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5화 (344/535)

345화

얼음의 창이 쏘아짐과 동시에 세계 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주변의 시야를 가리던 어둠이 서서 히 사라지고 하늘 위에선 어느새 햇 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최서윤은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는.”

작은 도시였다.

촘촘하게 모여있는 아파트 단지와

바쁜 얼굴로 신호등을 건너는 사람 들.

자주 본 듯 익숙한 풍경이면서도 낯설다는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세계가 바뀌었다는 건 아마 무의식 을 유지하던 주체가 달라졌다는 증 거.

그렇다는 건…… 다른 누군가의 무 의식에 끌려갔다는 건가?

“흐음.”

최서윤은 생각에 잠기며 주변을 다 시 한번 둘러보았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대한민국의 도시처럼 보였다.

하지만 구석구석 자세히 살펴보면 자신이 알던 한국과는 분명 다른 점 이 있었다.

우선 마공학 기술의 혼적이 보이지 않았다.

건물의 디자인도 조금 달랐고, 도 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디자인도 어 딘가 달랐다.

여기는 자신이 알던 한국이 아니다.

한국인데 한국이 아니다. 모순되는 말이지만 그렇게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때 였다.

—아, 진짜 학교 가기 싫다.

—흐아암. 그러게.

가까운 어딘가에서 젊은 남성의 목 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베이지색 교복을 입은 남학생 무리 가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저기요!”

“......네?”

최서윤의 부름에 학생들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 을 보곤 잠시 놀라는가 싶더니 살짝 얼굴을 붉힌다.

“왜, 왜요?”

“혹시 여기가 어디예요?”

그 물음에 학생들이 눈을 깜박이더 니 서로를 마주 보았다.

“@#$ 인데요.”

“......네?”

뭐지? 목소리가 깨진 오디오 소리 처럼 들렸는데.

“죄송한데 한 번만 다시 말씀해주 실 수 있나요?”

“@#$요.

다시 들어도 여전하다.

설마 무의식의 세계라 지역의 이름 이 구현되지 않은 건가?

최서윤이 생각에 잠겨있자 남학생 이 최서윤의 옷을 보고는 물었다.

“그런데 어디 학교예요? 이 동네 학교 교복은 아닌 거 같은데.”

“마법사관학교요.”

“마법…… 뭐요?”

“한국 마법사관학교요.”

“푸흡!”

무리 중 한 학생이 낄낄 웃기 시 작했다.

이어서 다른 학생들도 따라서 웃었다.

“마법사관학교? 큭큭.”

“아〜 호그와트 다니시는구나~ 큭 큭. 이거 몰카예요?”

최서윤은 멍하니 그들을 바라봤다. 반웅이 왜 저러지.

“혹시 마법사관학교 모르세요?”

“와. 되게 진지하게 물으시네. 장난 하는 거 맞죠? 큭큭.”

“요즘에 이런 걸 믿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세상에 마법이 어딨어.”

……뭐야.

설마 마법의 존재를 모르나?

“야 이러다 학교 늦겠다. 몰카 재 미있었어요. 저흰 가볼게요.”

그 말을 끝으로 학생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최서윤은 그들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설마 마법이 없는 세계인 건

가?”

대체 누구의 무의식이길래…….

“최서윤.”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 리에 정신을 차렸다.

최서윤은 뒤를 돌아 자신의 이름을 부른 사람을 바라보았다.

반가운 얼굴에 최서윤의 입가에 미 소가 번졌다.

“선배님!”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김선우 였다.

반가움에 그에게 달려가려는 찰나,

최서윤은 그가 입은 옷을 발견하고 는 잠시 멈칫했다.

베이지색의 교복.

“……선배님?”

김선우는 방금 신호등에서 마주쳤 던 학생들과 같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최서윤과 만남 이 후 우리는 놀이터로 다시 이동했다.

그녀가 내 무의식에 있는 건, 사전

에 공지했던 깊은 유대를 가진 사람 들에게서 나타나는 ‘무의식의 중첩 현상’ 때문인 것 같았다.

[인연의 가히로 이어져 있는 만큼 어쩌면 이 만남은 당연한 걸지도 모 르겠네.

[미래의 변화가 감지되었습니다.]

[인과율이 0.5 상승합니다.]

최서윤과의 만남 이후 떠오른 메시 지를 보고 있는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여기가 선배님의 무의식 인 거예요?”

그네에 앉은 최서윤이 내게 물었다.

“뭐, 그렇지.”

“그럼 여긴 어디예요? 제가 알던 한국이랑은 조금 다른 거 같던데. 마법이라는 개념도 없는거 같 고……

최서윤은 내게 궁금한 것이 많은지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그녀의 물음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이서준 때와 같이 ‘발설 금지’가 적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지어내서 말했다.

“……아마 내 꿈일 거야.”

“꿈이요?”

“가끔 꿈에서 이런 풍경이 나오거 드 ”

거짓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원래 살던 세계의 꿈을 가 끔 꾸고는 하니까.

내 말에 최서윤은 무언가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꿈이라……

혼자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힐끗 나를 보곤 말했다.

“그럼 그 교복은 뭐에요?”

나는 교복을 내려봤다.

이건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

“글쎄. 이건 나도 잘 모르겠네.”

내 말에 최서윤이 턱을 매만지더니 다시 한번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 다.

마치 머릿속에 각인하려는 듯 눈을 또렷하게 뜨고선.

“왜 그렇게 쳐다보냐.”

“다른 교복을 입은 거 보니까 왠지 낯설게 느껴져서요. 그런데 그쪽이 더 잘 어울리는 거 같다고 해야 할 까…… 옷이 선배님이랑 딱 맞다고 해야 할까……

“그래?”

“네, 옷만 바뀌었는데 분위기가 확 달라진 거 같아요.”

마법사관학교의 교복과는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긴 하지.

마법사관학교의 교복은 조금 고전 적인 느낌이라면, 이쪽은 자유로운 느낌이 강하다고 할까.

최서윤이 슬쩍 스마트 학생 수첩올

들어 올렸다.

“기념사진 찍어도 바깥엔 못 가져 가겠죠?”

“당연하지. 아니, 그보다 찍을 생각 도 없어.”

“쳇.”

최서윤이 입술을 삐죽였다.

“그나저나 여기서 탈출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어떻게 탈출해야 하지.”

“아, 무의식에 숨은 결정체를 파괴 하면 돼요.”

최서윤이 말했다.

“무의식의 결정체?”

“네, 아마 이 세계 어딘가에 선배 님에게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거예 요. 그걸 파괴해야 해요. 저도 제 무의식에서 결정체를 파괴하고 탈출 했거든요. 다시 이곳에 갇히긴 했지 만요.”

“특별한 거라……

나에게 특별한 것.

딱히 생각나는 건 없었다. 그나마 떠오르는 게 가족이기는 한데…….

하지만 아무리 가짜로 만들어진 무 의식의 세계라도 가족을 공격하는 건 조금 아니, 많이 망설여진다.

그리고. 단순한 내 촉이지만 무의 식의 결정체는 따로 숨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데 이 넓은 곳에서 무슨 수로 찾지.

“당장 떠오르는 게 없으면 돌아다 니면서 찾아보죠.”

최서윤이 기운찬 움직임으로 그네 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를 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럴까. 그럼 어디부터 찾아볼까.”

내 물음에 최서윤이 내 옷을 바라 보았다.

“학교에 가보는 건 어때요?”

최서윤의 의견대로 우리는 학교에 가보기로 했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왔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어 서였다.

그렇게 학교 방향으로 걸으면서 이 세계의 내가 모르는 사실을 한 가지 를 발견했다.

바로 이 세계는 내가 경험한 과거

를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나는 지 금 고둥학생 시절로 돌아왔지만, 주 변 곳곳에서 다른 시간대의 흔적이 보였다.

—바라보면 ~ 月

예를 들면 지금 나오는 노래가 고 등학교 때에는 나오지 않았던 미래 의 노래라던가 말이다.

심지어 몇몇 장소는 소설 속 세계 와 비슷한 형태의 건물도 존재했다.

이상하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심연 탐험은 ‘과거’를 경험하는 시 험이 아니니까 당연히 이곳도 재창 조될 수 있겠지.

“그런데 선배님.”

최서윤이 나를 불렀다.

“여기 꿈이라고 하시지 않으셨어 요?”

“어, 그런데?”

“아뇨. 꿈 치고는 길을 너무 잘 찾 으시는 거 같아서요. 마치 자주 다 녀본 것 같이.”

“……뭐, 자주 꾼 꿈이니까. 나도

모르게 기억이 나더라고.”

최서윤은 무언가 의심에 찬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수긍한 듯 고개를 끄 덕였다.

“흐음. 그나저나 아까부터 몇몇 소 리가 깨져서 들리네.”

최서윤의 혼잣말에 그녀에게 시선 을 돌렸다.

“깨져서 들린다니?”

“선배님은 안 그래요? 지금 들리는 노래도 멜로디만 들리고 가사는 안 들리고 있는데.”

안 들린다고?

나는 제대로 들리고 있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포리아에서 이서준이 나와 진천 우의 대화를 듣지 못한 것과 비슷한 건가?

“난 멀쩡하게 들리는데.”

“……그래요? 무의식의 주인이라 다른 건가?”

그러더니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건 무슨 노래에요? 처음 듣는 멜로디인데.”

“음, 그건 비밀.”

“아, 진짜. 왜 이리 비밀이 많아 요.”

최서윤이 입술을 삐죽이며 섭섭함 을 내비쳤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대답 대신 작 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때 최서윤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선배님은 어쩌다 이런 꿈을 꾸시 게 된 거예요?”

나는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꿈이라는 게 무의식의 욕망이나

소망이 발현되는 거라는 말이 있잖 아요. 이런 꿈을 자주 꾼다는 거 자 체가 선배님이 무의식적으로 이런 세계를 원하고 있다는 게 아닐까 하 는 생각이 들어서요.”

꽤 진지한 물음이었다. 그리고 스 스로도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이기도 했다.

“소망이라…… 그럴지도 모르겠 네.”

최서윤이 물끄러미 내 얼굴을 바라 봤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마주하다 가 문득 그녀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너는 어떨 거 같아?”

“네?”

“만약 이곳처럼 마법이 없는 세계 에서 살게 된다면 말이야.”

내 질문이 갑작스러웠을까, 최서윤 은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심심할 거 같기는 해요. 평생을 마법만 수련하고 살아왔는데 그걸 못 쓰게 된다면 지금까지 제 노력은 물거품이 되는 거잖아요.”

“역시 그렇겠지?”

최서윤은 하늘을 올려보았다.

“……그래도 막상 그런 상황이 된

다면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지 않을 까요? 저 생각보다 적응력이 빠르거 든요.”

최서윤이 나를 향해 장난스레 미소 를 지었다.

나도 그런 그녀를 따라 피식 웃었다.

최서윤다운 대답이다.

적웅력이 빠르고 항상 노력하니 어 느 세계에 떨어지더라도 그녀는 잘 살아갈 것이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렇게 시간이 지나 우리는 목적지 에 도착했다.

[신영 고둥학교]

고둥학생 시절, 나의 추억이 담긴 장소.

정문에는 등교하는 학생들의 모습 이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학교의 분 위기였지만 나는 그것을 보며 당황 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뭐냐?”

검은 구름이 학교 위를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수상한 기운이 뿜어지는 검 은 빛의 기운이 검은 구름을 향해 솟구치고 있었다.

무슨 영화나 만화 속에 보던 마왕 성이라도 보는 느낌이었다.

세계가 재창조될 수 있다고는 하지 만 이건 좀 무서운데.

그리고 최서윤 역시 그것이 보이는 지 꽤나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정문을 지나는 학생들에게 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 둣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얼굴로 등교를 하고 있었다

“......뭐지?”

그렇게 잠시 혼란을 느끼던 사이.

—어? 야야. 저거 아까 그 교복 아 니냐?

—그러게. 여기서 또 보네. 어디 학교 교복이지?

최서윤을 향한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교복?”

학생들의 반웅을 보아하니 마법사 관학교의 교복을 다른 곳에서도 본

모양이었다.

“뭐야. 여기에 너 말고 다른 사람 도 왔어?”

“……저도 몰라요.”

그때였다. 어디선가 작은 소란이 들려왔다.

정문 안쪽에서 일어난 소란이었다.

“아, 진짜 저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니까요?”

“거참, 학생! 이 학교 학생이 아니 면 못 들어온다니까.”

교사에 의해 질질 끌려오는 한 여 학생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여

학생이 입은 의상이 마법사관학교 교복이 었다.

나와 최서윤은 잠시 당황하며 그것 을 바라보았다.

“아앙! 저 들어가야 한다고요!”

“학생, 이러지 말고 어디 학교야? 웅?”

계속되는 교사와의 실랑이.

“……쟤 저기서 뭐하냐?”

“그러게요.”

거의 울먹이듯 말하던 여학생이 우리의 시선을 느낀 듯 뒤를 돌아보았 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여학생의 얼굴에 깊은 반가 움으로 번졌다.

“어? 선우야!”

여학생의 부름에 교사의 시선도 나 를 향했다.

윤하영이었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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