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9화
일요일 오후 1시.
부산에서 있었던 검귀와의 일을 마 치고 기숙사로 돌아온 나는 그레텔 과 진중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다름 아니라 오늘 새벽 한세연에게 들었던 200년 전 시장에 올라왔다 는 마계수 열매에 대한 궁금증이 생 겼기 때문이다.
“그레텔. 혹시 그레텔한테도 가족 이 있어?”
“응애.”
그.리고 그레텔은 내 질문에 ‘웅애’ 라는 대답만 하고 있을 뿐이다.
당연하겠지만 외부자의 혜택으로 모든 외국어를 이해할 수 있는 나도 아기 울음소리를 해석하는 건 불가 능하다.
“그레텔. 고개를 끄덕이거나 저어 서 대답해줘.”
내 말에 그레텔은 고개를 저었다. 고개를 저었다는 건 가족이 없다는 의미다.
“가족이 없는 거야?”
그런데 이번에도 그레텔이 고개를 저었다.
뭐지.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혹시 가족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 는 거야?”
“웅애.”
그레텔이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모르는구나.”
새삼 내가 그레텔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는 걸 깨닫게 되네.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고 있었으
니까.
그나저나 가족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니.
오늘따라 그레텔의 울음소리가 딱 하게 느껴진다.
“그럼 그레텔, 원래 살던 세계는 기억해?”
‘마계수’라는 이름답게 그레텔은 아마 마계라는 세계에 살던 생물체 일 확률이 높다.
정확히 어떤 세계인지는 잘 상상되 진 않지만 궁금증이 생겨 물었다.
“응애.”
그레텔은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하는구나.”
그레텔의 고향이라…… 과연 어떤 세계일까. 마계라고 하니 어두컴컴 한 그런 세계가 연상되기는 하는데.
그나저나 그레텔도 나랑 처지가 비 숫하네.
낯선 세계에 소환되어 고향으로 돌 아가지 못하는 걸 보면.
“혹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거나 하지는 않아?”
그레텔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지금 생활에 만족하는 모양 이다.
그리고 그 대답이 왠지 모르게 나 에게 안심이 되었다.
혹시 자신을 소환한 나를 원망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불안감이 있었는 데.
“응애.”
그때 그레텔이 내게 말했다.
[유대]의 효과 때문일까.
그레텔의 말에 담긴 의미가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랑 함께 있는 게 좋다고?”
“웅애!”
그레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자 입가에 저절로 미 소가 지어졌다.
“그레텔~ 나도 그레텔이랑 있는 게 좋아.”
나는 그레텔 몸통을 잡고는 가볍게 들어 올렸다. 그레텔은 신난 듯 까 르르 웃는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현실로 돌아가게 된다면 얘를 어떻게 혼자 두고 떠나지.
순간 우울한 기분이 들었지만 금세 머릿속에 지워버렸다.
“안녕하세요! 본부장님! 오늘도 좋 은 아…… 거, 검귀님?”
월요일 아침. 한성제약 본사.
한세연의 출근과 동시에 주변 사람 들이 그녀의 옆에 선 검귀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한세연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인사드릴게요. 오늘부터 제 호위 를 맡아주실 장수기 님이세요. 굳이 소개해드리지 않아도 잘 아시죠?”
“……아! 다, 당연히 알죠! 한성가 의 검으로 유명하신 검귀 님 아니십 니까? 하하.”
제약부 팀장이 땀을 삐죽 흘리며 검귀를 올려보았다.
날카로운 인상과 2M에 가까운 키.
단순히 시선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도 공포감에 가슴이 두근두근 떨려 왔다.
검귀는 눈앞의 사내를 내려보더니 말했다.
“잘 부탁 합니다. 오늘부로 아가씨 의 호위를 맡게 되었습니다.”
딱딱한 말투. 하지만 최소한의 예 의는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인사에 팀장이 땅과 닿을 둣 고개를 숙였다.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직원들과 간단한 인사를 마 치고 한세연과 검귀는 본부장실 안 으로 들어섰다.
“오랜만의 출근이신데 기분이 어때 요?”
한세연이 작게 웃으며 말하자 검귀
가 피식 웃었다.
“예상보다 소란스럽긴 했지만, 옛 생각도 나고 좋습니다.”
“이제 시작이에요. 오늘 중으로 더 큰 소란이 터질 거예요.”
검귀가 한세연의 호위를 맡게 되었 다는 건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한대현과 함께 한성가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큰 기둥이면서 동시에 수 많은 존경을 받는 그가 차기 회장으 로 한세연을 지지한다는 것이었으니 까.
아마 이 소식은 순식간에 언론들에 게 전해질 테고, 이후 수많은 기사
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한세연은 작게 미소를 짓고는 창밖 으로 걸어갔다.
예상하지 못했는데 상황이 자신에 게 좋게 흘러가고 있다.
이 모든 게 진우 씨 덕분이겠지.
다시 생각해도 짧은 하루 사이에 너무나도 많은 도움을 받아 버렸다.
“……뭐 하는 사람일까.”
김진우는 너무나도 많은 정보를 알 고 있다.
지난주의 일로 그러한 생각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한세진의 비밀. 그리고 검귀의 비 밀.
단순한 정보력이 좋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의 추론이 서서히 확신 으로 기울고 있었다.
바로 김진우가 미래에서 온 회귀자 라는 것을.
아마 그가 이토록 열심히 움직이는 이유는, 미래에 일어날 무언가를 막 기 위해서겠지.
그 무언가가 무엇일지는 아직 예측 할 순 없지만.
한세연은 품 안에서 열쇠를 꺼냈 다.
아버지의 서재에서 얻은, 세계의 비밀을 알게 해줄 열쇠였다.
“수기 아저씨.”
한세연이 뒤를 돌며 부르자 검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가씨.”
“혹시 이 열쇠의 용도를 알고 계시 나요? 아버지 서재에서 얻은 건데.”
한세연이 들고 있는 열쇠를 본 검 귀의 두 눈이 순식간에 커졌다.
쾅!
한성 마공학 부회장실에서 무언가 가 부서지는 커다란 소리가 크게 울렸다.
TV에서는 속보와 함께 뉴스가 홀 러나오고 그의 휴대전화는 아까부터 끊임없이 울리고 있었다.
「한성가의 검이라 불리던 S등급 마법사, 장수기가 오늘 한성제약에
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현재 내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그는 정식으 로 한세연 본부장의 호위로 활동하 기로 했으며 또 그녀의 차기 행보를 지지한다고 전했…….J
우려했던 상황이 터졌다.
수많은 압박과 청탁에도 중립을 유 지하던 검귀가 한세연의 지지를 선 언했다.
이건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검귀 장수기.
그는 한대현이 사라진 한성가에 유 일하게 남은 상징적인 인물이었으니
까.
“김진우……
당시 부산에서 도망쳐온 s등급 마인, 정환의 보고에 의하면 한세연의 옆에 김진우가 함께 있었다고 한다.
아마 검귀가 은거하고 있는 부산으 로 내려간 건 김진우의 의도겠지.
“……뭐 하는 녀석이냐고 대체.”
일이 점점 꼬여간다.
협회의 추적과 실패로 생겨난 불신 을 신뢰로 바꿀 기회였는데.
“젠장!”
이젠 시간도 여유도 없다.
벼랑 끝에 몰린 상황, 머뭇거리고 있을 틈이 없다.
아마 십마회 또한 자신과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을 터.
“……그런데 부산으로 내려간 건 우연인가?”
한세진은 그게 의문이었다.
하필 암살을 시도한 날 검귀를 찾 으러 가다니.
그것도 회사의 일을 한 번도 거른 적 없던 그녀가 회의를 미루게 하면 서까지 말이다.
아무리 우연이라고 해도 이런 우연
이 있을까…….
“설마 정보가 새어 나갔나?”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이쪽이 더 가능성이 크다.
동생은 자신의 일을 미루는 걸 극 도로 혐오했으니까.
“정보가 새어 나가고 있다……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 하지만 대 체 누가?
한세연의 암살 작전에 대해 아는 인물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을 텐 데?
설마 마인 쪽에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던 한세진은 문득 문 앞에서서 노트에 무언가를 적고 있는 엘린을 발견했다.
……뭘 적고 있는 거지?
갑작스러운 의문과 의심에 한세진 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가 다가오자 엘린은 노트를 덮고 는 경계의 시선을 보냈다.
“왜?”
“그 노트.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뭐? 왜? 싫어.”
완강한 거부다.
이래서는 누가 고용주인지도 헷갈 릴 정도였지만 한세진은 넘어가기로 했다.
“전부터 자주 노트에 뭔가를 적으 시는데. 궁금해서요.”
“……너.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서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 나 의심 하는 거 다 보이거든? 일 안 풀려 서 화나는 건 알겠는데 나한테 화풀 이 하지는 말아줄래?”
나름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고 생각했는데 들켜버린 모양이네.
역시 s등급 마법사인가.
한세진은 작게 웃었다.
“네, 최근 정보가 새어 나가고 있 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혹시나 해서 그러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 나를 스파이로 의심하고 있 다?”
그렇게 말하던 엘린이 말을 이었다.
“근데 너 그거 알아? 내가 만약 스파이였다면 귀찮게 정보를 홀리는 짓은 안 할 거야.”
엘린의 말에 한세진은 의문을 느꼈 다.
엘린은 그런 그를 보며 스산한 미 소를 지었다.
“내 말은, 귀찮게 정보를 홀리는 짓을 안 하고 진작 내 손으로 널 죽였을 거라는 거지.”
“……하하. 그렇네요.”
생각해보니 그렇긴 하다.
그녀의 성격이라면 한성가의 원한 을 사는 것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 올 테니.
엘린이 스파이일 가능성은 낮다.
그렇다면 마인 쪽에 있다는 건가?
“그래도 그 노트가 궁금하니 한번 보여주시죠?”
고용주의 명령이다.
엘린은 어쩔 수 없이 노트를 넘겼 다.
한세진은 노트의 내용을 살폈다.
그 안에는 이해할 수 없는 술식 들이 가득했다.
페이지를 넘기고 넘겨도 마찬가지.
“……이게 뭡니까?”
“……숙제인데.”
“숙제요?”
뜬금없는 말에 한세진이 고개를 갸 웃했다.
숙제라니. 무슨 학교 다니는 어린 학생도 아니고.
“룬의 속…… 아니, 종사의 자격시 험 비슷한 건데 어차피 봐도 넌 몰 라.”
그러면서 노트를 순식간에 낚아채 며 사납게 외쳤다.
“봤으면 꺼져.”
즐거웠던 마법사관학교의 축제, 태 휘제가 끝나고 이주가 지난 월요일.
마법사관학교의 분위기는 예전의 열정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
1학년과 2학년은 다음에 있을 평 가 시험을 위해 훈련에 열중하고 있 었고, 3학년들은 곧 다가올 프로 마법사 자격증 시험을 위해 학교에서 치르는 특강을 받는 중이었다.
“프로 마법사 자격증 시험은 3일간 총 5개의 시험을 치른다.”
3학년 전교생이 모인 본관의 대강 당.
교사 장안철이 특강을 시작했다.
“시험은 3개의 기초 능력 평가. 그 리고 2개의 경쟁시험이 있다. 기초
평가는 크게 어렵지 않지만 문제는 2개의 경쟁시험이다. 자, 그럼 모두 이 화면을 보도록.”
“……흐아암.”
이미 회귀 전에 들어 알고 있던 내용이라 수업을 귀담아듣진 않았 다.
시험의 내용이나 도중에 일어날 사 건까지도 세세히 알고 있었으니까.
장안철의 강의는 계속 이어졌다.
시험에서 어떤 문제가 나오고 또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 등 세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동굴의 4번째 방에서 룬의 황금박
쥐가 나온다. 이 박쥐의 가죽을 해 체하여 마력을 비추면 벽에 숨겨진 벽화가 드러난다.”
말 그대로 돈 주고도 듣지 못할 족집게 강의다.
거의 정답을 대놓고 가르쳐주는 수 준.
이건 마법사관학교만의 특별한 장 점이었다.
프로 마법사 자격증 시험 95% 합 격률이라는 괴랄한 성적의 비결이기 도 했고.
“와. 진짜 세세하게 알려주네.”
내 옆자리에 앉은 윤하영은 눈을
반짝이며 장안철의 말을 전부 노트 에 적었다.
연필을 잡은 손이 얼마나 빠른지 속기사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다.
윤하영한테 저런 재능이 있었나.
“근데 넌 안 적어도 돼?”
다른 옆자리에 앉은 유아라가 힐끔 나를 보더니 말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내 머리를 손가 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외우고 있어.”
“……뭐? 하긴. 너라면 그럴 수 있 긴 하겠네.”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하도 본 게 많아서 그런지 유아라는 수긍하 며 넘어갔다.
내 앞자리에 앉은 이서준이 슬쩍 뒤로 돌더니 나를 보며 피식 웃는 다.
“……제4 시험의 설명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자! 그럼 이번에는 각 자 받은 서류를 펼쳐보도록.”
그의 말에 나는 서류를 펼쳤다.
이 서류의 내용은 나조차 모르는 내용이 담겨 있기에 확인해야 할 필 요가 있다.
“너희도 알다시피 제5 시험 역시
경쟁시험이다. 그리고 그 서류에는 오늘 공개된 5 시험의 조 명단이 담겨 있지.”
바로 5 시험의 조 명단이다.
경쟁시험인 만큼 여기서 누구를 만 나느냐에 따라 시험에서 내가 활약 할 게 크게 바뀔 거거든.
나는 가장 먼저 이번 시험에 참가 하는 자운(아직 정식 멤버는 아니지 만)의 유성진을 찾았다.
[C조 : 유성진]
흐음. 유성진은 C조인가.
C조 명단을 살펴보는데 유아라가 함께 있다.
유아라와 유성진의 만남이라.
그러고 보니 같은 유씨네.
“어? 나 찾았다. 난 G조네. 선우 야. 너는 몇조야?”
윤하영의 물음에 나는 명단을 쭉 살펴보다가 대답했다.
“나는 D조.”
“어? 나도 D조인데.”
내 앞에 앉은 이서준이 반웅했다.
그리고 그 옆에 앉은 신영준이 나 와 이서준을 번갈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오~ 뭐야? 둘이 같은 조야? 오랜 만에 둘이 붙네?”
“와아. 빅매치네. 선우랑 서준이?”
윤하영이 웃으며 말했다.
“서로 고생 좀 하겠네.”
마지막으로 이어지는 유아라의 말 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얘네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 지.
“뭔 소리냐 갑자기. 나랑 이서준이
왜 붙어?”
“웅? 둘이 같은 조잖아.”
윤하영이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나는 이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다.
“5시험은 개인전이 아니라 팀전인
데?”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