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화
이필희의 안내에 따라 한세연은 맞 은편 의자에 앉으며 그의 얼굴을 조 용히 웅시했다.
언제 봐도 섬뜩함이 느껴지는 녹아 버린 얼굴.
어쩌다 저런 얼굴이 되어버린 것인 지 감도 오지 않았다.
단순한 화상이나 마법사고의 혼적 으로는 보이지는 않는데.
그렇게 혼자 생각에 잠겨 있는데
이필희가 웃으며 말했다.
“제 얼굴이 조금 홍하죠?”
“아, 죄송해요.”
너무 뚫어지게 쳐다봤나.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은 한세연 은 곧바로 사과했다. 이필희는 괜찮 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하하. 괜찮습니다. 이제는 익숙해 져서 신경 쓰지 않거든요.”
한세연은 손가락을 꼼지락 움직이 다가 물었다.
“……혹시 어쩌다 그렇게 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연구하는 과정 중에 큰 실수를 해 서 생겨났습니다. 일종의 벌이라고 할까요?”
“벌이요?”
뜬금없는 말에 한세연은 의문을 느 꼈다. 벌이라니?
이필희는 작게 웃더니 말을 이었다.
“자세한 건 설명해드릴 수 없습니다. 이것에 대해 설명하다가 또 안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는 터라.”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더 묻고 싶 었지만, 설명해줄 수 없다고 하니
한세연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 였다.
“그보다 차원에 대해 물어보고 싶 은 게 있으시다고?”
“아, 네. 술식학적으로 차원이라는 개념이 잘 이해되지 않아서요. 혹시 미래나 과거로의 차원 이동이 가능 한지 그런 걸 알고 싶어요.”
“흐음…… 미래나 과거로의 이동이 라……
이필희는 얕게 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우선 시간 여행은 이론상 가능합니다.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간다 해
서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건 아닙니 다만…… 그런데 그게 갑자기 왜 궁 금하시죠?”
한세연은 대답 대신 김진우에게 받 았던 술식이 찍힌 사진을 그에게 내 밀었다.
이필희는 그것을 보더니 잠시 표정 을 굳혔다.
“이건......
“유적지에서 우연히 발견된 술식이 에요. 시간과 차원에 관한 내용이 담긴 술식 같은데, 혹시 해석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 어서요.”
이필희는 사진을 물끄러미 보고는 깊은 생각에 잠긴 둣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한참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이것과 비슷한 형태의 술식을 본 적 있습니다.”
“비슷한 술식이요?”
정 데
, 외차원 개입론을 연구하는 과 중에 우연히 발견한 술식인
“외차원 개입론?”
“아, 쉽게 설명하자면 우리가 사는
현실과 홉사한 차원의 존재가 숨어 개입한다는 이론입니다. 평행 우주 랑 비슷한 개념이라 생각하시면 됩 니다.”
“아, 네.”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 였다. 술식분야는 역시 자신이 모르 는 신비한 것들이 많다.
그때 이필희가 사진을 내려놨다.
“죄송하지만 이 술식에 대한 건 말 해줄 수 없습니다.”
“어째서죠?”
“한세연 씨에게는 자격이 없으니까 요.”
“……자격이요?”
갑자기 웬 자격?
“무슨 자격이 필요한 건데요? 이해 하기 쉽게 설명해줘요.”
이필희는 톡톡.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기더니 입을 열었다.
“……자격이란 일반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이 차원에 숨겨진 법 칙을 알아내는 것입니다. 참고로 그 법칙을 잘못 발설하다가는 벌을 받
게 되죠. 제 얼굴 역시 그 법칙을 어겨 생긴 벌이고요.”
그런 게 있다고?
혹시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닐까 의심해보았지만 그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사실 지금 말씀드린 것도 제게는 꽤 부담되는 일입니다. 돌아가신 한 대현 회장님께 빚진 게 없었더라면, 혹은 정말로 알고 싶어하는 게 아니 었다면 말씀조차 안 드렸을 거니까 요.”
한세연은 입을 다물었다.
이필희는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 보다가 한 마디를 더했다.
“법칙에 대한 건 스스로 알아내셔 야 합니다.”
법칙…….
한세연은 머릿속으로 그 단어를 새 겨 넣었다.
“혹시 법칙에 대해 알아낼 작은 힌 트라도 없나요?”
이필희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입 을 열었다.
“신비를 쫓아보세요.”
“신비요?”
뜬금없는 말에 한세연이 고개를 갸 웃했다.
“네. 신비에게 정당한 대가를 치른 다면 원하시는 해답을 찾으실 수 있
으실 겁니다.”
그러면서 이필희가 자리에서 일어 났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그 술식, 혹시 다른 누가 조사를 하 던 술식인가요?”
“……네. 그걸 어떻게?”
“흐음. 역시. 그 사람. 미래에서 온 회귀자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말에 한세연의 두 눈이 작게 떨렸다.
마법사관학교의 2차 중간시험 일정 이 정해졌다.
11일부터 14일까지. 4일간.
그리고 예고됐던 대로 3학년은 ‘프 로 마법사 자격증 시험’ 준비를 위 해 중간시험의 규모와 성적 비중이 크게 축소되었다.
시험을 잘 보든 잘 보지 못하든 성적에는 크게 반영되지 않기에 학 생들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예 시험을 망쳐버리면 성적이 뚝뚝 떨어질 테 니 조심해야겠지만.
“자자, 거기 맨 앞에 학생! 밝게 미소 지으세요!”
그리고 오늘은 마법사관학교의 졸 업 사진을 찍는 날이다.
졸업이 가까워진 3학년에게는 약속 된 행사였기에 마법사관학교 공원 앞에 3학년 학생들이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모였다.
“자자! 거기 왼쪽 학생도 스마 일
사진 기사는 계속해서 시끄럽게 말 을 걸며 학생들의 미소를 유도한다.
기사의 뒤에서 1학년과 2학년들은 신기해하는 눈으로 구경한다.
나는 기사의 말에 억지로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마음처럼 되지는 않았다.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져서일까.
졸업 사진은 원래 살던 세계에서부 터 시작해서 회귀 전에도. 수도 없 이 찍어봤는데 이번엔 이상하게 이 러네.
찰칵!
카메라의 눈 부신 빛이 번쩍였다.
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들어 올린 상 태로 사진에 찍힌다.
“수고하셨습니다. 잠깐 휴식하겠습니다!”
사진 기사가 휴식을 선언하자 옹기 종기 모여있던 A반 학생들이 흩어 졌다.
내 옆에 바짝 붙어있던 윤하영은 지친 듯 짧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 어째 사진 찍는 게 실전 훈련보다 힘든 거 같아.”
그 말에 나는 공감하며 작게 웃었다.
“그러게.”
그렇게 공원 벤치 쪽으로 걸어가자 구경나온 무리에 섞여 있던 최서윤 이 반가운 발걸음으로 우리에게 걸 어왔다.
“선배님!”
“어? 서윤아
윤하영 역시 반갑게 최서윤을 맞이 했다.
그러더니 양손을 잡고는 깍지까지 끼며 격한(?) 반응을 보인다.
친해진 모습은 언제봐도 보기 좋았 지만, 저건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
이내 깍지를 푼 최서윤이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선배님. 아까 사진 찍는 거 봤는 데 혼자 표정이 굳어 있었어요.”
“홈. 그래?”
“네. 아까부터 입만 미소 짓고 있 던데. 눈빛은 묘~ 하게 슬프고. 무 슨 일 있었어요?”
잡생각이 많다 보니 사진 찍을 때 표정 관리가 잘 안 되긴 했었다.
최서윤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티가 많이 났나 보네.
[과몰입]이라도 사용할 걸 그랬나.
“그냥, 졸업한다고 생각하니까 뭔 가 아쉽더라고.”
이전의 학교생활과 달리 이번에는 좋은 추억이 많이 쌓였다.
단순히 소설 속 세계로만 여겼던 회귀 전과 다르게 이번에는 많은 유 대를 쌓았으니까.
“얘가 또 이러네. 졸업 이후에도 쭉 만날 거잖아.”
그녀의 말에 나는 작게 웃었다.
졸업은 이별이 아니다. 관계의 끝 도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졸업이란 ‘새 출발’
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누구 한 명이 죽지 않는 한 완전 한 이별이라는 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꾸 머릿속에 이별이라 는 단어가 그려지는 건 분명 나는 이 세계에서 외부자라 생각하고 있 기 때문이겠지.
내게는 돌아갈 장소. 그러니까 완 전한 이별이라는 게 존재하니까.
그러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어느 날 내가 말도 없이 사라지면 어떨 거 같아?”
모든 사건과 이야기가 끝나고.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가게 된다면.
이 세계에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지낼까.
그 물음에 윤하영이 눈을 찌푸렸다. 그녀에게서 흔히 볼 수 없는 불 쾌감이 담긴 표정이었다.
“그건 왜? ……너 설마 졸업하고 사라지게?”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궁금 해서.”
윤하영은 혼자 생각에 잠기다가 입 술을 삐죽인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그보다 그런 걸 왜 묻는 거야?”
“그냥 별 이유 없어. 신경 쓰지 마.”
그러고선 최서윤에게 시선을 돌렸다.
최서윤은 생각을 알 수 없는 눈으 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을 마주하자 왠지 모를 긴 장감이 들었다.
“전 찾을 거예요.”
이내 망설임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갑자기 말도 없이 사라지면 납치 당하거나 무슨 안 좋은 일 생겼을지 누가 알아요. 찾는 게 당연한 거 아 니에요?”
생각해보니 그렇긴 하다.
나라도 주변 사람이 말도 없이 사 라진다면 직접 찾아 나설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괜한 걱정이 들었다.
만약 아무런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원래 세계로 돌아가게 돼버린다면, 얘들이 나를 찾아다니며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 면 어떻게 하지.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였지만 그런 생각을 하자 강한 걱정이 들기 시작 했다.
“.....♦만약.”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 짧은 한마디에 최서윤과 윤하영 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만약 내가 말도 없이 사라지면, 나 찾지 마.”
순간 윤하영이 미간을 좁혔다.
어딘가 화난 둣 눈을 찌푸리며 나 를 바라봤다.
윤하영이 저런 표정을 지을 수도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너 지금 뭐라고?”
“내가 행방불명되면 나 찾지 말라 고.”
“아니, 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 인데.”
나는 답답함에 머리를 벅벅 긁었다.
솔직하게 이런 말을 해야 하는 이 상황이 나도 짜증 난다.
옆을 돌아보자 최서윤은 당황한 눈 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선배님?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말 그대로야.”
“그러니까 그게 무슨……
“……아, 몰라. 아무튼 찾지 마.” 그렇게 말하며 나는 발걸음을 옮겼
다.
“김선우!”
방과 후 마법사관학교 체력 훈련 장.
“야. 김선우. 윤하영이랑 싸웠다며.
너 근데 그거 진짜냐?”
중량 기구를 들어 올리던 신영준이 다짜고짜 내게 물었다.
나 역시 중량 기구를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어, 진짜야.”
내 쿨한 대답에 신영준이 눈을 찌 푸렸다.
“너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거냐? 윤하영 아까 엄청 화내던데.”
화가 많이 난 거 같기는 하다.
내 옆자리 짝꿍인데 오늘 하루종일 책상에 엎드려 있었거든.
그와 다르게 최서윤은 아직 아무런 반응이 없어 오히려 더 신경 쓰이기 는 했다.
“그보다 너 그 말 진심이냐? 사라 지면 찾지 말라고 한 거.”
“어. 진심이야. 너도 내가 행방불명 되거든 찾지 마라.”
“……허허. 이놈 보소.”
신영준이 어이없다는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아까 본 최서윤과 윤하 영의 반응보다는 한결 편하게 느껴 진다.
그때 이서준이 수건으로 땀을 훔치 며 다가왔다.
이서준도 소식을 들은 건지 나를 향한 눈빛이 영 좋지 않다.
“김 선우.”
“어.”
“왜 그런 말을 했어. 네 진심이 어 떻든 이번에는 네가 말실수한 거 맞 아.”
“알아.”
확실히 둘의 입장에서는 섭섭하게 느껴질 수 있는 발언이었지.
그렇다고 상황 설명을 할 수도 없 긴 하지만, 너무 성급하게 말해버린 것도 있다.
어떻게 해명하긴 해야 할 텐데. 어떻게 해야 하지.
이서준은 나를 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한 이유가 뭐야?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이서준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는 헛웃음을 흘 렸다.
“……설마 이번에도 그 제약 때문 인 거야?”
“제약?”
신영준이 고개를 갸웃하자 이서준 이 대답했다.
“그런 게 있어.”
그러더니 내게 다시 묻는다.
“제약 때문 맞아?”
나는 이서준에게 시선을 돌리며 고 개를 끄덕였다.
“맞아.”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