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4화 (393/535)

394화

“……여기가 그 섬인가?”

김진우와의 만남 이후, 한세연은 검귀와 함께 전용기를 타고 태평양 어딘가에 숨겨진 작은 무인도에 도 착했다.

바람 소리만이 들려오는 고요한 공 간.

인류의 손 하나 타지 않았는지 주 변에는 온통 숲으로 가득했다.

한세연은 경계에 찬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물었다.

“수기 아저씨는 여기 와보신 적 있 으세요?”

“25년 전에 회장님의 호위로 방문 한 적이 있습니다.”

25년 전이라.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의 과거이다.

아버지가 수기 아저씨와 항상 함께 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 섬은 25년 이라는 시간 동안 방치되고 있었다 는 건데.

“수기 아저씨도 이곳에 뭐가 숨겨 져 있는지 모른다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회장님께서 지하에는 항상 혼자 들어가셨으니까요.”

검귀는 주변을 잠시 둘러보다가 말 했다.

“길은 기억하고 있으니 제가 안내 하겠습니다.”

“네, 부탁할게요.”

그렇게 검귀의 안내에 따라 한세연 은 숲을 걸었다.

중간중간 야생 몬스터의 기척이 느 껴졌지만 검귀에게서 뿜어지는 기운 에 겁을 먹고 도망쳤기에 크게 위험 한 일은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검귀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입니다.”

그들이 도착한 장소에는 사각형의 새하얀 건물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한세연은 멍하니 그 건물을 바라보 았다.

왠지 모르게 일반적인 건축물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묘한 신비감을 주는 분위기…… 그 러니까 마치 유적지와 비슷한 느낌 이 든다고 해야 할까?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이 섬을 어떻게 발견하신 걸까? 이런 곳에 숨겨져 있으면 찾 기 쉽지 않았을 텐데.

혼자 생각에 잠겨 있는데 검귀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지하로 통 하는 계단이 있습니다.”

“아. 네, 그럼 바로 들어가요.”

한세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 뒤에서 검귀가 말했다.

“아뇨. 저는 여기서 대기하겠습니다.”

한세연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네?”

“과거 회장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 었습니다. 오늘과 같은 날이 오게 된다면, 반드시 흔자 들어가게 하시 라고.”

“……아버지가요?”

한세연은 잠시 놀랐다.

내가 이곳에 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건가.

“으음. 아버지의 말씀이라면 어쩔 수 없네요. 그럼 다녀올게요.”

“조심히 다녀오시죠.”

고개를 끄덕인 한세연은 건물의 문 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는 어둠으로 가득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로 앞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하나가 있었는데 이곳이 검귀가 말 한 공간이라는 것을 바로 눈치챘다.

한세연은 스마트폰의 후레쉬를 이 용해 어둠 속을 밝혔다.

왠지 모를 초조함과 두려움이 느껴 졌지만 작게 한숨으로 털어내고는 천천히 계단으로 내려갔다.

뚜벅뚜벅.

……그렇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 렀을까.

그녀는 어느덧 계단의 끝, 좁은 복 도로 이어지는 통로에 도착했다.

그녀는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술식?”

복도의 벽에는 수많은 술식으로 가 득했다.

술식에 대한 지식이 뛰어나지 않았 기에 해석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평 범한 공간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한세연은 짧게 숨을 내쉬고는 끝없 이 이어지는 통로를 걸었다.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통로의 끝 에 도착했다.

웬 벽 하나가 길을 막고 있었다. 벽에는 수많은 술식과 별이 그려져 있고, 그 중앙에는 사람의 실루엣이 그려진 그림이 있었다.

“이게 뭐지?”

한세연은 멍하니 그림을 바라보았 다.

자세히 보니 알고 있는 그림이었

신비 전시회에서 보았던 ‘다른 세계에서 온 신’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었다.

몇몇 유적지에서 같은 그림이 발견 되어 많은 신비 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우연히 그녀의 눈에 벽에 조 그맣게 나 있는 작은 홈을 발견했다.

“이 구멍……

이내 품 안에서 주머니를 뒤적거리 더니 아버지의 책에 끼어있던 열쇠

를 꺼냈다.

슬쩍 홈에 열쇠를 가져다 대니 크 기가 얼추 비슷하다.

그녀는 확신했다. 이것이 막힌 벽 의 너머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열쇠 라고.

한세연은 열쇠를 그대로 안에 꽂아 넣었다.

철컥!

우우우우웅!

벽에 그려진 수많은 술식에서 새하 얀 빛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신비한 기운이 뿜어지더니 그녀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一

그 강렬한 빛은 한세연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꺼먼 공간에 있었다.

잠시 당황했지만 한세연은 침착하

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모종의 힘에 의해 다른 공간에 도착한 것 같았다.

그때 였다.

번쩍!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거대한 눈 하나가 튀어나왔다.

한세연은 깜짝 놀라 뒷걸음질했다.

“......눈?”

[너는 자격을 얻기 위해 나를 찾아 왔구나.]

이어서 머릿속에 울리는 기괴한 목 소리.

살아있는 누군가가 육성으로 내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거대한 눈은 그녀를 내려보고는 말 했다.

[이전에 나를 찾아온 그 인간과 같 은 피가 흐르는 군…… 그자의 혈육 인가.]

눈의 혼잣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눈올 찌푸리게 만드는 기괴한 모습 에 한세연이 침을 꿀꺽 삼켰다.

“다, 당신은 누구신가요?”

[……나 말인가? 나를 어떻게 정의 해야 할까. 인간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비’라고 하는 게 맞겠지.]

……신비라고? 설마 내가 아는 그 신비?

그리고 신비는 거대한 눈을 깜빡이

더니 말했다.

[그나저나 신기하군…… 네게 강한 자유의 힘이 느껴진다. 평범한 인간 이라면 절대 얻을 수 없는 강한 자 유의 힘이…….]

자유의 힘? 그게 뭐지?

거대한 눈은 한세연을 내려보고는 말했다.

[네게 흥미가 생겼다. 거래를 제안 하지. 네가 원하는 답을 알려줄 테

니 네가 가진 자유의 출처를 알고 싶다.]

밤 10시의 늦은 밤.

잠깐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슬리퍼 차림으로 편의점에 다녀온 나는 검 은 봉지 하나를 손에 든 채 기숙사 로 돌아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 가 들려왔다.

—우와아! 신기하다!

“……윤하영?”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걸어가 니 공원에 주요 등장인물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는 이서준과 계약한 빛의 정령이 있었다. 보아하 니 정령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 있던 모양이다.

근데 얘네 오전부터 같이 훈련했다 고 들었는데 설마 지금까지 같이 있 었나?

—서준아. 얘 마법도 사용 가능해?

—응’.

이서준이 신호를 주자 빛의 정령이 구경거리가 된 것에 마음에 들지 않 는 듯 팔짱을 꼈다.

[귀찮게 진짜. 마지막이야!]

그렇게 말한 정령이 자신의 손바닥 위에 5개의 조그마한 빛의 구체를 구현했다.

그 모습을 본 모두가 입을 벌리며 짝짝짝 박수를 친다.

—와아아아!

—대박!

그리고 정령은 팔짱을 끼더니 고개 를 치켜올린다.

[……흐, 홍. 겨우 이런 거 가지고 놀라기는. 하나 더 보여줘?]

아까는 귀찮다던 정령은 내심 기분 이 좋았는지 이번에는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다시 마법 묘기를 선보였다.

그때 윤하영이 나를 발견하고는 크 게 손을 혼들었다.

—어? 선우야!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쪼그려 앉아 구경하던 최서윤은 벌 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손을 흔들

었다.

“선배님! 여기로 와요!”

나는 잠시 머리를 긁적이다가 그들 에게 다가갔다.

“너네 지금까지 같이 있던 거야?”

“어쩌다 보니 훈련이 조금 길어져 서요. 선배님은 오늘 일 있다고 하 시더니 잘 해결했어요?”

“웅. 잘 끝내고 왔어.”

내 안부를 묻는 최서윤에게 가볍게 미소를 지어주고는 이서준에게 시선 을 돌렸다.

“정령이랑 좀 친해졌어?”

“응. 처음부터 날 잘 따랐으니까. 이름도 있더라. 루나래.”

[…….]

정령은 팔짱 낀 눈으로 나를 바라 보았다.

이전과 같이 나를 탐탁해하지 않은 듯한 반응이다.

아무래도 자신을 향한 관심이 내게 옮겨져서 그런 것 같은데.

그때 정령이 내게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다.

[……너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 분위기?”

[……어. 냄새라던가, 기운. 이런 것들이 엄청 바뀌었어. 어떻게 하루 사이에 이렇게 변할 수 있지?]

나는 멍하니 눈을 깜박이다가 킁킁 내 몸의 냄새를 맡았다.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 뭐지.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예민 한 감각을 지닌 정령의 말이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어떻게 바뀌었다는 건데?”

[전에는 조금 칙칙한 기운이 풍겼 다면 지금은…….]

정령이 말끝을 흐리더니 부끄러워 하는 얼굴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 렸다.

[조, 조금 내 취향으로 바뀌었다고 해야 하나?]

“옹?”

정령의 말에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제만 해도 내 얼굴(?) 보고 기겁 하던 녀석이 이제 와서 왜 이런 데?

그렇게 달라진 정령의 반웅에 의아 함을 느끼고 있는데 머릿속에 한 가 지 생각이 스쳐 갔다.

……설마 마계수의 가호 때문인가?

마계수의 가호의 하위 능력에 ‘자 연 교감’이라는 것이 있다.

정령이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긴 하 지만, 자연에 대한 감정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하룻밤 사이에 내게 생긴 변화라면 이것밖에 없었다.

[.….]

정령은 힐끔힐끔 부끄러움에 찬 얼 굴로 나를 훔쳐보더니 말했다.

[……뭐지? 나 두근두근거려. 어떡 해.]

정령이 양손으로 자신의 양 뺨을 감싸 안았다. 마치 사랑에 빠진 소 녀와 같은 모습이다.

그리고 정령의 행동에 모두가 당황 한 표정을 지었다.

이서준도 이 상황이 곤란한 듯 볼 을 긁적였다.

계약자를 앞에 놓고 다른 사람에게 호의를 보내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짓이었으니까.

[혹시 계약 못 바꾸나?]

계약 관계는 특별한 사유가 있지 않은 한 무단파기가 불가능하다.

어휴. 그러게, 누가 날 거부하래?

사람보는 눈이 없구만.

나는 피식 웃으며 정령에게 말했다.

“야. 이미 늦었어.”

내 말에 정령이 울상을 지었다.

[으아앙……! 내가 왜 그랬지?]

그 순간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관계 역전’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무인도에 숨겨진 작은 건물 안에서 한세연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녀의 둥장에 검귀가 자연스럽게 다가가 그녀를 살폈다.

다른 위험한 일은 없었는지 외형은 깨끗했다.

다만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는지 그녀의 얼굴에는 깊은 어두움이 보 였다.

“아가씨?”

검귀의 부름에 한세연이 그를 올려

보았다. 그 눈빛에는 깊은 우울감. 그리고 혼란이 담겨 있었다.

“혹시 안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한세연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 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있었어요. 그것도 평생 잊지 못할 특별한 일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죄송해요. 그건 말할 수 없어요.”

그 대답에 검귀는 25년 전 한대현 과 이곳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한대현 회장이 했던 대답도 지금과 같았다.

대체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이길래 이런 반웅을 보이는 걸까?

많은 의문이 검귀의 머릿속을 헤집 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럼 안에서 아가씨가 원하는 것 은 얻었습니까?”

“원하던 것……

한세연이 말끝을 흐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얻었어요. 생각했던 것 이상으 로 많이.”

한세연은 방금 있었던 일들을 다시 떠올렸다.

신비와의 만남.

그리고 신비에게서 정말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 세계에 숨겨진 법칙과 비밀. 그 리고 자신이 갖고 있는 자유의 힘과 그 힘의 출처.

……그리고 신비마저 깊은 관심을 갖는 김진우의 특별함에 대해서.

“만약......

한세연의 말에 검귀가 시선을 돌렸다.

“자유를 위한 투쟁과 지금의 삶에 순응하는 것을 선택하라면 뭘 선택 하실 거예요?”

난해한 질문에 검귀는 턱을 매만졌다.

“……으음. 저는 자유를 위한 투쟁 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그 여파로 세계에 큰 혼란이 찾아 온다고 하더라도요? 모두가 크게 다 칠 수 있고?”

“네? 어, 그건……

검귀가 말끝을 흐렸다.

한세연은 그런 그를 바라보더니 고

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요. 시간도 늦었는데 어서 돌아가요. 앞으로 일 이 바빠질 거 같거든요.”

한세연은 그 말을 끝으로 길을 걸 었다.

그녀에게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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