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화
김진철의 첫 질문부터 나는 크게 당황했다.
어디서 왔냐니.
평범해 보일 수 있는 질문이었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질문이었다.
다름 아니라 나는 다른 세계에서 온 외부자이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등장인물이 내게 그런 질문을 했더라면 별생각 없이 넘어 갔겠지만…….
김진철이라면 다르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정보와 비밀을 알고 있는 마법사 협회의 회 장.
어쩌면 내 정체를 눈치채고 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자 김진철이 말 했다.
“참고로 거짓말은 하지 않는 게 좋 을 걸야. 단 한 번의 거짓말로 협회 와 등을 돌리고 싶지 않다면 말이 야. 자네는 지금 ‘범죄단체조직 소 속죄’의 혐의를 풀기 위해 이곳에 온 거야.”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다.
내가 진천우와 연관되어 있다는 게 밝혀진 지금, 그의 말대로 현재 나 는 ‘범죄자’로 의심받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세와 아우라로 보았을 때 신경의 작은 변 화 하나하나를 살펴가며 거짓말을 판별하려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이건 [과몰입]을 발동하면 간 단하게 피할 수 있는 부분이기는 하 다.
하지만 긴장조차 하지 않은 채, 똑 같은 감정과 기복을 보여준다면 김
진철은 그 점을 더욱 파고들 것이다.
“그럼 다시 질문하겠네. 자네는 어 디에서 왔지?”
대답할 수 없다. 내 원래 세계에 대한 발설은 제약으로 막혀있으니 까.
“제약으로 대답할 수 없는 건가?”
“네, 대답할 수 없습니다.”
내 대답에 김진철은 내 눈을 똑바 로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진실이군. 뭐, ‘대답할 수 없다’도
일종의 대답이고 정보가 담겨 있으 니까. 앞으로도 그렇게 대답하면 되 네.”
김진철은 의외로 쿨한 반응을 보였다. 이것에 대해 이것저것 더 물을 줄 알았는데.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지.”
“자네는 미래를 관측한 경험이 있 나‘?”
이번에도 흠칫하게 만드는 질문이 었다. 하지만 정확한 의도는 무엇인 지 알 수 없었다.
이 세계에서 미래를 관측하는 방법
으로는 크게 4가지가 있다.
‘예언’의 힘을 갖고 있다던가, ‘회 귀’를 했다던가. ‘예언의 신비’를 사 용했다던가. 혹은 나처럼 ‘소설’의 형태로 보았다던가.
“……네, 있습니다.”
“그럼 자네가 오늘 나와 만날 것도 알고 있었나?”
“아뇨. 그건 몰랐습니다.”
“나와의 만남은 몰랐다라…… 그렇 다면 어떤 방법으로 미래를 관측했 는지는 설명할 수 있나?”
“설명할 수 없습니다.”
김진철이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런가…… 예지 능력을 지닌 건 아닌가 보군.”
아무래도 김진철은 이런 식으로 하 나하나 질문하며 나를 파악하려는 모양이다.
“그럼 다음 질문. 자네에게 그 ‘제 약’을 건 건 진천우인가?”
“저는 이 제약의 정체를 모릅니다.”
“ 모른다고?”
“네, 저도 최근에 안 지라.”
“흐음. 모른다 말이지
그렇게 중얼거리던 김진철이 말을 이었다.
“그…… 미안한 부탁이 있는데
말끝을 흐리는 김진철, 이후 달라 진 분위기와 말투에 나는 의문을 느 꼈다.
무슨 부탁이길래?
“혹시 제약에 걸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나?”
“......네?”
순간 당황과 동시에 어이가 없었
저 영감이 지금 무슨 개소리를 하 는 거지?
황당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자 그가 껄껄 웃었다.
“제약이 발동되는 순간을 보면 어 떤 종류의 제약인지 알 것 같아서 말이지. 자네도 궁금하지 않나? 어 떤 제약이 걸려있는 건지? 끌끌.”
“……제약에 걸렸을 때 마력 역류 로 죽을 뻔했습니다.”
“걱정 말게, 내가 죽지 않게 잘 보 살펴주지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네.”
그건 나도 알고 있기는 한데…… 문제는 그 과정에 생기는 끔찍한 고 통이다.
“제약의 힘이 저도 모르게 강해져 서 죽으면요?”
“그럼 내가 책임지고 자네를 부활 시켜주겠네. 회장직을 내려놓아서라 도 말이야.”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정의를 실천하는 마법사 협회의 회 장 입에서 나올만한 말은 아니었지만.
“……좋습니다.”
나도 이 제약의 정체가 궁금하기는 하다.
이전에 겪은 마나 역류를 생각하면 당장 식은땀이 날 만큼 두려움이 몰 려오지만, 그보다는 내 비밀을 알아 내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진철은 주요 등 장인물만큼이나 믿을 수 있는 인물 이다.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김진철 이 빙긋 웃었다.
“흐흐. 좋네. 아, 그래도 아직 하고 싶은 질문이 많으니 자네의 그 수상 한 제약은 마지막에 보기로 하지.”
“네, 그러죠.”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네. 자네는 세계의 법칙…… 혹은 인과 율의 존재를 알고 있나?”
“어렴풋이는 알고 있습니다.”
내 대답에 김진철은 수염을 쓰다듬 었다.
“어렴풋이 알고 있다라…… 자네는 세계의 법칙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 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모르는 모양이군.”
“네‘?”
“세계의 이면을 알게 되었다. 그것
만으로 자네는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성질을 갖게 되었다는 거야.”
다른 성질을 갖게 되었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내가 의문에 찬 표정을 짓자 김진 철이 말을 이었다.
“세계의 법칙이라는 건 지식을 전 달받거나 배워 알게 되는 게 아닐 세. 세계에 대한 끝없는 의문을 품 고 탐구한 소수의 인간에게 내려지 는 일종의 ‘자격’이지.”
“자격?”
그때 머릿속에 한 가지 장면이 떠 올랐다.
아포리아에서 강령술의 신비와 이서준이 나누었던 대화였다.
—나는 왜 둘의 대화가 제대로 들 리지 않는 거지?
[아직 자격이 없어서 그래.]
—자격?
[자세한 건 알려줄 순 없어. 스스 로 연구하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서 알아내라고.]
신비가 분명 그런 말을 했었다.
이서준에게 자격이 없다고.
이제야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 건 지 알 것 같았다.
김진철 역시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수염을 매만졌다.
“흐음, 그나저나 특이하구나. 누구 보다 세계의 법칙과 깊게 연관되어 보이는데 아는 건 전혀 없어 보이 니…… 회귀자가 아닐까 생각했었는 데 그건 아닌 건가?”
회귀자 맞는데요.
그렇게 중얼거리던 김진철이 내 눈 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그건 확실히 알겠군. 네가 평범한 19살 애송이가 아니라는 걸
말이다.”
그 뒤로 김진철의 질문 공세는 계 속해서 이어졌다.
진천우와 나의 관계, 김창현에 대 해서.
또 술식 해석의 부탁이라던가, 차 원, 이서준과 진천우에 대해 여러 가지 물었다.
나는 그의 질문에 성실히 답했다.
아는 건 대답해주고 모르는 건 대
답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길었던 질문 시간이 끝나자 김진철의 얼굴에는 아직 많은 의문 이 남아 있었다.
“……어째 알면 알수록 더 미궁 속 에 빠지는 기분이군.”
“전 제가 대답할 수 있는 선에서 전부 대답했습니다.”
“알고 있네. 그래서 더 혼란스러워. 대체 뭐 하는 녀석인지.”
쯧.
김진철은 수염을 매만졌다.
“그래서 질문은 이제 끝입니까?”
“아니, 마지막 질문이 남았네.”
마지막 질문?
왠지 평범하지 않은 질문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진철은 고민하는가 싶더니 입을 열었다.
“자네는 미래의 일을 어느 정도 안 다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그럼 혹시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 해서 내게 경고하고 싶은 게 있나?”
이번 질문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 했다.
나는 깊게 생각에 잠겼다.
미래의 일에 대해 경고하고 싶은 것.….
없다고 넘어갈 수도 있는 부분이지 만 상대는 마법사 협회의 회장인 김 진철이다.
분명 이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터.
나는 한참 생각을 거듭하다가 입을 열었다.
“재앙급 마수 중 크루아스라 불리 는 악룡이 있습니다.”
악룡 크루아스.
당장 나에게는 ‘진천우’나 ‘마인의 왕’보다 우선인 녀석이다.
나의 회귀의 원인은 ‘이서준의 죽 음’이었고 근본적으로 그것은 ‘악룡 크루아스’로 인해 일어난 일이었으 니까.
하지만 지금 내 힘으로는 녀석을 막을 수 없다.
그리고 그 강함은 [차원 관측]을 통해 직접 보았다.
녀석은 강하다.
‘이서준의 죽음’ 전까지 내가 녀석 을 처치하는 게 가능할까 의심이 들 정도로.
무엇보다 가장 신경 쓰이는 점은 미래의 사건들이 앞당겨지고 있다는 것.
그렇다는 건 이서준의 죽음 역시 앞당겨졌을지도 모른다.
“녀석은 위험합니다. 빠른 시일 내 로 녀석을 처치해야 합니다.”
하지만 김진철이라면 다르다.
그는 인류 역사상 최강의 마법사이 며, 그 어떤 빌런도 대적하지 못할 절대적 정의의 상징.
김진철이 직접 움직인다면, 크루아스의 문제를 손쉽게 해결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 말에 김진철은 처음으로 조금 놀란 눈빛이 되어 있었다.
놀랍게도 악룡의 존재를 그는 이미 알고 있던 모양이다.
“……악룡이라. 녀석을 처치해야 하는 이유는?”
“그건一.”
바로 그때.
두근!
심장이 철렁였다. 식은땀이 흐르고 숨통이 조여왔다.
이전에도 한 번 겪어보았던, 잊을 수 없는 감각.
……이건, 제약이었다.
그리고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인과의 부족으로〈발설〉이 강제 차단되었습니다.]
[권능,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자 격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미래의 커다란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
[인과율이 1.5 상승합니다.]
“크으윽!”
몸 안의 마나가 역류하는 것을 느 끼며 나는 몸을 웅크렸다.
뭐야? 왜 제약이 떠오른 거지?
나는 그저 이서준의 죽음에 대해 설명하려 했던 것 뿐인데.
끔찍한 고통을 호소하며 고개를 들 어 올리자 김진철은 생각에 잠긴 얼 굴로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이게 그 제약인가? 흥미롭 군.”
“크으윽! 보고…… 있지만…… 말 고....
거칠게 숨을 내쉬며 김진철에게 다 급하게 소리쳤다.
그럼에도 김진철의 표정은 여유로 웠다. 마치 실험 중인 동물을 바라 보는 과학자의 시선이었다.
이내 손을 들어 올리더니 내 이마 에 얹었다.
“……신기한 제약이야. 술식도, 그 렇다고 맹세에 움직이거나 저주가 걸린 것도 아니고.”
“쿨럭!”
나는 피를 토해냈다. 바닥이 붉은 피로 적셔지기 시작했다.
순간 죽음에 대한 공포가 드리웠다.
“……세계의 법칙이 만들어낸 억지 력과 비슷하지만 또 달라. 살면서 처음 보는 형태의 제약이야.”
“크으윽!”
내가 김진철을 노려보자 그가 작게 웃었다.
“……이쯤 해둘까.”
동시에 김진철의 마나가 내 몸속에 깊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몸에 뒤틀린 마나를 빠르 게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김진철이 가진 마나 제어 능력에 경악했다.
한낱 인간이 마나를 이 정도 수준 으로 제어할 수 있다고?
그렇게 약 5초가량의 시간이 홀렀 을까?
고통이 잦아들더니 이내 평소의 몸 상태로 돌아왔다.
마법 같은 일이었다.
……아니, 생각해보니 마법이 맞구 나.
“허억…… 허억……
가쁘게 숨을 내쉬고선 고개를 들어
올렸다.
김진철은 나를 내려보더니 피식 웃 었다.
“미안하다. 생각보다 흥미로워서 말이지.”
“……됐습니다. 그래서 제약의 정 체는 알아냈습니까?”
“겉으로만 봤을 때는 세계의 법칙 이 만들어낸 억지력과 비슷하다.”
세계의 법칙이 만들어낸 억지력.
세계의 비밀을 발설할 때, 혹은 정 해진 미래를 멋대로 바꾸려는 시도 를 할 때 생기는 세계의 형벌이었다.
하지만 의구심이 들었다.
나는 세계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로 울 텐데?
잠시 의문을 느끼고 있자 김진철이 말했다.
“하지만 깊게 살펴보면 달라. 세계의 법칙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혼 돈이……
혼돈?
내가 의문에 찬 표정을 짓자 김진 철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이건 신경 쓰지 마
라.”
“뭔데요?”
“나도 처음 보는 개념이라 말로 설 명할 수 없다. 이건 진심이야.”
순간 어이가 없었다.
뭔가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고통까지 감수했는데.
그러다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악룡 크루아스의 존재.
분명 그 존재에 대해서는 대략 4 년 뒤에 밝혀지게 된다.
하지만 김진철은 분명, 크루아스에 대해 알고 있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지?”
“크루아스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 던 겁니까?”
내 물음에 김진철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래전 누군가의 연구 일지 를 통해 알게 된 이름이지.”
그 순간 내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김진철은 내 생각을 읽은 둣 고개 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생각이 맞다. 바로 진천우의 일지다.”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김진철이 말 했다.
“설마 그 이름을 네 입에서 다시 듣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김진철은 뒤를 돌아 창문으로 걸어 갔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졌다.
“악룡, 크루아스란 말이지……
조용히 중얼거리던 김진철이 말을 이었다.
“그 도마뱀 녀석은 내가 직접 처리 하마.”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