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0화 (379/535)

380화

“본부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아니에요. 기다리기 힘드셨을 텐 데 실장님이 더 수고하셨죠.”

“하하. 아닙니다.”

태휘제의 개막식 일정을 마친 한세 연은 비서의 인사를 받으며 차 뒷좌 석에 올라탔다.

운전석에 앉은 비서는 힐끔 한세연 의 표정을 살펴보고는 말했다.

“……그런데 혹시 안에서 무슨 일

이라도 있었습니까?”

갑작스러운 물음. 한세연은 의문에 찬 눈으로 비서를 바라보았다.

“아뇨. 아무 일도 없었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 뭔가 표정이 좋지 않으신 거 같아서 말입니다. 아무래도 제 기분 탓이었나 봅니다. 하하.”

그 말에 한세연은 작게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신경 쓰이던 일이 있어 자신도 모 르게 표정을 굳혔던 모양이다.

표정 관리에는 언제나 자신이 있었 는데.

“조금 피곤해서 그랬나 봐요. 최근 잠을 못 잤거든요.”

“......으음.”

그 말에 비서는 침음성을 홀렸다.

한세연의 살인적인 스케줄에 대해 서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 까.

아직 20대 초반이라는 어린 나이 인 그녀에게는 소화하는 것조차 쉽 지 않았을 것이다.

한세연은 그런 비서를 향해 걱정하 지 말라는 둣 작게 웃어 보였다.

“전 괜찮으니 너무 신경 쓰지 않으

셔도 돼요.”

“그럼 다행입니다만…… 으음. 네, 일단 출발하겠습니다.”

차가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갔다. 한세연은 앞 좌석의 비서를 물끄러 미 바라보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 렸다.

긴 도로와 아름다운 자연의 풍 경…….

그리고 축제를 즐기기 위해 구경 온 외부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마법사관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학생 대표를 준비하던 김진우……

아니, 김선우와 그 앞에서 사이좋은 모습으로 그의 외모를 꾸며주던 최 서윤.

“……둘이 무슨 사이지.”

“네? 방금 뭐라고 하셨나요?”

무의식으로 나온 중얼거림을 들은 비서가 물었다.

한세연은 놀라서 고개를 저었다.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음? 아, 네. 알겠습니다.”

당황하는 모습에 비서는 잠시 의문 을 느꼈지만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한세연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허벅

지 위에 포갠 자신의 양손을 꼼지락 움직였다.

그러곤 당시의 상황을 다시 떠올렸다.

—둘이 사귄다는 소문도 있어요!

신난 듯 귓속말로 소리치던 이희영 의 한마디.

그녀의 말대로 그 둘은 마치 사귀 기라도 하는 것처럼 가까워보이기는 했다.

아니, 사귀는 것…… 까지는 아니

더라도 최서윤만큼은 그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건 확실해 보였으 니까.

순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 이 느껴졌다.

‘김진우’와 ‘김선우’, 그에겐 어떤 것이 더욱 소중할까?

오늘 그의 모습을 보았을 때, ‘김 선우’의 삶이 더 소중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선우가 진짜.

김진우는 가짜. 그러니까 김진우는 김선우의 가면에 불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그에게 어떤 존재일까?

한세연은 그런 씁쓸함을 느끼며 품 안에서 아버지가 남긴 열쇠를 꺼냈 다.

신비와 관련된 단서를 얻을 수 있 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버지의 유품.

태평양 어딘가에 있는 섬으로 가야 만 사용할 수 있어, 가보진 못했지 만 밀린 일들이 끝나면 이틀 정도 휴가가 생길 것이다.

그곳에서 무엇올 알게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날까지 조금만 더 힘내

자.

[미래의 작은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

[인과율이 0.3 상승합니다.]

학교 축제 현장을 구경하며 돌아다 니고 있는데 눈앞에서 메시지가 떠 올랐다.

의문도 모르게 상승하는 인과율은 최근 자주 겪는 상황이다 보니 신경

쓰지 않고 바로 눈앞에서 치워버렸다.

“와아. 그나저나 사람 진짜 많이 모였다.”

옆에서 윤하영이 신난 목소리로 중 얼거렸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말대로 학교 내부는 수많은 사람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교복을 입은 학생, 취재를 위해 나 온 언론사. 유홍을 위해 구경 나온 일반인.

그리고 마법사가 꿈인 어린아이들 과 부모님들까지.

—야야. 저거 김선우랑 최서윤 아 니야?

—어, 진짜네? 이야. 되게 이쁘다. 옆에는 윤하영인가? 김선우 절친으 로 유명한 애.

—맞는 거 같은데 쟤도 엄청 이쁘 네. 그나저나 김선우도 실물이 훨씬 잘생겼다.

—보니까 학생 대표라고 좀 꾸민 거 같은데.

홈홈.”

주변에서 계속해서 들려오는 목소 리에 헛기침했다.

노골적인 칭찬에 괜히 낯간지러움 이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궁금한 게 생겨 즐거 운 얼굴로 축제를 구경하는 최서윤 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너 여기서 이래도 되는 거 야?”

태휘제에는 여러 이벤트가 준비되 어 있다.

그리고 이벤트에 참가에 좋은 성적 을 얻으면 ‘코인’이라는 점수를 얻 어 상품을 얻을 수 있다.

나는 3학년이라 이벤트를 참가하지 않아 상관없지만 2학년인 최서윤은 욕심이 날 텐데.

“올해 상품은 별로라서 편안하게 즐기려고요.”

최서윤이 웃으며 말했다.

아마 올해 태휘제의 상품은 ‘출입 국 게이트 10회 이용권’일 것이다.

작년의 상품이 ‘수련의 방 입장권’ 임을 생각하면 급이 조금 떨어져 보 이기는 하다.

“그리고 내일 문화 예술 대회에 참 가하잖아요.”

“음. 그렇긴 하지.”

태휘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문화 예술 대회는 내일 열린다.

참가하는 것만으로 많은 코인을 얻 을 수 있어 거기서 코인을 수급하려 는 모양이다.

그러다 문득 내일 있을 일들이 머 릿속에 떠올랐다.

괜한 긴장감이 들었다. 관객들 앞 에서 발연기를 선보일 이서준과 유 아라가 걱정되기도 하고.

물론 이것보다 더 걱정되는 건 따 로 있지만.

바로 오늘 있을 법학 교수의 잠재 개성인 졸음 유발의 폭주.

아직 시간의 여유는 있다.

법학 교수는 지금쯤 깊은 피곤함을 느껴 교무실에서 쉬고 있을 거고, 그의 개성이 폭주하며 사건을 일으 키는 건 오후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방심하지는 말 아야지.

그때 아까부터 내 눈치를 살피던 윤하영이 내게 작게 속삭였다.

—선우야. 그래서 오늘 무슨 일이

터지는 거 맞지?

역시 눈치채고 따라온 게 맞네.

발뺌하기엔 글렀다는 생각이 들어 솔직하게 대답하려는 그 순간.

어디선가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비켜주세요!”

한 남성의 다급한 외침.

소란스러웠던 축제의 현장이 잠시 조용해졌다.

기절한 듯 쓰러진 누군가가 등에 업혀 있었다.

사람들은 놀란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지?”

“갑자기 쓰러졌나 봐.”

“어머. 무슨 일이래.”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눈을 찌 푸렸다.

저거 설마 법학 교수의 ‘졸음 유 발’에 당한 건가?

“씁……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원작대로라면 졸음 유발의 폭주화 는 오후에 일어날 사건이었는데.

“선우야 이거……

내 표정의 심각성을 느낀 윤하영이 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잠시 뒤.

—꺄아악!

—여기, 여기 사람들이!

어디선가 터져 나온 강렬한 비명이 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사람들의 얼굴 에 당황의 빛이 번져갔다.

“서, 선배님! 이거 무슨 일 터진 거 아니에요?”

“가보자.”

우리는 서둘러 비명이 들리는 방향 으로 달려갔다.

공원의 끝, 초대 공연을 위해 마련 된 무대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 모인 수많은 인파가 당황스 러운 얼굴로 서 있었다.

“비켜봐요!”

나는 인파를 헤치고는 사건이 터진 풍경을 바라보았다.

무대 아래로 시체처럼 쓰러진 수많

은사람.

어림잡아도 30명은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중에는 마법사관학교의 교복을 입은 학생도 있었다.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법학 교수의 잠재 개성 폭주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김선우다.

그때 먼저 이 상황을 발견한 인파

들이 나를 발견했다.

나는 그들을 무시하고는 달려가 사 람들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마력을 주입하자 그들의 몸 안에 흐르는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마치 환술처럼 주변 사람들의 뇌에 영향을 주어 그들을 잠들게 한 것이다.

일종의 마나 역류 현상과 비슷했다.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윤 하영에게 말했다.

“괜찮아. 단순히 잠든 거야. 마력이 조금 꼬이긴 했지만.”

“……잠든 거라고?”

윤하영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곧바로 사람들의 몸 안에 꼬 인 마력을 풀어주었다.

그때 뒤늦게 달려오는 발소리들이 들려왔다.

뒤를 돌자 마법사관학교의 보안을 위해 파견 나온 협회의 마법사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게 뭐야? 설마 테러인가?”

“아니야. 살상의 흔적은 보이지 않 아.”

“테러가 아닌데 이 많은 사람이 왜 쓰러져 있는 건데?”

“나도 모르지.”

당황한 얼굴로 떠드는 그들에게 말 했다.

“외부의 힘에 의해 마력이 꼬여서 잠시 잠든 거예요.”

“……외부의 힘? 잠깐 너 설마 김 선우?”

얼타는 그들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 이곤 말했다.

“이대로라면 잠에서 못 깨어날 수 있어요. 빨리 와서 도와요.”

“……어, 어어. 으응.”

“나는 지원 요청하고 올게!”

협회의 마법사 하나가 일어서더니 어디론가 달려갔다.

나는 사라져가는 협회의 마법사를 한번 살펴보곤 최서윤과 윤하영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희도 와서 도와줘.”

“아, 네!”

그렇게 내 지시에 따라 협회의 마법사들과 최서윤, 윤하영이 움직였다.

아무리 폭주화로 강해졌다고는 하

나 어디까지나 잠재 개성.

마력이 아닌 다른 제3의 힘을 사 용한 것이기에 사람들의 상태는 심 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 행동을 뒤에서 지켜보던 시민들은 신기함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뒤통수에 따가움이 느껴졌지만, 신 경 쓰지 않고 천천히 꼬인 마력들을 풀어갔다.

“그런데 외부의 힘이라면 원인이 있을 텐데……

한 협회의 마법사가 의문에 찬 목 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마 잠재 개성의 폭주화일 거에 요.”

“……잠재 개성?”

잘 모르는 분야인지 협회의 마법사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소수의 몇몇 사람이 갖고 있는 특 별한 재능 같은 거예요.”

“아니, 그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 지. 그런데 잠재 개성으로 이런 일 이 가능할 것 같진 않은데……

나는 마력을 풀어내며 말했다.

“잠재 개성의 폭주 현상이면 가능 해요.”

“아! 그거 들어봤어. 근데 그걸 어떻게 확신해?”

“마력이나 신비가 원인이었으면 진 작 감지됐을 거니까요. 그렇다고 다른 도구를 사용했다고 하기엔 마력 의 역류를 설명할 수 없고요.”

“……와. 그러네. 너 소문대로 머리 엄청 좋구나.”

사실 정답을 알고 있으니 끼워 맞 춘 거지만 밝힐 수 없어 어깨를 으 쓱였다.

그 후 담당하던 시민의 마력을 풀 어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이만 가볼게요. 여기 남아서

쓰러진 사람들을 돕고 있어요.”

“……웅? 같이 도와줘야지. 어디 가게?”

“더 큰 피해자가 안 생기게 막아야 죠.”

내 말에 협회의 마법사가 눈을 찌 푸렸다.

“누가 이런 짓을 벌였는진 알고?”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되는 사람이 있어요.”

한편, 외부에 일어난 소란으로 인 해 한참 연극올 준비하던 이서준 일 행은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곧장 야 외로 나왔다.

즐거운 축제 현장이 되어야 할 태 휘제는, 무슨 일인지 혼란한 상황이 되어 있었다.

“아오. 내 이럴 줄 알았다!”

신영준의 다급한 외침. 이서준과 유아라는 의문에 찬 표정을 지었다.

“이럴 줄 알았다니?”

“김선우 말이야. 걔 오늘 표정이

안 좋았잖아.”

신영준의 말에 이서준이 오늘 보았 던 김선우의 표정을 떠올렸다.

확실히 학생 대표 연설을 훌륭하게 끝냈음에도 그의 표정에는 만족감보 다는 긴장감이 더 강했다.

“……설마 김선우는 이런 일이 일 어날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거야?”

유아라가 황당함에 찬 목소리로 묻 자 신영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거 아니야? 김선우 패턴도 하루 이틀이어야지. 2년 가까이 이 러고 있는데.”

“……묘하게 수긍되긴 하네.”

유아라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서준은 둘의 대화를 들으 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김선우가 오늘 터질 사건을 미 리 알고 있었다고?

“야야. 저기에 사람들이 쓰러져 있 는데?”

신영준의 말에 이서준과 유아라가 시선을 돌렸다.

그들의 시선 끝에는 수많은 사람이 기절한 듯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한 남성이 마치 잠에 취한 듯 비틀거리는 발걸음으

로 걸어가고 있었다

“……저거 법학 교수님 아니야?”

법학 교수가 움직일 때마다 주변의 사람들은 픽픽 정신을 잃으며 쓰러 져갔다.

이서준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 소란의 원인이 저 교수라는 것 을

그렇게 교수를 저지하기 위해 달려 가는 그때.

알 수 없는 감각이 머릿속에 스며 들더니 강한 어지러움을 일으켰다.

이서준은 뒤로 물러서 이마에 손을

얹었다.

“......으윽!”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힘, 마력도 아니고 대체 뭐지?

“……교수님!”

이서준이 법학 교수의 등 뒤로 크 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법학 교수는 이전과 그대로 잠에 취 한 발걸음으로 걷고 있었을 뿐이었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