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화
“여기도 김선우. 저기도 김선우. 아 주 세상의 주인공이구만.”
오후 10시 마법사관학교 훈련장.
태휘제 일로 늦게 훈련을 마친 신 영준이 스마트 학생 수첩의 뉴스를 보며 중얼거렸다.
'유망주 김선우, ‘책임감으로 버 텼다.’ 태휘제 사고 속에서 모범적 인 활약」
r21 일 19시, SBC에서 김선우 특 집 방영…… 기대감 증폭」
그의 말대로 현재 세상의 중심은 김선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기서도 김선우. 저기서도 김선우. 어느 방송사에서는 김선우 특집을 방영하겠다며 광고도 하고 있었다.
“오늘 활약이 대단했잖아. 김선우 가 조기 진압에 실패했으면 아마 축 제 중단됐을걸?”
같은 타이밍에 귀가 준비를 마친 이서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그렇기는 한데, 최근 들어 하도 난리라 이상하게 걱정된단 말 이지.”
그의 말대로 김선우의 주가는 날이 갈수록 상승하고 있다.
어디를 가도 김선우의 이야기가 나 오고 있으며, 그가 졸업하는 내년에 는 이서준과 나란히 차기 최고의 스 타 마법사가 될 것이 확정적이었다.
이른바 ‘김선우 신드롬’이라는 거 다.
이 정도 인기라면 대선에 출마해야 하지 않을까.
“무슨 걱정?”
바로 그때 때마침 훈련을 마친 유 아라가 다가오며 물었다.
신영준은 힐끔 유아라를 보고는 대 답했다.
“대중의 관심이라는 게 꼭 좋은 것 만은 아니잖아. 누군가의 시기를 받 을 수 있고, 또 음……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신영준이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 기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괜한 쓸데없는 걱정 인 거 같네. 신경 쓰지 마.”
하지만 이서준과 유아라는 그가 무 엇을 말하려 했는지 어렴풋이 눈치
챘다.
세상에는 좋은 일만 있을 순 없다.
좋은 일이 있다면 그 반동으로 나 쁜 일이 생길 수도 있는 일이다.
물론 반드시 그런 일이 생긴다는 건 아니지만, 김선우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느낌이 있었기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전에 들었던 김선우의 죽음 에 관한 예언이 신경 쓰이기도 했고.
“김선우는 걱정하지 않아도 항상 잘 해내 왔으니까. 알아서 잘할 거
야. 그나저나 오늘은 결국 네 말대 로 됐네?”
유아라가 분위기를 바꿀 겸 신영준 에게 말했다.
“아, 김선우 표정 보고 사건이 터 질 거 같다는 거?”
“웅, 설마 진짜로 사건이 터질 줄 은 몰랐어.”
“김선우 표정을 보니까 왠지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한두 번이 아니잖냐?”
“……그럼 김선우가 오늘 터질 사 건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건가?”
유아라가 생각에 빠진 목소리로 중
얼거렸다.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예지 능력이라도 있는 건가 싶기는 한데, 저번에 물었을 땐 또 아니라고 하 고. 에휴 나도 모르겠다〜”
그 말에 유아라가 작게 웃었다.
“비밀이 많은 건 예지 능력자의 전 통적인 특징이긴 하지.”
예로부터 내려온, ‘예언’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공통점이었다.
그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예 언자도 아니고 무슨 비밀이 많아’라 는 농담은 과거 세대부터 자주 사용 되었으니까.
“너는 어떻게 생각해?’’
신영준이 이서준에게 물었다.
이서준은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 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해보긴 했지. 미래를 알고 있는 게 아니면 김선우 의 행동을 설명하기 힘든 게 많으니 까.”
사건이 터지기 전에 미리 움직인다 거나, 혹은 갑자기 사라지더니 사건 이 해결되면 돌아온다거나.
확실히 미래를 알고 있다고 의심되 는 행동이 많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은 김선우가 예언의 힘 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의 비상식적인 강함, 달라진 행 동...
이 모든 것을 추리해 보았을 때 예언자보다는 다른 쪽이 더 그럴싸 해 보였으니까.
“이서준?”
혼자 생각에 잠긴 모습에 유아라가 나지막이 불렀다.
정신이 든 이서준은 고개를 들어 올린 곤 미소를 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운동회의 성향이 강한 태휘제 1일 차가 끝나고, 축제의 꽃이라 불리는 태휘제 2일 차의 날이 찾아왔다.
이를 즐기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외부의 관광객들이 찾아오기 시작했 으며, 오늘 열릴 ‘문화 예술 대회’를 위해 학생들도 바쁘게 움직였다.
“어? 저기 선우 왔다.”
그렇게 문화 예술 대회의 현장에
도착하자 윤하영이 반갑게 나를 맞 이했다.
그 주변에는 주요 둥장인물들이 모 두 모여 있었다.
“벌써 다 모였네.”
“오늘 준비할 게 많잖아. 너네는 연극 해야 하고 나는 구현 대회 준 비해야 하고.”
“연극이 첫 번째 순서였던가?”
이서준의 물음에 윤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다음이 구현 대회고…… 그 다음이 노래 대회일걸?”
그때 최서윤이 웃는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아 참. 선배님, 오늘 사람들 모인 거 봤어요?”
당연히 봤다.
아니, 못 볼 수가 없었다.
정문에 작년 태휘제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인파가 몰려 있었으니 까.
“엄청 많이 왔던데. 보고 깜짝 놀 랐어.”
“저 중 절반은 너 보러 온 걸걸? 어제 뉴스에서 광고 엄청하던데.”
이서준이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 광고?”
“응, 어제 뉴스에서 연극 광고하더 라고. 관심 있으면 보러 가라면서.’’
뭐야.
어젯밤부터 갑자기 웅원 메시지가 쏟아지더니 이것 때문이었나?
뭐, 관심이 커지는 만큼 더 많은 포인트를 벌 수 있으니 나야 상관없 기는 한데…….
오히려 걱정되는 건 이서준과 유아 라다.
이 둘의 끔찍한 발연기가 가져올
파멸적인(?) 결말을 나는 알고 있었 으니까.
“흐음. 걱정되네.”
그때 윤하영이 끼어들었다.
“뭐 어때. 이참에 일상 연기로 갈 고닦은 실력 모두에게 보여주자고!”
일상 연기는 또 뭐야.
그리고 윤하영의 발언에 최서윤이 의문에 찬 표정을 지었다.
“……일상 연기로 갈고닦은 실력이 요?”
“으웅? 아! 일상 연기가 아니 라…… 어, 그러니까……
자신이 말실수했음을 깨달은 윤하 영이 말끝을 흐렸다.
그 모습을 보자 자동으로 한숨이 나왔다.
저거 또 저러네.
설마 실수한 척 사회적 암살각 보 는 건 아니겠지?
“나랑 연습했던 연기 말하는 거야. 연습 상대가 필요해서 이틀 전부터 윤하영한테 부탁해서 몰래 연습했거 든.”
사실 연습 같은 거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지 어내서 말했다.
최서윤이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연기 연습이면 저도 도와줄 수 있 었는데……
무언가 다 풀린 느낌은 아니지만, 다행히 그럭저럭 넘어간 것 같다.
[지금부터 3학년 태휘제 특별 공 연,「4계통」을 시작하겠습니다!]
마법사관학교의 대강당.
태휘제 2일 차 문화 예술 대회의 주인공이라 불리는 4계통의 연극이 시작되었다.
어제 있었던 법학 교수의 잠재 개 성 사건을 끝낸 김선우를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얼마나 많은지 자리가 부족해 뒤에서서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진지하게 기대는 하나도 안 되고 걱정만 되네. 이서준이랑 유아라는 연기 더럽게 못하고, 김선우는 호흡 도 맞춰 본 적 없고. 총체적 난국 아니냐?”
좌석에 앉은 신영준이 불안해하는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윤하영이 공감 하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아라는 진짜 심각하긴 하 던데.”
주변에는 수많은 방송국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마법사관학교 최고 유망주인 이서준, 유아라, 김선우의 출연 소식 때 문도 있었지만 어제의 사건으로 많 은 방송국이 몰렸기 때문이다.
“김선우 선배님 연기실력은 어때 요? 이틀간 연습 상대해 줬다면서 요.”
최서윤의 물음에 윤하영이 잠시 몸
을 움찔했다.
“……웅? 선우?”
전혀 모르는데.
연기 상대를 봐주었다는 것도 김선 우가 지어낸 말이었고.
“어, 그게…… 나쁘지 않게 해.”
생활 연기와 정해진 대본을 읊는 연기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분명한 톤이 존재하는 연극이라면 더더욱.
그렇기에 생활 연기를 잘한다는 이 유로 김선우가 잘할 거라고 대답하 기에는 곤란한 점이 있었다.
괜히 잘한다고 기대감 줬다가 못하 면 미안하니까.
“으음. 그래요?”
최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무대의 조명이 꺼졌다.
소란스러웠던 관중석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이내 발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횐 셔츠를 입은 이서준이 모습을 드러 냈다.
—……마력, 은 오묘하고 신비롭다.
인간이 이해할一.
부자연스럽게 딱딱 끊어지는 목소 리. 이내 입을 다물고는 다시 말했다.
—이해하기에는 너무나도 광활, 하 다.
동시에 관중석 사이에서 웃음소리 가 터져 나왔다.
신영준은 부끄러움을 느끼다가 어 이가 없는지 따라 옷었다.
—인류의 발전을 위해, 마력은 모 두가 이해하기 쉽게, 확실한 구분을 지어야…… 한다.
이서준의 발연기는 계속해서 이어 졌다. 어찌나 심한지 몇몇 관객들은 연극의 컨셉이 개그라고 착각할 정 도였다.
그렇게 끔찍한 시간이 홀러 ‘죽음 의 마녀’ 역할의 유아라가 걸어왔다.
아름다운 검은 드레스를 입은 그녀 의 등장에 관중들 사이에서 작은 감
탄이 터져 나왔다.
“와아. 아라 선배님. 엄청 멋지다.”
최서윤의 두 눈에 기대감이 가득 차올랐다.
유아라가 등장했다는 건, 곧 ‘죽음 의 마녀’의 부하인 짐꾼, 김선우도 둥장한다는 의미였으니까.
—……세, 세상의 파멸과 혼란. 그 것은 나쁜 것만이…….
하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는 반대로 그녀의 입에서도 어색한 대
사가 홀러나왔다.
그 반전의 모습에 관중석에서 다시 한번 폭소가 터져 나왔다.
그순간 유아라가 대사를 멈추었다.
—나쁜 것만이……?
“……아이고.”
윤하영은 한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아라, 대사 또 까먹었네.”
한참 연습할 때도 중간중간 대사를
잊어버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평소 이론 시험에서 최상위권 성적 을 보일 만큼 똑똑한 그녀였지만 부 담감 때문인 것인지 대본 만큼은 제 대로 외우질 못했다.
“아라 어떡해.”
그 순간.
무대 옆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 오더니 커다란 가방을 멘, 허름한 자켓을 입은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 다.
동시에 관중석 사이에서 다시 한번 작은 함성이 나왔다.
—김선우다.
“와아.”
최서윤은 김선우의 둥장을 기다렸 다는 듯 곧바로 스마트 학생 수첩을 들어 올렸다.
윤하영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힐끔 보다가 김선우에게 다시 시선을 돌 렸다.
“……아직 짐꾼 등장 타이밍이 아 닌데.”
그때 김선우가 말했다.
—마녀님의 말대로 파멸과 혼란이 나쁜 것만은 아니죠.
연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자연스 러운 목소리.
지금까지 개그 연기를 보다가 처음 으로 나온 연기다운 연기에 관중들 의 몰입도가 순식간에 올라갔다.
“와. 쟤는 연기도 잘하네.”
“그러게. 무게감이 확 오르는데.”
김선우의 한마디에 뭔가 다름을 느 낀 관객들이 옅은 감탄을 내뱉었다.
김선우는 연기를 이어나갔다.
—파멸이야말로 새로운 시작의 씨 앗이죠. 썩어 빠진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죽음만이 정답! 왜 사람들 은 마녀님의 뜻을 모르는 걸까요?
—……응?
대본에 없던 상황에 유아라가 당황 가득한 눈으로 김선우를 바라봤다.
이윽고 대사를 잊어먹은 자신을 도 우려는 것을 깨달은 듯 유아라가 고 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 그렇지. 파멸이야말로 새 로운一.
—하지만! 우리의 뜻을 모르고 시 시콜콜 방해하는 녀석이 있죠. 위대 한 마법사라 불리는 태휘. 녀석을 당장 죽여야 합니다.
김선우가 유아라의 대사를 자르며 다시 말했다. 유아라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혼란스러운 듯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어, 지금?
—네, 지금 당장!
—그게 아직 준비가…….
—지금이 기회입니다. 우리에게는 중요한 사명이 있지 않습니까?
—으응…… 아, 알았다.
이후 김선우. 아니, 짐꾼의 주도하 에 연극이 진행되었다.
「4계통」의 메인 빌런인 죽음의 마녀는 짐꾼의 뒤를 따라다니기 시 작했으며 심지어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는 태휘와의 전투 장면도 짐꾼 이 모든 대사를 대신 하고 있었다.
“……이거 뭐냐?”
그렇게 어릴 적 보던 동화, 「4계 통」의 내용과 달라진 것을 눈치챈 관중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짐꾼 역할이 원래 저렇게 뒤에서 조종하는 흑막 역할이었냐?”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