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2화
작은 불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 두운 공간.
두 사람에게 자초지종 설명을 들은 나는 골이 아파옴을 느끼고 있었다.
우선 이곳은 초대 왕을 기리기 위 해 만들어진 마인의 또 다른 은신처 라고 한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3 일간 잠들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왕의 권능]이 내게
깃들었다고?”
“그렇습니다. 왕이시여.”
하령이 고개를 숙였다. 그에 맞춰 수많은 마인이 어둠 속에서 고개를 조아렸다.
도저히 받아드리기 힘든 상황에 나 는 이마를 매만지다가 말했다.
“……일단 저기 저 사람들, 아니 저 마인들 밖에 내보내 봐.”
내 말을 들은 하령이 몸을 일으켜 뒤를 돌았다. 동시에 어둠 속에 있 던 마인 전부가 모습을 감추었다.
암혹화를 사용하는 것을 보니, 이 곳에 있던 마인들은 어느 정도 능력
을 갖춘 이들인 모양이다.
“명대로 모두 보냈습니다.”
“하아.”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왕의 권능]이 내게 계승되다니.
아무래도 폭주화하며 일시적으로 ‘마인’이 된 사이, 왕의 죽음과 함께 그의 권능이 내게 깃든 모양이다.
무슨 이런 우연이 다 있지?
“왕이시여.”
선화의 부름에 나는 녀석을 바라보
았다.
저 공손한 태도. 아무리 봐도 적응 이 되지 않는다.
“대충 어떤 상황인지는 알겠어. 하 지만 난 인간이야.”
내게 왕의 권능이 생겨났다고는 하 나, 지금의 나는 분명한 인간이다.
‘폭주화’ 없이는 마기를 사용할 수 없을뿐더러, 상처를 입어도 자동으 로 초재생능력이 발동되지 않는다.
물론 이 발언이 내 상황을 악화시 킬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마인에게 썩 좋은 감 정을 갖고 있지 않고, 또 이들의 왕
이 되어줄 생각이 없다.
어찌 됐든, 마인이 인간에게 해가 되는 존재라는 건 사실이기 때문이 다.
그리고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포 기할 생각도 없었다.
하령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가 인간이라는 말에 다른 특별한 반응을 보여주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에게 인 간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을 확인했 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하령의 말은 말을 이었다.
“우리는 초대 왕께 충성을 맹세한 자들…… 그리고 당신은 초대 왕의 원수인 2대 왕을 죽이고 새로운 왕 이 되었습니다. 그것만으로 우리는 당신께 충성할 명분이 생겼습니다.”
말도 안 되는 논리였다.
초대 왕인 ‘예언의 왕’의 복수를 해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충성을 맹세 한다니.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은 예언의 왕의……
하령은 말끝을 흐리다가 고개를 저
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확고한 신념. 그의 생각은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 도 바뀌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때 하령이 내게 말했다.
“그보다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약 2시간 정도의 시간이 흐르
고, 하령과 선화가 방에서 떠나며 나 혼자 남게 되었다.
하령은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 었다.
가장 먼저 들은 건 내가 잠든 사 이 벌어진 바깥세상의 이야기였다.
내가 폭주화를 사용하는 영상이 유 출되며 전 세계 사람들이 나를 마인 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협회에서 나를 수배령에 올렸 으며, 꽤 많은 인력이 추적에 투입 되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조금. 아 니, 많이 당황스러웠다.
설마 전 인류를 적으로 돌리게 될 상황이 올 줄은 생각도 못 했기 때 문이다.
어쩌면 이 일을 계기로 내가 쌓아 온 모든 것들이 무너질 수 있기에 꽤 심각한 사안이었다.
그것 외에 체포된 한세진이라던가 주요 등장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다행히도 이서준 일행에게 생긴 문 제는 없는 모양이다.
—옛 동료들에게는 당분간 접촉하 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협회
에서 이들에게 감시를 붙였습니다.
“……다들 충격 많이 받았겠지.”
폭주화한 내 모습을 보고 그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배신감을 느꼈을까? 아니면, 무언 가 오해가 생긴 것을 알았을까?
그때 내 머릿속에서 폭주화 당시의 희미한 기억이 떠올랐다.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윤 하영의 얼굴...
그리고 혼란스러운 눈빛의 이서준...
“......에휴.”
상황이 이렇게 됐다고 해서 주요 둥장인물과 거리를 둘 순 없다.
내 힘은 이들을 위해 존재한다.
이들이 이야기의 끝에 도달하는 것, 처음부터 내 목표는 그것뿐이었 으니까.
“내 상황부터 파악하자.”
언제까지 이렇게 좌절하고 있을 순 없다.
계획이 꼬여가고 있지만 이 상황을 잘 이용한다면 분명 돌파구는 있을 거다.
나는 외부자의 혜택을 발동하고는 밀린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마기 사용자’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마인의 왕 토벌’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50,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폭주화 2단계 (S)’의 승급 조건을 만족하였습니다.]
[‘폭주화 3단계(SS)’를 습득합니다.]
[표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숭전보의 효과로 모든 능력치가 20%, ‘멸마’, ‘초재생능력’의 등급이 한 단계 상숭합니다.]
전체적으로 마인과 관련된 능력이 상승했다. 그리고 모든 능력치가 무
려 20%나 상승했다.
다음으로 이번에 획득한 능력을 살 폈다.
[왕의 권능(SSS)]
분류 : 특성
설명 : 오직 단 한 명의 마인만이 가질 수 있는 왕의 권능.
[지속 효과]
►전능
초재생능력의 효과가 1,000% 상승 합니다. 또한 주변의 마기를 구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마기를 보다 정밀하게 사용할 수 있고, 흡혈의 효과가 증폭됩니다.
►위엄
높은 확률로 마인에게 존경을 얻습니다.
존경을 얻은 마인은 당신의 수족이 됩니다.
►계승
마인의 고대 마법을 사용할 수 있 는 자격을 얻습니다.
단, 서적과 기록을 통해 스스로 습 득해야 합니다.
“......SSS?”
눈앞에 보이는 SSS라는 문구를 보 자마자 깜짝 놀랐다.
나로서는 최초로 얻은 SSS등급의 특성이었다.
“하긴, 다른 특성도 아니고 왕의 권능인데 당연한 거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성능의 내용을 읽는데 조금 실망감이 들었다.
“뭐야. 이게 끝이야?”
내 생각보다 특성의 내용이 빈약했다. SSS둥급의 특성이라서 조금 기 대했는데.
“그래도 잘 쓰면 괜찮을 거 같기도 하고……
마인을 수족으로 부릴 수 있다는 건 분명 엄청난 강점이 있다.
정확히 어떤 종류의 마법이 있는지 는 모르지만 고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이점이 될 거고.
“……천재 특성도 내용 자체만 보 면 부실하니까. 상관없겠지. 아, 맞 다.”
그때 확인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생각났다.
►마계수의 가호
마력을 감지해 치명적 위기라고 판 단하는 순간 자동 발동합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 365일
“흐음.”
아직 발동되지 않았구나. 혹시 이 번에 이 특성이 발동된 게 아닐까 했는데 다행이었다.
“아직 목숨이 하나 더 남은 건가.”
이번 사건이, 예언가들이 내게 경 고했던 업보 청산이라 생각했는데 다행히 죽지 않고 살아있다.
“근데 이게 업보가 맞나?”
확실히 나에게 있어서는 큰 변화가 생기긴 했다.
마인의 왕이라는 신분을 얻으며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리게 되는 최악의
상황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의문이 하나 남아 있었다.
“……예언에 따르면 업보 청산까지 는 시간이 남은 거로 기억하는데.”
마법사관학교의 졸업식이 가까워지 는 시기.
그 시기가 예언가들이 말하던 나의 업보 청산 날이었다. 하지만 졸업까 지 아직 1개월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다.
“앞당겨진 거라고 보는 게 맞겠 지?”
나는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 다.
“아, 맞다.”
그때 내 머릿속에 잠깐 잊고 있던 것이 떠올랐다.
나는 곧바로 손바닥을 펼쳐 바닥에 마력을 주입했다.
이내 바닥에서 소환 마법진이 구현 되었다.
“웅애!”
“그레텔!”
그레텔은 나를 보고는 짧은 다리로 파바박 뛰어왔다.
3일간 말도 없어 사라져서 그런지, 눈빛에는 걱정이 가득하다.
“응애애애……
내 품 안에서 처량하게 우는 그레 텔의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 그렇게 그레텔을 달래주고는 말했다.
“아 참. 그레텔. 혹시 집에 누가 찾아오거나 하지는 않았어?”
내 물음에 그레텔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마인이라는 오명이 생기면서 기숙사에도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을 까 했는데, 아직 거기까지 찾아오진 않은 모양이다.
“……이야. 진짜 어딜 가도 김선우 이야기뿐이네.”
같은 시각, 자운의 사무실.
백은성은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뉴 스를 보며 탄식하고 있었다.
심심해서 예능이나 볼까 했는데 어 느 채널을 돌려도 죄다 김선우 이야기다.
그 옆에서 굳은 얼굴로 티비를 보 던 나타샤가 대답했다.
“그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잖아. 우
리도 전혀 예상 못 했고.”
“그렇긴 한데…… 쟤는 무슨 양파 도 아니고 까도 까도 계속 나오냐? 심지어 이번엔 마인이래. 우와〜”
적의를 넘어서 이제는 존경심까지 드는 수준이다.
세상에 무슨 저런 녀석이 다 있을 까?
그때 과자를 집어 먹던 스카가 말 했다
“그래서, 김선우 저거 정말로 마인 인 거야?”
“마기를 사용했으니 마인이지!”
백은성의 외침에 진이 끼어들었다.
“내 생각에는 저거 마인 아니야.”
“음? 저게 마인이 아니면 뭔데?”
“그건 모르지. 근데 예전부터 김선 우를 보면서 하던 추측이 있었는데 점점 맞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 네.”
진의 중얼거림에 모두의 시선이 그 를 향했다.
그때 나타샤가 말했다.
“그거 뭘 말하려는지 알 거 같아.”
“나도.”
평소 과묵한 이청도 손을 들었다.
베르트는 침묵을 유지했지만 그녀 역시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백은성은 따돌림을 당하는 기분을 느끼며 미간을 좁혔다.
“뭔데. 왜 나만 몰라? 아니, 그리 고 폭주화를 했는데 어떻게 마인이 아니냐고.”
백은성이 의문에 찬 눈으로 진을 바라보았다.
진은 슬쩍 백은성에게 시선을 돌리 곤 피식 웃었다.
“그럼 역으로 물을게. 마인이 어떻게 룬의 일족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어?”
“.....♦웅?”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 낌이 들었다.
“그러…… 게?”
마인이라고 해서 인간의 마법을 사 용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소수 일족’의 마법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김선우가 정말로 마인이었다면 ‘룬 의 속박’을 사용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인과 소수 일족의 피가 반반 섞 인 것도 아니고.
“김선우는 일족이나 마인의 피 없 이 그들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 같아.”
“……그런 게 가능해?”
백은성의 중얼거림에 진은 뉴스에 대문짝만하게 박힌 김선우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차차 알아봐야겠지. 어쩌면, 그분이 몰래 진행한 실험체일 수 도.”
혼자만의 정비 시간을 마치고 밖으 로 나왔다. 동시에 하령이 내 앞으 로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왕이시여. 필요한 게 있으십니 까?”
왕. 슬슬 적응할 때도 됐는데 언제 들어도 적응되지 않는다.
“답답해서 외출 좀 하려고.”
“……외출은 위험합니다.”
“걱정 마. 기척을 숨기는 건 자신 있어.”
멀리서 주요 등장인물들을 살펴봐 야겠다.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해야 심적으 로 안심이 될 것 같아서.
“아. 그리고 ‘왕’의 자리는 네 말대 로 내가 맡아줄게. 대신 정치라던가 그런 건 난 관심 없으니까 네가 내 대리인을 하든 알아서 해.”
하령은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그를 지나쳐 나가려는 그때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 맞다. 이거 받아라.”
나는 품 안에서 미리 꺼내 두었던 붉은 보석을 그에게 던졌다.
하령은 그것을 받고는 눈을 동그랗 게 떴다.
“이, 이건……?”
“블러드 크리스탈이야.”
마법사관학교의 제주도 수학여행에서 마인에게 강탈한 의료용 신비였다.
인간의 피를 무한정으로 복제하는 효과가 있어 마인의 식량을 보급하 는 역할도 가능하다.
“너희도 살아야 하니 인간의 피를 먹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겠어. 대 신 앞으로 인간을 공격하지 마.”
“……명을 받들겠습니다.”
하령은 고개를 숙였다.
“아. 그리고……
내가 생각난 듯 말하자 하령이 다 시 의문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봤 다.
“너 내 명이면 모두 따른다 했지?”
“그렇습니다.”
“너 육아 좀 해 봤냐?”
«..
하령의 두 눈에 의문이 담겼다.
나는 방금 내가 나왔던 방을 손으
로 가리켰다.
“저기에 애 하나 있는데 나 없는 동안 좀 놀아줘라. 주기적으로 산책 도 시켜주고.”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