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3화 (352/535)

353화

백은성의 말에 나는 잠시 당황했다.

설마 이렇게 대놓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까.

그나저나 호텔까지 온 걸 보면 축 제 참가인 자격으로 온 거 같은데.

내게 정체를 밝혀서 좋을 건 없지 않나?

목적이 뭐지?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백은성이 피식 웃었다.

“너 해치러 온 거 아니니까 경계할 필요 없어. 내일 축제 행사에 잠깐 볼일이 있어서 온 거거든. 애초에 이놈의 불공정 계약 때문에 어찌할 방법도 없지만.”

웃으며 말하는 백은성의 말에는 가 시가 담겨 있었다.

나는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물었다.

“나한테 정체를 밝힌 의도가 뭐 지?”

“의도? 그냥 반가워서 밝힌 건데?”

“웃기지 마. 나한테 정체를 밝혀서 좋을 건 없을 텐데? 내가 협회에 신고라도 하면 어쩌려고?”

내 말에 백은성이 낮게 웃었다.

“어디 한번 해보던가. 이 개 같은 피의 맹세도 끝나고 괜찮겠네.”

그 말에 잠시 황당함을 느꼈다.

피의 맹세는 ‘김선우’와 ‘자운’이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조 건으로 유지된다.

백은성은 그 조건을 역으로 이용해 내 앞에서 대놓고 활동하겠다 선언 한 것이다. 어차피 내가 어쩌지 못 할 걸 알고 있으니까.

“참고로 몰래 신고해놓고 네가 안 그랬다고 발뺌해도 소용없어. 우리 계획에 대해 아는 놈은 없으니까.”

이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지?

그때 였다.

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 추었다.

온천이 있는 지하 3충에 도착한 것이다.

드르륵.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백은성이 피식 웃으며 밖으로 나왔다.

나는 녀석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 라보다가 따라 걸어 나갔다.

그렇게 복도를 지나자 온천 특유의 습기가 느껴졌다.

잠시 뒤 고급스러운 넓은 홀이 보 였다.

그 안에는 온천을 즐기고 나온 사 람들이 가운을 입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 선우야!”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 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가운을 입은 윤하영

이 반가워하는 얼굴로 내게 다가오 고 있었다.

내 앞에서 걷던 백은성은 흥미가 생겼는지 잠시 발걸음을 멈춰 섰다.

“와아〜 여기서 또 보네. 너도 온천 즐기러 온 거야?”

“……어, 그렇지. 넌 벌써 다 즐겼 나 보네.”

윤하영의 머리에서 은은하게 느껴 지는 샴푸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

“웅, 온천 되게 좋더라. 마나 순환 도 빨라지고.”

그때 윤하영의 시선이 내 옆에 멈 춰 선 백은성을 향했다.

나와 거리가 가까워 보였는지 의문 에 찬 표정을 짓다가 나한테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혹시 아는 사람이야?”

나는 백은성을 힐끔 보다가 말했다.

“아니, 모르는 사람인데.”

“근데 왜 구경하고 있어?”

“몰라. 좀 이상한 사람 같아. 스토 커인지는 모르겠는데 혹시 모르니 너도 조심해.”

“참나.”

백은성은 잠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온 천 방향으로 다시 걸어갔다.

윤하영은 그런 백은성의 뒷모습을 보더니 말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너 아는 사람 엄청 많아졌더라. 거의 종교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많던데.”

최근 그런 일이 많아지기는 했지.

몇 달 전만 하더라도 ‘김선우라는 이름은 들어봤지만 어떻게 생겼는지 는 모른다.’라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부쩍 늘었으니까.

특히 이서준과의 대련 영상이 퍼지

면서 더 심해졌다.

“뭐, 아무튼…… 혹시 모르니 조심 해.”

“응. 그럴게.”

윤하영이 밝게 웃자 나도 그녀를 따라 피식 웃었다.

“그럼 온천 마감 얼마 안 남아서 이만 가볼게.”

“웅. 어서 들어가! 그럼 내일 봐!”

바이! 그렇게 윤하영과 헤어지고 다시 복도를 걸었다.

그리고 [남성]이라고 적힌 곳으로 들어갔다.

비중 있는 빌런과 온천에 들어가야 한다는 게 조금 껄끄럽긴 하지만 ‘마나 온천’의 효과는 받아야 하니 사사로운 감정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수건으로 적당히 몸을 걸치고 안으 로 들어가자 이미 몸을 담근 백은성 의 모습이 보였다.

“으어〜 좋다야~ 어우. 어우.”

백은성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 고 있었다.

물을 무서워하는 녀석이 온천은 또 잘 즐기네.

잠시 어이없는 눈으로 녀석을 바라

보다가 적당히 몸을 씻은 후 나도 따라 몸을 담갔다.

“어우.”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가 나온다.

따뜻한 물이 내 몸을 촥 감싸 안 아주는 기분이다.

작년, 가상세계에서 마나 온천에 다녀온 적이 있었지만 현실이라 그 런지 그때보다 효과가 훨씬 좋게 느 껴지네.

[‘마나 온천’의 영향으로 모든 회복 속도가 300% 상승합니다.]

[일주일간 마나 연공의 효율이

30% 상승합니다.]

[정신이 맑아집니다.]

극락이 따로 없구나.

최근 있었던 스트레스가 한순간에 달아나는 기분이다.

그때 우연히 나를 바라보던 백은성 과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웬 동그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저건 또 뭐야?

혹시 마도구인가 싶어서 외부자의

혜택을 발동했다.

[감정 감지의 안경(유물)]

설명 : 상대방의 감정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감정 감지의 안경?

설마 내 감정을 읽으려는 건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과몰입] 을 발동했다.

내가 녀석을 빤히 바라보자 백은성 이 선글라스의 테를 만졌다.

“여행용으로 산 선글라스야. 멋지 지?”

굳이 대답할 필요성을 못 느껴서 무시하자 녀석이 피식 웃으며 자신 의 왼팔을 들어 올렸다.

“그보다…… 이 팔 보이냐?”

인공 피부로 덮여 있는 왼팔. 의수 였다.

“아틀란티스에서 네가 내 팔을 잘 라가고 얻은 의수이지.”

그 말에 나는 속으로 크게 당황했

다.

녀석이 그런 말을 한다는 건 내 정체를 눈치챘다는 증거였으니까.

아마 평소 상태였다면 녀석의 말에 크게 놀라며 내 감정을 들켰겠지만 미리 [과몰입]을 사용해두었기에 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었다.

“......뭐야.”

그리고 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오히려 당황한 건 백은성이었다.

나는 침착하게 녀석의 얼굴올 응시 하다가 물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네 팔을 잘라가?”

모르는 척 묻자 백은성이 입술을 깨물었다. 어딘가 화난 듯한 눈빛으 로 나를 노려보고는 입을 열었다.

“……모르는 척하지 마. 네가 룬의 일족인 건 다 알고 있어. 생명의 잔 을 훔쳐 간 게 너라는 것까지.”

이제야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

녀석이 왜 스스로 정체를 드러냈는 지까지도.

자운은 ‘김선우’를 의심하고 있다. 하지만 ‘피의 맹세’가 걸려 있어 나 를 어찌할 수 없는 상황.

확실한 증거를 찾기 위해 나를 떠 보려 한 것이었다.

자칫하면 위험해질 뻔한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나에게는 이득이 되었다.

자운이 ‘김선우’의 비밀을 의심. 아 니, 거의 확신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게 되었으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뭔가 이상한 착각을 하는가 본데. 룬의 일족이니 생명의 잔이니. 난 그런 거 모르거든? 생사람 그만 잡 아.”

“거짓말하지 마. 다 알고 있어.”

“거참, 모른다니까 그러네?”

“……아씨! 야! 너 맞잖아!”

백은성이 크게 소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동시에 주변 사람들 의 시선이 쏠린다.

나는 녀석을 바라보다가 여유롭게 온천의 돌벽에 편하게 등을 기댔다.

“억울한 일을 겪은 건 알겠는데 다 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아니야.”

“야!”

“몰라~ 나는 아무것도 몰라〜”

그러자 백은성의 눈이 도끼눈이 되 더니 주먹을 불끈 쥐고는 마력을 주

입했다.

당장이라도 나를 공격하려는 기세.

하지만 나는 여전히 평온한 눈으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한 대 치겠네.”

“아오! 이걸 진짜, 어떻게 할 수도 없고.”

결국 백은성이 주먹의 마력을 풀어 냈다. 화를 풀어내지 못하는 모습이 퍽 웃기다.

“때리고 싶으면 때려보던가.”

“……너, 진짜 두고 보자.”

백은성은 성난 발걸음으로 온천 밖

으로 나갔다.

다음날.

수학여행의 두 번째 날이 찾아왔다.

오후 5시까지는 자유시간이기에 우리는 어제 즐기지 못한 축제의 행사 를 하나둘씩 즐겼다.

신영준이 어제부터 노래를 부르던 놀이기구부터 시작해서, 분수 쇼, 길 거리 음식까지.

그렇게 정신없이 축제를 즐기다 보 니 수학여행의 집합 시간인 5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슬슬 호텔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데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블러드 크리스탈’은 언제 올라 오지?

—저녁 8시 경매의 4번째 물품으 로 나온다고 합니다.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중년의 남성

이 정장을 입은 남성의 안내를 받으 며 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남성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 다. 다름 아니라 저 중년의 남성은 회귀 전 수학여행에서 보았던 얼굴 이기 때문이다.

이름 : 유철

나이 : 52

종족 : 마인 상태 : 평안 마력 등급 : A+

관심도 : 0

마인, 유철.

세계적인 투자자라는 가면을 쓴 마인으로, 마인 재정의 큰 역할을 하 고 있는 자이다.

그리고 오늘 수학여행에서 있을 ‘작은 사건’의 범인이기도 했다.

녀석이 노리는 것은 원하는 인공 피를 만들어내는 신비, ‘블러드 크 리스탈’.

부상자의 피를 공급하기 위해 사용

하는 의료용 신비였지만, 최근 협회 의 감시가 심해지면서 피의 공급이 어려워지자 마인이 ‘생존’을 위해 얻으려고 하는 신비였다.

……잠깐.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원작에 없던 자운의 개입이 블러드 크리스탈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

녀석들이 블러드 크리스탈을 노릴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진천우의 부활, 그리고 그 육체를 구현하기 위한 ‘생명의 잔’의 대체 제로 적합한 신비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 예상대로 자운이 ‘블러드

크리스탈’을 노리고 있다면…….

뭔가 큰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는데.

“선우야.”

그때 들려오는 윤하영의 목소리에 번뜩 정신을 차렸다.

“어, 웅.”

“너 근데 파티복은 챙겼어?”

“파티복? 챙겼지.”

오늘의 메인 이벤트는 저녁에 있을 ‘신비 전시회장’이다.

이곳에서 간단한 파티와 신비 경 매. 그리고 피날레를 장식할 불꽃놀 이가 시작된다.

마법사관학교에서도 신비 전시회장 에 참가할 예정이니 파티 복장을 챙 겨오라는 말을 했었다.

물론 나에겐 ‘무형의’가 있어 따로 옷을 챙길 필요가 없었다.

그때 이서준이 시간을 확인하곤 말 했다.

“4시 50분이다. 빨리 돌아가자.”

오후 7시.

우리는 교사의 안내에 따라 몇 가

지 축제 행사를 즐기고선 메인 이벤 트가 열리는 전시회장에 도착했다.

전시회장은 거대한 모던 하우스에서 이뤄진다.

“자, 여러분 사람이 많으니까 소란 피우지 마시고 각자 조용히 전시회 장을 둘러보시면 됩니다. 조원끼리 함께 다니는 건 잊지 마시고요. 그 럼 즐거운 시간 되세요!”

그렇게 다시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몇몇 학생은 레스토랑으로 향하고, 몇몇 학생은 밖에서 열리는 공연을 본다며 나갔다.

“우리는 어쩔까? 공연 보러 갈까?

전시회 볼까?”

윤하영의 물음과 동시에 방송이 들 려왔다.

[잠시 후 미공개된 신비가 공개됩 니다!]

유아라는 천장 위에서 들려오는 목 소리가 끝나자 말했다.

“난 전시회 보고 싶은데.”

“나도. 공연보단 전시가 좋아.”

이서준이 말했다.

“그럼 전시회 보러 가자!”

의견이 정해지고 우리는 함께 이동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있을 상황을 생각 하며 계속 주변을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때 우리 앞에 누군가가 등장했다.

“오. 혹시 김선우 학생 아닙니까?”

정장을 입은 흰 머리의 중년 남성이었다.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대부호 이건응.

원작에서 압도적인 돈으로 ‘블러드 크리스탈’을 낙찰받으며 새벽, 마인 에게 암살당하는 인물이었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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