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4화 (413/535)

414화

모든 일을 마치고.

은신처로 돌아가기 위해 JWK 사 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공원을 가로 질러 걷고 있었다.

“아빠아! 윤이가 나 놀려어!”

“자자. 사이좋게 지내야지? 웅?”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공원에는 가 족, 친구 둥 다양한 무리가 모여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지는 풍경

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문득 지 난 2년간의 추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당시에는 조금 귀찮기도 했지만 돌 이켜 생각해보면 소중한 경험들이었다.

“……후우.”

앞으로 나에게 저런 평범한 일상은 허용되지 않겠지.

한숨이 터져 나왔지만 이내 머릿속 을 정리했다. 어느 정도 예고됐던 상황이다.

……아니, 이제부터 시작이다.

미래에는 이보다 더 힘들고 위험한 사건이 계속될 테니까.

“그래도 조금은 낫네.”

오전만 해도 가슴 깊은 곳에서 답 답함이 느껴졌는데 몇몇 일들을 정 리하니 한결 나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아직 정리해야 할 것들이 남 아 있기는 하다.

……엘린이라던가 유아연이라던가.

나와 여러 비밀을 공유하던 이들인 만큼 기회가 된다면 어떻게든 오해 를 풀고 싶었다.

“문제는 어떻게 오해를 푸냐는 건 데……

유아연은 그렇다 쳐도 문제는 엘린 이다.

나를 룬의 일족의 종사라고 철석같 이 믿고 있던 그녀가 내가 마기를 사용한 모습을 어떻게 받아드렸을지 예상이 되지 않았다.

“설마 복수한다고 찾아오진 않겠 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그럴 것 같지 는 않다.

[룬의 속박]은 룬의 일족의 피가 흐르는 자만 사용할 수 있는 비기.

그렇기에 마기를 사용했다고, 마인 이라 확정 짓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의심은 하겠지.

“흐음.”

엘린의 행방을 모르니 어떻게 나올 지가 예상이 안 되네.

소문에 의하면 한세진의 경호일 관 련으로 협회에 쫓기고 있는 거 같던 데.

……잘 풀리면 좋겠네.

바로 그때.

스으으으!

어디선가 강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내 몸을 훑고 지나갔다.

동시에 오한이 느껴지며 불길한 마력의 기운이 느껴졌다.

이마력…….

이전에도 느껴본 적 있는 형태의 마력이었다.

나는 곧바로 마력이 느껴지는 하늘 을 올려보았다.

내 예상대로 날개를 펼친 거대한 무언가가 하늘 위를 빠르게 지나가 고 있었다.

[비정상적인 흐름의 마력이 감지되 었습니다. 시민 여러분들은 서둘러 대피해주시길 바랍니다.]

거대한 무언가는 이내 소리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서 이것과 비슷 한 원작의 사건이 스쳐 지나갔다.

저건 용이다.

크루아스는 아니고, ‘질병의 마수’ 와 같은 크루아스의 수하 중 하나이 다.

“아아아앙!”

그 순간 어디선가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비명이 들려온 방 향으로 달려갔다.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끼에에엑!

넘어진 둣 바닥에 쓰러져 울고 있 는 남자아이.

그리고 그 앞에는 검은 마수가 기 괴한 콧소리를 내고 있었다.

저번 겨울에 토벌되었던 재앙급 마 수, ‘질병의 마수’가 소환하던 사역 마인 ‘검은 마수’와 생김새가 똑같 았다.

—왕이시여. 특무팀이 올 겁니다. 대피하셔야 합니다.

선화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말대로 검은 마수가 서울 한복판에 소환되었으니 곧 특무팀이 들이닥칠 터.

바로 그때 검은 마수가 어린아이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본능 적으로 구체를 구현해 검은 마수에 게 방출했다.

파앙!

구체는 곧 검은 마수의 머리를 향 해 빠르게 쏘아져 폭발을 일으켰다.

검은 피가 터지며 마수는 그대로 쓰러졌다.

이전과 달리 ‘질병’의 힘은 없는지 바닥이 오염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아이는 질끈 감은 눈올 천 천히 뜨고는 쓰러진 검은 마수를 보 더니 내게 시선을 돌렸다.

벌벌 떠는 얼굴.

그때 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 이 달려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성은 아이를 꼬옥 끌어안고는 계 속해서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크르르릉

어디선가 마수의 울음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어느새 나를 에워싼 3마리의 검은 마수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을 가만히 보다가 여성에게 시 선을 돌렸다.

“대피하세요.”

“……네!”

그렇게 여성이 아이를 안아 들자 아이가 외쳤다.

“혀, 형. 김선우 맞죠?”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멍하니 아이 를 바라보았다.

뭐야. 어떻게 알았지?

모자랑 마스크를 쓰고 있어 알아볼 리 없을 텐데.

“너! 김선우라니. 도와준 분께 그 게 무슨 말버릇이니?! 죄, 죄송합니다. 우리 아이가 말실수를……”

여성은 아이를 끌어안더니 재차 나 에게 사과했다. 이게 그렇게 사과할 일인가 싶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여성과 아이는 이내 어디론가 사라 졌다.

나는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가 중얼거렸다.

“어떻게 알아챈 거지?”

그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께서 사용하신 마법을 보고 알 아챈 거 같습니다.

“내 마법?”

—왕의 마력은 다른 인간들의 마법 보다 빛이 선명하니까요.

“아.”

[미적 감각] 특성을 얻고 마법의 빛이 다른 사람들보다 선명해지기는 했지.

하지만 미세한 차이라 눈치채기 쉽 지 않았을 텐데.

“눈이 좋은 아이인가 보네.”

—네, 그런 것 같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법 구체를 다시 구현했다.

상황이 어떻든 눈앞의 검은 마수를 처치하는 게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크어 어 엉!

검은 마수는 나를 향해 빠르게 달 려들었다.

나는 침착하게 마법 구체 3개를 동시에 구현해 그대로 방출했다.

파앙!

구체는 순식간에 검은 마수 셋의 머리를 터트렸다.

등급 자체가 높은 건 아니다 보니 손쉽게 처치할 수 있었다.

“……후.”

나는 눈앞의 사체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검은 마수의 재등장.

원작의 중요한 에피소드였던 ‘마인’ 에피소드가 모두 끝나고 새로운

전개가 시작됨을 보여주는 장치 중 하나였다.

이제 나도 새로운 에피소드에 맞춰 준비해야 할 때…….

하지만 이번에는 주요 등장인물의 곁이 아닌, 나 혼자서 준비해야 한다.

“저기다!”

그때 커다란 외침과 함께 달려오는 3명의 사람이 보였다.

검은 마수의 마력을 감지하고 출동 한 특무 요원이었다.

나는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다가 자 리를 피했다.

개인적인 일을 모두 마치고 은신처 로 돌아왔다.

깜깜한 공간. 들어오자마자 마인 특유의 퀘퀘한 분위기에 절로 힘이 빠진다.

나를 발견한 마인들은 고개를 조아 리며 내게 인사했다.

어제의 적이 오늘 나를 모시는 상황이 아직도 적응되지는 않지만 적 당히 받아주었다.

“왕이시여. 검은 마수의 습격을 받 았다고 들었습니다. 다치신 곳은 없 으신지요?”

그때 신비한 분위기를 가진 검은 머리의 여성이 내게 다가와서 물었다.

위예.

S등급에 가까운 실력을 가진 마인 으로 하령과 선화 다음으로 가장 높 은 서열을 가지고 있는 마인이었다.

차가운 인상을 가졌지만 가끔 나를 찾아와 툭툭 배려심 묻은 질문을 던 지는 것이 그녀의 특징이다.

오전에 짧게 들은 설명에 의하면

그녀는 나를 중심으로 탄생한 새로 운 마인회의 총무 역할을 하고 있다 고 한다.

“괜찮아. 그보다 여기 불 좀 켜면 안 되나? 박쥐도 아니고 왜 이리 어둡게 사는 거야?”

디스하는 게 아니라 전부터 궁금했다.

마인은 빛이 없는 공간에서 살아간 다.

원작에서 나온 설명이지만, 정작 그 이유는 정확히 설명해주지 않았 다.

“저희 일족은 빛과 어둠을 구분하

는 능력이 현저하게 낮습니다. 그러 니 빛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죠.”

“아.”

확실히 빛과 어둠을 구분할 능력이 낮다면 굳이 에너지를 사용해서 빛 을 밝힐 필요는 없긴 하네.

마인이라도 에너지는 절약해야 하 니까.

“……왕께서 불편하신둣하니 이른 시일 내로 은신처 내부 전체를 밝히 겠습니다. 혹시 다른 불편한 점도 언제든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위예는 어둠 속으 로 사라졌다.

나는 은신처 내부를 다시 걸으며 임시로 배정된 나의 방문을 열었다.

끼익.

문이 열리자 보이는 것은 하령과 그레텔.

놀아주라는 내 명을 의외로 충실하 게 따른 모양이다.

“그레텔.”

“응애!”

그레텔은 나를 보고는 반가운 발걸 음으로 달려왔다. 나는 그레텔을 가

볍게 안아 올리고는 미소를 지었다.

하령은 나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이더니 보고를 올렸다.

“왕께서 하사하신 블러드 크리스탈 덕에 일족에게 필요했던 인간의 피 가 공급되고 있습니다. 또 모든 일 족을 통제할 순 없지만, 흡혈을 위 한 사냥 역시 최대한 줄어들 계획입 니다.”

“잘됐네.”

“......다만.”

이어지는 하령의 말에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블러드 크리스탈로 통해 공급되는

인간의 피에는 ‘마력’이 담겨 있지 않아 불만을 토로하는 일족도 있습니다.”

모든 생명체의 피에는 마력이 담겨 있다.

그리고 피를 주식으로 하는 종족들 은 피에 담긴 마력을 흡수해 강해진 다.

블러드 크리스탈이 있다고 해서 인 간과 마인의 전쟁을 멈출 수는 없다 는 이야기다.

“우선 인간을 습격하는 건 최대한 못 하게 해. 부족한 마력도 공급할 방법이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그 후 하령은 내게 몇 가지 보고 를 더 했다.

“왕좌 제작을 계획하고 있는데 혹 시 원하는 형태라던가 재질이 있습 니까?”

“왕좌? 뭘 그런 걸 해. 됐어.”

마인의 왕이 되었다고 해서 멋들어 진 의자에 앉아 권력을 즐기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하령은 고개를 저었다.

“흩어진 일족을 하나로 결집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상징물이 필요

합니다. 왕좌는 흩어진 일족을 하나 로 뭉치게 할 힘이 되어줄 겁니다.”

저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네.

“그럼 너 편한 대로 해.”

“……알겠습니다. 왕이시여.”

하령은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하령이 내 눈치를 보며 떠 나가려는 그때, 내가 그를 불렀다.

“잠깐.”

«..

“부탁…… 아니, 명령 좀 하자.”

“뭐든지 말씀해주시죠.”

하령이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 검은 마수가 출몰한 거 너 도 들었지?”

“오늘 중국과 몽골 일대에 검은 마 수가 출몰했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검은 마수가 출현한 건 서울뿐만이 아니었다.

크루아스의 수하가 중국과 몽골 일 대에 둥지를 틀어 이쪽의 피해가 더 큰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대로 놔두게 된다면 점점 불어나는 검은 마수에 의해 더 큰 피해가 생길 것이었다.

더 늦기 전에 녀석들의 본거지를 파괴해야 한다.

그리고 왕이 된 김에 이 권력을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나랑 마수 사냥 준비하자.”

“……아가씨. 오늘도 식사 안 하십 니까?”

5대 명문가 중 하나인 최씨 가문 의 저택.

방문 너머에서 걱정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이틀째 굶고 계십니다. 가주 님께서도 걱정하고 계셔요.”

최서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강제로 본가에서 감금 생 활을 한 지 벌써 3일.

김선우로 인한 사건과 동시에 자유 를 박탈당하면서 그녀는 모든 의지 가 꺾인 상태였다.

“……다시 오겠습니다.”

목소리는 금세 사라졌다.

최서윤은 의지 없는 시선으로 방문 을 바라보다가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마지막으로 보 았던 김선우의 모습이 계속해서 아 른거렸다.

무섭게 피어오르는 검은 불길한 기 운…….

그리고 그런 김선우를 마인으로 지 정하며 추적을 이어나가는 협회.

당장이라도 그와 관련된 것들을 쫓 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아버 지에 의해 모든 자유를 빼앗겨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항상 자신에게 엄해도 아버지가 밉 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그녀였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아버지가 미웠다.

“……선배님.”

많은 의문이 들었다.

살아는 있는 걸까? 그날 보았던 마기의 정체는 무엇일까.

또 다른 선배님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최서윤은 속이 타들어 감올 느끼다 가, 현재 유일하게 세상 밖의 일을 알 수 있는 수단인 티비로 시선을 돌렸다.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마인 사건은 지나갔지만, 인류에게는 새

로운 위험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한참 마인과 관련된 소식을 전하던 뉴스에서 새로운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최서윤은 그것을 보며 이번 일도 결국 시간이 지나 잊혀지게 되는 건 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팔에서 ‘질병의 마수’ 토벌 사건 이후, 11개월 만에 검은 마수가 아 시아 대륙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현재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것은 중국과 몽골이며, 대한민국 역

시 검은 마수로 인한 피해가 전국으 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검은 마수. 워낙 임펙트가 큰 사건 이었기에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김선우가 질병의 마수를 토벌 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 도 들었다.

[서울은 다행히 정체불명의 마법사로 인해 조기 진압에 성공해 피해는 없었습니다.]

이후 화면 너머에서 CCTV 화면이 떠올랐다.

검은 모자와 마스크를 쓴 남성.

어딘가 실루엣이 익숙했다.

그리고 생기가 없던 그녀의 두 눈 에 잠시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시민을 구한 뒤, 금세 모습을 감 춰 현재까지 소속과 이름은 불명인 상태입니다. 다만, 구조된 시민의 주 장에 따르면…….]

동시에 CCTV의 남성이 마법 구체

를 구현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손바닥 위에 떠 오르는 아름다운 형태의 구체.

그것을 본 그녀의 두 눈이 크게 떨렸다.

“……선배님?”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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