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화
“선우야? 왜 대답이 없니. 아직도 자니?”
문밖에서 계속해서 나를 부르는 목 소리가 들려왔다.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
너무나도 오랜만에 듣지만 마치 어 제 들었던 것처럼 익숙하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고는 문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끼이익.
문을 열자 작은 식탁이 눈에 들어 왔다.
위에는 소박한 한상이 차려져 있었다.
밥 한 공기와 찌개, 계란 후라이, 스팸, 김치…….
어릴 적부터 자주 먹었던 음식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한 여인이 부 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 고 있었다.
그 미소를 보고 있자 다시 한번 심장이 멎는 기분이 들었다.
“왜 불러도 대답이 없어?”
여인이 투덜거리듯 내게 말했다. 그러곤 내 얼굴을 보곤 살짝 표정을 굳혔다.
“……표정이 왜 그래? 너 무슨 일 이라도 있니?”
여인은 걱정이 담긴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순간 가슴 깊은 곳에 꾹꾹 눌러 놓은 감정이 터져 나을 것 같았다.
나는 이를 악물고는 그것을 참아내 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긴. 목이 잠겼는데. 친구랑 싸우기라도 했어?”
여인은 그렇게 다정한 말투로 말하 더니 식탁에 앉았다.
“됐고, 어서 밥이나 먹자. 시간 늦 겠다.”
내가 가만히 서 있자 여인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안 앉고 뭐 하니? 너 그러다 학 교 늦어.”
그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뜨겁게 터져 나 오려던 감정에 찬물을 끼얹은 기분
이 들었다.
“……학교요?”
……갑자기 웬 학교?
졸업한 지가 언젠데.
동시에 방금 상황의 몰입이 끊기며 지금 내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깨달 았다.
이곳은 현실이 아니다.
나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거짓된 세계이다.
“너 등교 안 할 거니?”
여인이 다시 내게 말했다.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이다가 내 몸을 내려보았다.
“……뭐야 이거.”
베이지색 블레이저, 검은 조끼.
나는 지금 교복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평소에 입던 검은 블 레이저의 마법사관학교 교복이 아니 었다.
그러니까 이건…… 내가 고등학생 시절에 입던 교복이었다.
한편, 이서준은 지금 자신의 상황 에 큰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시험을 위해 무의식에서 탈출해야 할 상황인데 아기의 몸이 되어버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진천우에게 자신의 몸을 맡긴 채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을 뿐.
시간이 지나 진천우는 어떤 장소에 도착했다. 마치 실험실을 연상시키 는 새하얀 공간이었다.
“오셨습니까?”
“유성 일족의 실험은 어떻게 되고 있지?”
“거부반응 없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습니다. 시간은 더 필요하겠지만 요.”
“이름이 김창현이라고 했던가.”
진천우의 말에 이서준은 살짝 놀랐다.
김창현이라고?
“네, 맞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 는……?’
“저번에 말했던 나의 혈육이다.”
“아, 불사의 재료라고 하셨던……
“그래.”
정체불명의 남성은 이서준을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김창현이 구해내야 할 아이가 바 로 이 아이군요.”
그 순간 이서준은 강한 의문을 느 꼈다.
김창현이 구해내야 할 아이.
그러니까, 김창현이 나를 구한다 고?
생각해보니 아까의 진천우는 자신 을 보고 죽게 될 것이라 말했다.
그 뉘앙스가 마치 늙어서 죽는 자 연사가 아닌, 다른 이유에 의해 죽 는 것이라 말하는 것 같았다.
“정확히는 이 아이를 살리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이지만.”
그때 였다.
우우우웅…….
세계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간의 뒤틀림. 그 안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 다.
“……와. 이게 뭐야?!”
“신영준? 네가 여기 왜 있어?”
“이현주. 너는 왜 여기 있냐?”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영준 과 이현주의 목소리였다.
잠시 티격태격하는가 싶더니 진천 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둘의 표정에 잠시 긴장이 담겼다.
“……진천우?”
“진천우가 왜 있어? 야. 이현주. 이거 네 무의식이냐?”
“아니야. 난 방금 내 무의식한테서 승리하고 왔어.”
“엥? 나돈데.”
“그래? 그렇다면……
이현주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진 천우의 품에 안긴 아기를 발견했다.
순간 눈이 마주쳤다.
“저 아이가 서준이인가 본데?”
“……저 아기가 이서준이라고?”
신영준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서준은 그들의 시선을 느끼며 왠
지 모를 강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때 진천우가 말했다.
“너흰 누구지?”
그 물음에 이현주는 신영준에게 시 선을 돌렸다.
“내 생각엔 저게 이서준의 ‘무의식
의 결정체’인 거 같아.”
“아, 뭔 말인지 알겠네. 저걸 죽이 면 해결된다는 거지?”
신영준은 허공에 창을 휘두르며 전 투 준비에 나섰다.
상대가 진천우라고 하나 결국 이곳 은 무의식의 세계.
진천우의 강함이 그대로 구현되어 있을 리 없었다.
그대로 앞으로 달려 나간 신영준은 진천우에게 창을 찔러넣었다.
푸욱!
“크윽!”
가슴을 찔린 진천우가 비틀비틀 뒷 걸음질을 쳤다.
가짜 진천우라고는 하나 대처가 생각 이상으로 허술했다.
그리고.
우우우웅.
세계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진천우의 몸은 픽셀 단위로 쪼개지 더니 그대로 사라졌고, 그 외에 사 람들도 어느새 모습을 감추었다.
신영준은 창을 내려놓고는 눈앞의 이서준을 바라보았다.
아기의 형태가 아닌 19살의 이서준이었다.
“이서준~ 원래대로 돌아왔네.”
신영준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너희 아니었으면 평 생 여기서 썩을뻔했네. 근데 여기는 어떻게 온 거야?”
“나도 몰라. 동굴에서 웬 지렁이 몬스터 하나 처치했더니 여기로 와 졌거든.”
신영준의 말에 이서준은 턱을 매만 졌다.
“이게 선생님이 말했던 그 무의식
의 중첩 현상인가?”
“아마 그렇지 않을까?”
이서준은 잠시 생각에 잠기곤 천천 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연구소 내부.
어릴 적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만 들어진 장소인 것 같지만 정확히 어 떤 장소인지는 알 수 없었다.
혹시 자신이 몰랐던 단서가 될만한 게 발견되지 않을까 살펴보는데 별 소용은 없었다.
“……무의식의 한계인가 보네.”
이현주는 이서준을 물끄러미 바라
보다가 물었다.
“이건 네 기억이야?”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모르는 나의 경험인지, 아니면 나의 상상인 지.”
무의식이라는 게 꼭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자신이 본 것 또한 ‘과거의 기억’이라고 확신할 순 없었다.
“그나저나 여기서 어떻게 나가지?”
“무의식의 결정체를 죽였으니 곧 출구가 생길 거야.”
이현주의 말에 이서준이 의문에 찬
표정을 지었다.
“결정체?”
“쉽게 설명하자면 각자의 무의식을 유지하는 본체가 숨겨져 있는데 그 걸 처치해야 나을 수 있어. 나도 그 걸 처치하고 나온 거야.”
“……본체라.”
그렇게 이서준은 연구소 주변을 둘 러보다가 문 하나를 발견했다.
“혹시 저기가 출구인가?”
“어? 그런가 본데? 가보자.”
끼이익.
연구소의 문을 열었다.
동시에 야외가 보였다. 깜깜한 밤 이었다.
“……올 때랑 배경이 달라졌네.”
주변은 조용했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거대한 저택 하나가 보였다.
“이야. 엄청 크다. 무슨 저택이지?”
“저 저택은……
한눈에 봐도 평범한 저택이 아니었다. 마치 명문가의 저택과 같은 거 대한 크기.
그때, 한 무리가 저택을 향해 달려 가는 것이 보였다.
이서준은 선봉에 선 자의 얼굴을
보았다.
순간 이서준의 표정이 굳었다.
“……베르트?”
이서준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저 저택은 자운에 의해 멸문한 유 씨 가문의 저택이었다.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을 천천히 씹고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음식들이었
지만 그 어느 때 보다 집중하며 맛 을 음미했다.
예전에 먹던 그리운 맛이 났다.
꽤 긴 시간이 홀러 잊었다고 생각 했는데 내 무의식은 아직도 그 맛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나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이건 시험.
눈앞의 음식도, 내 맞은편에 앉은 어머니도 전부 가짜인데.
이럴 시간이 없다.
눈앞의 가짜는 무시하고 서둘러 무
의식에서 탈출할 방법을 찾아야
“선우야.”
“네?”
“찌개만 먹지 말고 고루고루 먹 어.”
“아, 넵.”
그 말에 나는 계란 후라이를 잘라 먹었다. 엉덩이가 마음처럼 쉽게 떨 어지지 않는다.
“아 참, 아버지 오늘 밤에 오신다 더라.”
아버지…….
직업의 특성상 아버지는 해외 출장 이 잦은 편이셨다.
그래서 얼굴을 자주 보진 못했지 만, 올 때마다 선물을 챙기고 오셔 서 언제나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오늘은 일찍 들어와.”
“……예. 그럴게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 밥공기를 비웠다. 어머니는 의외라는 시선으로 나 를 보더니 말했다.
“어머, 웬일로 밥을 다 비웠네? 아 침에는 항상 깨작깨작 먹더니.”
나는 대답 대신 어색한 미소를 지
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교 가게?”
“……예. 그래야죠.”
가족 앞에서 학교에 간다고 했던 것도 오래전 일이라 어색하게 느껴 진다.
고등학교 졸업한 지가 언젠데…….
생각해보니 마법사관학교도 고등학 교구나. 대체 나는 교복을 몇 번째 입는 거지.
“그럼 다녀올게요.”
“선우야. 가방은?”
은근슬쩍 맨몸으로 나가려 했는데
들켰다.
“어…… 가방이 어딨더라.”
“어떻게 네 물건도 못 찾니. 소파 위에 있잖아.”
“아, 저깄구나.”
나는 가방을 멨다.
와. 이거 되게 오랜만이네.
책 하나 안 넣어서 가벼운 것도 여전하고.
“다녀올게요.”
“그래. 다녀오렴.”
그 말을 끝으로 나는 현관문을 열
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밖으로 나오자 다시 한번 그리운 풍경이 눈 에 들어왔다.
출근하는 주민들, 등교하는 학생들, 주변을 청소하는 경비원.
눈을 깜빡이며 그것을 구경하다가 앞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아, 졸려 죽겠네.
—나도. 밤새 게임 했거든.
—너 수능 공부 안 하냐?
어디선가 학생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아침임에도 활기찼던 마법사관학교 의 학생들과는 다르게 어딘가 피곤 에 절어있는 모습이다.
그것을 보자 헛웃음이 나왔다.
“……진짜 어이가 없네. 돌아와도 무슨 이때로 돌아오냐.”
나는 다시 발걸음을 내디뎠다.
오랜만에 학교나 다녀올까 잠시 생각했지만 그럴 여유를 부릴 때가 아 니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현실처럼 보이지만 현실이 아니다.
이곳은 나의 무의식. 즉, 가짜.
절대로 그걸 잊어서는 안 된다.
“정신 차리자.”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는 근처의 놀이터로 향했다. 생각나는 쉴 공간 이 그곳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터벅터벅 걷다가 그네를 발견하곤 앉았다.
“이것도 오랜만이네.”
무의식으로 만들어진 가짜 세상이 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도 모르 게 추억에 잠기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씁쓸한 미소를 짓다가 손바닥을 펼 치곤 마력을 끌어올렸다.
우우웅!
동시에 떠오르는 무속성의 구체.
마법이 없는 세계에 왔지만, 여전 히 제대로 구현되고 있다.
“……홈. 마법은 제대로 써지네.”
“우와!”
그때 가까운 곳에서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5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가 커 다란 눈망울로 나를 보며 놀란 표정 을 짓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보며 피식 웃다가 얼 음 구체를 구현했다.
쩌저적.
얼음이 생겨나자 아이가 다시 한번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우와아아!”
“신기하지?”
“그거 뭐예요? 어떻게 한 거예요?”
“마법이야.”
“……마.법?”
“응, 마법.”
현실 세계도 아니고 내 무의식이니 까 솔직하게 말해도 상관없겠지.
그러자 아이가 소리쳤다.
“에이, 거짓말! 속임수 쓴 거 다 알아요!”
메롱.
아이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내가 살던 세계는 이런 세계였다.
산타를 믿는 어린아이도 마법은 믿 지 못하는 세계.
“기분이 이상하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번에는 외부 자의 혜택을 발동했다.
마법과 같이 이번에도 제대로 발동 이 되었다.
혹시 주변에 숨겨진 술식이나 마법 현상이 있지 않을까 둘러보는데 그 런 건 보이지 않았다.
“흐음…… 어떻게 탈출해야 하지.”
힌트도 없고 무작정 탈출하라고 하 니 답도 안 보이네.
“아으......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바로 그 순간 어디선가 작은 소란 이 들려왔다.
—야. 저 교복 처음 보는데 어디 학교지?
—와. 그나저나 무슨 아이돌 같네.
나는 소란이 느껴지는 장소로 고개 를 돌렸다.
나와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 무리 들이 한 여학생을 보며 소곤거리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그 여학생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교복이며, 머리며 많이 익숙한 모 습이었다.
“……최서윤?”
회귀한 엑스트라가 천재가 됨