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5화
이건 오늘 있었던 나, 한세연의 기 억.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 는군.]
신비의 설명에 나는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나에게는 남들 에게 없는 ‘자유’라는 힘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힘의 출처는 완전한 자 유를 가진 ‘특별한 누군가’에 의해 얻은 것이고.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겠어 요. 자유라는 게 정확히 뭘 말하는 건가요?”
[정해진 운명…… 그리고 세계의 법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특별 한 권능이라 할 수 있지.]
신비가 이어서 말했다.
[이렇게 설명해봤자 너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의미로 네 이해 를 돕기 위해 한가지 거래를 제안하 겠다. 네 기억과 내 지식의 일부를 교환하는 건 어떤가?]
내 기억과 신비의 지식 일부를 교 환한다고?
“……그건 제 기억 전부와 그쪽의 지식 일부인가요?”
[그렇다. 참고로 말하자면 내게 기 억을 준다고 해서 네가 기억을 잃는 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지식의 일부를 얻는다. 이게 과연 맞는 조건일까?
[걱정할 건 없다. 네가 내게서 어 떤 정보를 원하는지는 알고 있으 니.]
좋아요. 거래하죠.”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갈 순 없다.
[좋다. 그럼 거래를 시작하지…….]
그때 거대한 눈의 앞에서 희미한 빛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것은 이내 내 몸속에 스며들었다.
“……읏!”
동시에 내 머릿속에 수많은 지식이 내 머릿속을 헤집었다.
세계의 비밀. 운명을 바꿀 수 없는 인류의 한계. 그리고 한계를 무시해
버리는 자유라는 힘…….
계속해서 이어지는 방대한 정보량 에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기분이 들 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식의 전송이 끝났다.
나는 얻은 지식을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신비를 통해 알게 된 이 세계는 지금까지 내가 알던 것과는 너무나 도 달랐고 충격적이었다.
인간에겐 자유의지란 없었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 미래를 개척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마치 게임 속 NPC처럼 정해진 운명대로 살아 가는 그런 존재였다.
“......흐윽.”
동시에 울컥함이 치밀어 올랐다.
지금까지 내 피나는 노력은 무엇이 었는가?
나는 지금까지 한성제약의 부홍과 내가 가진 제약 기술이 모두 나의 노력 끝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한성가의 주인이 되기 위해 해왔던 나의 행동 역시 내 신념과
의지가 바탕이 되었다고 믿고 있었 고.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나는 그저 그렇게 설계되어있는 기 계나 마찬가지였다. 한성가를 차지 하려고 하는 욕심 많은 역할을 가진 기계.
[……으으음. 그렇군. 그런 건가. 호오.]
그렇게 허탕함과 허망함을 느끼고 있던 그때, 신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올리자 신비는 내 기 억을 살피며 흥미를 느끼는 듯한 반 응을 보이고 있었다.
[……이제 알겠군. 네게 자유의 힘 을 준 자가 누구인지.]
……자유의 힘. 나는 이제 신비가 말하는 자유란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신비가 내게 자 유의 힘이 있다고 했는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나는 운명대로 살아가는 인간일 뿐
인데 왜 내게 자유의 힘이 있다는 거지?
내 의문을 눈치챈 듯 신비가 말했다.
[너는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 자 유로운 상태다. 물론 일시적인 현상 일 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은 그러하 지.]
“……그게 무슨 말이죠?”
[네 주변에 운명에서 완전히 벗어
난 특별한 존재가 있다. 자세히 말 할 순 없지만, 그자는 자신이 가진 자유의 힘을 통해 주변 사람들의 운 명까지 바꾸고 있지…….]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 고?
그게 누구지?
혼자 추리하던 그때, 내 머릿속에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설마.”
[흐흐흐…… 네가 생각하는 그자가 맞다. 자세히 설명할 순 없지만 너 는 그자의 선택을 받았고 정해진 운 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특혜를 얻었 지. 네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변하 게 될지는 모르지만, 자유를 만끽 하……]
……그 순간 세계가 새하얗게 물들 기 시작했다.
아니, 세계가 물드는 것이 아니었다. 새하얀 빛이 내 앞에 뿜어지며 소리, 시야, 감각. 모든 것을 집어삼 키고 있었다.
그리고一
번쩍!
빛이 번쩍임과 동시에 익숙한 천장 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느껴지는 침대의 감촉과 시 끄럽게 울리는 알람 소리.
언제나 같은 평범한 하루의 시작점 이었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천장을 바라보 다가 식은땀을 천천히 닦으며 몸을 일으켰다.
시계를 확인하니 오전 6시 40분.
순간 머릿속에 방금 꾸었던 꿈…… 아니, 어제 무인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다시 생각해도 어제의 나는 믿기 힘든 일을 겪었다.
—띠리리리링!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을 끄고는 침 대 밖으로 걸어 나왔다.
“o o으”
-1 W .
협탁 위의 물 한잔을 마시자 몽롱 했던 정신이 순식간에 맑아졌다.
그 후 스마트폰을 쥐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톡톡 메시지를 입력했다.
……전송 완료.
그럼 이제 출근 준비해야지.
[미래에 커다란 격변이 생겼습니다.]
[당신의 영향으로 거대한 존재감을 가진 누군가의 운명이 완전히 뒤바 뀌었습니다.]
[인과율이 3 상승합니다.]
이른 아침.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는데 웬 메시지 하나가 떠올라 있었다.
인과율의 상숭.
그런데 지금까지 보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누군가의 운명이 완전히 뒤바뀌었 다고 한다. 그것도 나의 영향으로.
나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메시지 를 다시 살펴보았다.
“……인과율 3은 이번에 처음 얻는
거 같은데.”
지금까지 사건에 개입하여 얻은 인 과율은 높아봤자 1.5 수준이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3을 넘어서는 인 과율을 한 번에 얻었다.
대체 어떤 일이 있었길래 이 정도 의 인과율이 들어온 거지?
“어제 내가 뭐 했더라.”
기억을 더듬어보는데 어제 이것저 것 많은 일을 하기는 했다.
크루아스 처치를 위해 양태민을 찾 아가 무기 제작을 의뢰했고, 한세연 을 만나 그레텔의 영약. 그리고 200 년 전 나무 괴물에 대한 단서를 얻
었다.
그리고…… 마계수의 열매를 먹고, 이서준 일행을 만나 잠깐의 대화시 간을 가졌고.
“……흐음. 누군가의 운명을 바꿀 만한 일은 한 거 같지는 않은데.”
이곳저곳 돌아다니기는 했지만 진 짜로 별일 하지 않았다.
진짜로.
수많은 의문이 머릿속에 사로잡았 지만 금세 머릿속에 지웠다.
언제나 그렇듯 별다른 단서 없이 혼자 추리해봤자 답은 안 나온다.
—띠리리리링!
“아오. 시끄러.”
탁!
알람을 끄고는 침대 밖으로 나왔다.
스마트폰을 켜자 웬 메시지 하나가 도착해 있다.
[진우 씨. 오늘 하루도 힘내요.]
한세연에게 온 메시지다. 나는 피 식 웃으며 답장했다.
[네, 세연 씨도 힘내세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는 커튼을 젖 히자 눈부신 아침 햇살이 보였다.
“날씨 좋네.”
서울 마법사 협회 최상층. ‘회장 실’.
“검귀 장수기의 지지로 현재 한성
가의 차기 주인 자리가 한세연으로 기우는 추세입니다.”
김진철은 창밖의 도심을 내려보며 한성가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었다.
“지지 기반이 없어 한세진이 유력 할 거라 생각했는데 설마 장수기 하 나로 이렇게 뒤집히다니……
한성가의 차기 회장 자리는 최강의 마법사라 불리는 김진철마저 깊은 관심을 갖는 주제였다.
우선 한성가가 협회 다음가는 가장 거대한 세력이기도 했고, 또 그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세계에 큰 혼란과 위험을 줄 수 있는 강한 힘을 갖고
있어서이기도 했다.
또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막강한 힘을 이용해 음지에서 아무도 모르 게 불법적인 일을 수도 없이 저질렀다.
워낙 교묘하게 일을 저질러왔기에 증거를 찾을 순 없었지만 협회는 항 상 벼르고 있었다.
한성가가 큰 실수로 꼬리를 잡혀주 기를.
김진철이 이서준을 한대현의 장례 식장에 데려와 사람을 보라고 한 것 도 한성가의 위험성을 알려주기 위 함이었다.
“회장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 까? 한세진과 한세연. 둘 중 누가 되는 게 좋아 보입니까?”
“당연히 한세연이 낫지. 악하기 그 지없는 망나니가 한성가를 차지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선천적으로 악한 한세진과 달리 한 세연의 성격은 매우 온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전문 분야인 제약에 몰두하 는 노력가이기도 하고 또 법을 중요 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까.
“……만약 변수가 있다면 한세연이 우리의 적이 된다는 건데.”
한세연은 나이에 맞지 않는 뛰어난 노련함을 갖고 있다.
일개 제약 회사였던 한성제약을 정 상급 기업에 올려놓은 것은 그녀의 능력이었으며, 또 신중한 성격으로 인해 남들에게 절대 자신의 약점을 보이지 않는다.
만약 ‘적’이 되었을 때 누가 더 까 다로운가를 생각한다면 그건 당연하 게도 한세진이 아닌 한세연이었다.
“……그런 일은 없길 바라야겠지.”
그렇게 중얼거리던 김진철이 고개 를 획 돌리며 물었다.
“아, 근데 크루아스 그놈은 아직도
못 찾았나?”
2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주요 등장인물들과 함 께 합동 훈련을 하며 개인 기량을 끌어 올리는 데에 집중했고, 동시에 협회와 한성가. 그리고 마인, 자운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다행히 특별한 사건이라고 할만한 것은 없었다.
그나마 찾자면 한성가가 한세연을
중심으로 새로운 흐름의 바람이 불 고 있다는 정도겠지.
참고로 한세진은 어느 순간 소식이 끊겼다.
출근은 하고 있기는 한 것 같은데 그 어떤 여론몰이도 하지 않고 가만 히 있었다.
분명 무언가 일을 저지르려는 것 같기는 한데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없어서 조금 걱정된다.
그리고 오늘.
“프로 마법사 자격증 시험장입니다. 여기에 수험표를 찍어주시면 됩 니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프로 마법사 자 격증 시험이 시작되었다.
장소는 미리 공지되었던 충북에 있 는 ‘프로 마법사 시험장’이었다.
“와아. 진짜 사람 많다.”
시험장을 둘러보는 윤하영의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거대한 건물 앞에 줄을 선 수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다.
시험을 보는 수험생부터 시작해서 길드 스카우터, 협회 관계자, 관람객 둥 끝도 없었다.
“으…… 너무 떨리는데. 어떡해?”
어딘가 불안한 표정으로 윤하영이 중얼거렸다.
“연습한 대로만 해. 합격은 확정이 니까.”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윤하 영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는 입구에 다가섰다. 시험 관계자가 앞에서 우리를 맞이 했다.
“어? 김선우 학생 맞죠?”
“아, 예……
“우와. 오래전부터 팬이었어요. 아! 수험표를 여기 홀로그램에 찍어주시
면 됩니다.”
윤하영이 먼저 수험표를 홀로그램 에 찍었다. 동시에 기계음이 들려왔다.
[251 번 윤하영.]
“오. 됐다. 선우야 너도 빨리 찍 어.”
나 역시 수험표를 들고 홀로그램에 가져다 대었다.
[252번 김선우.]
그렇게 인증을 받은 뒤 우리는 마 도구를 이용해 손등에 마법 술식을 심었다.
5일간 유지되는 일종의 바코드와 비슷한 것으로 시험의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수험생의 정보가 담 겨 있는 코드였다.
“모두 끝났습니다. 오른쪽 통로로 이동하시면 강당이 있습니다. 거기 서 대기해주시면 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직원이 안 내한 통로로 이동했다.
길이 복잡했지만, 이전 삶에 다녀
온 기억이 있어 쉽게 목적지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장소는 거대한 강당 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모인 500명에 가 까운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야. 저기 김선우다.
—진짜네.
내 등장과 동시에 강당 안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최근 시험마다 자주 겪었던 상황이
기에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선우야. 번호대로 줄 서야 하나 봐.”
“맞아. 우리가 250번 대지?”
“웅. 250번 대 줄이…… 아. 저기 네.”
윤하영이 가리킨 곳에 250이라고 적힌 피켓이 보였다.
우리는 곧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줄을 서고는 주변을 둘러보 았다.
“250번 대는 사람이 별로 안 왔 네.”
“곧 오겠지.”
바로 그때 우리 앞에 먼저 줄을 선 사람이 우리의 목소리를 들은 듯 뒤를 돌았다.
동시에 보이는 익숙한 얼굴. 녀석 은 나를 보더니 눈을 찌푸린다.
“……뭐야. 김선우?”
녀석의 부름에 나 역시 그를 빤히 바라봤다. 눈이 마주치자 녀석이 살 짝 어깨를 움츠렸다.
“어, 안녕.”
녀석은 유성진이었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