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1 화
보상 방에 넘어가기에 앞서, 나는 ‘죽음을 먹는 사신’이 사라진 자리 에 놓여진 거대한 낫을 챙겼다.
[데스 사이드(S)]
분류 - 재료
설명 : 죽음을 먹는 사신이 사용하 던 낫. 특별한 힘이 담겨 있다.
낫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분류에는 ‘낫’。] 아닌 ‘재료’로 표기되어 있다.
그 말은 즉, 이 낫은 무기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만들기 위한 특별한 재료라는 중거다.
“이 낫은 내가 가져도 되지?”
그리고 나는 이 낫에 담긴 특별한 힘의 정체를 어렴풋이 알고 있다.
특별한 조건을 달성 시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어마어마한 추가 피해를 입힐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조건이 조금 까다롭기는 하지 만 세계 최고의 제작사인 양태민이 라면 어느 정도 단점을 해소하는 게 가능할 터.
내 제안에 이서준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야 낫을 사용할 줄 모르니까 상 관없기는 한데. 네가 쓰려고?”
“그건 아니고. 조금 흥미로워서 연 구나 해보려고.”
“ 연구?”
이서준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했다.
“뭐, 그래. 던전도 네가 찾았고 필 요한 사람이 갖는 게 맞겠지.”
“땡큐.”
나는 피식 웃으며 낫을 등에 매달 았다.
걸리적거려 아공간에 넣어두고 싶 었지만 이서준이 있어 그러지 못했다.
“그럼 갈까.”
그렇게 우리는 보스룸을 넘어 보상 방에 도착했다.
보상 방은 역시 이전과 같이 빛 하나 들어오지 않아 눈앞이 깜깜했
기에 마법 구체로 주변을 환하게 밝 혀 보상 상자를 찾았다.
“……잘 안 보이네. 보상은 어딨 지?”
“저거 아니야?”
이서준이 가리킨 방향에는 거대한 제단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아. 저기네.”
곧바로 제단을 향해 걸어갔다. 예 상대로 제단 위에는 여러 아이템이 올려져 있었다.
나는 가장 먼저 새하얀 천 옷을 집었다.
[맞춤형 보조 내복(A)]
설명 : 다양한 보조 능력이 담긴 내복
►보조
착용자의 체력과 마력을 보조해줍 니다.
착용자의 마력 제어 능력이 15% 상승합니다.
착용자의 모든 회복 능력이 200% 상승합니다.
착용자의 체형에 맞는 형태로 변화 합니다.
이 옷은 오염되지 않습니다.
이름 그대로 단순히 착용하는 것만 으로 수많은 보조 효과를 주는 옷이 었다.
당연하겠지만 호불호가 갈리지 않 는 아이템이라 경매에 올라가면 웬 만한 A등급 아이템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가격에 팔리게 된다.
나는 멍하니 옷을 바라보다가 이서
준에게 말했다.
“이건 네가 가져. 보조용 옷인데 마력 제어 능력이랑 각종 회복 능력 을 보조해주는 효과가 있어.”
“오 진짜? 나야 좋지. 근데 너는?”
“난 괜찮아.”
나에게는 이것보다 상위 효과를 가 진 옷인 ‘무형의’가 있다.
내가 가져봤자 결국은 무형의의 먹 이가 될 뿐이다.
“대신 이 낫은 내가 갖기로 했잖 아. 쌤쌤이지.”
“홈…… 하긴, 그렇긴 하네.”
이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내복을 집 었다.
날씨가 날씨인지라 이것저것 껴입 은 상태였기에 지금 입기는 조금 그 런지 가방에 넣었다.
나는 다음 보상을 살폈다.
보조 보상인 만큼 크기가 작은 ‘영 약’이라던가 ‘제작 재료’가 주를 이 루었다.
영약은 전부 이서준에게 양보했다.
등급도 낮을뿐더러 이미 많은 영약 을 섭취한 나에겐 큰 효과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 잠깐. 이거 내가 다 가져도 돼? 나 혼자 먹기 미안한데.”
“됐어. 난 영약 안 좋아해. 너 많 이 먹어.”
“거짓말하네. 영약을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어?”
이서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나는 그 말을 무시하고는 마지막 보상을 살폈다.
“이게 마지막이네.”
투명한 보석처럼 반짝이는 돌.
아까부터 궁금증이 들었다.
이 돌의 정체는 대체 뭘까?
[찬란한 빛의 정령석(S)]
설명 : 빛의 최상위 정령이 잠들어 있습니다. 정령에게 호의를 얻으면 계약할 수 있습니다.
“……뭐야. 이런 것도 있었나?”
무려 s등급의 보상이었다.
거기다 설명을 살펴보면 지금까지 의 보상 전부를 쌈 싸 먹을 만큼 강력한 보상.
뭐지?
이전 삶에서 들었던 정보에서는 이 런 보상에 대한 건 없었는데.
그리고 내 작은 중얼거림에 의문을 느낀 둣 이서준이 물었다.
“이런 것도 있었다니?”
“웅? 별거 아니야. 신경 쓰지 마.”
내 말에 이서준은 잠시 게슴츠레한 눈빛을 보내더니 말했다.
“그래서, 이 돌은 뭔데?”
“정령석이야.”
“정령석?”
이서준의 두 눈이 잠시 크게 떠졌다.
정령석의 존재는 이미 세간에 알려 진 희귀 보상 중 하나이다.
특별한 힘을 가진 정령과 계약할 수 있어, 소환계 마법사와 같이 전 투 시 2:1로 싸우는 듯한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문제는 시장에 올라오는 정령석의 대다수가 하급이나 중급이라는 것.
“와…… 정령석이구나. 소문으로만 들어봤는데. 등급은 뭐려나.”
“최상급이야.”
“최, 최상급?”
이서준의 두 눈이 다시 한번 크게 떠졌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정말로 쉽게 볼 수 없는 최상급 정령이다 보니 나도 욕심이 생긴다.
최상급 정령을 얻을 수 있다면 앞 으로의 전개에 있어 분명 큰 이점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잠시 고민하던 사이 이서준이 말했다.
“……으으음. 이건 네가 가져.”
“내가 가지라고?”
내 물음에 이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네가 갖는 게 나을 거 같아 서. 당장 사용할 일이 생길지도 모 르잖아. 이제 곧…… 음, 아니다.”
이서준이 고개를 저으며 말끝을 흐 렸다.
대충 흐름을 보아하니 내 죽음과 관련된 예언이 신경 쓰여서 저러는 모양인데.
뭐, 최상급 정령을 얻을 수 있다면 나야 좋기는 하다.
당장 코앞에 목숨을 걸어서라도 해 결해야 할 사건들이 수두룩하기 때
문이다.
나는 수많은 고민 끝에 고개를 끄 덕였다.
“그래, 이건 내가 가질게.”
이서준이 피식 웃었다.
“근데 이래놓고 경매에 팔거나 그 러진 않을 거지?”
“나를 뭐로 보고. 내가 쓸 거야.”
돈이 있어도 아이템을 못사는데, 굳이 이런 희귀템을 팔 이유가 없 지.
암. 그렇고말고.
“그러면 여기서 계약하는 거 구경
해도 되나?”
“여기서?”
“어. 한번 보고 싶어서.”
이서준의 두 눈에는 깊은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상관 없기는 하다.
어차피 사용할 정령석이고, 장소는 중요하지 않으니.
“오케이.”
나는 정령석을 쥐고는 마력을 끌어 올렸다.
먼저 계약을 위해선, 잠든 정령을 깨울 필요가 있다.
그렇게 내 몸에서 뿜어지는 마력이 정령석에 담기고.
돌에서 강한 빛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읏!”
눈을 멀게 할 것 같은 강렬한 빛 에 잠시 눈을 가늘게 떴다.
[‘잠든 최상위 빛의 정령’을 깨웠습니다.]
[빛 속성 제어술의 숙련도가 10% 상승합니다.]
[최상위 정령을 마주했습니다.]
[마력 제어술의 숙련도가 3% 상승 합니다.]
점차 빛이 사그라들고 어느새 우리 앞에, 둥둥 떠다니는 작은 빛의 무 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으응?]
녀석의 형태는 인간 여성과 비슷했다.
크기는 내 손바닥만 했지만 얼굴.
눈, 코, 입 모두 있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귀가 엘프 처럼 뾰족하다는 정도일까.
“이게 정령인가? 처음 보니까 신기 한데?”
이서준이 정령을 보며 신기하다는 둣한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었는지 정령의 시선이 이서준을 향한다. 이내 녀석 의 두 눈이 커지며 감탄했다.
[……우와.]
정령은 아름다운 것에 반응한다. 인간보다 더한 외모지상주의를 가진 것들이 바로 정령이다.
녀석이 저런 반웅을 보인 건 아마 이서준의 외모 때문이겠지.
[아, 안녕……?]
정령이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이서준에게 인사했다.
이서준은 힐끔 내 눈치를 살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래. 안녕.”
[혹시 날 깨운 왕자님이 너야?]
정령이 살랑살랑 이서준의 주변을 돌며 물었다.
이서준이 어색한 미소를 홀리다가 내게 시선을 돌렸다.
네 정령이니 나보고 해결하라는 무 언의 행동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끼어들었다.
“널 깨운 건 나야.”
그 순간 정령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내게 시선을 돌린다. 그 렇게 물끄러미 약 3초 정도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두 눈을 가늘게 떴 다.
[……뭐?]
“널 깨운 게 나라고. 그러니까, 네 계약자가 될 사람은 바로 나야.”
그러자 이번에는 눈을 좁히는 것도 모자라 미간까지 좁힌다.
심지어 이마에는 혈관까지 솟았다.
이 정도면 거의 기겁. 아니, 혐오
하는 수준인데.
[왜.]
……왜긴 왜야.
“그야 네가 필요하니까 그러지.”
[아, 싫어. 거부.]
정령이 두 손으로 X를 만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눈앞에 메시지가 떠 올랐다.
[최상위 빛의 정령의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최상위 빛의 정령이 자유 계약 상 태가 됩니다.]
[‘4차임’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4,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이종족에게 차임’ 업적을 달성했
습니다.]
[보상으로 5,000포인트를 획득합니
다.]
나는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며 할 말을 잃었다.
내 마력을 사용해서 깨웠는데 내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계약이 취 소되 었다.
거기다 한동안 뜸했던 차임 업적을 달성한 건 덤.
그리고. 이족에게 차임은 또 뭐야?
……덕분에 9천 포인트를 얻기는 했는데. 이걸 기뻐해야 해?
[그보다 넌 이름이 뭐야? 나랑 계 약 할래? 웅? 웅?]
정령은 내게서 휙 뒤돌더니 이서준 에게 다가가 살랑살랑 몸을 혼들며 물었다.
힐끔, 내 눈치를 살핀 이서준이 어 색한 웃음을 홀렸다.
“어, 그게……
빛의 정령의 완강한 요청 끝에 결 국 계약자는 이서준이 되었다.
끝까지 나와 계약할 것올 권유한 이서준이었지만, 결국 정령의 강력 한 의지를 꺾지 못했다.
아무래도 이서준이 빛 속성 사용자 다 보니 본능적인 호감을 얻고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았다.
물론 나도 빛 속성을 다루지만 단 일 속성으로 다루는 게 아니다 보니 거부감을 느꼈겠지.
외모 차이(?)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아마도.
[……흐아암. 졸려. 잘래.]
던전 밖으로 나오자 빛의 정령은 그렇게 말하더니 사라졌다.
이서준은 정령이 사라진 허공을 멍 하니 바라보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왠지 미안하게 됐네.”
“아니야. 네 의지도 아니고 어쩔 수 없지.”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서준에게 새로운 무기가 생긴 것이니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언제나 그렇듯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서준의 생존이니까.
그리고 이미 충분한 보상을 얻기도 했고.
그렇게 우리는 마법사관학교 방향 으로 이동했다.
늦은 밤이었지만 금요일이라 그런 지 주변 곳곳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서준은 멍하니 밤하늘을 올려보 다가 혼잣말하듯 말했다.
“……내일부터 주말인데 뭐해야 하 나.”
“정령도 얻었는데 내일 훈련장에서
연습이나 해봐.”
“음. 그럴까?”
이서준이 턱을 매만지더니 내게 시 선을 돌린다.
“그럼 내일 같이 훈련할래?”
“내일?”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글쎄. 점심쯤에 약속이 있어서.”
“……안 그런 척하면서 은근 약속 많다니까.”
이서준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내일 있을 약속은 바로 한세연과의
약속이다.
저번에 맡겼던 신비한 마계수 열매 의 가공이 끝났다는 연락을 받았거 든.
열매를 먹고 특성의 효과를 확인해 야 하니 시간이 날지는 나도 잘 모 르겠다.
“뭐, 약속이 있다고 하는데 어쩔 수 없네.”
그 뒤로 나와 이서준은 잡다한 대 화를 나누었다.
신영준에게 어떤 일이 있었니, 이현주는 최근에 뭘 했는지.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
었다.
그리고 시간이 홀러 우리는 목적지 인 마법사관학교의 정문에 가까워졌다.
그 순간 내 시선 끝에 왠지 모르 게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이서준도 그것을 발견했는지 눈을 찌푸렸다.
“......저건.”
이번 프로 마법사 자격중 시험에 참가하는 유성진이었다.
근데 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그리고 녀석 역시 우리의 인기척을
느낀 둣 뒤를 돌았다.
“이서준? 김선우?”
한번 당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서준은 곧바로 경계 태세를 갖췄다.
유성진은 그 모습을 보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야야. 싸우러 온 거 아니니까 그 렇게 경계 안 해도 돼. 애초에 너네 보러 온 것도 아니야.”
“……그럼 뭐 때문에 여기 온 건 데‘?”
이서준의 물음에 유성진이 다시 머 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유아라 번호 좀 알려줘라. SNS로 조별 시험 연습 같이하자고 메시지 보냈는데 차단당해서.”
얘도 차였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