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화
“이런 곳에 숨겨져 있었구나.”
밖으로 나온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신기함을 느끼고 있었다.
눈앞에는 넓고 푸른 동해가 보이 고, 뒤에는 마인의 은신처로 들어가 는 입구인 작은 동굴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주변을 감추기 위한 환영 술식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게 보 였다.
“외출 시에 이곳에 설치된 술식을 이용해주시면 됩니다.”
내 뒤를 따라온 선화가 어딘가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말대로 그곳에는 문 역할을 하는 술식 하나가 설치되어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뒤를 돌았 다.
“근데 너 정말로 따라올 생각이 야?”
혼자만의 외출을 즐길 계획이었는 데 선화가 호위로 따라온다길래 조 금 부담스러워 물었다.
“말씀드렸다시피 협회의 경계가 강 화된 상태입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르니……
“걱정 안 해도 된다니까 그러네. 정체 숨기고 싸돌아다니는 거 내 전 문인 거 너도 알잖아.”
선화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모습 을 보자 설득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 달았다.
“에휴. 마음대로 해라.”
조금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특별히 뭔가를 하려는 건 아니니 크게 상관 은 없다.
그냥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무시 해야지.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그림자 뒤에 숨어 있을 테니 신경 쓰지 마시길……
스으으..
그 말을 끝으로 선화의 육신은 어 디론가 사라졌다.
하지만 기운이 희미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아 근처 어딘가에 숨어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나는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
을 가리고는 결계 밖으로 나왔다.
깜깜한 마인의 은신처에서 지내다 가 햇빛을 보니 정신적으로 맑아지 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목적지인 서울에 도착 했다.
“……크게 변한 건 없네.”
십마회의 테러로 인해 서울의 풍경 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이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테러로 인해 무너졌던 건물들도 각 종 마공학과 신비로,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고.
도로를 가득 채운 사람들은 여느
때와 같이 바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렇게 평화로운 서울의 풍경을 바 라보는데 몇몇 사람들에게서 특별한 기운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이 기운이 뭘까 혼자 생각하다가 이내 그 정체를 깨달았다.
“아-
그들은 인간 사회에 숨어 살아가는 마인들이 었다.
마인의 왕이 되면서 [인물 간파]를 사용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들을 구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많았구나.”
바쁜 걸음으로 통화를 이어가는 마인, 이어폰을 낀 채 음악을 즐기는 마인, 양손에 가득 봉지를 들고 걸 어가는 마인…….
정말로 많은 마인이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인간의 틈에 숨어 살아가고 있었다.
마인의 평범한 모습을 보자 왠지 모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인간에게 공포의 존재인 그들에게 도 일상이라는 게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물론 마인의 왕이 되었다고 해서
그들을 옹호하거나 동정하는 건 아 니다.
그들이 살아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간을 죽여왔는지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잡념을 털어내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개인적으로 응원했었는데 진 짜 충격이네.
—그러게. 근데 걔 머리 좋아서 잡 히긴 하려나?
—모르지.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발걸 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돌리자 한 빌딩 앞에 모인 시민들이 홀린 듯 옥외 전광판을 올 려보고 있었다.
나도 자연스레 그들의 시선을 따랐다.
[전 국민을 속이고 새로운 마인의 왕이 된 김선우. 그의 행방은?]
내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화면을 장 식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곳뿐만이 아니었다. 곳곳에 보이 는 다른 전광판에도 내 사진이 박혀 있었다.
[3대 마인의 왕 김선우, 그의 정체 와 목적은? BCB 밤 10시 단독 취 재.]
[마법사 협회 특무팀은 현재 ‘김선 우’에 대한 제보를 받고 있습니다.]
“……나 진짜 악당 됐구나.”
하령에게 들었을 땐 크게 와닿지 않았었는데, 직접 눈으로 보니 그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내가 빌런이라니.
어이가 없어서 헛옷음이 나온다.
그때 전광판의 스피커에서 목소리 가 홀러나왔다.
[마인의 왕이 교체될 때마다 마인 들의 성향도 크게 바뀐다고 들었는 데요. 그게 사실인가요?]
[네, 사실입니다. 실제로 20년 전
2대 마인의 왕 직위 이후, 마인의 테러 사건이 눈에 띄게 급중했습니다. 왕의 성향에 따라 마인의 전체 적인 성향도 바뀐다는 중거죠.]
[마인의 사회도 우리와 크게 다르 지는 않네요. 그럼 20년 만에 마인 의 왕이 바뀌었는데 앞으로 어떤 변 화가 생길 거라고 예측하십니까?]
[추측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마 한 달 정도의 시간을 더 지켜봐야 알 수……J
나는 멍하니 뉴스를 바라보다가 이 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도시에서 떠나 내가 도착한 곳은 협회 인근에 위치한 국립 병원이었다.
이곳올 찾은 이유는 단순했다.
하령을 통해 윤하영과 이서준이 이 병원에 있다는 정보를 들었기 때문 이다.
왠지 모를 긴장감을 느끼며 나는 병원 앞의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 다.
그때 귓가에 작은 음성이 들려왔다.
—……왕이시여. 조심하셔야 합니다.
“알고 있어.”
공원 안에는 일반 시민으로 위장한 협회의 요원들이 가득했다.
산책하는 시민…… 벤치에 앉아 책 을 읽는 시민…… 몸이 불편한 둣 휠체어에 앉아 있는 시민까지.
이들 모두가 내가 올 것을 예측하
고 대기하고 있는 요원들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살 벌한 감시에 씁쓸함을 느꼈다.
설마 협회와 이런 식으로 척을 지 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그때 병원의 1층 창문 사이로 익 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침울한 얼굴로 침대에 앉아 있는 윤하영. 그리고 그 앞에는 이서준이 앉아 그녀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반가운 마음과 동 시에 안도감이 느껴졌다.
잘 지내고 있구나.
그 순간 그녀의 시선이 창가를 향 했다.
공원의 풍경을 감상하려는 듯 멍한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 시선이 내 쪽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무언가 의문을 느낀 듯 그 녀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그때 병실 문이 덜컥 열리더니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문소리에 반응한 윤하영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뒤로 향한다.
방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김덕현과 특무 마인 수사팀의 안혜연이었다.
안혜연과 윤하영의 만남.
원작에서도 예고되어 있던 만남이 었기에 나는 그 장면을 바라보며 신 기함을 느꼈다.
많은 게 바뀌었지만 이런 부분은 달라지지 않는구나.
뭐 그리 놀라지?”
김덕현의 말에 윤하영은 고개를 저 으며 다시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공원의 입구 끝.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었다.
익숙한 분위기에 가까이 다가가서 보려 했지만, 잠깐 김덕현에게 시선 이 팔린 사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김덕현은 그런 그녀의 행동에 의문 을 느끼며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음? 밖에 뭐라도 있나?”
“아. 아뇨. 아무것도……
윤하영은 고개를 저었다.
“……뭐, 그래. 몸 상태는 어떤가?”
“많이 좋아졌어요.”
윤하영이 짧게 웃었다.
김덕현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전 병문안의 과정에서 그녀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마의 천적이라 불리는 ‘멸마의 힘’.
그리고 그것을 알고 접근했었던 김 선우.
그 외에도 김선우가 마인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해주었으며, 멸마의 힘 훈련을 위해 함께 마인들을 사냥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덕현은 그 이야기를 듣고 많이 놀랐다.
김선우의 행보가, 어쩌면 그는 마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강하 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근데 옆에 분은……?”
이서준이 김덕현과 함께 온 여성에 게 시선을 돌렸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김덕현은 정 신을 차렸다.
“아. 소개를 안 했군. 특무팀 소속 마인 전담 수사팀, 안혜연 팀장이다. 내 입사 동기지.”
“반가워요. 마인 수사 전담팀, 안혜 연 팀장이에요.”
안혜연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아 름다운 미소에 윤하영은 그녀를 빤 히 바라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아! 하영 학생의 이야기는 저도 들었어요. 멸마의 힘이라는 걸 사용 할 수 있다면서요? 왕을 처치했던 것도 하영 학생이었고요.”
“아, 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윤하 영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저는 마인 수사 요원으로서 윤하 영 학생이 가진 능력에 큰 관심이 있어요. 그리고 하영 학생의 능력이 필요로 하고 있고요.”
갑작스러운 말에 윤하영은 눈을 깜 빡였다.
안혜연은 그런 그녀를 향해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저희 팀으로 오세요. 김선우 찾고 싶으시죠?”
이서준과 윤하영의 얼굴도 보았겠 다 나는 미련 없이 병원을 떠나 장 소를 옮겼다.
많은 미래가 바뀌면서 정리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향한 곳은 김진우의 이름으로 차린 나의 회사, JWK였다.
회사 안으로 들어서자 양태민이 놀 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진우 님? 연락도 없이 웬일입니 까?”
양태민은 나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나는 그를 향해 작게 미소를 지어주
고는 모자를 벗었다.
“잠깐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인사요?”
슬슬 협회에서도 ‘김진우’와 ‘김선 우’의 관계에 대해 수상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수사가 벌써 시작됐을지도 모르고.
더 늦기 전에 미리 김진우와 관련 된 것들을 확실하게 하고 싶었다.
“바빠져서 당분간 찾아오지 못할 거 같거든요. 연락도 힘들 거 같고 요.”
양태민은 표정을 굳혔다.
어딘가 심각해진 내 분위기에 그도 심상치 않음을 느낀 모양이다.
잠시 입을 다물던 양태민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언젠 간 다시 돌아오실 거 아닙니까?”
“네. 돌아올 겁니다. 반드시.”
이건 진심이었다.
나는 김선우. 그리고 김진우로 쌓 아 올린 것들을 이대로 놓칠 생각이 없다. 언젠간 모든 것을 되찾을 것
이다.
“그럼 부탁하셨던 신비 폭탄은 계 속 제조하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아, 그리고.”
나는 품 안에서 작은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혹시 한세연 씨가 찾아오면 이것 좀 전해주세요.”
“..2*
그녀에게 남기는 작은 메시지였다.
직접 연락하고 싶었지만 협회에 추 적될 가능성도 있고, 또 한세진의 일로 협회의 감시를 받는 한세연이
었기에 나와 엮여서 좋을 게 없었다.
그녀의 오빠인 한세진도 마인의 왕 과 교류하다가 잡혀 들어갔는데, 본 인마저 새로운 마인의 왕과 가까운 사이였다는 게 알려진다면 협회에서 도 그냥 넘어가진 않을 테니까.
그녀에게 중요한 시기인 만큼 내 존재가 방해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양태민은 내게서 종이를 받더니 고 개를 끄덕였다.
“네, 반드시 전해드리겠습니다.”
같은 시각.
협회의 끈질긴 조사를 마친 한세연 은 부하 직원과 통화를 하며 차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었다.
—한세진 부회장의 경호였던 엘린 이 김진우에 대해 할 말이 있다며 만남을 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 까요?
엘린?”
기억하고 있는 이름이었다.
한세진과 꼭 붙어 다녔던 호위. 그 리고 김진우와 묘하게 가까운 사이 로 기억하고 있었다.
“으음. 2시간. 아니, 1시간만 기다 리라고 전해주세요. 금방 갈게요.”
—네, 알겠습니다.
끼익.
때마침 한세연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JWK의 사 옥
김진우의 행방이 불명한 지금, 어
쩌면 그의 행방을 알 수 있는 단서 를 얻을 유일한 장소일지 모르겠다 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서자 양태민이 그녀를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 놀람의 정도가 평소와는 달랐다.
“……한세연 본부장님?”
“아, 죄송해요. 연락드리고 왔었어 야 했는데. 잠깐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한세연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 하자, 그가 말했다.
“대표님 방금 나가셨는데……? 혹
시 오는 길에 못 마주치셨어요?”
“……진우 씨가요?”
“네. 방금이요.”
그 말에 그녀의 몸이 본능적으로 밖으로 달려 나갔다.
이렇게 다급하게 몸을 움직인 게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그리고 밖으로 나온 그녀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한발 늦었는지 아무리 둘러 보아도 그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읏.”
“본부장님!”
그때 뒤에서 양태민의 다급한 외침 이 들려왔다.
뒤를 돌자 양태민이 숨을 헐떡이며 그녀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아까 대표님이 오시면 전해드리라 고……
양태민의 손에는 작은 종이 한 장 이 쥐어져 있었다.
한세연은 의문을 느끼며 그가 건넨 종이를 받았다.
[다음에 제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일이 생겨서 약속을 못 지킬 거 같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 려주세요.]
한세연은 그 쪽지를 보며 손에 힘 을 꽉 주었다.
나는 다 알고 있다고!
그 순간.
스으으으으!
어디선가 강한 바람이 그녀의 피부 를 스쳤다.
동시에 그림자가 드리운 것처럼 하 늘이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졌다.
날개를 펼친 거대한 무언가가 하늘 위를 빠르게 지나간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현상에 한세연과 양태 민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보았다.
“……방금 무슨 일이.”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