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2화
굴러떨어진 몸을 일으킨 선화와 엘 리나는 긴장감이 깃든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침착하게 그들을 바라보다가 전투를 위해 조용히 마력을 끌어올 렸다.
[사용 효과, ‘숭전보’ 효과를 발동 합니다.]
[표적은 ‘엘리나 킴’입니다.]
이것으로 모든 전투 준비가 완료되 었다.
[달의 가히의 효과로 컨디션 역시 매우 좋다.
비록 십마회에서 최상위 실력을 가 진 두 s등급의 마인이지만 패배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슬슬 전투를 시작하려는 그 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저거 엘리나 킴 아니야?
—……어, 그런 거 같은데? 야. 근
데 엘리나 킴 팔이 재생되고 있는 거 뭐냐? 엘리나 저거 설마 마인이 었어?!
—미친.
고개를 돌리자 도시의 시민들이 모 여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인구가 밀집되어있는 도심 한복판 인 만큼 작은 소란이 터지자 순식간 에 사람이 몰려든 것이다.
—근데 저 남자는 누구야? 마스크 랑 모자 때문에 얼굴이 안 보이는 데.
-……몰라. 특무팀은 아닌 거 같 은데.
—마인 사냥꾼 아니야? 그 있잖아. 1년 전부터 있었던 의문의 마인 암 살 사건들.
대충 들려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 정체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한 모양.
많은 사람 앞에서 너무 모습을 드 러내 버린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 택이 었다.
오늘 엘리나를 놓친다면, 그대로
잠적할 것이고 내가 계획했던 ‘십마 회 말살 계획’에 지장이 생길 테니 까.
그래서 조금 충동적으로 행동한 경 향이 있지만 크게 상관은 없었다.
엘리나와 선화.
두 명의 S등급 마인을 동시에 토 벌할 천금 같은 기회가 생겼으니까.
그때 내 맞은편에 선 선화가 입을 열었다.
“……엘리나. 너 똑바로 말해. 이 녀석 정말로 예언의 아이야?”
“확실해. 멸마의 힘이 아니면 재생 력이 이렇게 억제될 수가 없어.”
“……예언의 아이.”
선화는 나를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 렸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향 한 그 눈빛에 복잡하면서도 미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대체 뭘까? 잠시 의문을 느끼다가 빠르게 빛 속성 마법을 구현해 녀석 을 향해 속사했다.
파앙!
선화는 빠르게 점프하여 내 공격을
피해냈다.
과연, 십마회에서도 최상위의 실력 을 가진 그녀답게 움직임이 상당했다.
이어서 ‘폭주화’의 힘으로 상처를 거의 회복한 엘리나가 거대 혹 뱀을 소환해 내게 공격했다.
치이이이익!
거대한 입을 벌리며 빠른 속도로 내게 달려드는 거대 흑 뱀.
나는 곧바로 빛 속성 구체를 구현
해 뱀의 입 안에 방출했다.
동시에 뱀의 머리가 터져나가며 그 대로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꺄아아악!
갑작스레 전투가 이어지자 주변에서 비명이 크게 터져 나왔다.
마법 전투가 일어날 때 자리를 피 해야 하는 것에 학습되어 있던 시민 들은 빠르게 대피하기 시작했다.
주변 시민들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 한 나는 더욱 적극적으로 전투를 시
도했다.
먼저 빠르게 엘리나를 향해 돌진했다.
엘리나는 내 움직임에 맞춰 거대 뱀 두 마리와 혹표범 하나를 다시 소환했다.
이어지는 공격. 하지만 달빛의 효 과로 강화된 내 육체는 녀석의 공격 을 손쉽게 피해낼 수 있었다.
이후 구체를 구현해 뱀의 목, 허 리. 그리고 혹표범의 머리를 하나하 나씩 터트렸다.
“……이 괴물이!”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자 엘리나
의 두 눈이 불안감으로 떨렸다.
눈앞의 장애물이 모두 사라지자 나 는 빠르게 엘리나 코앞까지 다가갔 다.
이어서 여러 개의 검은 마기가 가 시 형태로 나를 향해 쏘아졌다.
엘리나를 지키기 위한 선화의 공격 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여유롭게 공 격을 피해 엘리나의 배에 빛 속성 구체를 쑤셔 박았다.
“끄아아아악!”
큰 상처를 입으며 바닥을 구르는 엘리나.
멸마의 힘도 함께 담고 싶었지만 아직 빛 속성과 멸마를 동시에 사용 하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아 구현의 시간이 부족했다.
만약 구현의 시간만 충분했다면 방 금의 공격으로 완전히 숨통을 끊을 수 있었겠지.
“......쿨럭!”
엘리나가 검은 피를 토해냈다.
하지만 역시 멸마가 담겨 있지 않 아 상처 부위가 빠르게 아물고 있었다.
빛 속성의 힘으로도 폭주화된 S등 급의 마인의 재생력을 억제하는 건
역시 한계가 있네.
그러나 상관없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몸에 구멍을 뚫어낸다면 녀석의 재생력에도 한계 가 찾아올 터.
나는 다시 한번 앞으로 달려가며 빛의 구체를 속사했다.
머리 위로 떠 오른 4개의 구체는 빠른 속도로 엘리나를 향해 쏘아졌다.
엘리나는 이를 악물다가 자신의 모 든 힘을 쥐어 짜내듯 10마리의 흑 표범을 소환했다.
그리고 쏟아지듯 나를 향해 소환수
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거 귀찮네.
소환계 마법사와의 전투 경험이 없 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까다롭다.
1:1 혹은 1:2의 상황이지만 마치 혼자서 수십 명의 강자와 겨루는 기 분이라고 해야 할까.
여기서 [마력의 폭우]를 사용할 수 있다면 상황이 훨씬 쉽게 흘러가겠 지만 보는 눈이 많아 사용할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결국 나는 구체를 방출하며 마수를 하나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이렇게 하나씩 숫자를 줄이다 보면
녀석도 언젠간 한계가 찾아오겠지.
그렇게 옆에서 선화의 지원 공격을 피하며 계속 마법을 방출하자 엘리 나에게도 빈틈이 생겼다.
나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속사 로 엘리나에게 쏘아냈다.
“끄아아악!”
구체는 엘리나의 어깨와 배를 적중 하며 다시 한번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앙!
그렇게 다시 생겨난 빈틈.
나는 [순간 가속]을 발동해 엘리나
를 향해 달려들었다.
옆에서 선화의 공격이 계속 이어졌 지만 [고통 내성]의 효과로 버티며 엘리나를 향해 돌진했다.
이후 빛 속성과 멸마의 힘을 녹여 낸 구체를 구현했다. 그리고 녀석의 머리를 향해 그대로 방출했다.
콰아앙!
[S급 빌런 ‘엘리나 킴’을 처치했습니다.]
[인과율이 1 상승합니다.]
[표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승전보의 효과로 소환수, ‘불멸의 지옥 마계수 그레텔’의 모든 능력치 가 0.5, 멸마의 숙련도가 20% 상승 합니다.]
“……후우.”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자 엘리 나의 목숨이 끊어졌다는 것을 실감 했다.
그렇게 작은 안도감을 느끼려는 그
때, 어깨와 허벅지 너머에서 강한 고통이 느껴졌다.
짧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리자 검은 마기의 가시가 내 어깨와 허벅 지에 깊게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달빛’의 효과를 받고 있다고는 하 지만 상대 역시 S둥급의 마인.
십마회의 최상위 실력을 갖춘 둘을 동시에 상대하면서 깔끔한 승리를 하는 건 역시 쉽지 않다.
뭐, 그래도 선화에게 살을 내주고 엘리나를 확실하게 처치했으니 나쁜 교환은 아니겠지.
나는 이를 악물고는 가시를 빼어내
어 옆으로 던졌다.
바닥에 떨어진 마기의 가시는 이내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일단 하나 끝냈고.”
이것으로 1:1 상황.
슬쩍 고개를 들어 선화를 살피자 그녀는 가만히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나를 향한 그녀의 눈빛에는 적대감이 느껴지지 않았 다.
그러고는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 로 조용히 중얼거린다.
“방금 그 마법…… 확실한 멸마의 힘.. 역시 너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는 내 상처 부위를 살폈다.
몸의 상처가 꽤 깊었다.
특히 허벅지는 근육과 뼈가 부러졌다.
물론 내게 [초재생능력]이 있으니 전투의 대세에는 큰 지장이 없다.
나는 남은 상대인 선화를 처치하기 위해 빛 속성 구체를 다시 구현했다.
그때 였다.
선화의 몸 주변에 검은 마기가 흘 러나오더니 주변을 둥글게 감싸기 시작했다.
검은 마의 결계.
‘마의 대결계’와 같이 웬만한 보조 계 마법사들은 건드릴 시도조차 하 지 못하는 최상급 결계였다.
선화가 보조계에 꽤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최상급 결계 마법까지 사용할 수 있 을 줄은 몰랐는데.
시야와 소리가 차단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어느새 주변에는 우리
둘밖에 남지 않았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선화가 입 을 열었다.
“기다려. 난 너와 싸우고 싶지 않 아. 우리 둘은 싸울 이유가 없어.”
갑작스럽게 나와 싸우고 싶지 않다 는 선화의 말.
아무래도 그녀는 나와 단둘이 할 이야기가 있어 이 장막을 펼친 모양 이다.
나는 그녀의 말에 의아함을 느꼈 다.
나와 겨루고 싶지 않다는 그녀의 말이 단순 목숨을 구걸하기 위함이
아닌, 어떤 목적을 위한 진지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너 예언의 아이지?”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입을 다물자 그녀가 말을 이 었다.
“네가 가진 마의 천적의 힘…… 모 든 마인이 너를 두려워한다 생각했 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아”
«..
갑자기 무슨 말이지?
“네게 우호적인 성향을 가진 마인 도 있다는 거야. 나 역시 그쪽에 속
해있고.”
그제서야 그 의미를 깨달았다.
그녀의 말대로 모든 마인이 ‘예언 의 아이’에게 적대감을 품고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현재 왕좌에 올라가 있는 마인의 왕을 처치해주길 바라는 자 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전대 왕이자 ‘예언의 마왕’의 충신이었던 s등급의 마인, ‘하령’이 있다.
그리고 선화는 하령과 친분이 깊으 며, 예언의 마왕의 충신 중 한 명이 었다.
워낙 급박한 상황에 잠시 잊고 있 었는데.
“왕의 정보를 줄게.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너의 그 힘이라면 언젠 간 왕을 죽일 수 있어. 그 대신 날 살려줘.”
“어떤 정보를 주겠다는 거지?”
“……왕의 약점. 그리고 정체.”
“그건 이미 알고 있어.”
내 말에 그녀의 두 눈이 잠시 떨 렸다.
“하긴, 지금까지 네가 암살한 마인 들을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긴 하
겠네.”
선화가 작게 중얼거렸다. 나는 그 녀에게 물었다.
“그럼 다른 질문에 대답해. 너와 자운의 관계에 대해서. 피의 맹세로 진실을 말하겠다고 맹세하고.”
평소 궁금했던 것이었다.
자운의 하부 조직, 실버스 소탕 때 왜 선화가 그들을 지키고 있었는지.
그녀의 말에 의하면 하령의 부탁이 었던 거 같기는 한데.
그 말에 하령이라는 인물에 대해 많은 의문이 들었다.
하령은 예언의 왕과 가까이 지내며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인물.
또 최일현의 말에 따르면 진천우가 남긴 ‘네 번째 일지’의 행방을 알고 있올지 모르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내 말에 선화의 두 눈이 잠시 떨렸다.
“잠깐,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 는 거지?”
대답해 줄 필요가 없어 조용히 있었다.
선화가 답답한 둣 나를 보며 입술 을 깨물었다.
“좋아. 어떻게 알아냈는진 모르겠 지만 이야기해줄게. 원한다면 피의 맹세도 해주지. 대신 나를 살려주겠 다고 약속해.”
“그러지.”
이내 그녀는 피의 맹세를 펼쳤다.
인간과 다르게 마인 특유의 검은 피로 진행되는 피의 맹세는 조금 다른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녀는 잠시 심호흡을 하고는 내게 말했다.
“하령은 진천우가 남긴 네 번째 일 지를 찾고 있어.”
역시 하령은 진천우의 일지를 찾고 있던 건가.
“네 번째 일지에는 어떤 내용이 담 겨 있는데?”
“그건 몰라. 다만 그분은 과거 우리에게 많은 의문을 남기고 가셨어. 그 때문에 네 번째 일지에 그 단서 가 있을 거라 생각해 찾고 있었지.”
예언의 마왕이 남긴 많은 의문이 라.
그게 대체 뭘까?
“……예언의 왕이 무슨 말을 남겼 는데?”
내 말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까지 세계 를 유지하던 법칙과 개념이 전부 무 너져 혼란이 올 거라 했어.”
그러고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말을 이었다.
“외부에서 온 신에 의해.”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