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8화 (387/535)

388화

검귀의 질문에 나는 잠시 입을 다 물었다.

한세연을 돕는 이유…….

한성가의 전 주인이었던 한대현에 게도 들었던 질문이었다.

당시에는 서로에게 필요한 관계라 는 두루뭉술한 대답을 했었는데

아마 이번에도 같은 대답을 하게 된다면 검귀는 전혀 수긍하지 않겠

지.

나는 슬쩍 한세연의 눈치를 살폈 다.

그녀 역시 이 질문의 답이 궁금했 던 것인지 얼굴에 옅은 긴장감이 담 겨 있었다.

짧게 숨을 돌리고는 입을 열었다.

“제가 한세연 씨를 돕는 것에는 복 잡하고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검귀가 계속 말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종의 공생관계로 서로에게 부족

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는 점이 있지만, 그보다는 한성가의 힘을 얻 은 마인의 침공을 경계하고 있기 때 문입니다.”

“마인의 침공?”

마인이라는 말에 검귀가 의문에 찬 표정을 지었다.

“네, 마인들은 현재 ‘왕’을 주축으 로 해서 인간 세계의 지배를 노리고 있습니다. 아마 그들이 본격적인 활 동을 시작하게 된다면 큰 혼란이 생 기겠죠.”

검귀 역시 최근 늘어나는 마인 사 건을 알고 있던 것인지 어느 정도

수긍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조기 진압에 성공해 마인의 전력이 크게 약화된 상태이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아직 방심할 수 없는 건 그들의 뒤에는 한성가라는 막 강한 권력을 가진 한세진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십마회 자체는 다른 빌런 단체들에 비해 그렇게 위험하 진 않다.

각 개인이 강한 힘을 가졌지만 소 수이고, 또 은근히 보수적인 성향이 있어 자운처럼 신비에 의존하지 않 고 자신들의 힘으로 일을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의 뒤에 있는 ‘한성가’라는 거대 세력이다.

그들은 세계의 경제를 꽉 쥐고 있 으며 오랜 시간 수많은 신비를 수집 해왔다.

또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대 형 길드들을 밑에 두고 있기에 마음 만 먹는다면 협회와 짧은 시간 전쟁 을 치를 수도 있는 힘을 갖고 있었다.

“저는 한세진을 막아야 합니다. 그 가 가진 야망과 욕망은 사회에 큰 혼란과 파멸올 일으킬 테니까요.”

“사회의 혼란을 막기 위해 한세진

을 막아야 한다라. 누가 보면 정의 의 사도인 줄 알겠어.”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세진을 막기 위해 아가 씨를 한성가의 주인으로 만들겠다는 건가?”

한세진을 도련님이라고 부르던 검 귀의 호칭이 바뀌었다.

꽤 의미 있는 발언이었지만 우선 그의 질문에 대답하기로 했다.

“그렇죠.”

검귀는 턱수염을 매만졌다. 그러고

는 말을 이었다.

“한세진의 목적. 그리고 마인과 손 을 잡은 건 어떻게 알았지?”

“자세히 설명할 순 없지만 제게는 정보를 얻을 방법이 있습니다.”

사실대로 말할 수 없어 이 부분은 대충 지어내서 말했다.

그리고 내 대답이 어이가 없는지 검귀가 헛웃음을 흘렸다.

“설명할 수 없다라…… 신비의 힘 을 빌린 건가?”

“..신비?”

검귀의 중얼거림에 한세연이 반응

했다.

검귀는 그런 그녀를 신경 쓰지 않 고 내게 말했다.

“일단 알겠다. 의문이 전부 해소된 건 아니지만 남은 건 이놈에게 물어 보면 되는 거니까.”

그러면서 바닥에 기절한 알 아사드 에게 걸어가 손바닥으로 뺨을 내리 쳤다.

“악!”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알 아사드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선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다 가 자신의 상황을 이해했는지 두 눈

이 휘둥그레진다.

“거, 검귀……?”

이내 도망이라도 치려는 듯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 순간 검귀가 녀석의 멱살을 잡았다.

“컥!”

“질문에 대답해라. 이곳에는 무슨 목적으로 왔지?”

알 아사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암살자로 키워진 그답게 정보를 흘 리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겨 있었다.

녀석이 다시금 마력을 끌어올렸지

만, 그 방향은 바깥이 아닌 자신의 심장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녀석은 자결하려는 것이 었다. 하지만 그걸 눈치채지 못할 검귀가 아니었다.

검귀는 재빠르게 다른 한 손을 聖 어 녀석의 머리통을 움켜쥐었다.

그러고선 빠르게 마력을 주입해 녀 석의 신체에 흐르는 마력의 움직임 을 강제로 막아냈다.

“......크악!”

알 아사드의 입에서 고통 어린 비 명이 터져 나왔다.

검귀는 그런 알 아사드를 보며 피

식 웃었다.

“자결하려 하다니. 교육은 잘 받았 군.”

그러면서 알 아사드를 자신의 어깨 위로 들어 올렸다.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 치려 했지 만, 강력한 힘에 의해 어떠한 움직 임도 취할 수 없었다.

같은 s등급의 마법사가 보인 격차 라고는 믿기 힘든 결과였다.

“아가씨, 2층에 방이 있습니다. 시 간이 늦었으니 먼저 올라가서 주무 시죠.”

“……수기 아저씨는요?”

한세연의 물음에 검귀가 어깨에 들 린 알 아사드를 작게 흔들었다.

“저는 진실의 방에서 녀석과 진솔 한 대화를 나눠야 할 것 같습니다.”

검귀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사, 살려…… 아니 죽여줘!

이어서 지하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순간 식은땀이 흘렀지만 넘어가기로 했다.

새벽.

스으으...

창밖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는 2층의 방 안, 오직 작은 마력 램프만이 주변 을 밝히고 있었다.

그리고 한세연은 아까부터 책상 앞 에 앉아 내게 받은 ‘신비한 마계수 열매’를 살펴보는 중이었다.

“뭔가 보입니까?”

“으음. 네. 조금 신경 쓰이는 게 있네요. 그나저나 이 열매, 그레텔에 게서 얻은 열매라고 했죠?”

한세연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 였다.

“네, 맞습니다.”

“혹시 그레텔을 어디서 만났는지 물어봐도 돼요?”

……그레텔을 어디서 만났냐고?

“던전의 보상으로 얻은 소환 계약 서를 통해 만났습니다.”

“소환 계약서요?”

“네. 일단 계약 소환수니까요.”

“ 흐음......

한세연이 열매를 매만지더니 내게 말했다.

“일단 이 열매는 영약계에서도 아 주아주 희귀하고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다고 알려진 마계수 열매에요.”

“......네?”

순간 그녀의 말에 깜짝 놀라서 물 었다.

마계수 열매.

외부자의 혜택 덕에 이미 알고 있 었지만, 그것이 정식 명칭이었을 줄 은 꿈에도 몰랐다.

“이것과 같은 열매가 시장에 나온 적이 있습니까?”

“있죠. 200년 전에 얘기라 이제는 전설과 같은 설화만 내려오고 있지 만요.”

그레텔의 열매가 시장에 나온 적이 있다니.

마계수가 그레텔 외에 또 있는 건 가?

아니, 당연히 있을 수 있기는 하지 만 마계수는 다른 세계의 생물체였 기에 조금 놀랐다.

“출처는요?”

“그건 몰라요. 어떻게 입수됐는지 는 알려지지 않아서요. 아무래도 200년 전에 일이니까요.”

“ 흐음......

그레텔에게도 친구. 아니, 200년 전이니까 조상 같은 존재가 있다는 건가.

갑자기 커다란 호기심이 생겨났다.

그레텔의 조상이라.

가능하다면 만나보고 싶은데.

은근 외로움이 많은 그레텔이니 친 구가 생기면 좋을 거고.

그런 생각을 하는데 한세연이 가방

을 뒤적거리더니 작은 케이스를 꺼 냈다.

보아하니 영약 제조를 위한 미니 키트인 것 같았다.

왜 저런 걸 갖고 다니는지는 모르 겠지만 보아하니 이 늦은 새벽에 영 약 제조라도 시작하려는 모양이다.

“안 주무십니까?”

“전설로만 듣던 영약이 눈앞에 있 으니 욕심이 나서요.”

“피곤하실 텐데 오늘은 주무시고 천천히 하시죠.”

“아뇨. 제가 이런 호기심은 또 못 참거든요.”

한세연이 나를 보며 작게 웃었다.

평소에도 시도 때도 없이 밤을 새 는 그녀였기에 말릴 수 없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걱정 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저는 신경 쓰지 말고 진우 씨는 침대에서 주무세요.”

저택의 2충에는 침대가 하나 있다.

한세연이 내게 양보를 한 것이다.

“아뇨. 일 끝나시면 세연 씨가 쓰 세요. 저는 1층 바닥에서 잘 생각이 라.”

“1층은 춥잖아요.”

그녀의 말대로 1충은 난방이 제대 로 되어 있지 않아 꽤 쓸쓸하다.

하지만 냉기 저항 특성이 있는 내 게 추위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 신경 쓰지 말고 진우 씨가 쓰 세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다시 뒤를 돌아 키트의 도구를 이용해 영약을 만지기 시작했다.

사각사각.

열매를 만지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어쩔 수 없이 침대에 걸

터앉았다.

침대가 푹신하기는 하다.

결계를 칠 만큼 방문객의 입장을 거부했으면서 손님방은 또 만들어 놓은 건가.

나는 침대에 앉아 벽에 등을 기댄 채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사 르르 눈이 감겼다.

……창문 너머에서 내리쬐는 은은 한 햇살을 느끼며 눈을 떴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자 낯선 방안 의 풍경이 보인다. 이내 머릿속에 어제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한세연의 호위를 맡아줄 검귀를 찾 아 부산까지 내려왔었지.

“O O 으I”

작게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키려 하자 내 몸 위에 담요 하나가 덮여 있는 게 보였다.

나는 내 앞의 책상에서 엎드려 자 는 한세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설마 저러고 잠든 건가.”

아무래도 밤새 영약을 만지다가 지 쳐서 잠든 모양이다.

이럴 생각으로 영약을 맡긴 건 아 니었는데 괜히 미안한 기분이 드네.

나는 일어서서 내 몸을 덮은 담요 를 그녀의 어깨 위에 덮어주었다.

그녀는 눈치채지 못한 둣 깊게 은 은한 숨소리를 내었다.

그러다 문득 책상 위에 올려진 무 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형태가 일부 바뀐 마계수 열매였다.

동시에 외부자의 혜택이 발동되었다.

[제조 중인 마계수 열매(???)]

설명 : 제조 중인 마계수 열매. 훌 륭한 제약사 덕에 영약의 효과가 중 폭되었습니다. 완성 시 효과가 발생 합니다.

현재 추가된 효과 : 모든 능력치 2% 추가 상승, 모든 재생 능력 100% 상승, 마계수의 가호(S) 추가 효과.

“오......

아직 미완성이었지만 외부자의 혜

택을 통해 어떤 효과가 추가되었는 지 확인할 수 있었다.

모든 능력치 2% 추가 상승, 모든 재생 능력 100% 상승.

그리고 열매에 있는 특성인 ‘마계 수의 가호’의 추가 효과까지.

“하루 만에 이 정도 효과라……

영약 제조가 완성되었을 때의 결과 가 벌써부터 기대되는데.

그런 기대감을 품으며 한세연이 깨 지 않게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방 밖으로 나와 1층으로 내려왔다.

“일어났나?”

달콤한 음식 냄새와 함께 검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을 살펴보는데 검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외출 준비를 하려는 것인지 커다란 가방과 그의 무기들이 거실 에 놓여 있었다.

그때 옆에서 탁탁탁탁. 칼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걸어가 자 주방 앞에서 칼질하는 검귀의 모 습이 보였다.

내가 멍하니 바라보자 검귀가 슬쩍 내게 시선을 돌렸다.

“요리하는 모습은 처음 보나?”

“아, 아뇨. 조금 의외라.”

검귀는 요리 같은 거 전혀 안 할 줄 알았거든.

“아가씨는?”

“위에서 주무십니다.”

“그런가.”

검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빈 그룻 에 국을 담았다.

“아침이나 같이 먹지. 할 이야기도 있으니.”

그의 말에 나는 자리에 앉았다. 검 귀는 국과 밥. 그리고 몇몇 반찬들

을 식탁 위에 올렸다.

계란국과 김치. 그 외 채소들.

아쉽게도 고기는 보이지 않았다. 이미지만 보면 산 채로 동물을 잡아 먹을 것 같은데.

“입맛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직접 한 거니 먹게.”

“아, 예. 잘 먹겠습니다.”

먼저 계란국부터 홀짝 마셨다.

동시에 내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검의 귀신(SS)’의 특성을 가진 자 의 요리를 맛봤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귀신 같은 맛’ 업적을 달성합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와씨.”

나도 모르게 입에서 감탄이 튀어나왔다.

계란국이 이런 요리였던가?

아니 그보다 검귀가 가진 ‘검의 귀 신’ 특성에 요리에도 영향을 끼치는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근데 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거 지?

그런 의문도 잠시 검귀는 내 반응 이 재밌었는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다행히 입맛에는 맞는 거 같군.”

“귀신 같은 맛이네요.”

“……귀신 같은 맛이라.”

검귀가 어딘가 즐거운 얼굴로 웃었다. 그러더니 본인도 한입을 하며 내게 말했다.

“일단 알 아사드와 진실의 방에서 진솔한 대화로 정보를 얻었네.”

진솔한 대화. 다르게 말하면 고문 이다.

“뭐라던가요?”

“한세진의 지시로 온 게 맞다더 군.”

검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번 계획이 실패하더라도 한세진과 마인 집단은 계속 아가씨 의 암살을 계획할 거라는 이야기도 들었네. 네 말대로 한세진은 마인과 손을 잡았어.”

검귀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손가락으로 식탁 위를 가볍게 두들

기다가 말했다.

“자네 말대로 아가씨의 호위를 맡 기로 하지.”

그 말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다행히 계획대로 잘 풀렸다.

검귀가 그녀의 곁에 있다면 내가 없더라도 그녀의 안전이 보장된다.

거기다 검귀라는 인물이 가진 상징 성이 있다 보니 한성 그룹 내부에서 도 그녀를 향한 지지도 역시 크게 상승할 것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할 건 없네. 나 역시 한성가

가 망나니에 의해 몰락하는 건 원치 않으니까.”

검귀는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천장 을 올려보았다. 그러고선 생각에 잠 긴 듯 입을 꾹 다문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네.”

갑자기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천장을 올려보던 검귀의 시선이 나 를 향하고 나는 그 시선을 마주하며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무슨 질문을 하려고 저렇게 분위기 를 잡는 거지.

한참 동안 내 눈을 물끄러미 바라 보던 검귀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자네 혹시 아가씨랑 같은 방에서 잔 건가?”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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