른 ‘최강’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모든 마법사의 정점에 군림해 있다 는 김진철에게 부탁하는 거지.
김진철이 가진 절대 방어의 능 력…….
어쩌면 운명의 힘으로 각성한 크루아스를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다루는 원반격의 위대함은 그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으니 까.
하지만 이것 역시 큰 문제가 있다.
현재 내 신분이 마인의 왕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접촉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하다.
“ 에휴.”
나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어디 도 움이 될만한 거 없나…….
그렇게 혼자 생각하던 그때.
“응애!”
내 발밑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내리자 그레텔이 방긋방긋 웃으며 나를 올려보고 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레텔을 들어 올렸다.
“그레텔.”
“응애.”
그레텔은 내 품에 안겨 배시시 웃 었다.
뭐라도 힘이 될 만한 것이 없나 생각하던 중이었기에 내 시선은 자 연스레 그레텔의 머리로 향했다.
“흐흐 ”
작게 헛기침을 하고는 그레텔을 쓰 다듬는 척 열매가 새로 맺힌 게 없 나 확인했다.
하나라도 아쉬운 지금, 작은 열매 라도 있으면 좋을 테니까.
“......없네.”
아쉽게도 열매는 보이지 않았다.
이런 거에 아쉬워하다니. 나도 벼 랑 끝에 몰리긴 했구나.
“쯧.”
그러다 슬쩍 그레텔의 눈치를 살폈 다.
[유대] 특성으로 내 마음을 읽었을 것이 분명한데 의외로 별 반웅이 없었다.
이제는 익숙해졌다 이거지?
“그레텔 ~r
그렇게 장난스레 그레텔을 안아주 려는 그때.
우우우우웅!
어디선가 강렬한 마력이 퍼져 나왔다. 심상치 않은 불길한 기운…….
이것과 비슷한 마력을 느껴본 적
있었기에 그 정체를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 앞에 어둠이 피 어오르더니 무릎을 꿇은 수많은 마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왕이시여.”
“알아. 결국 찾아왔네.”
나는 왕좌에서 일어섰다.
크루아스의 수하.
놈이 나를 찾아왔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