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6화
“여기가 선우의 무의식이었구나.”
신영 고등학교와 그리 멀지 않은 뒷골목.
윤하영과 합류하게 된 나는 최서윤 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당연하겠지만 이에 의문을 느낀 윤 하영은 내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이 세계에는 왜 마법의 개념이 없는 것인지, 또 내가 왜 다른 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는지에 대해서.
최서윤에게도 받았던 질문들이었기 에 똑같이 대답해주었다.
“……그렇게 된 거구나. 난 또 내 무의식인 줄 알고 당황하고 있었네. 탈출 방법을 몰라서 계속 헤매고 있 었거든.”
윤하영이 안심했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물었다.
“여기 온 지는 얼마나 됐어?”
“나? 으음…… 두 시간 정도 됐 나‘?”
“두 시간‘?”
뭐야? 뭐 이리 오래 있었어?
내가 무의식에 입장한 지 두 시간 정도 된 거 같은데.
“너 설마 거울에 입장하고 여기서 시작했어?”
“아니, 처음엔 다른 장소에 있었어. 동굴 속에서 웬 마인이 보이길래 바 로 공격하니까 이곳에 도착하더라 고.”
“……엄청 빨리 처치했나 보네.”
“웅, 그래서 설마 시험이 이렇게 쉽나? 싶어서 당연히 여기도 내 무
의식인 줄 알았
그때 윤하영이 무언가를 떠올린 듯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곤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작
게 입을 벌렸다.
잠깐, 그럼 만약 내가 여기로
안 끌려왔었으면 나 1등이었던 거
아니야?”
“……시험 시작과 동시에 무의식에서 탈출했었으면 그랬을 가능성이 높겠지.”
윤하영이 다시 한번 눈을 깜빡였다.
“뭐야아……! 내 1등 돌려줘!”
윤하영이 거의 울먹이듯 외쳤다.
그 모습을 본 최서윤도 잠시 생각 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보니 저도 무의식에서 딸리 탈출한 거 같은데. 여기 묶여서 순 위가 꽤 뒤로 밀려났겠네요.”
둘의 대화를 듣자 괜히 미안한 감 정이 들었다.
내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 으로 내 무의식에 갇혀서 시험을 망 치게 된 거니까.
“뭐, 어쩔 수 없죠. 우리는 인연의 가호로 이어져 있잖아요. 서로 도울 수 있어서 저는 좋아요.”
1등에 대한 집착이 심한 최서윤이 의외로 쿨한 반응을 보였다.
그 말에 윤하영은 최서윤을 물끄러 미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으웅, 그렇긴 하지…… 1등이 뭐 가 중요하겠어…… 친구끼리 돕는 게 좋은 거니까…… 으웅.”
윤하영이 애써 쿨한척 말했다.
하지만 전혀 쿨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딱 봐도 수상한 기운을 풍기는 저 학교에 들어가 봐야 할 거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최서윤이 학교로 시선을 돌리며 말
했다.
“담 넘어서 들어가야지.”
정문은 교사가 지키고 있으니 정상 적인 방법으로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물론 마법으로 제압해서 입장하는 방법도 있지만 괜히 소란 피우고 싶 지는 않았다.
그걸 목격한 누군가가 경찰에 신고 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때 윤하영이 나섰다.
“아까 내가 담을 넘어갔는데 교복 이 다르다고 쫓겨났어.”
“으음. 확실히. 그렇긴 하겠네.”
다른 학교의 교복이 보이면 사람들 은 본능적으로 경계심을 느낀다.
안전한 잠입(?)을 위해서는 신영 고등학교의 교복이 필요하다.
그런데 교복을 어디서 구하지.
“혹시 교복, 상상으로 못 만들어
요?”
최서윤이 내게 말했다.
“상상?”
“네, 여기는 선배님의 무의식이잖 아요. 간절한 소망이 있으면 구현되 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에이, 그런 게 될 리가.”
“혹시 모르니까 해봐요.”
안될 게 뻔하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신영 고등학교의 교복을 떠 올렸다. 변화는 없었다.
“안 되는데?”
“간절하게 해봐요. 표정에 간절함 이 안 느껴지잖아요.”
그래, 까짓거 다시 해보자.
나는 아까와 달리 간절함을 담아서
교복의 이미지를 그렸다. 그렇게 5
초 정도를 떠올렸을까.
우우웅!
눈앞에서 강한 빛이 뿜어지기 시작 했다.
그리고 빛이 사라지자 그곳에는 베 이지색 교복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았다.
아니, 이게 진짜로 된다고?
“오! 됐다!”
최서윤과 윤하영은 신난 표정을 내 게서 교복을 받았다.
“저희 그럼 갈아입고 올게요!”
모든 준비과정을 마친 우리는 담을 넘어 학교 안으로 들어섰다.
워낙 화려한 외모를 가진 둘이었기 에 교복을 갈아입었음에도 눈에 띄 었지만 같은 옷을 입었다는 것만으 로 교내에 무사히 들어올 수 있었다.
1층 안으로 들어서자 복도를 걷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조례를 마친 1교시 전 쉬는 시간
이었다.
“안으로 들어오기는 했는데, 이제 어디로 갈까요?”
최서윤의 물음에 나는 주변에서 풍 겨오는 기운을 느꼈다.
“위층으로 가보자.”
나는 앞장서서 계단으로 이동했다.
오랜만에 오는 학교였지만 3년간 매일 다녔기에 길은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어? 야. 김선우!”
계단을 오르자 위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교복 셔츠를 풀어 헤 친 남성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를 보자마자 내 몸이 바짝 굳었다.
“큭큭. 뭐야? 너 설마 지금 등교한 거야?”
“……황은현.”
황은현.
중학생 때부터 소설 속에 떨어지기 전까지.
오랜 시간 희로애락을 함께 해왔던 절친한 친구 중 하나였다.
학교에 오는 순간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정말로 마주치게 됐네.
그러자 최서윤과 윤하영이 내게 시 선을 돌렸다.
“누구예요?”
“그건......
“근데 옆에는 누구냐? 처음 보는 얼굴인데?”
황은현이 내 말을 자르며 물었다.
내가 대답이 없자 황은현이 다가왔다.
그러더니 흥미에 찬 눈으로 최서윤 과 윤하영을 번갈아 바라본다.
“너네 누구야? 명찰도 없는데?”
“아, 그게……
최서윤과 윤하영이 혼란스러운 표 정을 지으며 다시 내 눈치를 살폈 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전학생이야.”
“ 전학생?”
“웅. 길을 모르길래 안내해주고 있 었어. 우연히 마주쳤거든.”
“아하. 그래서 늦었구만.”
황은현이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 덕였다. 그러더니 그의 두 눈이 장 난기를 가득 머금으며 가늘어진다.
“흐음~ 전학생이 둘이라……
“됐고, 바쁘니까 가본다.”
나는 최서윤과 윤하영에게 시선을 돌렸다.
“가자.”
“아, 넵.”
황은현을 지나 다시 계단을 올랐다. 뒤에서 ‘야! 어디가?!’라고 외치 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윤하영은 내 눈치를 살피다가 물었
다.
“방금 누구야? 잘 아는 사이인 거 같던데.”
“예전 친구야.”
“예전 친구?”
윤하영의 두 눈에 의문이 깃든다.
“웅, 못 만난 지 꽤 됐는데 여기서 보게 되네.”
최서윤과 윤하영이 묘한 눈으로 나 를 바라보았다.
묻고 싶은 게 많지만 묻지 못하는 눈빛이다.
예전 친구치고는 나이가 많은 것에 의문을 느끼는 것 같아 설정을 하나 추가해주었다.
“상상 속이라 그런지 나이를 먹었 네.”
그 뒤로도 나를 알아보는 몇몇 학 생들을 마주치게 되었다.
“뭐야. 김선우. 너 이제 온겨?”
“와. 옆에는 누구냐? 전학생이냐?”
계속되는 사람들의 마주침에 잠시 소란이 생기려 할 때쯤.
—띵동댕동〜
1교시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교 내에 울려 퍼졌다.
“아, 수업이네.”
“들어가자
학생들은 약속한 둣 각자 교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복도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 다.
“……상상으로 만들어진 세계치고 는 뭔가 디테일하네. 종소리도 그렇 고, 사람들 반웅도 그렇고.”
윤하영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그러게요.”
최서윤도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굳이 반웅하진 않았다.
딱히 할 말이 없거든.
그렇게 자유의 몸이 되고 다시 이 동했다.
아까부터 수상한 기운이 풍겨지는 장소로.
5충에 오르자 그 기운은 더욱 강 해졌다.
“이 근처인 거 같네.”
신영 고등학교 본관 5충에는 교실
대신 수많은 특수 목적 교실이 마련 되어 있다.
각종 동아리 부실, 과학실, 컴퓨터 실…… 등둥.
길을 쭉 걷자 우리는 어느 문 앞 에 도착했다.
문 너머에서 지독한 악취가 풍겨온 다.
“으, 이게 무슨 냄새지. 썩은 내가 나는데.”
윤하영이 손가락으로 코를 막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앞에 걸린 명패를 바라보았다.
[다목적실]
고둥학교 시절 아지트처럼 자주 들 락날락하던 추억의 공간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풍경에 추억에 잠길 법도 했지만 문 너머에서 느껴지는 불길한 기운 때문에 그럴 여유는 없었다.
드르륵.
天 O O.
문을 열자 건물 안에 어떤 징그러 운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크르륵…….
“……저게 뭐야.”
안에는 괴물이 있었다.
네팔에서 토벌당했던 질병의 마수 의 사역마인 ‘검은 마수’였다.
이어서 양옆의 복도에서도 검은 액 체를 뚝뚝 떨어트리는 괴물들이 모 즙을 드러냈다.
어디서 등장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단숨에 포위된 형태가 되었다.
“준비해!”
—크르르르륵!
괴물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들기 시 작했다.
우리는 각자 마력을 끌어올리며 마 법을 구현했다.
그리고는 손바닥을 펼쳐 마법을 방 출했다.
파아앙!
마법이 쏘아지며 검은 마수의 머리 에 박혔다. 검은 피가 터지며 다목 적실 내부를 검게 물들였다.
—끼에에엑!
그리고 윤하영과 최서윤도 각자 하 나씩 쓰러트렸다.
“……놀랬네.”
나는 다목적실 안으로 들어섰다.
검은 마수의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최대한 숨을 참아내며 주변 을 둘러보았다.
최서윤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코를 집으며 맹맹한 소리로 말했다.
“선배님, 뭔가 보여요?”
“아니.”
그때 책상 위에 무언가가 눈에 들 어왔다.
“이건......
스마트폰이었다.
내가 예전에 사용한 스마트폰.
하지만 고등학생 시절에 사용하던 스마트폰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건…… 내가 소설 속에 떨어지기 직전에 사용했던 스마트폰 이다.
……설마 이게 내 무의식의 결정체 인가?
그렇게 스마트폰을 집으려던 그 순 간.
우우웅!
스마트폰에서 나온 강한 마력이 하
늘을 향해 뿜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학교 전체가 흔들리더니 강한 돌풍이 일 었다.
“윽! 뭐야?!”
—크르르르!
동시에 검은 마수들이 화면 안에서 솟아 나오기 시작했다.
파도처럼 밀려오듯 나오는 마수의 군단…….
나는 그것을 보며 뒷걸음질했다.
—끼에에에엑!
이번에는 창밖에서 포효소리가 들 려왔다.
과거 들어본 적 있던 포효소리였다.
……재앙급 마수.
용의 울음소리다.
“……아니, 이게 뭔.”
—크어 어어 엉!
계속해서 나타나는 마수들을 보며 나는 뒤를 돌아 윤하영과 최서윤에 게 외쳤다.
“일단 후퇴해!”
5대 마법 명문가 유씨 가문의 저 택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무의식 속에서 가족과 행복한 시간 을 보내던 5살의 어린 유아라는 자 운의 습격으로 가족이 목숨을 잃는
것을 보며 강한 분노를 느꼈다.
동시에 그녀는 19살의 유아라로 모습이 바뀌었다.
콰아아아앙!
“끄아악!”
유씨 가문을 습격한 자운의 멤버들 은 유아라의 손에서 뿌려지는 화염 구체에 휩쓸리며 고통의 비명을 질 렀다.
유아라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무의식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자운을 용서할 수 없었 으니까.
파앗!
그 순간 유아라의 뒤에서 얼음의 가시를 구현한 진이 모습을 드러냈 다.
홍분한 상태였기에 뒤에서의 기습 을 그녀는 눈치채지 못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때 새하얀 빛이 번쩍이더니 진의 몸을 베었다.
“끄아악!”
“유아라!”
“……이서준?”
자신을 구한 건 다름 아닌 이서준
이었다.
뒤를 이어서 신영준과 이현주가 합 류하며 다른 자운의 멤버들과 전투 를 치렀다.
“……너희가 어떻게?”
“무의식의 중첩 현상이야.”
“ 아.”
유아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서준은 검을 잡고는 자운의 멤버 들을 노려보았다.
“저게 네 무의식의 결정체인가 보 네.”
그리고 다시 전투가 시작되었다.
화염이 폭발하고 빛의 검기가 허공 에 그어지고.
치열한 전투가 치러졌다.
현실이었다면 고작 19살인 이들이 자운을 상대하기 부족하겠지만 이곳 은 ‘무의식의 세계’
그들의 강함은 제대로 구현되어 있 지 않다.
“크으윽! 너흰 누구냐!”
“애송이들이!”
시간이 지나 숭기는 유아라 쪽으로 기울이 시작했다.
그리고 화염이 다시 한번 폭발하더
니 자운의 멤버들의 비명이 크게 울렸다.
“끄아아악!”
“크으윽……
혼자 살아남은 베르트가 피를 토하 며 쓰러졌다.
뚜벅 뚜벅.
유아라는 천천히 그녀에게 걸어갔 다.
그녀가 다가올수록 베르트의 두 눈 에는 공포가 깃들었다.
유아라는 이를 질끈 물고는 베르트 에게 마법을 방출했다.
콰아아아앙——
그렇게 마지막 자운의 생존자, 베 르트가 처치당했다.
모든 전투가 끝나고, 세상이 변하 기 시작했다.
길었던 밤이 끝나고, 새벽이 밝아 오듯 어두웠던 구름 사이로 빛이 스 며들었다.
그리고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게 뭐지?”
유아라가 허공을 웅시하며 중얼거 렸다.
신영준은 변화하는 공간을 바라보 며 낭패를 느꼈다.
“……아니, 설마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한국의 도시로 보이는 야외의 풍경 에 도착해 있었다.
갑작스러운 풍경의 변화에 이서준 일행은 잠시 의아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끼에에에에에엑!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모두가 귀를 틀어막았다.
“……이건 또 뭐야.”
용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