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7 화
하령과 나는 몽골, 중국 일대에 숨 겨진 마수 군락 몇 군데를 더 파괴 했다.
그 과정에서 마기 사용을 위해 ‘부 분 폭주화’를 꾸준히 연습할 수 있 었고, 그 와중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분 폭주화(A)’의 숙련도가 5% 상승합니다.]
[오랜 마기 사용으로 피로가 누적 되었습니다. 정신력이 크게 하락합니다.]
[당신의 육체가 마기에 적웅합니다.]
[적응형 특성 ‘마기 적웅(C)’을 획 득합니다.]
먼저 ‘부분 폭주화’는 내 정신력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사용 빈도가 늘어날수록 이성 유지 시간도 줄어들었으며 정신력 또한
크게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확히는 폭주화가 아닌 ‘마기’가 원인인 듯싶었다.
‘마기 중독’이라는 병이 있을 만큼 인간의 육체는 마기와 상극이니까.
“……이제는 1초도 유지 못 하겠 네.”
오늘 하루만 3시간 간격으로 3번 정도의 부분 폭주화를 사용했다.
재사용 대기 시간이 없다는 것을 이용해 편법을 사용하려 했지만, 첫 사용은 10초. 두 번째 사용은 4초. 세 번째 사용은 1초의 이성도 유지
하지 못 했다.
일종의 충전식 능력이라 볼 수 있었다.
하루 정도 푹 쉬고 나면 정신력이 회복돼 10초의 이성을 다시 유지할 수 있겠지.
“ 후우......
나는 군락 안에서 짧은 휴식을 하 다가 문득 궁금한 게 생겨 하령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령.”
내 불음에 하령이 내게 시선을 돌 렸다.
“너 혹시 지금도 자운이랑 연락하 냐?”
전부터 궁금했던 것이었다.
하령은 예언의 왕이 가진 정보를 토대로 자운과 여러 정보를 거래해 왔다.
최근에는 진천우의 일지와 관련하 여 거래를 하기도 했었고.
하령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대답 했다.
“지금은 일방적으로 연락이 끊긴 상태입니다.”
“역시 그런가.”
자운이 그토록 증오하는 내가 마인 의 수장이 되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 한 결과였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하 령이 내게 말했다.
“왕이시여. 저도 한 가지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어. 물어봐.”
“검은 마수 처치에 집착하시는 이 유를 알고 싶습니다.”
‘검은 마수’에 대한 질문이었지만 온전히 그것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김선우’. 그리고 ‘김진우’ 로 해왔던 행동들의 근거를 묻는 것 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하령…… 아니, 마인의 왕이라는 신분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이 질문의 대답이 중요하 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멍하니 군락의 천장을 올려보 다가 대답했다.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
요..2”
“이전에 말한 적 있지? 나에게는 예언과 비슷한 힘을 갖고 있다고.”
예언이라는 말이 나오자 하령의 두 눈에 긴장감이 깃들었다.
“나는 이 세계의 미래를 대략적으 로 알고 있어. 그리고 검은 마 수…… 아니, 재앙급 마수가 만들어 낼 미래와 세계의 파멸을 알고 있 지.”
정확히는 재앙급 마수가 만들어낸 ‘이서준의 죽음’이지만, 나에게는 그 것이 곧 세계의 파멸이니 같은 말이 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세계의 파멸. 미래를 바꾸겠 다는 겁니까?”
“맞아.”
“……역시 당신은.”
하령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혼자 중얼거렸다.
추억에 사로잡힌 둣 그의 두 눈에 는 그리움이 가득 차 있었다.
“하령?”
내 부름에 하령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하령은 동굴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슬슬 돌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협회에서 들이닥칠 수도 있습니다.”
“그래야겠네.”
폭주화의 후유증으로 휴식을 한 지 벌써 10분이 지났다. 언제까지 이곳 에 죽치고 앉아 있을 순 없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다리의 힘이 풀렸다.
과도한 마기 사용의 부작용인지 마력 탈진에 빠진 것처럼 몸이 움직이 지 않았다.
잠시 뻴쭘함을 느끼고 있는데 하령 이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역대 왕 중 가장. 아니, 압도 적으로 약하신 거 같습니다."
“......뭐?”
얘가 갑자기 디스를 하네.
잠시 어이없어서 하령을 바라보는 데 틀린 말이 아니기도 하고, 또 크 게 의미를 담아서 한 말로 보이진 않아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혹시 각 왕마다 상징하는 호칭이 있는 건 알고 계십니까?”
뜬금없는 말에 하령을 바라보았다.
“호칭? 그런 것도 있어?”
“네, 초대 왕의 호칭은 왕께서도 알고 계실 겁니다.”
“혹시 예언의 왕?”
“네, 맞습니다. 초대 왕의 호칭은 ‘예언’의 왕입니다.”
이건 알고 있어서 크게 놀라진 않 았다.
“두 번째는?”
“두 번째 왕의 호칭은 ‘이름 없는 왕’입니다.”
이름 없는 왕이라…….
“생각이랑 다르네. ‘반역’이라던가 ‘불사’, ‘폭군’ 정도를 생각했는데.”
“이름도, 출신도. 그 모든 정보가 알려지지 않은 자가 왕좌에 오르면 서 마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어 붙
여진 호칭입니다.”
내가 몰랐던 마인의 전통에 대해 한 가지 더 알게 되었다.
시기가 그렇게 길지 않아 전통이라 불릴 게 있긴 한가 싶지만.
“그럼 내 호칭도 정해졌나?”
“아뇨. 일족들 사이에서 여러 후보 가 나오고 있긴 하지만 구체적으로 정해진 건 없습니다.”
저렇게 말하니 괜스레 궁금해진다.
마인 사이에서 나오는 내 호칭이 무엇일까.
“후보가 뭔데?”
“가장 많이 거론되는 건 ‘혁명’입 니다. 2대 왕을 물리치고 새로운 마인의 시대를 열었으니까요.”
“철저하게 초대 왕의 추종자들 관 점에서 붙여진 호칭이네.”
정곡이 찔렸는지 하령은 어색한 미 소를 잠시 흘리곤 다시 입을 열었다.
“참고로 두 번째로 많이 거론되는 호칭은 ‘최약’입니다.”
“......뭐?”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도 ‘마인의 왕’의 생활에서서히 적웅했다.
마왕 초창기만 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한숨만 나왔는 데, 요즘은 여유가 생겨서 외출도 자주 하고 훈련, 혹은 여가 생활도 즐기고 있다.
“……흐아암.”
그럼에도 넘쳐나는 시간이 감당되 지 않는다.
하루 24시간 중 수면 7시간.
개인 훈련에 8시간을 소모하더라도
9시간이라는 시간이 남기 때문이다.
예전 같았으면 이 중 8시간을 학 교 수업으로 때울 수 있는데 이제는 그것도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놀고먹자니 죄책감과 불 안 때문에 안 되겠고.
참고로 아시아 대륙을 잠식했던 마 수 군락은 협회와 나의 토벌로 잠시 증식이 멈춘 상태이다.
이건 원작과 동일한 흐름이었다.
아마 크루아스의 수하가 사역마 소 환에 많은 힘을 쏟아 재충전의 시간 올 갖는 거겠지.
이 기회를 노려 본체의 토벌을 시
도하는 것도 좋겠지만, 아무리 그래 도 상대는 재앙급 마수.
계획을 착실하게 세워도 승리를 장 담할 수 없을뿐더러, 그들의 수장인 크루아스의 행보도 예측할 수 없기 에 착실히 힘을 비축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 따분하면서도 정신적으로 피폐한 하루를 보내던 어느날.
새로운 마인회의 총무 역할을 하고 있는 마인, 위예가 나를 찾았다.
“왕이시여. 슬슬 계승식을 준비할 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계승식?”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계승식이라면 내가 아는 그 계승식 이 맞나?
위예는 입을 열었다.
“이름 그대로 새로운 왕의 등장을 축하하기 위한 행사입니다. 계숭식 이 시작되면 전 세계에 흩어진 마인 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일 겁니다.”
예전부터 느끼는 건데 이놈의 마인 들은 행사가 은근히 많다.
나 역시 ‘왕’의 신분으로 이곳저곳 하령에 의해 불려 나가기도 했고.
“굳이 할 필요가 있나?”
“해야 합니다.”
위예가 아닌 다른 여성의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리자 고개를 숙인 선화가 문 앞에서 있었다.
“이번 행사에 은퇴하신 장로분들께 서 모입니다.”
마인의 장로.
설정상으로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초대 마인의 왕을 모시던 마인을 주축으로 되어 있는, 2대 마인의 왕
이 왕좌를 차지했을 때 은퇴한 마인 들이었다.
“비록 은퇴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 지만, 그분들은 아직도 수많은 일족 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 왕 권 교체로 흔들리는 마인 사회를 하 나로 뭉치는 데 큰 도움이 되실 겁 니다.”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계승식 과정은 어떻게 되는데?”
“대대로 내려오는 성유물이 하나
있습니다.”
성유물이라. 범상치 않은 이름이 들려오자 솔깃했다.
“피의 잔…… 과거 신의 피를 담았 다는 전설이 있는 성유물이죠.”
설명만 들어보면 성유물인 ‘성배’ 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성유물의 효과는 단순합니다. 자 격을 갖춘 자가 잔에 자신의 피를 따르고 마시면 신비를 영접할 수 있 게 되죠. 그리고……
선화는 말끝을 흐렸다.
“왕께 특별한 권능 하나가 주어집 니다. 예를 들면 ‘예언’이라던지 말
이죠.”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오는 마법사관학교의 정문.
마인 습격 사건으로 잠시 중단되었 던 휴강 상태가 끝나고 텅 비어있던 학교에 학생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야〜 오랜만이다.”
“그러게. 3주만인가?”
“와. 근데 김선우 선배님…… 아니,
습관적으로 선배라고 하니까 조금 웃기네. 아무튼 그거 진짜 충격적이 지 않냐?”
“그러게. 난 솔직히 아직도 안 믿 겨져.”
오랜만에 학교를 찾은 학생들은 마 치 약속이라도 한 듯 ‘김선우’ 사건 올 언급했다.
“근데 마인 아니라는 소문도 있던 데.”
“그 사이비교 말을 믿냐? 그 뭐라 나…… 김선우는 인세를 구원할 영 응이 다?”
“그럴싸하더만. 지금까지 행보가
워낙 특이했잖아.”
“그래도 그렇지. 너무 과몰입했잖 아. 심지어 거기 회원 수 30만 명 넘어섰다며? 진짜 오바 아니냐?”
“SBC에서는 사이비 엮이는 거 보 고 진천우 시즌 2라一”
“야야. 쉿!”
한 학생이 팔꿈치로 한참 떠들던 학생의 옆구리를 찔렀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학생이 의문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팔꿈치로 찌른 학생이 고개 로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그의 시선 끝에는 힘없는 걸음으로 등교하고 있는 최서윤이 보였다.
“.…”아.”
최서윤과 김선우의 사이는 이미 마법사관학교 내부에서도 유명하다.
둘이 사귀고 있다는 것부터, 최서 윤이 15번 차였다는 소문까지 수없 이 많은 이야기가 1년 전부터 마법사관학교 내부를 돌고 있었으니까.
김선우를 향했던 최서윤의 진심은 학교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상실감 을 느낄 그녀를 생각해 배려한 것이 었다.
하지만 최서윤에게는 배려가 배려 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배려가 그녀에게는 더 가슴이 아팠다.
평소 표정 관리에 능숙한 그녀였지 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그때 그녀의 옆에 누군가가 달라붙 었다.
“서윤아!”
갑작스러운 부름에 최서윤은 놀라 서 시선을 돌렸다.
그 옆에는 윤하영이 밝게 웃고 있
었다.
평소보다 더 밝은 느낌이었는데, 주변 시선을 의식해 그런 것이라는 깨달았다.
“서준이랑 아라는 벌써 도착했대. 빨리 가자.”
오늘 ‘김선우’와 관련된 중요한 만 남이 예정되어 있었다.
목적지는 마법사관학교의 개인 훈 련실.
최서윤은 뒤를 돌아 학교 내부에 숨은 경호원(협회의 감시자)들의 눈 치를 잠시 살피곤 윤하영과 함께 개 인 훈련실 안으로 들어섰다.
이서준이 언급했던 개인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세 사람의 모습이 보 였다.
이서준과 유아라, 신영준.
“모두 왔네.”
이서준은 모두를 둘러보며 그렇게 말했다. 최서윤은 작게 고개를 숙이 며 인사했다.
“근데 왜 여기서 보자고 한 거예 요?”
“이곳이라면 협회의 감시를 따돌릴 수 있으니까.”
밖에는 협회가 감시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실 안이라면 협회의 의 심 없이 조용히 모일 수 있다.
어떤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고 이곳 에 모인 걸까.
“뭘 말하려고 모이라고 한 거야?”
신영준의 물음에 이서준이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동시에 모두의 눈이 크게 떠졌다.
“……뭐야. 야 너 그거 어떻게 구 했어?”
“협회 감시 피한 거 맞아?”
그 물음에 이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전하게 확보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그의 손에는 인연의 나침반이 쥐어 져 있었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