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화
마법사 협회 최상층 ‘회장실’.
김진철은 서울 도심이 훤히 보이는 창밖을 내려보며 김덕현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회장님, 정보원에서 재앙급 마수 의 추적에 실패했다는 소식을 전했 습니다.”
마법사 협회 산하 기관, 정보원.
마수의 마력을 추적할 수 있는 신 비의 마공학 기계, ‘세계의 눈’이 있
어 한번 꼬리를 잡은 마수는 절대 놓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정보기 관이었다.
그리고 김덕현의 보고에 김진철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보원이 놓쳤다고? 대단하 군. 설마 세계의 눈을 따돌릴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저도 예상 못 했습니다. 아마 모 종의 방법으로 기척과 마력을 완전 히 지운 것으로 예상됩니다만.”
존재감을 지우는 건 프로 마법사라 면 다들 익히고 있는 기본 소양 중 하나이다.
하지만 마수는 다르다.
타고난 존재감과 마력을 지닌 그들 은 ‘위장’을 사용한다 해도 ‘세계의 눈’을 완전히 속이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예상대로 보통 놈은 아니구나.”
“그런데 회장님. 정말 혼자서 놈을 토벌할 생각입니까?”
김덕현의 물음에 김진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괜히 나 돕겠다고 따라오면 신경 쓰여서 더 불편하다. 혼자가 편해.”
김덕현은 입을 다물었다. 김진철이 저렇게 단호하게 말하니 그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아마 다른 사람이었으면 더 말려보 았겠지만, 상대는 세계 최강의 마법사라고 불리는 김진철.
재앙급 마수 5마리가 모인다고 하 더라도 김진철이 패배하는 그림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뭐, 너무 걱정하지 마라. 나는 살 아오며 패배라는 걸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 끌끌.”
그렇게 웃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보다 신경 쓰이는 건 녀석이 말 했던 ‘심판’이다.”
재앙급 마수가 신비의 사도라는 것 은 세계의 법칙을 연구하며 어렴풋 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놈이 말하는 ‘심판’의 의미 가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
세계의 법칙에 위협이 될만한 존재 의 싹을 미리 제거하려는 행동이겠 지.
그가 궁금한 것은 세계가 두려워하 는 그 ‘싹’이 누구냐는 거다.
당장 생각나는 후보는 세 명.
이서준, 김창현. 그리고…… 김선 우
“……누굴까. 역시 그놈이려나.”
“네?”
김진철의 중얼거림에 김덕현이 물 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신경 쓰지 마 라.”
김덕현은 의문을 느끼다가 이내 고 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비밀문서 조사로 밝혀 진 숨은 S등급 마인의 토벌 일정이
잡혔습니다. 내일 밤 10시입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군.”
“출동에 필요한 확실한 중거를 찾 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습니다.”
“괜찮다. 급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 보다 확실하고 안전한 게 중요하지. 그래서 녀석의 정체는?"
김덕현이 서류를 내밀었다.
김진철은 서류를 받고는 찬찬히 내 용을 읽었다.
안에는 화려한 외형을 가진 여성의 사진이 있었다.
김진철은 그 사진을 보며 피식 웃 었다. 사진 속 얼굴이 알고 있던 얼 굴이었기 때문이다.
“청일 오페라의 주인, 엘리나 킴입 니다.”
“……재밌구나. 설마 한때 대한민 국을 뒤흔들었던 유명 가수가 S등급 마인이었다니.”
김진철은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2차 중간시험이 끝난 마법사관학교
는 학교 축제인 ‘태휘제’ 준비로 한 창이다.
길거리와 공원에 학교를 화려하게 꾸며주는 장식이 생겨나기 시작했으 며, 학생들 역시 태휘제에 참가할 종목 연습으로 즐거우면서도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프로 마법사 자격중 시험 준비로 바쁜 3학년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마지막 축제인 만큼 문화 예술 대 회에 꼭 참가해야 하기에 다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이걸 내가 왜 해야 하는데.”
매년 열리는 ‘태휘제’의 전통 중 하나인 3학년 연극에 강제 참가하게 된 유아라는 식당에 앉아 불만을 내 뿜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4계통」이라는 제 목의 대본집이 있었다.
“큭큭큭. 태휘제 전통이잖냐. 이왕 하는 거 열심히 해봐. 역할도 멋진 거 받았구만.”
놀리듯 웃으며 말하는 신영준.
그의 말대로 태휘제의 연극인 위대 한 마법사 ‘태휘’의 일대기를 그린
「4계통」은 매년 3학년들에게 이
어진 전통이었다.
어찌 됐든 태휘제는 150년 전 마 법의 4계통을 정립한 태휘의 탄생을 기리는 행사였으니까.
“나 연기 아예 할 줄 모른단 말이 야.”
참고로 유아라는 150년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태휘의 숙적, ‘죽 음의 마녀’ 역할을 맡게 되었다.
나름 카리스마가 필요한 역할이라 유아라랑 제법 어울린다.
만년 2둥으로 ‘태휘’에게 밀려 패 배하는 모습까지 모두 다.
유아라의 깊은 한숨에 「4계통」의
‘위대한 마법사 태휘’역을 맡은 이서준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게. 나도 연기 아예 못 하는 데 큰일 났네.”
에휴. 그렇게 이서준답지 않게 깊 은 한숨을 내쉬더니 내게 시선을 돌 린다.
“선우야. 너 연기 잘하잖아. 뭔가 팁 같은 거 없어?”
“……팁은 무슨. 나도 몰라.”
내가 위장 수업 때 보였던 신들린 연기(?)는 [과몰입] 빨이다.
“뭐야. 타고났다는 거야? 그래도 너는 연기 잘하니까 걱정 없겠네.”
“아, 맞아! 김선우도 나가지?”
“어? 선배님도 나가요?”
신영준, 최서윤, 윤하영의 시선이 내게 집중된다.
나는 그 시선을 마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다 보니 나도 나가게 됐 어.”
사실 거절하려고 하면 거절할 수 있기는 했다.
하지만 연극팀의 계속되는 간절한 부탁도 있었고, 또 문화 예술 대회 의 1등 상품인 [행운석]을 이서준과
유아라도 얻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이 결과로 얻을 수 있는 ‘포인트’가 눈앞에 아른거렸다고 할 까.
포인트 얻으려고 다큐도 찍고 그랬 었는데 연극도 못 할 게 뭐야.
“역할은 뭔데?”
“짐꾼.”
「4계통」에서 죽음의 마녀의 부하 역할로, 태휘에게 비참한 죽음을 맞 이하는 역할이다.
하찮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뚝심 있는 성격과 태휘와 죽음의 마녀 양
쪽에 수시로 처맞는 불쌍함 때문에 은근 수요층(?)이 있는 인기 역이 다.
왜 이런 역이, 하필이면 내게 배정 됐는지 모르겠지만 작중 비중은 적 으니 만족해야지.
“……와아. 기대된다. 저 짐꾼 좋아 하는데.”
최서윤이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기대감 가득한 시선을 마주하자 말로 설명하기 힘든 깊은 부담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다른 선배님들은 어디 나
가세요? 3학년은 대회 참가 필수잖 아요.”
최서윤이 윤하영과 신영준에게 물 었다.
“난 구현 예술 대회. 이쪽이 그나 마 자신 있거든.”
“난 노래 대회.”
신영준의 말에 이서준이 장난스레 웃었다.
“너 노래 엄청 못하잖아.”
“야. 노래는 자신감이야.”
신영준이 이죽이자 최서윤이 눈을 깜빡였다.
“……선배님도 노래 나가요? 저도 노래 대회 나가는데.”
“어, 진짜?”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 역 시 조금 놀랐다.
원작 속 최서윤은 노래 대회에 참 가하지 않았는데.
“근데 왜 나가는 거야? 2학년은 필수 참가 아니잖아.”
“어, 그게…… 주변에서 하도 부추 겨서 강제로 참가하게 됐어요.”
최서윤은 우리를 보며 민망한 웃음 을 홀렸다.
그때 아주 우연히 그녀와 눈과 마 주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수상하게 내 시선을 피했다.
뭐야?
그때 윤하영이 물었다.
“와아. 서윤아 너 노래 잘 불러?”
“……으음. 평범? 저도 잘 모르겠 어요.”
“평범이라고 하는 거 보니 잘 부르 나 보네. 뭐 부를진 정했어?”
“정했는데 그건 나중에 알려드릴게 요.”
최서윤의 말에 신영준이 눈을 가늘
게 떴다.
“야. 나도 노래하는데 왜 쟤랑 나 랑 반웅이 다르냐?”
“기대감 차이지.”
이서준이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내게 시선을 돌린다.
“맞다. 오늘 방과 후에 「4계통」 연습한다던데. 몇 시에 올 거야?”
“난 안 가.”
“엥? 왜?”
“연극에 참가하는 조건으로 모든 연습에 빠지기로 했거든.”
슬슬 여러 사건이 터질 분기점이
다가오는 지금. 연기 연습 따위에 낭비할 시간은 없다.
다른 애들에게는 미안하긴 하지만 내 우선 순위는 따로 있으니까.
내 말에 이서준이 의문에 찬 표정 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대본은 외워봐야 하지 않아?”
그 물음에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 했다.
“대본은 이미 다 외웠어.”
내 말에 이서준과 유아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본 오늘 받았는데?”
모든 수업이 끝난 방과 후.
모두가 태휘제 준비로 한참인 시 점, 홀로 기숙사로 돌아온 나는 창 문 앞에서서 밤하늘을 올려보고 있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기에 하늘은 어 느새 깜깜한 어둠으로 물들었다. 그 사이에 떠오른 둥근 달 하나.
[달빛을 받았습니다.]
[‘달의 포옹’ 효과가 발동됩니다.]
[모든 회복, 저항 효과가 200% 상 승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4배 상승합니다.]
주먹을 쥐었다 피며 내 몸 안에서 날뛰는 에너지를 느꼈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밖에 없는 중요한 날인 ‘달빛’의 효과를 받는 날이다.
무려 SS 등급의 특성인 만큼 제대 로 뽕을 뽑기 위해서는 보름달이 떠
오른 날은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한다.
나는 손에 쥔 서류를 다시 살펴보 았다.
[엘리나 킴]
[36세, 여성]
[청일 오페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