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화
「히말라야에 출몰한 ‘거대 흑룡’ 은 인근 민간 마을을 약 5분간 떠 돌다 사라졌습니다만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으며 흑 룡은 언령을 사용해 ‘겁먹을 필요 없다. 나, 크루아스가 심판하려는 자 는 너희가 아니니. 나는 그저 심판 을 위해 부여받은 자유를 즐기는 것 뿐이다.’라는 의미심장한 의지를 남 겼다고 합니다.j
「협회에서는 히말라야에서 토벌되 었던 ‘질병의 마수’보다 상위 존재 가 아닐까 예상하고 있으며, 현재도 계속 추적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현재 위치는 아시아 대륙 근처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야야. 김선우.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
월요일, 협회의 특별 강사가 초청 되어 진행하는 [고급 마력 활용 수 업].
전 학년 신청자 중 80명올 선별해 진행하는 특별 수업에 주요 등장인 물들이 모두 모였다.
그리고 신영준의 부름에 뉴스를 보 고 있던 스마트 학생 수첩을 내려놓 았다.
“뭐가?”
“이번에 출몰한 거대 혹룡 말이야. 그거 네 무의식에서 나왔던 용 맞 지‘?”
신영준의 물음에 주변의 시선이 모 두 나를 향했다.
무의식이라면 1차 중간시험의 ‘심 연 탐험’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나를 향한 시선을 마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가 말했잖아. 실제로 있는 녀석이라고.”
“거참 신기하네…… 협회에서도 잘 모르는 용을 어떻게 알고 있던 거 지? 너 예지 능력이라도 있냐?”
“예지 능력은 무슨.”
나는 한차례 아니라고 말했지만 모 두의 시선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진지함이 담겨 있었다.
보니까 진짜 나한테 예지 능력이라 도 있는 줄 아는 거 같은데.
하긴, 이 세계에 ‘예지’는 유사 과 학이나 사이비 같은 게 아니니 저게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겠네.
“근데 이번 거대 흑룡, 질병의 마 수와 연관이 있을 거 같다는 이야기 가 있던데. 혹시 선우 너 노리는 거 아니야? 녀석이 심판이니 뭐니 그런 이야기를 했다며.”
이번에는 윤하영이 내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녀석이 노리는 건 내가 아닐 거야.”
그렇게 말하며 슬쩍 이서준에게 시 선을 돌렸다.
크루아스가 노리는 건 이서준이다.
원작. 그리고 지금까지 얻은 정보 가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미래의 사건이 앞당겨지고 있다고 해도 크루아스의 등장이 4년 빠르게 진행될 줄은 생각도 못 했는 데.
거기다 ‘심판’이니 뭐니 원작에 없 던 말을 왜 하고 다녔는지도 잘 모 르겠고.
“아, 그리고 이건 당연한 이야기지 만 만약 놈이 우리들 앞에 나타나도 싸울 생각은 절대 하지 마.”
모두에게 경고하는 척하면서 이서준에게 말했다.
이서준은 내 말의 의미를 눈치챘는 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 그건 당연한 거고.”
신영준이 그렇게 대답하자 앞에서 초청 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장의 마력을 얼마나 뇌로 분배할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마력의 활용은 상상력에 크게 의존하 니까요.
나는 물끄러미 협회의 초청 특별 강사, 정미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학생들의 주목을 끄는 목소리.
강의의 내용은 훌륭했다.
수많은 마법 길드를 상대로 강의를 해왔던 강사라 그런 걸까. 지금의 나에게도 도움 되는 내용이 많았다.
아무리 마법 이론에 빠삭한 나라고 는 하나, 마법 자체를 체계적으로 배운 건 아니니까.
—……하는 방법으로 시도하는 겁 니다. 자, 그럼 모두 손바닥을 펼치 고 마력을 끌어올려 회전시켜보세 요. 그리고 체내에 남은 일부 마력 을 뇌로 옮기는 겁니다.
강사의 말에 우리는 손바닥을 펼쳤 다.
그녀가 말한 방법대로 손바닥 위로 마력을 끌어올려 회전시키며 동시에 남은 마력을 뇌로 분배시켰다.
우우웅…….
이내 손바닥 위로 떠 오른 마력이 바람 속성의 구체처럼 빠르게 회전 했다.
강사의 말대로 뇌에 마력을 분배하 니 구현이 평소보다 잘되는 느낌이 다.
[마력으로 두뇌 회전이 딸라집니다.]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마력 제어술(A)’의 숙련도가 2% 상승합니다.]
제어술의 숙련도가 상승했다. 하지 만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무시하 고는 마력의 분배에 집중했다.
바로 그때.
“……오.”
학생들의 실습을 살펴보던 강사가
어느새 내 앞에서서 흥미 가득한 눈으로 내 손 위에 구현된 마법을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소문대로 평범하지 않네요. 김선우 학생.”
이런 칭찬은 자주 있는 상황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감사의 인사를 하려 했다.
그 순간. 강사가 예상하지 못한 말 을 내뱉었다.
“살면서 이렇게 이쁘고 아름다운 마력은 처음 봐요.”
“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마력이 아름답다고?
그 순간 한참 마력 구현에 집중하 던 윤하영이 내 손 위에 떠 오른 마력에 시선을 돌렸다.
“그러게? 선우야. 너 오늘따라 마력이 엄청 화려한데?”
“오. 진짜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신영준도 옆에서 말을 거들었다. 이어서 내 마법을 가까이에서 지켜 본 다른 등장인물들도 공감했다.
나는 멍하니 내 손바닥 위에 떠 오른 마력을 바라보았다.
크게 신경 쓰지 않아서 모르고 있
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다른 점이 확실히 보인다.
마력의 회전이며 빛이며…… 마치 하나의 예술품처럼 보인다고 해야 할까?
왜 이렇게 된 거지?
“......아.”
그때 내 마력이 변한 이유를 깨달 았다.
이번에 새롭게 얻은 특성, [미적 감각]에 의해 바뀐 것이었다.
그리고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미래의 작은 변화가 감지되었습니
다.]
[인과율이 0.5 상승합니다.]
뭐야. 인과율이 왜 올라?
[신비를 정의하자면 그들은 선도 악도 아닌 혼돈이라 할 수 있다. 그 들은 자신의 유희를 위해서 무엇이 든 될 수 있으며, 세계 자체가 그들 의 놀이터라 볼 수 있다.]
한성제약 본부장실에서 한세연은 그의 아버지가 남긴 책, [신비의 의 지와 이면의 세계]를 읽고 있었다.
고대 언어로 적힌 문장이었지만, 어느 정도 지식이 있었기에 큰 불편 함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우리 인류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 만큼 자유롭지도 유능하지도 않다. 세계의 주인이 인간이라는 것은 아 주 오만한 생각이며, 우리는 세계를 작동하는 기계 장치의 부품에 지나 지 않는다.]
책 안에는 심오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인간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했으며, 신비와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전반 에 깔려 있었다.
한세연은 책의 맨 앞 페이지를 다 시 살펴보았다.
“……저자가 누구지.”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책이 워낙 낡아서 지워진 걸지도 모 르겠지만.
“기계 장치의 부품이라……
결정론에 대한 이야기일까?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 다는?
내용이 생각보다 철학적인데.
[이것이 바로 인류에게 감춰진 이 면의 세계이다. 세계의 ‘큰 운명’은 정해져 있고, 무슨 수를 써도 그것 은 바꿀 수 없다. 강제로 그것을 바 꾼다 한들, 당신은 세계의 법칙에 의해 벌을 받을 뿐이다. 세계의 운 명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이 세계에 속하지 않은, 다른 세계의 존재뿐이 니까.]
다른 세계의 존재.”
차원 연구소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 세계와 비슷한다른 차원이 존 재한다는 이야기.
허무맹랑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는데 여기서 또 그것과 비슷한 내용을 보 자 깊은 의심에 잠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하나 생겼다.
“그런데 예언의 힘을 가지면 미래 를 바꿀 수 있는 거 아닌가?”
예지 능력의 존재는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예지로 본 미래와 반대되 는 행동을 하면 되는 것일 텐데.
무엇보다 그녀는 예지 능력을 가졌 을 것으로 추측되는 사람을 알고 있었다.
바로 김진우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문장.
[설령 미래를 아는 예언자라 하더 라도 정해진 운명을 바꾸는 건 불가 능하다. 만약 당신의 앞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미래의 일을 이야기하 는 자가 있다면 그자는 다른 차원에서 온 외부자일 가능성이 높다.]
한세연은 눈을 찌푸렸다.
이 문구에 묘사된 인물이 마치 김 진우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차원 연구소에서 들 었던 말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갔 다.
—그 술식, 혹시 다른 누가 조사를 하던 술식인가요?
—그 사람. 미래에서 온 회귀자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회귀자……
회귀자라는 건 다른 시간의 차원에서 왔다는 이야기도 된다.
“그럼 미래의 일을 알고 있던 것 도……
김진우가 회귀자여서?
[안타깝지만 나 역시 세계의 법칙 아래에 속해 있기에 이 책에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없다.]
“……세계의 법칙.”
이필희가 말했던 그 법칙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고 ‘세계’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졌으 면 하는 마음이다.]
한세연은 페이지를 넘겼다.
[세상의 모든 진리는 신비가 가지 고 있다. 진리를 알고 싶으면 신비 를 쫓아라.]
이것이 마지막 페이지였다.
이번에도 결국 신비를 쫓으라는 내 용이다.
“……진우 씨는 회귀자였던 건가?” 그래서 미래의 사건을 알고 있었 고, 또 마인의 정체도 알고 있었고?
머릿속이 혼란해졌다.
그녀가 받아드리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하면서도 심오한 스토리였다.
“미래......
만약 김진우가 미래에서 온 것이 맞다면, 그는 미래에서 어떤 일을
겪은 걸까?
김창현과는 무슨 관계인 거고. 대 체…….
한세연은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N562-A22 지하 3충]
좌표가 적인 작은 문구 하나.
그녀의 아버지인 한대현의 필체였다. 한세연의 두 눈이 작게 떨렸다.
그녀는 책에 끼어 있었던 작은 열 쇠를 만졌다.
[미래의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
[인과율이 0.8 상승합니다.]
“아씨. 깜짝이야.”
오후 5시 종례 시간.
담당 교사, 이희영의 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데 의문도 모르게 미래가 바뀌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 건지.
인과율은 왜 또 오른 거지?
그런 의문을 느끼고 있는데 어디선 가 나를 향한 시선이 느껴졌다.
주변을 둘러보자 교실의 모두가 나 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선우 학생?”
“아, 죄송합니다. 눈앞에 파리가 날 아다녀서.”
훠이훠이. 눈앞에 손을 휘저었다.
동시에 이희영과 학생들의 웃음소 리가 교실 안을 크게 울렸다.
내 옆자리에 앉은 윤하영만 빼고.
“……파리 없었는데.”
“아냐. 있었어.”
그렇게 넘어가자 윤하영도 할 말이 없는 둣 고개를 끄덕였다.
이희영은 짝짝 손뼉을 치며 모두를 집중시키곤 다시 말을 이었다.
“학교 축제인 태휘제까지 2주의 시 간이 남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 다시피 3학년들에게는 프로 마법사 시험이 예정되어 있기도 하고, 또 1 학년과 2학년들에게 태휘제 축제를 양보하는 문화가 있죠.”
마지막 학교 축제인 태휘제.
작년만 하더라도 태휘제의 모든 것 을 즐겼지만 3학년부터는 졸업과 관 련하여 여러 준비로 참가하지 않는 다.
내 입장에서는 아주 좋다.
태휘제에서 딱히 즐기고 싶은 것도 없으니까. 특별한 사건이라고 할 것 도 없고.
그러나.
“하지만 3학년도 꼭 해야 하는 것 이 있습니다. 바로 태휘제의 문화 예술 대회의 한 종목에 반드시 참가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졸업 이후로도 계속 회자 될 이서준의 흑역사를 만들었던 3학년 태휘 제 사건.
“아, 귀찮네.”
“그거 꼭 해야 해요?”
예상대로 학생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희영은 웃으며 말했다.
“작년 3학년 선배들도 다 준비했는 데 여러분도 당연히 해야죠.”
그러고선 말을 이었다.
“문화 예술 대회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구현 예술 대회…… 노래
공연…… 요리 대회…… 연극 둥 = » 흐.
하나 같이 참가하기 싫은 것들 뿐 이다.
그나마 내가 참가할 만한 것을 골 라보라면 마력 구현 예술 대회나 요 리 대회가 제일 낫긴 하겠지.
참고로 이서준과 유아라는 강제로 연극에 참가하게 된다.
잘생기고 이쁘다는 이유 하나로.
이후로도 평생 회자될 흑역사이기 에 연극은 반드시 피할 거다.
“선우야. 넌 뭐로 나갈 거야?”
“당연히 마력 구현 예술이지.”
[미적 감각] 특성도 얻었겠다 1등 도 자신 있다.
그때 이희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리고 연극은 참여율이 저조 한데. 추천하고 싶은 학생 있나요?”
이름 모르는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김선우 연기 잘해요.”
나는 눈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다른 학생 하나가 손을 들었다.
“어, 맞아요. 저번 특무 소양 수업
에서 종업원 연기할 때 과몰입 장난 아니었어요.”
계속되는 추천에, 이희영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나를 향했다.
“김선우 학생? 혹시 연극 나가실 생각一.”
“죽어도 안 해요.”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