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2화 (421/535)

422화

……그렇게 얼마나 계단을 올랐을 까.

나는 계단의 끝인 [달의 제단]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동시에 제단 주변에 숨겨진 술식들 이 빛을 뿜어내더니 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마인의 역사적 공간이자 자격을 갖춘 자만이 오를 수 있는 ‘달의 제

단’에 올랐습니다.]

[보상으로 5,000포인트를 습득합니다.]

[달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마력 저항력이 10% 상승합니다.]

가까이에서 본 달의 제단은 돌로 이루어진 유적지였다.

관리가 잘 되어있지 않은 듯 중간 중간에 이끼가 끼어있고, 모서리 부 분은 부식되어 오래되었다는 느낌을

주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오래된,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나는 그 속에 숨겨진 복잡한 술식들을 읽어낼 수 있었다.

보름달의 마력을 흡수해 회로를 만 들어 제단 위에 자연의 마력을 주입 하는 술식이었다.

그리고 나는 제단 위에 올려진 피 의 잔을 바라보았다.

화려한 무늬가 그려진 작은 은색의 잔.

그 안에는 투명한 물이 담겨 있었

는데, 이게 달빛의 마력으로 만들어 진 이슬이라고 했었지?

나는 침착하게 외부자의 혜택을 발 동해 잔을 바라보았다.

[피의 잔(성유물)]

분류 . 잔

설명 : 신성한 힘이 담긴 잔. 신의 피를 담았다는 전설이 있다.

[지속 효과]

►자격과 잠재

자격을 갖춘 자의 피를 담아 피에 숨은 잠재력을 끌어올립니다.

자격을 갖춘 자가 피를 마시면 권 능을 획득합니다.

내구 : SSS

선화가 설명해준 것과 다른 건 없었다.

설명 그대로 내 피에 담긴 잠재력 을 끌어올려 권능을 얻게 해준다는

내용이었다.

아마 설명에 적혀있는 ‘자격을 갖 춘 자’는 ‘왕의 권능’을 말하는 거겠 지.

나는 계승식의 진행을 위해 잔 위 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마력을 구현해 손가락 끝에 작은 상처를 내었다.

붉은 핏방울 하나가 손끝에 맺히고 이내 핏방울이 잔 속의 이슬을 향해 떨어졌다.

붉은 피가 잔에 떨어지며 작은 물 결을 일으켰다.

투명한 물이 핏방울과 섞이며 점차 붉게 물들어갔다.

스으으--

동시에 잔에서 신비한 기운이 퍼지 기 시작했다.

그리고 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 한 빛과 함께 신비의 빛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방금 빛. 그건 뭐지?

—……그러게. 2대 때와는 조금 다른 거 같은데.

제단 아래에서 마인들의 웅성거리 는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혹시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 싶었지만 하령에게 별다른 반응이 없는 걸 보니 문제가 있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잔을 들어 올리고 뒤를 돌았 다. 동시에 모든 마인이 나를 향해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잔을 들이켰다.

꿀꺽.

[‘정화된 피’를 마셨습니다.]

[미래에 작은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

[인과율이 1 상승합니다.]

그리고.

내가 서 있는 바닥을 중심으로 신 비의 기운이 다시금 퍼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저항할 수 없는 강렬한 기 운이 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이것과 비슷한 경험을 수도 없이 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나는 신비의 공간으로 이동하 고 있다는 것을.

번쩍!

한순간에 주변이 바뀌었다.

새하얀 빛이 가득한 공간.

이제는 수도 없이 경험해본 현상이 었기에 당황하지 않았다.

이곳은 신비의 공간이었다.

“분명 신비가 직접 권능을 준다고 했었지……

그러고 보니 신비와의 만남은 꽤 오랜만인 거 같은데.

마침 잘 됐다.

신비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있기도 했고.

바로 그때.

[……특별한 손님이 이곳을 찾아왔 구나.]

내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고개를 들어 올리자 새하얀 의복을 입은 검은 머리의 미청년이 눈앞에서 있었다.

나는 녀석을 보고 눈을 찌푸렸다.

“……뭐야? 인간?”

내 말에 녀석은 작게 웃었다.

[후후. 내가 인간으로 보이는가?]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

이건 신비가 사용하는 ‘의지 전달’ 이 분명했다.

나는 순간 어이없음을 느꼈다.

“뭐야…… 신비 맞아?”

[너희 인간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렇다.]

녀석의 말에 나는 턱을 매만지며 녀석을 관찰하듯 바라보았다.

“……특이하네.”

[뭐가 특이하다는 거지?]

“지금까지 만나본 신비들은 대부분 괴상한 외형을 갖고 있었거든.”

그뿐만이 아니라 성격도 이상하다.

어린아이처럼 장난기도 많기도 하 고.

하지만 저놈은 다른 신비들과 달리 점잖음이 느껴졌다.

[……흐흐. 괴상하다라. 재밌구나.]

신비는 낮게 웃더니 다시 말했다.

[이건 우리의 본 모습이 아니 다…… 단지 필멸자와의 대화를 위 한 임시 수단에 불과하지…….]

그 말에 조금 궁금함이 느껴졌다.

“너희는 어떤 기준으로 외형을 정 하는 건데?”

[다양하다. 자신의 본질을 상대에

게 투영하거나…… 혹은 다른 누군 가의 외형을 빌리거나…… 참고로 나는 이곳을 찾아온 누군가의 외형 을 빌렸다.]

이곳을 찾아온 누군가라면…….

“……설마 예언의 왕?”

[그건 모른다. 다만 그 이름 그대 로 예언의 힘을 지닌 자였지.]

그렇다면 예언의 왕이 분명하다.

피의 잔을 마신 마인의 왕은 둘밖 에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예언의 왕도 엄청 잘생겼 었구나. 2대 왕도 외모만 보면 엄청 잘생기기는 했는데.

뭐, 이건 중요한 게 아니지.

[갑자기 표정이 좋지 않아 보이는 군.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

“전혀.”

신비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이곳에 오면 권능을 준다 고 들었는데.”

[그래, 자격을 갖춘 자가 나를 찾 아오면 권능을 선사한다.]

그렇게 중얼거리던 신비가 말을 이 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전과 달리 놀

라운 기분이 든다.]

뜬금없는 신비의 말에 나는 물었다.

“뭐가 놀랍다는 거지?”

[그릇의 완성을 위해 네가 찾아올 것이라 예상하긴 했지만 그 시기가 내 생각보다 빨랐거든.]

“......그릇?”

아리송한 말에 나는 눈을 깜빡였다.

“그릇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런 게 있다. 몰라도 된다.]

“쳇.”

간을 보는 신비 특유의 행동은 자 주 보다 보니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보다 전부터 신비를 다시 만나게 되면 묻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알고 싶은 정보가 하나 있어.”

[……정보?]

나는 녀석에게 말했다.

“내게 업보라는 게 쌓여 있다고 들 었어. 혹시 지금 내게도 그 업보라 는 게 남아 있어?”

최근 나는 ‘마인의 왕’이 되어버리

는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2대 왕과의 전투로 목숨을 잃을뻔한 위기를 겪기도 했었고.

그렇기에 이 사건으로 업보가 완전 히 해소된 것인지 아니면, 아직 남 아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내 물음에 신비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놀랍군. 설마 거기까지 알고 있었 을 줄이야……』

정말로 놀란 것인지 녀석의 두 눈 이 전보다 조금 커져 있었다.

생각보다 다채로운 표정에 신기함

이 느껴졌다.

[네 말대로 네게는 업보가 쌓여 있 다. 지금까지 수많은 운명을 멋대로 바꿔오면서 쌓인 업보이지…… 그리 고.]

“..그리고?”

[네 안에는 여전히 엄청난 양의 업 보가 남아 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마인의 왕이 되면서 지금까지 쌓여 있던 업보가 전부 해소되지 않았을 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아직도 남아 있다고?

[너는 네가 자격을 얻으면서 오히 려 업보가 사라졌을 것이라 생각했 겠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반 대다. 너는 그 사건으로 더더욱 많 은 업보를 쌓게 되었다.]

“잠깐. 업보가 해소된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쌓였다고?”

[그렇다…… 그것도 놀라울 정도로 많은 업보가 쌓였다…… 네 행동으 로 인해 심판의 정당성이 완벽하게 생겨난 셈이니…….]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던 신비가 눈 을 가늘게 뜨며 미소를 지었다.

[이건 반드시 죽겠군.]

순간 섬뜩함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만나보았던 예언자들은 업보 청산이 반드시 ‘죽음’의 형태 가 되진 않을 것이라 했다.

나는 그 말에 의지해 지금까지 버 텨올 수 있었던 것이고.

하지만 이 녀석은 내가 죽을 것이 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쪽이 신뢰가 더 가냐 고 묻는다면…… 당연히 더 상위 힘 을 가진 신비이다.

참담함이 느껴졌지만 이렇게 좌절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빠르게 머릿속을 정리하고는 다른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럼 방금 네가 말한 심판의 정당 성이라는 건 뭘 말하는 거야?”

[말할 수 없다.]

단호한 대답.

이 이상 질문해봤자 무슨 짓을 해 도 입을 열지 않을 것을 알기에 답 변을 듣는 걸 포기했다.

그러다 문득 다른 것이 궁금해졌다.

“만약. 네 말대로 내가 죽게 된다

면 세계는 또 어떻게 되는 거지?”

[……음? 네 죽음 말인가?]

신비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 었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흐음. 지금껏 생각해보지 못한 부 분이군…… 혼돈의 죽음이 만들어낼 여파라…….]

신비가 혼자 중얼거리더니 말했다.

[네 존재로 인해 이 세계는 이미 수많은 혼돈으로 뒤덮이게 되었다. 이제는 네가 죽어도 문제. 죽지 않 아도 문제가 되겠지…… 이렇게 보 니 죽을죄를 짓기는 했구나.]

할 말을 잃었다.

그런 나를 보던 신비가 다시 가벼 운 웃음을 흘렸다.

[기대되는군. 혼돈의 죽음이 가져 올 새로운 미래가.]

아무래도 녀석에게 내 죽음은 단순 한 유희 거리에 불과한 모양이다.

“어찌 됐든 내 죽음은 확정이라는 거네.”

허탈함을 느끼다가 녀석에게 물었다.

“내가 살 방법은 아예 없는 거야?”

[없다. 이건 운명이다.]

신비는 이번에도 단호하게 대답했다.

동시에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 쳤다.

만약.

만약 녀석의 말대로 내가 죽게 되 면.

지금까지의 내 노력은.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모든 노력은 뭐가 되는 거지?

그리고 그런 생각이 이어지자 뒤늦 게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함이 터져

나왔다.

“……웃기지 마.”

갑작스러운 내 말에 신비가 의문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신비를 똑바로 노려보았 다.

“난 이렇게 안 죽어.”

[……?]

“너희가 말했지? 나는 정해진 운명 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신비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아까와 달리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나를 관찰하둣 바라보고 있

었다.

“그럼 내 죽음도 내가 정해.”

나에겐 해야 할 일이 있다.

원래 세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단순히 운명이라는 이유로 이대로 죽을 순 없었다.

그리고 내 모습에 신비가 입을 열 었다.

[정정하지. 네 말대로 너는 그 어 떤 운명도 거스르는 자유의 힘을 지 니고 있다.]

[그리고 운명에 의해 네가 죽게 될 거라 했지만 이건 나의 표현이 잘못 되었다. 너는 운명에 죽는 것이 맞 지만 네 운명에 의해 죽는 것이 아 니다.]

갑작스레 말을 바꾸는 신비에 나는 눈을 찌푸렸다.

“뭐?”

[너는 다른 누군가의 운명에 의해 죽는다.]

“그게 무슨 말이야? 다른 누군가의 운명이라니?”

[네가 바꾼 미래로 인해 어떤 존재 에게 너를 죽여야 하는 강한 운명이

부여되었다. 그리고 그 운명의 힘은 그 어떠한 권능도 넘어설 수 없는 강한 힘을 지니고 있지.]

운명이 부여되었다…….

그 말에 아까 신비가 말하던 ‘심판 의 정당성’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한 존재가 떠올랐다.

내 죽음의 원흉. 그건 바로.

“크루아스구나.”

[…….]

신비는 부정하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허탈한 웃음 을 흘렸다.

크루아스가 나를 노린다…….

혼자 생각해 보았을 때, 죽음의 원 인이 될 유력한 후보 중 하나였다.

그리고 베일에 가려져 있던 내 죽 음의 원흉을 정확히 알게 되자 내 안에 자리 잡던 공포감은 서서히 사 그라들었다.

하지만 마냥 편안한 건 아니었다.

내가 생각한 수많은 원흉 중 가장 아니었으면 바랬던 것이 바로 크루아스였으니까.

나는 물었다.

“내 죽음까지 이제 얼마나 남았 지?”

신비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1 달도 남지 않았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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