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화
“가, 같이 있자고요? 진우 씨 그게 무슨……
내 말을 다르게 해석한 것인지 한 세연의 얼굴에 당혹의 빛이 깃들었다.
얼마나 당황했으면 그녀의 새하얀 뺨이 홍당무처럼 빨개지며 말까지 더듬는다.
나는 그런 그녀의 반응에 신경 쓰 지 않고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엘린의 보고에 의하면 오늘 빌런들 이 한세연의 목숨을 노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행인 건 아직 살기라고 할만한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지 만…… 방심해서는 안 된다.
언제 어떤 순간에 녀석들이 우리들 의 앞에 나타나 기습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거기다 이미 한세연 암살에 몇 번 실패를 겪었던 녀석들이라 확실한 성공을 위해 S둥급 이상의 빌런을 투입시켰을 가능성도 매우 높고.
“……진우 씨‘?”
그렇게 어떻게 해야 할지 혼자 생각하고 있는데 한세연이 나지막이 내 이름을 불렀다.
“혹시 무슨 일 있는 건가요?”
눈치 빠른 한세연답게 달라진 내 분위기를 보고는 이상함을 감지한 듯했다.
“그게......
나는 말끝을 흐렸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무래도 한세연 씨한테 좋지 않 은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좋지 않은 일이요? 그게 무슨
그녀의 입장에서는 다소 뜬금없이 들릴 말일지도 모른다.
좋지 않은 일이 생길 수 있으니 같이 있자니. 하지만 그녀는 내 말 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듯 심각한 표 정을 지으며 고민에 빠졌다.
이내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일단 알았어요. 회사에 오늘 돌아 가지 못할 거 같다고 연락만 할게 요.”
한세연이 급히 스마트폰을 꺼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
다가 말했다.
“혹시 하는 말인데 한세연 씨가 눈 치채지 못한 것처럼 다른 사정이 생 겨서 빠지게 된 것처럼 말해야 합니다.”
만약 한세연이 눈치챘다는 걸 한세 진이 알게 된다면 자신의 정보가 새 어 나가고 있다는 것올 눈치챌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1순위로 엘린을 의 심하겠지.
그리고 내 말의 의미를 깨달은 둣 한세연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 내부에도 알리면 안 된
다…… 오빠와 관련되어 있나 보네 요?”
“맞습니다. 으음. 한대현 회장님과 관련된 일로 가게 됐다고 말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한세연은 알겠다는 듯 스마트폰에 번호를 입력했다. 통화가 연결되자 그녀가 말했다.
“여보세요? 아, 팀장님. 죄송한데 오늘 갑작스러운 일이 생겨서 회의 는 미뤄야 할 거 같아요.”
한세연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뇨. 아버지 일로 급히 다녀와야 할 곳이 있어서요. 별일 아니니 신
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네.”
그렇게 약 30초 정도 통화가 이어 지고. 모든 대화를 마쳤는지 한세연 이 통화를 끊었다.
그러고선 나를 바라본다.
“회사에서는 아마 크게 의심 안 할 거예요. 그럼 이제 이야기해줘요. 무 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
진지한 물음.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회사의 일까 지 파토내었으니 확실한 이유가 필 요할 것이다.
“본론을 말씀드리자면 한세진, 혹 은 마인이 오늘 한세연 씨를 습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를 노린다고요?”
한세연의 두 눈에 당혹이 서렸다.
“네, 제가 가지고 있는 정보망이 있어 확신합니다.”
“……도대체 무슨 정보망이길래. 오빠와 마인의 계획까지 알 수 있는 거예요?”
나는 대답 대신 작게 미소를 지었다.
“우선 이곳에서 벗어나죠. 한세연 씨를 향한 추적이 이미 시작됐을 거 예요.”
“……어디로 이동할 생각이신데 요?”
엘린의 문자를 받고나서, 그녀를 데리고 갈 장소는 이미 정해두었다.
한성가의 일원이자 한대현의 딸인 그녀가 가장 안전할 수 있는 장소.
그리고 막강한 권력을 가진 한세진 조차 쉽게 건들 수 없는 장소.
마지막으로 어떤 전개가 진행되더 라도, 그녀의 안전만큼은 확실히 지 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이전부터 머릿속으로 생각해 두었지만 앞당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으로 내려가죠.”
내 말에 한세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원도 어딘가에 숨겨진 한세진의 별장.
한세진의 시선올 피해 몰래 김진우 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낸 엘린이 다 시 복귀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어딘가 초조한 얼 굴로 의자에 앉아있는 한세진을 발
견했다.
엘린은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 다가 말했다.
“많이 초조해 보이네.”
한세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현재 그에겐 엘린에게 답변하는 것 보다, 십마회와 계획한 일에 성공 여부가 중요했으니까.
십마회와 한성가.
이 두 집단을 추격하는 협회의 움 직임이 점차 빨라지고 있다.
이 추격을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하루라도 빨리 한성가를 장 악해 협회에 맞서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시시콜콜 방해하는 녀 석이 있었으니.
바로 자신과 피가 이어진 동생, 한 세연이었다.
“……한세 연.”
지금까지는 어린 동생의 투정이라 생각해 최대한 놔두었지만 더 이상 은 두고 볼 수만은 없게 되었다.
나의 생존을 위해. 그리고 나의 계 획을 위해 그녀는 이 세상에서 사라 져야 한다.
피가 이어진 동생에게 이런 짓을
저질러야 한다는 것에 조금 안타까 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이 모든 건 그녀의 잘못이다.
애초에 내가 가지려는 것을 탐내지 말았어야지.
“……문제는 그 녀석인데.”
바로 한세연의 뒤에 숨어있다고 추 측되는 정체불명의 남성, 김진우.
놀랍게도 김진우는 현재, 자신뿐만 아니라 십마회에서도 척결 대상 1순 위로 꼽히고 있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마인들도 김진 우와 마인 사냥꾼을 동일 인물이라 확신하는 듯했다.
“설마 이번에도 방해하는 건 아니 겠지?”
아닐 거라는 듯 혼자 중얼거렸지 만, 마음 깊은 곳에서 계속 불안감 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중요한 순 간마다 한세연의 곁에 등장해서 계 획을 방해했었으니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번 계획 또한 녀석의 개입으로 실패할 것 같 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내 생각보다 훨씬 강하던데.”
한세진은 과거, 뉴스를 통해 보았 던 그의 전투 영상을 떠올렸다.
세계 최고의 무력 집단인, 특무팀 의 마법사 4명을 상대로도 전혀 밀 리지 않는 전투력을 보였다.
만약 그 정도의 강함을 가진 김진 우가 이번에도 한세연을 지키게 된 다면…….
“……그럴 일은 없겠지.”
그녀의 일정은 이미 완벽하게 파악 한 상태였다.
오늘은 한성 제약의 야간 회의가 있어 회사로 반드시 돌아올 터.
모든 회의를 마치고 퇴근길에 습격 한다면 절대로 실패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띠링.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한세진의 통신 마도구에서 알람이 울렸다.
—부회장님, 긴급 소식입니다.
어딘가 다급한 부하의 목소리. 한 세진은 마도구를 들고 말했다.
“말하세요.”
—한세연 본부장이 급히 일정을 바 꾸고 야간 회의를 취소했다고 합니다.
동시에 한세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 다. 회의를 취소했다고 갑자기?
지금까지 계획한 일은 반드시 실행 해왔던 한세연이?
“사유가 뭐죠?”
—돌아가신 한대현 회장님과 관련 된 일로 급히 찾아갈 곳이 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일로?”
한세진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아버 지와 관련된 일이라니?
대체 그게 뭐지?
“세연이의 현재 위치는요?”
—게이트를 이용해 부산으로 내려 갔다고 합니다. 추적을 위해 마인과 암살자들 또한 뒤따라간 상태입니다.
“......부산.”
부산에 아버지와 관련된 일이 있 나?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던 한세진이 표정을 굳혔다.
잠깐, 부산이라면 설마.
한세진은 급히 통신 마도구를 다시 들었다.
만약 한세연이 정말 아버지의 일로 부산에 간 것이라면 지금 당장 마인 과 암살자들을 다시 불러들여야 한다.
삐이 익一
하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러 고 보니 임무 수행 중에는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통신과 관련된 건 챙기지 않는다고 했었지.
한세진의 얼굴이 다시 초조함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엘린이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자정이 가까워진 늦은 밤.
한세연과 단둘이 게이트를 타고 대
한민국 제2의 수도라 불리는 부산으 로 내려왔다.
게이트를 이용하게 되면서 한세진 이 어느 정도 우리의 위치를 눈치챘 겠지만,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애초에 그녀를 이곳에 데려온 건, 부산에서 은거하고 있는 한성가의 검, 검귀에게 한세연의 호위를 부탁 하고 싶어서였으니까.
“수기 아저씨가 부산에서 쉬고 있 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한세연의 물음에 나는 어깨를 으쓱 였다.
“그 사람, 부산 출신인 거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까?”
“아뇨. 그렇긴 해도…… 보통 현재 위치를 출생지랑 엮어서 생각하진 않잖아요.”
그렇게 말하던 한세연이 땅바닥을 내려보며 한마디를 더했다.
“……하긴. 진우 씨라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네?”
뜬금없는 말을 한다.
뭔가 싶어서 한세연을 바라보자 그 녀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근데 세연 씨, 지금 검귀와 연락 은 됩니까?”
“아뇨. 수기 아저씨가 연락처를 남 기지 않으셔서요.”
연락이 안 된다니 조금 아쉽긴 하 지만 직접 찾아가면 그만이니 크게 상관은 없다.
“그런데 수기 아저씨를 찾아가서 어쩌게요?”
“본업으로 돌아오시라고 할 겁니다.”
“아직 한성가의 주인이 정해지지 않아서 관심 없다고 하실 거예요.”
검귀는 한성가의 검이라 불리고 있 지만, 실상은 한성가의 주인을 지키 는 검이다.
한성가의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지 금 시점, 검귀가 활동을 거부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아뇨 그 누구보다 한성가에 진심 인 사람이니까 분명 도울 겁니다.”
한성가에 위험이 있다면 그는 분명 발 벗고 나설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니까.
그렇게 말하며 나는 발걸음을 앞으
로 옮겼다.
한세연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가 싶더니 이내 내 뒤를 따라 걸었다.
내 기억에 의하면 검귀는 게이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에서 은거하고 있다.
누구도 찾아오지 못하게 복잡한 환 영 결계를 펼쳐두었겠지만, 나에게 는 ‘외부자의 혜택’이 있다.
—三구e ee...
그때 몬스터의 포악함이 상승하는 야간 시간이라 그런지 어디선가 기 괴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한세연의 표정이 한순간에 굳어진다.
나는 그런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작게 미소를 지었다.
“만약 몬스터가 나오면 당황하지 말고 바로 제 뒤에 숨어요.”
“네, 그럴게요.”
말을 잘 듣는 그 모습에 나는 다 시 한번 작게 미소를 지었다.
“가죠.”
그 뒤로도 우리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외부자의 혜택으로 계속 주변을 둘러보는데 특별히 숨겨진 결계라던가 장치 같은 건 보이지 않 았다.
분명 이 산 어딘가에 결계가 숨겨 져 있을 텐데.
“잘 안 보여요?”
“네, 이 정도까지 꼭꼭 숨어 있을 줄은 몰랐네요.”
그렇게 중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보 는데 내 뒤를 따라오던 한세연이 내 옆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런데 진우 씨 말대로 수기 아저 씨가 돌아오실까요? 한성가의 주인 이 정해질 때까지 활동하지 않으시 겠다 못을 박으셨는데……
“설득할 겁니다.”
S등급의 마인. 혹은 한세진이 고용 한 암살자들로부터 한세연을 안전하 게 믿고 맡길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이다.
설령 마인의 ‘왕’이 찾아온다고 하 더라도 쉽게 넘볼 수 없는 강자가 바로 그였으니까.
그때 어디선가 스산한 바람이 불어 왔다.
추위를 느끼는지 한세연은 자신의 양팔을 가볍게 끌어안았다.
나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시 선을 돌렸다.
동시에 외부자의 혜택이 발동되며 그 앞에 보이는 뒤틀린 마력의 기류 가 느껴졌다.
“찾은 거 같습니다.”
나는 천천히 기류가 느껴지는 장소 로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바닥에 떨어진 낙 엽에 숨겨진 나뭇잎들이 눈에 들어 왔다.
바닥을 손바닥으로 쓸어내자 그 안 에 숨겨진 복잡한 술식이 보였다.
결계, 환영, 보안…… 다양한 정보 가 담긴 술식이다.
나는 술식 안에 천천히 마력을 주 입 했다.
우우웅.
이내 바닥에 숨겨진 술식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너지는 결계.
한세연은 놀란 표정이 되어 눈앞의 달라져 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나 역시 그녀를 따라 달라진 풍경 을 바라봤다.
그리고 시선의 끝.
200m쯤 떨어진 산 위에 작은 별 장이 하나 보였다.
저 별장이 바로 검귀가 은거하고 있는 별장이었다.
“저 위로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다시 앞으로 걸어가려는 그 때.
갑작스럽게 소름이 돋으며 둥 뒤에서 강한 살기가 느껴졌다.
보통의 기운이 아니었다.
나는 서둘러 뒤를 돌아 한세연의 앞에 섰다.
“진우 씨‘?”
갑작스러운 행동에 한세연이 내 이 름을 불렀다.
나는 마력을 끌어올리고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했다.
그때 어둠 속에서 2명의 적이 모 습을 드러냈다.
“……기척은 확실히 숨겼을 텐데
어떻게 눈치챈 거지?”
두 명의 남성이었다.
한 명은 흑발의 중년 남성이었고, 다른 한 명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 고 있었다.
느껴지는 기운으로 봐서는 둘 다 S 등급.
당연하겠지만 ‘달의 가호’의 효과 가 없는 한 나 혼자서 어떻게 해볼 상대가 아니다.
그렇지만, 상대를 확인할 필요가 있기에 외부자의 혜택을 발동해 상 대를 확인했다.
하나는 정환.
S등급의 마인이자 이제는 얼마 남 지 않은 십마회의 간부였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알 아사드.
암살 길드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알 려진 S등급의 마법사였다.
원작에서는 한세진의 검으로 활동 하며 이서준의 암살을 시도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한 명을 상대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데 두 명을 상대로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고민을 하는데 복면의 남성,
알 아사드가 나를 바라보며 중얼거 렸다.
“……김진우?”
그리고 그 말에 옆에 있던 정환이 내게 시선을 돌렸다.
“……김진우라고?”
그러더니 말을 잇는다.
“……설마 혼자서 특무팀 4명을 상 대했던?”
나는 멍하니 그 둘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이들도 김진우와 마인 사 냥꾼이 동일 인물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둘의 시선을 마주하며 무언가 의문을 느꼈다.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에는 깊 은 두려움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 다.
심지어 정환, 저놈은 뒷걸음질까지 하고 있다.
“쓰읍. 이걸 어쩌지? 김진우가 옆 에 있다는 이야기는 전혀 못 들었다 고……
그리고 떠오르는 메시지.
오등급의 마법사가 당신에게 겁을
먹었습니다.]
[‘약자의 기선 제압’ 업적을 달성합니다.]
[보상으로 4,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이건 또 뭐야.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