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6화
개인 훈련이 끝난 늦은 밤.
시간이 늦어 모두 떠나간 훈련장의 뒷정리를 마치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밤 12시가 넘은 시각이라 그런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모두 내일 있을 오전 수업을 위해 자러 간 것이겠지.
나는 멍하니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 다가 오늘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 에휴......
실언을 해버렸다.
말도 없이 사라질 수 있으니 찾지 말라니.
누가 들어도 섭섭함이 느껴질 말을 충동적으로 해버렸다.
만약 내가 현실로 돌아가게 될 상황이 온다고 하더라도 그건 먼 미래 의 이야기일 텐데.
답답함에 머리를 긁적이다가 기숙 사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길을 걷던 중 공원 벤치에
앉은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예상 치 못한 만남이었기에 나는 눈을 깜 빡이다가 그 이름을 불렀다.
“최서윤?”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그녀의 시선 이 나를 향했다. 그러곤 잠시 커진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선배님?”
“너 거기서 뭐해? 시간도 늦었는 데.”
새벽이다. 마법사관학교 학생이라 면 이미 잠들었어야 정상인 시각.
내가 다가가자 그녀가 나를 올려보 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냥 잠이 안 와서요. 잠깐 바람 좀 쐬려고 나왔어요.”
“……그러냐.”
왠지 그녀가 그렇게 말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말로 설명하기 힘든 미안한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괜히 죄짓는 기분이 들어 가만히 있는데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선배님은 이 시간에 뭐 하 세요?”
“나도 머리 비울 겸 계속 훈련하고 있었지.”
내 말에 최서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무겁게 입 을 열었다.
“그…… 선배님. 오늘 졸업 사진 찍으실 때 하셨던 얘기요.”
그러면서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본 다.
“뭔가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거예 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깊은 진지함이 담겨 있었다. 나는 잠시 입을 꾹 다 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어떤 사정인지는 자세히 말해줄 수 없고요?”
“어. 미안한데 말해줄 수 없어. 이 건 너희를 신뢰하지 못해서가 아니 야. 내게 어떤 특별한 사정이 있어 서야.”
최서윤은 대답 없이 내 얼굴을 바 라보았다. 내 말이 그녀에게 어떻게 들렸올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이 상황을 넘어가기 위한 핑계로 들릴 수도 있겠지.
실망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때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그 녀가 작게 웃었다.
“역시~ 선배님이라면 그럴 줄 알 았어요.”
“......응?”
예상치 못한 대답에 순간 당황했다.
“나쁜 의도로 그렇게 말씀하신 건 아니라는 거잖아요? 선배님이 갑자 기 우리에게 싫증 나서 떠난다거나 하는 일도 아닐 거고.”
“……어, 뭐. 그렇지?”
생각보다 훨씬 쿨한 반응에 내가
다 1쭘해진다.
나 혼자 너무 걱정하고 있던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고.
그만큼 그녀가 나를 신뢰하고 있기 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지도 모르 겠지만.
“말 못 할 사연이라…… 그게 뭘까 요.”
최서윤이 땅바닥을 내려보며 중얼 거렸다.
내게 질문을 던진 게 아니라 혼자 생각에 잠겨 나온 것이었다.
이내 그녀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만약 선배님의 말대로 선배님이 저희 앞에서 사라지게 된다면. 그건 피할 수 없는 거예요?”
“그건 몰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이거든.”
순간 가지런히 모은 최서윤의 두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겉으로는 티를 안 내려 하지만 동 요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럼 이것만 솔직하게 알려줘요.”
그녀가 다시 진지해진 말투로 말했다.
“……만약. 아주 만약에. 선배님이
어느 날 사라지게 된다면, 그건 선 배님에게 나쁜 일이에요?”
……내게 나쁜 일이냐고?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왠지 모르 게 고민하게 만드는 질문이었기 때 문이다.
굳이 따지자면 나쁜 일은 아니다.
내가 원래 세계로 돌아간다는 것은 이곳에서의 모든 사건을 해결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의미니까.
그게 절대 나쁜 일이 될 수는 없 지.
……하지만.
좋은 일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잘 모르겠다.
“……글쎄.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 네. 그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내 말에 최서윤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무언가 측은함이 담겨있는 시선이
었다.
그 시선을 마주하자 말로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한마디를 던졌다.
“선배님도 고민이 많을 거 같아
요.”
그리고 그 순간, 가슴이 철렁였다.
“어찌 됐든 선배님의 의도와는 상 관이 없다는 거잖아요. 주변 사람들 에게 상처를 주진 않을까 혼자 죄책 감이랑 미안함도 느끼고 있고요.”
내 상황을 이해하는 따뜻한 한마 디.
그 한마디에 울컥한 기분이 올라옴 과 동시에 강한 위로가 되었다.
나는 벅차오르려는 감정을 겨우 꾹 꾹 눌러내었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작게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덕분에 위로가 됐어.”
내 말에 최서윤이 작게 미소를 지 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나는 고개를 들어 올리며 밝게 빛 나는 달을 보았다.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나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세계의 모든 것들이 나에게 소중해진 건 분명하 다.
역시 모두에게 설명하는 게 좋을 거 같다.
다음 날 점심시간.
어제 일을 해명하기 위해 마법사관 학교의 카페에 주요 등장인물들을 모두 모았다.
“김선우〜 웬일로 네가 애들을 다 모았냐?”
신영준이 빨대로 컵에 담긴 커피를 쪼옥 마시며 내게 물었다.
“어제 일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고, 사과도 할 겸.”
“어휴. 저거 보니까 종일 그거 신 경 쓰고 있었나 보네.”
신영준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이서준이 피식 웃었다.
유아라는 어제의 일을 윤하영에게 들었기에 궁금중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윤하영은 옆에서 입을 다문 채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선우야. 나도 화 풀렸어. 생각해보 니까 너무 내 생각만 한 거 같더라 고. 너한테도 말 못 할 사정이 있을 텐데. 미안.”
갑작스러운 사과에 조금 당황한 기 분이 들었다.
“어…… 아냐. 내가 말 이상하게 한 건 맞으니까.”
“자자, 이야기나 들어봐요.”
최서윤이 웃으며 중재를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나는 그 시선을 마주하며 피식 웃었다.
“내가 말하는 건 아주 만약이야. 일어날 가능성도 낮은 이야기지.”
모두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 였다.
“어제 말했다시피 어느 날 내가 말 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어.”
“왜 사라지는 건데?”
신영준이 묻었다.
“이유는 말 못 해. 이건 내게 걸린 제약이 있기 때문이야.”
“......제약?”
제약의 존재를 모르는 최서윤과 윤 하영이 의문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것올 아는 이서준과 유아 라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어, 나도 잘 모르는 제약이 나한 테 걸려 있거든, 그래서 너희한테 말해줄 수 없는 거야.”
뜬금없는 말에, 다들 혼란스러워하 는 반웅을 보였다.
그러자 이서준이 나섰다.
“선우 말은 사실이야. 나랑 유아라 가 직접 봐서 알거든.”
유아라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이 자 모두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김선우. 너 뭐야? 무슨 숨겨진 과 거라도 있는 거야?”
신영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말 못 해.”
“아니......
신영준이 답답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윤하영은 무언가 생각에 잠긴 눈으 로 나를 바라보더니 혼잣말하듯 중 얼거렸다.
“선우 과거가 평범하진 않을 거라 는 생각 하긴 했는데……
최서윤 역시 진지해진 눈으로 고개 를 끄덕였다.
“저도 예상은 했지만 설마 제약까 지 걸려 있을 줄은……
나는 모두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찌 됐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만약 내가 사라진다면 그건 너희 때문이 아니야. 그리고 내게 안 좋은 일이 생긴 것도 아니지.”
“그리고 그런 일이 생긴다면 무슨 수를 써도 너희는 나를 찾을 수 없 을 거야. 그러니까 나를 찾는 데에 시간 낭비하지 말고 너희의 인생을 살아.”
어쩌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을 이렇게 선언한다는 게 갑자기 우습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건 혹시 모를 만약을 위 한 보험이다.
만약 원래 세계로 돌아간다 하더라 도 누구도 나를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으니까.
그래야 나도 원래의 세계에서 아무 런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을 거고.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잠시 깊은 고요함이 지나가다가 유아라가 말했다.
“그래, 네 말은 알겠어.”
그 말에 나는 안도감을 느끼며 미 소를 지었다.
“그래, 이해해줘서 고맙다.”
“아니, 네가 다른 의도를 가지고 그러지 않겠다는 것만 알겠다는 거 야. 그런데 사라진 너를 찾든 안 찾
든 그건 우리 몫이니까 알아서 할 게.”
“......웅?”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눈을 깜빡 였다.
최서윤도 그 말에 웃으며 말했다.
“전 무조건 찾으러 갈 생각이었어 요.”
“그렇긴 하지. 찾든 안 찾든 그건 우리 마음이니까.”
이서준까지 끼어들자, 모두가 그 말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나는 황당함을 느꼈다.
잠깐, 이거 뭔가 잘못됐는데.
그리고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깊은 우정’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10,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미래의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
[인과율이 1.0 상승합니다.]
시간이 흘러 마법사관학교의 중요 일정인 2차 중간시험이 시작되었다.
3학년들을 스카웃하기 위해 각종 길드의 참관인들이 학교 안을 가득 채웠고, 이서준이나 나와 같은 이름 난 유망주들을 보기 위해 구경 온 일반인들도 많이 보였다.
3학년들에게는 이번 시험의 비중이 적지만 그래도 메인 시험인 만큼 학 생들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깃들어 있다.
우선 첫날의 이론 시험은 10분만 에 전부 끝냈다. 기초 테스트 역시
만점.
컨디션이 최상이었기에 치르는 시 험마다 최고 성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야. 김선우 대단하네.
—세계 유망주 공동 1위에 괜히 오르는 게 아니지.
—우리 딸이 김선우 팬인데 싸인 받아볼까.
그렇게 사소한 작은 기초 시험 여 러 개를 치르고 2차 중간시험 마지
막 날이자. 4일 차인 목요일.
학교 시험의 가장 중요하다고 알려 진 메인 시험이 시작되었다.
“이번 3학년 2차 중간시험의 메인 시험은 미리 공지했다시피 특별한 환경에서 진행됩니다.”
마법사관학교 가상 훈련장 앞.
멋들어진 선글라스를 쓴 시험 감독 교사가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바로 육지가 아닌 바다에서 치러 지기 때문이죠. 이번 시험의 이름은 ‘해양 몬스터 사냥’입니다.”
해양 몬스터 사냥.
원작에서도 다뤄졌던 시험이다. 배 를 타고 이동하며 몬스터를 사냥해 야 한다.
등급이 높은 몬스터를 사냥할 때 높은 점수를 받기에, 전략을 적절히 짜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시험은 개인전과 팀전이 혼 합되어 있습니다. 개인 포인트와 팀 포인트를 합산하여 성적이 결정됩니다.”
단순 몬스터 사냥이지만 단체전이 섞여 있는 이유는, 대부분의 해양 몬스터 사냥이 단체로 진행되기 때 문이다.
해양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배가 필요하기 때문에 많은 것이 소 모된다.
그렇기에 배 한 척당 사람이 많을 수록 효율이 높아진다.
“총 3개의 배가 준비되어 있으며 한 척당 50명이 탑승합니다. 그리고 이 50명이 한 팀이 되어 함께 몬스 터를 사냥하면 됩니다. 개인 포인트 는 가상 훈련소의 기능인 ‘기여도’ 에 따라 책정됩니다.”
그러더니 시험관이 말을 이었다.
“그럼 각 배의 ‘캡틴’을 선정하겠 습니다. 캡틴은 종합 순위 1위부터
3위까지 학생이 됩니다. 그리고 캡 틴은 아랫 순위인 3위부터 원하는 팀원을 한 명씩 선택하시면 됩니다.”
3위의 나는 자연스레 캡틴이 되었다. 그리고 가장 낮은 순위인 만큼 팀원 우선 선택권이 생겼다.
“김선우 학생. 고르세요.”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신영준이나 이현주 고르겠지.
—나라면 이현주 고를 거 같은데. 비행 소환수도 다루잖아.
주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히 팀을 선택한다면 최상위 성 적을 가진 신영준이나 이현주가 가 장 좋은 자원이기는 하다.
하지만.
바다에선 역시 얘를 선택하는 게 최선이겠지.
나는 시선을 돌렸다.
“윤하영. 이리 와.”
“아싸! 1둥 확정이다!”
윤하영이 크게 외치더니 말실수를 했음을 깨닫곤 표정을 굳혔다.
그러면서 이서준과 유아라의 표정 을살폈다.
유아라의 표정은 굳어 있고 이서준 은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