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4화
내게 새로운 특성을 안겨주었던 신 영준의 차례가 끝나고.
망가진 귀를 정화해주겠다는 듯, ‘천상의 목소리’라는 희귀 특성을 가졌다고 알려진 1학년의 신예은이 라는 학생의 차례가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등장과 동시에 관중 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특별한 힘은 전교생 모두가 알고 있을 만큼 유명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그녀의 노래.
“와......
노래가 시작됨과 동시에 여기저기 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나 역시 마 찬가지 였다.
부드러운 목소리와 깔끔한 고음.
그녀의 노래 실력은 가수라 해도 손색없을 만큼 뛰어났다.
“이게 천상의 목소리인가? 미쳤 네.”
“것보다 갑자기 몸에 활력이 도는 데?”
그렇게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눈앞 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름다운 노래에 ‘미적 감각(B)’이 반응합니다.]
[‘미적 감각(B)’의 숙련도가 대폭 상숭합니다.]
[현재 미적 감각〈B)의 숙련도 :
79%]
[마력이 담긴 아름다운 노래를 들 었습니다.]
[30분간 모든 능력치가 8% 상승합
니다.]
모든 능력치의 8% 상승.
30분이라는 시간제한이 있었지만 짧은 한 곡으로 8%의 능력치 상승 을 준다는 건 어마어마한 효과였다.
아마 수많은 대형 길드에서 그녀를 영입하기 위해 엄청난 힘을 쏟겠지.
—감사합니다.
그 뒤로 노래 공연은 계속 이어졌다.
첫 무대였던 신영준의 노래가 공연 장의 첫인상을 망쳐서 그렇지 전체 적인 수준은 매우 높았다.
“다들 진짜 잘 부른다.”
“그러게. 그나저나 서윤이 차례는 언제래?”
“이제 곧.”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대 위로 긴장한 얼굴의 최서윤이 걸어 나왔다.
그녀의 등장과 동시에 관중석 사이 에서 지금까지와는 격이 다른 커다 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서윤아아아아악!
—언니이이잇!
그리고 그 엄청난 반응에 윤하영이 놀란 반웅을 보였다.
“와…… 서윤이 인기 뭐야?”
“쟤 원래 인기 많잖아.”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긴 했지만 나 역시 조금 놀라긴 했다.
설마 이 정도 광기일 줄은 생각도 못 했거든.
—아, 안녕하세요. 2학년 최서윤입 니다…….
최서윤은 어딘가 딱딱하게 굳은 목 소리로 자기소개를 했다.
평소 사람들의 관심을 즐기던 그녀 였지만 오늘만큼은 그녀답지 않게 긴장감이 가득했다.
—이야. 무슨 함성이…… 인기가 상당한데요?
사회자는 그녀의 긴장감을 풀어주 려는 듯 웃으며 말을 걸었다.
하지만 긴장이 쉽게 풀리지 않는지 그녀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긴장했나 봐.
—그러게. 저러다 실수하는 거 아 니야?
그리고 다른 참가자에게 그랬둣 사 회자와의 간단한 인터뷰가 시작된 다.
—으음. i miss you이라는 노래를 준비하셨네요?
—아, 넵.
제목을 듣자마자 원래 살던 세계의 몇몇 노래가 생각났지만, 이 세계에서는 원래 살던 세계의 노래가 존재 하지 않기에 내가 모르는 노래일 것이다.
—오…… 이거 꽤 애절한 곡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 본인 이야기~?
사회자가 장난스레 웃으며 물었다.
—네? 아, 그게 어
말끝을 흐리며 당황하는 최서윤의 모습에 관중석이 술렁였다.
최서윤은 어딘가 불안한 눈빛으로 관중석을 둘러보더니 내가 서 있는 방향에서 멈추었다.
순간 눈이 마주치자 내 몸이 굳었다.
이거 내가 긴장이라도 풀어줘야 할 거 같은데.
짧은 시간 고민하다가 입 모양으로 ‘화이팅’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그 뜻이 전해졌는지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자, 서윤 학생 긴장하지 말고 편안하게 해요. 그럼 음악 주세요!
이내 어디선가 부드러운 음악이 흘 러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술렁이던 관중석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최서윤은 소중한
물건을 집듯 마이크를 두 손으로 꼭 쥐었다.
그리고 시작된 첫 소절.
—와아.
기교 없이 담백하게 나오는 청아한 음색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관중석에서 작은 감탄이 터져 나왔다.
나 역시 조금 놀란 눈으로 그녀의 노래를 들었다.
얘가 이렇게 노래를 잘 불렀나?
아니, 굳이 따지자면 이전에 무대 에 오른 다른 참가자들보다 잘 부르 는 것은 아니었다.
특별한 기교 없이 자신의 타고난 음색만을 이용해 노래를 부르고 있 었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노래에는 앞의 참가 자들에게 없었던 애틋한 감정이 담 겨 있었다.
“선우야. 서윤이 잘한다. 그치?”
“……어. 그러게.”
꿈을 꾸는 듯한 몽환적인 시간이 지나가고 노래는 어느덧 후렴부에 이르렀다.
그녀의 감정에 동화되듯 관객들은 어딘가 아련한 눈빛이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소절을 부른 최서윤 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노래가 끝 이 난다.
잠시 이어지는 고요함.
이내 정신을 차린 관중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박수를 받는 그녀의 얼굴에는 아까 와 같은 긴장감 대신 후련함과 만족 스러움이 가득 차 있었다.
이내 그녀는 내게 다시 시선을 돌 리며 밝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 왔어.”
오후 9시 15분.
태휘제 2일 차 일정을 모두 마치 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나를 반겨주는 그레텔을 번쩍 들어 올리고는 기계처럼 소파로 걸어가 드러누웠다.
그렇게 누워 있으니 머릿속에서 오 늘 있었던 있듯이 떠오른다.
연극, 예술 구현, 노래 공연…….
생각해보면 별거 아닌 일들인데, S 등급 빌런과 싸웠던 것보다 더한 피 로감이 느껴진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오늘 내 팬들이 선물 을 잔뜩 줬었는데.
나는 아공간에 넣어두었던 선물을 하나하나 꺼냈다.
펼쳐보니 종류는 다양했다.
각종 간식부터 시작해서 옷, 영약, 특수 재료, 편지 등등.
나는 가장 먼저 옷 하나를 집어 들어 올렸다.
“……홈. 딱 맞는데 사이즈는 어떻게 알아낸 거지.”
“응애.”
슬쩍 고개를 돌리니 그레텔이 옆에서 신기한 눈으로 간식들을 바라보 고 있다.
“그레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아 무거나 골라 먹어.”
“웅애!”
그레텔은 신난 얼굴로 과자봉지 하 나를 집더니 먹기 시작했다.
그런 그레텔의 모습을 바라보며 피 식 웃다가 바로 앞에 보이는 핑크
색으로 꾸며진 편지 봉투를 발견했다.
“편지라.”
나는 곧바로 내용을 확인했다.
[TO.김선우 학생.
항상 응원합니다. 옆의 간식은 제 마음이니 받아주세요!]
짧은 문장.
내용 자체만 보면 간결하지만, 느
껴지는 진심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팬레터’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오……
갑작스러운 업적에 다시 마음이 따 듯해지던 그때.
바닥 위에 올려 두었던 스마트 학 생 수첩에서 메시지 알람이 울렸다.
내용을 확인하니 단톡방이었다.
[김선우 진짜 안 을 거?]
신영준에게 온 메시지였다.
오늘 있을 태휘제의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는 불꽃놀이를 보지 않겠냐 는 거다.
나는 천천히 답장을 입력했다.
[개인적으로 할 일이 있고 피곤해. 너네끼리 봐.]
불꽃놀이야 최근 자주 봤으니까 별 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애초에 그런 걸 보면서 감동을 느 낄만큼 감성적인 성격도 아니고.
그리고 왠지 모를 낯간지러움이 느 껴진다고 해야 하나.
뭐, 그런 이유보다 오늘은 정말 할 일이 있어 참가하지 못한 거지만.
나는 스마트폰을 들었다.
[종사님. 한세진이 김선우와 김진 우의 관계에 대해 의심하고 있습니
노래 공연이 끝나고 엘린에게 왔던 짧은 메시지.
한 문장이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 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의심이라면?]
[아무래도 최근 마인에게 어떤 소 스를 얻은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김선우’에 대한 의심에서 지금은 김진우, 그리고 마인 사냥꾼과 엮어 동일 인물의 가능성에 대해 거의 확 신하는 상태입니다.]
답장은 빠르게 왔다.
내 정체를 확신했다라…….
십마회에서 나를 예언의 아이로 확 신하고 있으니, 한세진에게도 이 정 보가 어느 정도 전달된 모양이다.
“조금 골치 아프네.”
마인의 왕은 졸업 전에 처리할 예 정이라 큰 문제는 없지만, 한성가는 말이 다르다.
협회 다음으로 가는 가장 큰 세력 이기도 하고, 한세진이 가진 성격과 권력욕을 보았을 때 녀석이 언제 나
를 공격할지 전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다 한성가는 대한민국 언론을 주무를 힘을 지니고 있다.
만약 녀석이 ‘김선우’와 ‘김진우’에 관련된 찌라시를 퍼트리기라도 한다 면…….
“한성가의 일도 빠르게 끝내야겠 네.”
해야 할 일이 태산이다.
한성가에 마인에 크루아스에 네 번 째 일지에 김창현까지.
점점 사건이 크게 앞당겨지거나 내 가 모르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나 혼자 해결하 기에 벅차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 내게 힘이 될만한 인물이 필 요한데.
“한세연……
생각해보니 조만간 그레텔의 열매 로 만든 영약 제조 일로 만나기로 하긴 했는데.
“……한세연도 요즘 뭔가 이상하단 말이지.”
겉으로는 티를 내려 하지 않으려 하지만, 미묘하게 나를 대하는 태도 가 달라졌다.
한세연과 매일 연락하고 가까이 지 낸 나였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아마 눈치가 빠르니 내 정체에 대 해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을 지도 모른다.
“일을 이것저것 너무 크게 벌였 나.”
곰곰이 생각에 잠기다가 스마트 학 생 수첩으로 인터넷을 켰다.
그리고 마법사 커뮤니티에 접속해 검색창에 ‘김선우’를 입력한다.
[태휘제 연극 4계통 후기]
[4계통 보고 왔는데 김선우 연기 진짜 잘하더라]
[김선우 여친 있다는데 진짜임?]
[왠지 모르겠는데 김선우는 뭔가 뒤가 구린 느낌.]
동시에 떠오르는 수많은 게시글.
오늘 있었던 연극부터 시작해서 내 실력에 대한 찬양, 질투, 경계. 다양 한 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의미 없는 내용을 쭉쭉 넘 기다가 며칠 전 S둥급 마인인 엘리 나 킴을 처치하던 시간대의 게시글
들을 확인했다.
[마인 사냥꾼 저거 김선우 99% 맞 음. 증거 있음]
[김진우랑 김선우 관계도 의심해야 할 거 같은데 거거]
[2년 내로 비슷한 스타일의 마법사가 셋이나 등장한 건 솔직히 의심스 러움.]
[어휴. 음모론자 많네; 김선우가 협회를 속이는 게 가능하다고 보 냐?]
이미 김선우와 김진우. 그리고 마인 사냥꾼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 가 득하다.
“……슬슬 숨기는 것도 한계가 오 긴 했네.”
해야 할 일들이 늘어나면서 신분을 숨기는 것도 쉽지 않게 변했다.
그러다 보니 유추할 만한 많이 노출하기도 했고.
지금 당장은 의혹에서 멈춰있지만 사건을 해결하다 보면 언제 걸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그렇게 된다면 지금껏 힘들게 쌓아 올린 ‘김선우’라는 브랜드 이미지(?)
가 한순간에 추락할 수도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것도 나름 괜찮을지 도 모르겠네.”
꽤 많은 포인트를 획득할 기회가 될지도 모르니까.
……는 농담이고.
이서준의 죽음을 막고, 메인 스토 리를 진행시키기 위해서 적을 많이 만드는 것은 좋지 않다.
게다가 졸업 후에 이서준을 따라 ‘특무팀’에 들어가야 하기에 내 이 름에 홈집이 될만한 건 절대 있어선 안 된다.
그렇게 졸업 후의 계획을 머릿속으
로 떠올리는데 스마트 학생 수첩에서 전화 알람이 울렸다.
나는 멍하니 화면에 적힌 이름을 바라보았다.
[최서윤]
“……어, 여보세요?”
전화를 받자마자 아직 축제 현장에 있는 듯 수많은 시끄러운 소란이 들 려온다.
[아, 여보세요? 선배님. 지금 기숙 사에요?]
어, 그렇지?”
최서윤의 물음에 대답하자 그녀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님, 혹시 먼저 들어가신 거 저 때문 아니죠?]
“웅? 아. 그런 거 아니야. 내가 뭐 하러.”
[아뇨. 혹시나 해서요.]
이어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온 다.
[야. 김선우 너 진짜 안 나오냐?]
신영준의 목소리였다.
아무래도 주요 등장인물들이 다 같
이 모여 있는 모양이다.
[선우야. 곧 불꽃놀이 시작해!]
다음으로 윤하영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목소리 톤을 보니 다들 신났구만.
“됐어. 너네끼리 놀아. 할 일도 있 고 피곤해.”
[김선우.]
이번에는 이서준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이것들이 돌아가면서 뭐 하는 짓인 지.
“거참. 난 신경끄고 놀라니까 그러
네.”
[그래도 같이 놀아야지. 일단 창밖 으로 나와봐. 곧 불꽃놀이 시작하는 데 구경이라도 해.]
그 말에 슬쩍 시간을 확인했다.
9시 29분.
불꽃놀이가 30분에 시작이니 그의 말대로 이제 코앞이다.
“홈……
기숙사 창문을 통해서도 보이긴 하 겠네.
미적 감각 숙련도나 올릴 겸 멀리 서 구경이나 할까.
나는 천천히 창문을 열었다.
시원한 초겨울의 바람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김선우!
그리고 들려오는 익숙한 외침.
깜짝 놀라서 1충을 내려보니 이서준 일행이 모여서 손을 혼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너네 거기서 뭐 하냐?”
—오늘 종일 같이 놀았는데 마지막 까지 같이 봐야지!
정말이지 저놈의 청춘들은 내가 따 라갈 수가 없다.
그놈의 불꽃놀이가 뭐가 그리 중요 하다고.
그런 생각을 하며 헛웃음을 홀리던 그때.
피웅- 소리와 함께 멀리서 화려한 마력을 뿜어내는 불꽃 하나가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이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아름 다운 화염의 꽃을 피워냈다.
이어서 다시 한번.
또다시 한번.
무지개처럼 피어오르는 형형색색의 불꽃은 눈 부신 빛을 내뿜으며 내 두 눈을 비춘다.
이전 생을 합쳐 보는 것만 네 번 째인데도 볼 때마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괜히 태휘제의 불꽃놀이가 세계 3 대 불꽃놀이라 불리는 게 아니구나.
“……멋지긴 하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