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2화
“으아아……
방과 후 마법사관학교의 종합 훈련 장.
계속되는 훈련에 지친 윤하영이 힘 없이 바닥에 드러누웠다.
이내 가쁘게 숨을 내쉬더니 그대로 눈을 감는다.
“선우야아. 나 더는 못해……
그녀는 오늘 나와 함께 6시간 넘 는 [멸마]의 적응 훈련을 소화했다.
나와 달리 각종 회복 특성이 없어 이 루틴을 따라오기는 힘들었을 텐 데, 오직 정신력 하나만으로 끝까지 따라왔다.
거봐. 윤하영 얘도 할 때는 한다니 까.
나는 기특함을 느끼며 미리 준비해 두었던 물을 그녀에게 넘겼다.
“수고했어. 그래도 잘 따라왔네.”
“으응…… 여기저기 몸이 쑤신다 아.”
윤하영은 잠시 상체를 일으키더니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가방 에서 ‘정제된 마나 알약’ 하나를 꺼 내 내밀었다.
“자. 이것도 같이 먹어.”
윤하영은 눈을 깜빡이며 그것을 바 라보더니 물었다.
“그게 뭐야?”
“마나 영약이야.”
“마나 영약?”
윤하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평소 이런 외부 자원의 도움을 받 아보지 못한 그녀였기에 이런 영약 에 대한 개념이 생소한 모양이다.
“훈련 후에 먹는 마나 보충제 알 지? 그거랑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면 돼.”
“아아~ 들어봤어. 근데 이거 엄청 비싼 거 아니야?”
아직 시장에 나오지 않아 정확한 가격은 모르지만, 그레텔의 잎을 사 용해 만들었으니 아마 팔린다면 비 싸긴 할 거다.
거기다 세계 최고의 제약 기술사인 한세연이 직접 만든 영약이기도 하 고.
“……음. 싼 건 아니지. 한 알에 아무리 못 해도 1,000만 원은 할
테니까.”
별 생각 없이 한 말에 윤하영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처, 천? 이 작은 알약 하나가 1,000만 원이라고?”
편의점 음식 하나 아껴 먹는 윤하 영에게는 조금 큰 금액이었을까?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이 느껴 졌다.
괜히 말했나.
부담된다고 거부할 거 같은데.
그리고 내 예상대로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거부의 반응을 보였다.
“……으으. 안 먹을래. 나 이런 거 못 받아.”
“어허. 내 성의 무시하는 거야?”
“그래두……
윤하영은 입을 꾹 다물고는 나를 올려보았다.
그렇게 내 마주하다가 어쩔 수 없 음을 느꼈는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선우야. 나 매번 너한테 받기만 하는 거 같아서 미안해져.”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신경 쓰지 마. 그리고 나 이거 엄청 많아.”
갖고 있는 것만 40알이 넘고, 부족
해져도 한세연에게 부탁하면 더 생 긴다.
“그래도…… 나도 받은 것만큼 너 한테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나는 그 정도 능력이 없어서 속상하단 말 이야.”
진심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왠지 모르게 자존감도 떨어진 모습 이고.
괜한 안쓰러운 마음이 느껴지다가 기특한 마음에 미소가 지어졌다.
“아니야. 넌 이미 충분히 해주고 있어.”
빈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내게 충
분한 도움이 되고 있다.
그녀의 덕에 S등급의 마인과 같은 강력한 빌런을 초기에 처치할 수 있 었고, 또 마인의 왕 같은 빌런을 처 치할 계획도 세울 수 있게 되었으니 까.
“나한테는 네 존재 자체가 큰 도움 이야. 그러니까 미안해 필요는 전혀 없어.”
“......으응?”
내가 너무 낯간지러운 말을 해버린 걸까.
윤하영의 얼굴에 당황의 빛이 감돌 았다. 이내 민망함을 느낀 둣 시선
을 이리저리 돌리더니 외치듯 말했다.
“아, 알았어! 영약 받으면 되는 거 지? 그, 그럼 잘 먹을게?”
“어어. 천천히 삼켜.”
윤하영은 쭈떗쭈뼛 내게서 영약을 받더니 그대로 입안에 털어 넣었다.
꿀꺽.
영약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그 녀의 표정이 잠시 일그러졌다.
“……웃?”
영약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당연하게 나오는 반웅이었다.
외부의 마나가 자신의 몸에 퍼져나 간다는 것은 그리 익숙치 않을 테니 까.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천천히 호흡하면서 마나를 제어 해.”
윤하영은 괴로운 얼굴로 고개를 끄 덕이더니 마나 연공을 위한 가부좌 를 틀었다.
나는 그녀의 등 뒤로 다가가 마나 제어를 보조했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윤하영은 영약의 마나를 자신의 것 으로 소화하는 데 성공한 듯 가부좌
를 풀었다.
“......후우.”
“어때? 뭔가 달라진 게 느껴져?”
자신의 두 손을 내려 본 윤하영이 몸 안에서 느껴지는 새로운 마나를 느끼려는 둣 잠시 눈을 감았다.
“응. 몸 안에서 마나가 날뛰는 게 느껴져. 신기하다.”
“그 기운, 감각. 잊지 말고 잘 기 억해.”
내 말에 윤하영이 고개를 들며 나 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방금 먹은 영약, 3일 간격으로 먹 게 될 예정이니까.”
“……응? 자, 잠깐. 선우야. 3일 간 격이라고?”
윤하영의 두 눈이 다시 한번 크게 떨렸다.
윤하영과의 밤샘 훈련을 성공적으 로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훈련을 빽세게 했더니 몸
이 피곤하다.
그렇게 복도를 걸어 기숙사 문 앞 에 도착했는데 웬 작은 택배 하나가 놓여 있었다.
“뭐야. 내가 뭘 주문했었나?”
택배를 들어 올려 이름을 확인했다.
[서울 마법사 협회 특수정보부]
“아. 정보팀이구나.”
브하마 제국의 인공 신비를 찾는 데 도움을 줘서, 선물을 보내준다고
했는데 그게 오늘 온 모양이다.
나는 상자를 들어 올렸다.
안이 텅 비었는지 무게는 상당히 가볍다.
“뭐지.”
아무래도 영약 세트는 아닌 거 같 은데.
나는 의문을 느낀 채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가 어두운 걸 보니 그레텔이 불을 끄고 잠든 모양이다.
그레텔이 깨지 않게 조심스레 움직 이며 소파에 앉고는 상자를 개봉했
다.
그리고 그 안에는.
“......카드?”
검은색의 카드 하나가 있다.
뭔가 싶어서 들어 올리니 ‘특수정 보부 5급 요원증’이라는 글귀가 고 급스럽게 적혀 있다.
나는 카드 뒤에 숨겨진 쪽지를 보 았다.
[안녕하세요. 김선우 학생. 프로 마법사 자격중 시험에서 총 시험관을 맡았던 정보팀 2급 요원 양지태입니
다. 예상치 못한 선물에 많이 놀랐 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쪽지를 천천히 읽어내렸다. 또박또박 써진 손글씨.
S등급 마법사, 양지태가 직접 쓴 쪽지 였다.
나는 계속해서 읽었다.
[이 카드는 3개월간 사용할 수 있 는 정보팀의 임시 직원증입니다. 협 회 내부의 정보팀에게 허락된 특수 시설을 이용할 수 있으며, 야외 활 동 시 각종 혜택이 추가적으로 제공
됩니다.]
“아. 임시 직원중이구나.”
단순히 영약 세트가 올 줄 알았던 나에게는 조금 의외의 선물이었다.
그리고 이 선물에 담긴 의미를 나 는 읽을 수 있었다.
나를 정보팀으로 데리고 오고 싶다 는 의미였다.
설마 이렇게까지 표현할 줄은 몰랐 는데.
“근데 정보팀에는 갈 생각이 없는 데.”
특수정보부.
마법사 협회에서 특무팀과 함께 가 장 큰 기관으로 이름 그대로 ‘정보’ 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팀이다.
그들이 다루는 정보에는 ‘테러’, ‘마인’, ‘마수’. 뿐만이 아니라 술식. 혹은 미해결된 사건이나 신비에 대 해 다루기도 한다.
거기다 다수의 s등급 마법사들이 소속되어 있어 ‘무력’에서도 특무팀 에 크게 밀리지 않은 강력함도 있 다.
“……그래도.”
내게는 특무팀 만큼 의미를 가진
집단은 아니었다.
정보를 전문적으로 다룬다고는 하 나, 결국 원작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특무팀에 합류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무팀에서도 웬만한 정보 는 전부 다룰 수 있기도 하고.
“메리트는 없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카드를 다시 매 만졌다.
검은빛의 고급스러운 카드.
영약 세트를 예상했던 나에게는 상 당히 만족스러운 선물이었다.
비록 5급 요원증이라고는 하나, 정 보팀 소속인 만큼 각종 혜택이 있어 양질의 서비스를 얻을 수 있으니.
무엇보다 이 카드가 있다면 협회의 특수 정보 시설인 기록 보관소, ‘아 카이브’를 이용할 수 있다.
이전에 ‘정령 실체화 술식’을 얻기 위해 몰래 아카이브를 사용하러 갔 다가 CCTV에 걸려 되돌아갔던 기 억이 떠올라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맞다.”
그러고 보니 프로 시험도 끝났겠 다, 이제 곧 ‘실습’ 일정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나는 스마트 학생 수첩을 켜고는 일정표를 살폈다.
[목요일. 3학년 현장 실습.]
“내일모레네.”
♦ ♦ ♦
……이틀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
다.
이제는 초겨울이 지나 완전한 겨울 이 찾아온 게 아닐까 싶을 만큼의 쌀쌀한 추위가 시작되었다.
기상청에서는 내일 낮은 확률로 눈 이 내릴 수도 있다는 예고를 보낼 정도였다.
이런 한겨울의 추위를 겪고 있으니 3학년의 마지막이 다가왔다는 게 새 삼 느껴져 괜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오랜만에 협회의 ‘실 습생’ 신분으로 특무팀에 방문했다.
“김선우〜 오랜만이네~ 잘 지냈엉? 프로 시험 봤다며?”
“선우 후배~ 톡 보낸 거 답장 안 해도 되니까 읽기라도 해. 92일 전 에 보낸 메시지 아직도 안 읽었더 라. 응?”
출근하자마자 나를 알아본 특무팀 의 직원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 다.
몇 달 사이에 꽤 많은 일이 있어 서 그런지 나를 향한 태도가 전보다 더 살갑다.
그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네자 어 디선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김 선우.”
목소리의 주인은 이서준이었다.
출근 마감까지 30분이나 남았는데 미리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 다.
“일찍 왔네.”
“옹. 오랜만의 실습이잖아.”
나는 그의 옆자리에 앉으며 내 옆 옆 자리에 앉은 유아라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나를 슬쩍 바라보더 니 말했다.
“안녕.”
“어, 안녕.”
그렇게 간단한 인사를 모두 마치자
이서준이 말했다.
“오랜만의 실습이네.”
“뭐, 그렇지. 당분간 실습 일정이 대부분이잖아.”
프로 자격중 시험이다. 뭐니 현장 실습 일정이 뒤로 많이 밀렸다.
기말시험 기간이 시작되기 전까지 는 아마 실습 일정으로 가득하겠지.
참고로 이번 실습 기간은 ‘마인 사 건’. 그리고 한성가의 협력관계 조 사를 주로 다룰 것이다.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원작의 전 개를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스마트 학생 수첩을 확인했다.
[네 말대로 협회에 정보를 홀렸다.]
하령에게 온 메시지.
왕의 움직임에 맞춰 ‘왕’에 대한 정보와 십마회의 정보를 협회에 홀 려달라는 부탁을 했었다.
아마 협회에서는 지금 하령이 뿌린 정보를 주웠겠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 김덕현이 안으
로 들어서며 말했다.
“정보팀으로부터 마인의 비밀 단 체. 그리고 놈들의 머리에 대한 단 서를 얻었다. 바로 회의할 거니 모 두 모여라.”
“……엥? 마인 단체? 설마 십마 회?”
요원들은 당황한 목소리로 중얼거 렸다.
이서준 역시 오랜만에 실습인데 꽤 큰 사건인 둣 보이자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예상되던 흐름이었기에 나는 차분 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렇게 회의를 위해 우리는 한자리 에 모였다.
“간단하고 빠르게 브리핑하겠다.”
김덕현은 홀로그램을 켜고는 입을 열었다.
“오늘 새벽, 정보팀으로부터 마인 단체에 대한 정보를 습득했다.”
마인 단체라고 한다면 ‘십마회’를 말한다.
협회에서는 어렴풋이 알고 있는 이 름이지만 정확한 실체까지는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래. 십마회. 너희 모두가 알고
있는 그것이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언제나 어둠 속에 숨어있던 그들이 었기에 십마회 같은 거대 마인 단체 에 대해 다루는 것은 거의 처음일 것이다.
“우선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십마 회에겐 ‘왕’이라는 우두머리가 있다. 이 ‘왕’은 현재 2대째로 계승되고 있다고 한다.”
“잠깐. 왕이 있는 건 알았는데 그 게 계승되고 있었어요?”
한 요원이 물었다.
“그렇다고 한다. 계승이 어떤 식으
로 이루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인의 왕의 계승.
일종의 신비로운 현상 같은 것이다.
왕이 죽으면, 그 시점에서 가장 강 한 마인이 다음 ‘왕’으로 등극한다.
내 예상이 맞다면, ‘하령’이 다음 왕이 되지 않을까?
“그런데 그 정보들은 어디서 얻은 건데요? 보통 정보가 아닌데 출처가 있을 거 아닙니까?”
“그건 모른다. 정보팀의 말에 의하 면 어디선가 의도적으로 정보를 홀 린 것 같다는 의견을 내더군. 하지
만 이것 역시 확실한 건 아니야.”
역시 정보팀인가.
하령이 어떻게 정보를 흘린 지는 몰라도 정보팀은 어느 정도 눈치를 챈 모양이다.
물론 크게 상관은 없지만.
하지만 그 말에 요원들 사이에서 잠시 소란이 일었다.
“……정보를 의도적으로 흘렸다고? 대체 누가?”
“설마 마인인가? 아니면 뭐지?”
김덕현은 그들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건 모른다. 함정이 아닐까 의심 이 들기는 하지만 정보의 신빙성이 없는 건 아니거든.”
그러고서는 말을 이었다.
“내 생각에는 십마회 내부에 배신 자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