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7화
“......흐음.”
조례가 아직 시작되지 않은 마법사 관학교의 아침.
나는 책상에 앉아 유아연이 보내준 ‘김창현이 조사한 술식 사진’을 살 펴보고 있었다.
김창현이 다녀갔던 유적지에서 발 견된 술식이라는데, 퍼즐처럼 뒤죽 박죽 섞여 있어 아무리 봐도 해석이 되지 않는다.
억지로 끼워 맞춰보려 해도 마찬가 지.
단편적인 정보와 키워드는 보이지 만 정확히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가 알 수가 없었다.
차원, 포탈, 시간, 영혼, 인과 율…….
당장 눈에 확실히 보이는 정보들은 이것들인데…….
눈으로만 봐서는 진전이 없을 것 같아 사진 속의 술식을 공책에 옮겨 적었다.
그리고 끊긴 부분을 다른 술식과 이어도 보고, 흩어진 퍼즐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춰보았다.
“......어?”
그렇게 끼워 맞추다 보니 술식의 작은 부분 하나가 완성되었다.
나는 멍하니 공책 위의 술식의 정 보를 읽었다.
[시간 이동]
시간 이동……?
설마 김창현이 새로운 회귀를 계획 한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건가?
나는 다른 술식을 더 살폈다.
시간 이동이 맞다면, 이동되는 시 점, 혹은 좌표에 대한 내용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눈 씻고 찾아봐도 그런 내 용은 보이지 않는다.
“흐으으음..
“뭘 그렇게 생각해?”
그렇게 공책 위의 술식을 보며 꽁 꽁 머리를 싸매고 있던 그때.
옆자리에 앉은 윤하영이 내게 말을 걸었다.
“……풀고 싶은 술식이 있는데 잘 안 풀려서 생각 좀 하고 있었어.”
내 말에 윤하영이 놀란 표정을 지 었다.
“우와. 선우야. 네가 못 푸는 술식 도 있어? 세계 9대 술식 난제라도 되는 거야?”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세계 9대 술식 난제.
수학의 밀레니엄 문제와 같이 수많 은 술식 학자들이 몇백 년의 세월 동안 풀어내지 못한 고난도의 술식 을 말한다.
지금까지 풀린 술식은 종 2개. 남 은 7개의 문제는 아직도 난제로 남 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중 3개의 술식을 이전 삶에서 심심풀이로 이미 해석 에 성공했다.
세계가 뒤집힐 만한 업적이었지만 당시엔 혹시 모를 미래의 변화를 염 려해 굳이 드러내지는 않았다.
“9대 난제보다 훨씬 어려운 거야.”
“에이, 그런 게 어딨어.”
진심으로 한 말이었지만 윤하영은 내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믿든 안 믿든 크게 상관은 없기에 어깨를 으쓱이며 넘어갔다.
그때 였다.
드르륵.
교실 앞문이 열리며 담임 교사, 이 희영이 안으로 들어왔다.
동시에 시끄럽던 교실 분위기가 단 숨에 고요해졌다.
이희영은 그런 학생들을 보며 밝게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 좋은 아침이에요! 다들 푹 쉬었나요?”
이희영은 특유의 밝은 에너지를 보
이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중요한 공지 사항이 있으 니 집중해주세요!”
“……공지 사항?”
학생들 사이에서 의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졸업까지 약 4개월 정도 남 았죠? 그럼 여러분들은 이제 뭘 준 비해야 할까요?”
“취업이요!”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이희영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 었다.
“취업도 준비해야 하죠. 하지만 그 전에 먼저 해야 할 게 있죠.”
“아.…”
학생들 사이에서 작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희영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눈치 챈 것이다.
“네, 바로 ‘프로 마법사 자격증’ 시 험입니다!”
프로 마법사 자격증.
이름 그대로 프로 마법사 자격을 얻기 위한 시험이다.
이 시험을 통해 도등급부터 최대 A
등급까지 자신의 마법사 등급이 정 해진다.
참고로 S등급은 ‘마력 능력’도 증 요하지만, 프로 마법사로서 쌓아 올 린 업적도 중요하기에 첫 시험으로 따는 것은 불가능하다.
뭐, A둥급도 업적 없이 순수 능력 으로 달성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수 준이기는 하지만.
“프로 마법사 자격증 시험은 아주 중요한 시험입니다. 어떤 등급을 달 성하느냐에 따라서 취업에서의 여러 분들의 평가가 달라지니까요.”
학생들은 진지한 얼굴로 이희영의
말을 들었다.
“그럼 프로 마법사 자격증 시험에서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 이 필요할까요?”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기초 마법 급수 시험을 봐야 해 요.”
“맞습니다. 자격증 시험을 보기 위 해서는 기초 마법 급수 시험을 봐야 합니다. 급수 시험에는 총 4가지가 있죠. 마력 활용 능력, 술식 해석, 웅급구조, 마수 토벌 해제. 이 시험 들을 통해 여러분들은 자신의 가치 를 중명해야 합니다.”
현실적인 이야기에 학생들이 긴장 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취업을 이미 확정 짓고 자격 중만 따면 되는 학생들의 표정엔 여 유가 넘쳐흘렀다.
나 역시 취업에는 자신 있기에 큰 걱정은 없었다.
애초에 특무팀 인턴 생활을 하면서 꽤 많은 활약을 보이기도 했고.
다만 내 옆의 윤하영은 불안한지 표정이 평소보다 한층 굳어있다.
이희영은 학생들을 둘러보고는 긴 장을 풀어주기 위해 다시 한번 밝게 미소를 지었다.
“자자, 모두 긴장 푸세요.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가 나올 겁니다!”
모든 수업이 끝난 방과 후.
마법사관학교의 다목적 훈련장에서 이서준을 포함한 주요 등장인물들과 만남을 가졌다.
오늘 모임의 이유는 간단하다.
곧 다가올 프로 마법사 자격증 시 험을 위한 스터디 그룹이 형성되었 기 때문이다.
“좀 더 날카롭고 차가운 느낌으로 해야 해.”
“이, 이렇게?”
“……아니,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해 봐. 적응 훈련 잘해왔잖아.”
그리고 나는 지금 윤하영을 거의 1:1 교육하다시피 가르치는 중이다.
잠재력과 재능을 떠나 이 모임에서 가장 기초 마법 능력이 떨어지는 것 이 그 이유였다.
물론 나의 도움이 없어도 알아서 시험을 잘 치를 예정이긴 하지만, 그 잠재력을 시험에서 제대로 보여 줬으면 하는, 마치 부모와도 같은
마음이 컸다.
윤하영은 손 위로 구현한 얼음덩어 리를 없애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으, 이렇게 해서 마력 활용 2 급이 나올 수 있으려나?”
“지금부터 열심히 하면 충분히 가 능해. 자, 다시 해봐.”
윤하영은 내 말에 다시 마법을 구 현했다.
그녀의 손바닥 위의 공기가 얼어붙 더니 이내 얼음의 화살이 되었다.
첫 구현은 언제나 완벽하지만, 여 기서 여러 개를 동시 구현하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얼음 화살의 개수를 늘리자 마력의 강도가 약해 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아니, 지금 뭐해? 앞쪽에만 강도 가 높아졌잖아. 밸런스 다 무너지 고.”
내 말에 윤하영이 입을 꾹 다물고 는 다시 마법을 구현했다.
“멍청아. 이번엔 뒤쪽만 높아졌잖 아. 이것도 못 해?”
[‘스파르타식 교육자’ 업적을 달성 했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이건 또 뭐야?
갑작스럽게 달성한 업적에 황당함 을 느끼고 있는데 윤하영의 외침이 들려왔다.
“……으아앙!”
갑자기 울먹이둣 소리를 지르는 윤 하영.
그러곤 자책하듯 자신의 이마를 콩
하고 때렸다.
“나는…… 나는 무능력한 바보 멍 청이 머저리야!”
그러더니 ‘나는 아무것도 못 해. 바보 똥개 해삼 멍게 말미잘이 야……’ 라며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 했다.
그 모습을 보자 괜히 내가 당황했다.
“……아니, 그렇게 자책할 필요는 없고.”
“아니야…… 난 바보야……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뒤떨 어진 멍청이야……
얘 완전 멘탈 나갔네.
윤하영은 그대로 내 앞에 주저앉더 니 고개를 푹 숙였다.
신영준과 한참 스파링을 하던 이서준은 우리를 보고는 움직임을 멈추 더니 작게 웃었다.
“선우야. 너 너무 혼내는 거 아니 야?”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생각해보니 1:1로 너무 멘탈을 긁 은 거 같긴 하다. 사실 지금도 충분 히 잘하고 있기는 한데.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윤하영의
앞에 쪼그려 앉아 말했다.
“아니야. 지금도 잘하는데 나도 모 르게 욕심이 나서 그런 거야.”
토닥토닥 윤하영의 어깨들 두들겨 주었다. 한참 고개를 숙이던 윤하영 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다시 해볼게.”
흘쩍. 콧물 소리를 내더니 윤하영 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손을 펼쳐 다시 마법을 구현했다.
쩌저저걱…….
동시에 그녀의 손바닥 위에서 얼음 의 화살이 다시 구현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전과 크게 달라지 진 않았다.
하지만 자신감을 채워주기 위해 기 특하다는 듯 손뼉을 쳐주었다.
“그래그래, 그렇지. 그거야. 어우 우리 하영이 잘한다.”
[‘병 주고 약 주기’ 업적을 달성했 습니다.]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합니
다.]
이어지는 나의 칭찬에 윤하영은 무 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억지로 칭찬 안 해도 돼. 달 라진 게 없는 거 나도 아니까. 그럴 수록 더 비참해.”
“……어, 그러냐?”
바로 그때.
잠시 잊고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나는 급히 스마트 학생 수첩을 보 았다.
오후 8시 10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나 이만 가봐야겠다.”
“벌써?”
이서준이 내게 말했다. 나는 짐을 챙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오늘 약속이 있어 가지고.” 약속이라는 말에 모두가 의아한 표
정을 지었다.
“약속? 누구랑?”
“그건 비밀.”
그러자 신영준이 실실 웃으며 끼어
들었다.
“뭐야. 김선우 애인 만나러 가?”
“애인은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하지 마.”
정색하며 말했지만 신영준은 여전 히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흐음. 그럼 여자야?”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일단 여 자는 맞긴 하니까.
“몰라도 돼. 그만 물어.”
“와…… 야. 이서준. 쟤 방금 당황 한 거 봤냐? 진짜 여자 맞나 본
데?”
이서준은 대답 대신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그런 그들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음대로 생각해라.”
그렇게 말하고는 나갈 준비를 하는 데 윤하영이 나를 붙잡았다.
“선우야.”
“......웅?”
“약속은 거짓말이고 나한테 질려서 가는 거지?”
얘 진짜 왜 이래.
멘탈 나간 윤하영을 겨우 달랜 나 는 김진우의 모습으로 서울 중심의 고급 술집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직원이 나를 맞이 했다.
“안녕하십니까. 김진우 님 맞으시 죠‘?”
“아, 넵.”
“ 이쪽으로.”
나는 직원을 따라 긴 복도를 걸었
다. 술집치고는 꽤 넓었는데 고급 식당이라 해도 될 정도였다.
직원의 안내에 문을 열고 방에 들 어서자 의자에 앉은 한세연이 화사 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맞이했다.
“진우 씨.”
나도 그녀를 따라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뭔가 오랜만에 보는 느낌이네요.”
“후후. 서로 바땄으니까요. 자, 받 으세요.”
한세연은 내게 술이 따라진 술잔을 내밀었다.
나는 술잔을 받으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이게 얼마만의 술이야.
“먼저 한잔해요.”
“그러죠.”
나는 한세연과 가볍게 술잔을 두들 기고는 쭈욱 들이켰다.
달고 쓴 시원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그렇게 오랜만의 한잔에 여운을 느 끼던 그때,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근데 저번에 좋은 술 하나 생겼다 고 하지 않았어요?”
수학여행에서 분명 한세연이 좋은 술이 생겼다는 말을 했었다.
그것 때문에 엄청 기대하고 왔는 데.
한세연은 내 말에 후후 웃었다.
“그건 이따가 보여줄게요. 그보 다……
한세연은 긴 손가락으로 술잔을 내 려놓더니 품 안에서 서류를 꺼내 내 게 내밀었다.
“부탁하신 서류에요.”
“아, 감사합니다.”
한세연에게서 서류를 받았다.
어젯밤 한세연에게 김창현의 술식 해석의 도음을 위해 부탁한 서류였다.
서류를 열자 각종 술식이 그려진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다.
“진우 씨가 보내주신 술식의 패턴 과 95% 일치한 형태의 술식의 혼 적을 가진 유적지들이에요. 제가 따 로 정리해서 추가했어요.”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금방 구해 주셨네요.”
“네, 최근에 술식학에 관심이 생겨 서…… 몇몇 술식 학자분들이랑 알 게 됐거든요.”
한세연이 수상하게 말끝을 흐렸다.
그나저나 한세연이 술식학에 관심 있다는 설정은 없었는데.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이 세계엔 원작에선 밝혀지지 않은 설정 들이 차고 넘치니 넘어가기로 했다.
나는 서류의 내용을 살폈다.
서류의 내용은 김창현이 조사한 술 식과 흡사한 패턴들 보이는 다른 술 식 들의 정보였다.
퍼즐처럼 나눠진 여러 개의 술식 정보를 잘게 잘게 쪼개 키워드만 뽑
아낸 것이다.
쭉 내용을 살펴보는데 ‘차원’ ‘시 간’ ‘포탈’ 같은 내가 알던 정보들을 제외하고 몇 가지 내가 모르던 키워 드가 눈에 보였다.
바로 ‘미래’와 ‘영혼의 이동’이었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